평양체육관 광장에서 열린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 북한 청년들. 최근 탈북한 청년들은 “북한 청년들이 북한 노래보다 한국 노래를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photo 연합
평양체육관 광장에서 열린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 북한 청년들. 최근 탈북한 청년들은 “북한 청년들이 북한 노래보다 한국 노래를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photo 연합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북한 병사 오청성씨가 한국 걸그룹과 미국 드라마·영화 등을 좋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귀순병사를 치료했던 이국종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은 지난 11월 22일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환자에게 소녀시대의 ‘GEE’를 오리지널 버전과 록 버전, 인디밴드 버전 등 3가지로 들려줬더니 오리지널 버전이 가장 좋다고 했다. 걸그룹을 되게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북한 청년들이 한국 문화를 어떤 경로를 통해 접하고 있으며 어떤 가요가 인기를 얻고 있는지에 대한 국민의 관심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최근 탈북한 북한 청년 10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탈북 청년들은 대체로 아이돌 그룹의 노래보다 안재욱의 ‘친구’,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김범수의 ‘보고 싶다’, 거북이의 ‘빙고’, 이선희의 ‘인연’, 태진아의 ‘잘살거야’ 등 옛날 노래들을 더 선호한다고 했다. 10명의 탈북 청년들이 거론하는 노래 제목들은 대체로 비슷했다. 그들은 가사가 좋고 서정적인 노래, 밝은 느낌의 트로트 곡을 좋아한다. “아이돌 그룹의 노래는 랩이 섞여 있고 가사가 빨라 듣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소녀시대, 동방신기, 제국의 아이들, 슈퍼주니어, 티아라, 방탄소년단 등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듣거나 뮤직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현재는 북한으로의 정보 유입이 빨라져서 평양이나 북·중 접경지역에서는 한 달 이내면 한국의 최신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2016년 탈북해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는 K(28)씨는 드라마 OST를 통해 남한 노래를 많이 접했으며 가장 좋아한 곡은 안재욱과 이승철의 노래라고 말했다. K씨와 같은 고향 출신으로 2013년 탈북한 대학생 전효진(23)씨는 북한에서 거북이 ‘빙고’의 가사를 들으며 남한 사회를 더 동경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땅이 너무 좋아 이민 따위 생각 한 적도 없었고요’란 가사를 들으며 내가 사는 북한 땅은 너무 힘들어서 매일같이 떠나고 싶은데 남한 땅은 얼마나 좋으면 이런 노래가 있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전씨는 “고등학생 시절 농촌동원을 나가면 감시가 없을 때를 틈 타 남한 노래를 틀어놓고 동년배 친구들과 함께 떼창을 부르며 놀기도 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한국 노래를 듣다가 보위부에 발각되면 수용소에 수감되거나 심한 경우 사형·무기징역에도 처하게 된다. 2010년 탈북한 최유진(28)씨는 “보통은 수용소 입소 및 강제노동으로 끝나지만 시범단속기간에 발각되면 사형·무기징역에 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2015년 탈북한 Y(28)씨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까지는 단속이 허술했는데 남한 문화의 유입이 많아지자 2000년대 후반부터 단속이 강화되었고 이후부터는 남한 노래를 매우 조심해서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중형을 선고받더라도 돈을 쓰게 되면 쉽게 풀려날 수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탈북 청년은 남한 노래를 듣다가 발각됐지만 집안이 부유한 편에 속해 돈을 써서 바로 풀려날 수 있었다”고 했다. 다른 탈북 청년의 가족은 6개월간 수용소에 갇혀 강제노역을 하다 가족들이 돈을 마련해 뒤늦게 풀려날 수 있었다. 탈북 청년들은 단속의 무서움보다 한국 문화에 대한 갈망이 더 커서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 노래를 듣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한국 노래·드라마 등을 시청하는 데 사용하는 기기인 노트텔. ⓒphoto SBS뉴스 캡처
북한 주민들이 한국 노래·드라마 등을 시청하는 데 사용하는 기기인 노트텔. ⓒphoto SBS뉴스 캡처

시대가 변함에 따라 북한 주민이 한국 노래를 듣는 방법도 진화하고 있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으로 2010년에 탈북한 대학생 C(26)씨는 “주로 중국에서 들어오는 CD를 통해 남한 문화를 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온 탈북 청년들의 증언은 다르다. CD 사용은 감소 추세이고 사용이 편하고 발각될 위험이 적은 MP3, USB, SD카드 등의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2012년 탈북한 대학생 김가영(26)씨는 “예전에는 MP3 플레이어나 노트텔(DVD·USB 재생기기) 가격이 많이 비쌌는데 한국 민간단체들이 기기들을 북한 내부로 많이 들여보내면서 보급이 많이 됐고 판매가격도 떨어졌다”고 했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2014년 탈북한 대학생 강나라(21)씨는 “휴대폰에 SD카드를 꽂아 노래를 듣고 평상시에는 숨겨둬서 단속을 피했다”고 말했다. 북한에는 이미 250만개의 휴대폰이 사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 청년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던 것은 한국 문화를 접하며 한국 사회에 대한 동경과 탈북에 대한 생각을 더 갖게 됐다는 것이다. 평안남도 순천 출신으로 2012년에 탈북한 대학생 M(24)씨는 이렇게 말했다.

“평남 순천은 공업도시로 북한에서 잘사는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남한 문화를 접하며 한국이 훨씬 잘산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북한과 비교해 자유롭고 사람 냄새 나는 곳이라는 생각에 남한에 오고 싶은 생각이 강해졌다.”

함경북도 온성 출신으로 2012년에 탈북한 대학생 H(26)씨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한국 방송을 들으며 남한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기자는 더 자세한 정보를 얻고자 통일부 측에 하나원(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사무소) 설문조사 자료를 요청했으나 내부에서 활용하는 자료이므로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하나원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입소 및 퇴소 시에 설문조사를 시행한다.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교육프로그램 개선에 반영한다. 하나원에서 조사된 자료는 대북 확성기 방송 편성에도 반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조사 결과를 반영해 북한 주민들이 좋아하는 곡 위주로 방송하고 있다고 한다.

탈북 청년들이 애청하는 대중가요

아이돌보다 안재욱·이승철

탈북 청년들 중에는 노래의 제목은 모른 채 가사와 리듬만 기억하는 경우가 있다. 중국에서 들여온 제목이 없는 음원들을 접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를 통해 좋아하게 된 가요도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청년들 사이에서 안재욱, 이승철, 이선희의 인기는 여느 걸그룹이나 아이돌 그룹보다도 높았다. 탈북 청년 10명이 애청한다고 밝힌 대중가요는 다음과 같다.

안재욱 ‘친구’, 이승철 ‘그 사람’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등 다수, 이선희 ‘인연’ ‘나 항상 그대를’ ‘J에게’ 등 다수, 거북이 ‘빙고’, 태진아 ‘잘살거야’, 서영은 ‘혼자가 아닌 나’, 박혜경 ‘사랑과 우정 사이’, 박명수 ‘바다의 왕자’, 조성모 ‘너의 곁으로’, 윤도현 ‘너를 보내고’ ‘사랑했나봐’, 김범수 ‘보고 싶다’, 백지영 ‘총 맞은 것처럼’, 김형중 ‘동화’, 김종환 ‘사랑을 위하여’, 김수희 ‘남행열차’, 양희은 ‘아침이슬’, 양파 ‘사랑은 다 그런 거래요’, 녹색지대 ‘그래 늦지 않았어’, 드라마 ‘가을동화’ OST, ‘천국의 계단’ OST, ‘풀하우스’ OST, ‘해를 품은 달’ OST, ‘야인시대’ OST, ‘아이리스’ OST, ‘수호천사’ OST, ‘제빵왕 김탁구’ OST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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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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