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2485호] 201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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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화성 찜질방에서 제부도까지 죽은 공간을 살려낸 비결은?

▲ 제부도 문화예술섬 프로젝트로 탄생한 제부도 아트파크 전경과 내부 공간(위).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112.64t. 섬 하나를 살리기 위해 버린 폐기물 양이다. 인도 가운데를 차지한 나무벤치, 정체를 알 수 없는 조형물, 아무도 읽지 않는 안내표지판, 끈 풀다 숨 넘어갈 것 같은 구명튜브 보관함, 마대자루 너덜거리는 분리수거대, 시선을 가로막는 나무난간…. 하루 두 번 물길이 허락해야 열리는 섬, 경기도 화성시 제부도의 1년 전 모습이다.
   
   상인들의 호객행위, 난개발, 불법 펜션 영업이 뉴스에 오르내리고 관광객 발길이 주춤해지면서 제부도는 ‘죽어가는 섬’이 돼가고 있었다. 제부도를 살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은 비우기였다. 안내판 84개, 벤치 90개, 음수대, 조형물…. 불필요한 시설물 철거부터 했다.
   
   1년 만에 제부도가 확 달라졌다. 나무난간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녹슬고 빛바랜 안내판 대신 제부도를 형상화한 세련된 디자인의 안내판으로 말끔히 교체됐다. 해안산책로에는 나무난간 곳곳을 덜어내고 통유리를 설치했다. 산책로 한가운데 전망대를 차지하고 있던 조형물 대형 소라 자리엔 계단식 벤치를 설치해 낙조를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인도 가운데 막고 있던 나무벤치를 걷어내니 통행이 자유로워졌다. 마대자루 분리수거대는 멋진 옷을 입었다. 잡지에서나 본 듯한 스윙 의자, 바 의자, 서서 의자, 선베드를 곳곳에 놓아 멈추고 쉴 수 있게 했다. 방게, 오리가족 등을 형상화한 안내판은 포토존이 됐다. 상가 옆 임시주차장 부지에는 색다른 건물이 들어섰다. 6개의 컨테이너를 이어 만든 2층짜리 ‘아트파크’이다. 각각의 컨테이너는 바다 쪽으로 열려 있어 다른 각도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아트파크에서는 공연과 전시가 열린다.
   
   
   비우고 덜어내고 디자인을 넣다
   
   제부도를 바꾼 것은 공공미술 프로젝트이다. 화성시는 지난해 6월 ‘제부도 명소화’ 사업을 발표하고 문화예술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화성시와 손잡고 제부도를 바꾼 주인공은 장동선(39) 소다미술관장이다. 올해 제부도는 장 관장 덕에 상복이 터졌다. 문화예술섬 프로젝트는 문화관광체육부 주관 ‘2017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프로젝트 부문 대상을 받았다. 컨테이너 아트파크와 해안산책로의 경관벤치는 세계 3대 디자인상인 독일의 ‘레드닷 어워드’ 2개 부문을 석권했다.
   
   대단한 시설물이 들어선 것은 아니었다. 비우고, 덜어내고, 그 자리에 예술과 디자인을 넣었을 뿐이다. 제부도를 브랜딩화해 시설물을 정비하고 스토리를 만들었다. 주민 중에는 “도대체 뭐가 바뀐 거야?” 묻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공공미술의 힘은 놀라웠다. 제부도는 이제 ‘문화예술섬’이라는 새로운 수식어가 붙었다. 관광객도 늘었다. 올 관광객은 11월 현재 200만명을 돌파했다. 2015년에 비해 20%가 증가했다. 회 먹으러 오는 곳에서 낙조 바라보며 예술 감상하고 힐링하는 감성의 장소로 바뀌고 있다. 체류시간도 길어졌다. 젊은층이 늘면서 횟집 위주의 상권도 변하고 있다. 배트맨, 수퍼맨, 아이언맨…, 수퍼히어로 복장으로 관광객을 붙잡던 상인들은 호객행위 중단을 선언했다.
   
   지난 11월 24일 장 관장의 안내로 제부도를 찾았다. 이날은 섬으로 가는 길이 오전 8시15분에 열리고 오후 6시14분에 닫혔다. ‘모세의 기적’ ‘행복을 나누는 복지 화성’,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던 요란한 문구의 대형 표지판은 사라지고 없었다. 시야를 가로막던 표지판이 없으니 갯벌이 펼쳐진 제부도가 시원하게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는 전망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장 관장이 이번 프로젝트의 마지막 공사로 내년 2월 완공 예정이라면서 말했다. “전망대는 무조건 높게 솟은 타워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들을 설득하느라 가장 먼저 시작했는데 가장 늦게 끝나게 됐다.” 전망대는 물길처럼 낮게 바다를 향해 흐르는 구조였다. 설계 변경만 20번을 했다고 한다.
   
▲ 1년 전 제부도의 모습과 문화예술섬 프로젝트로 탈바꿈한 현재 모습. photo 소다미술관

   “비우기 작업이 가장 중요했다. 작은 섬에 시설물은 엄청 많은데 정작 필요한 것은 없더라. 인도를 차지한 벤치 때문에 유모차를 끌고 다닐 수가 없었다. 음수대를 철거할 때는 멀쩡한 것을 왜 없애느냐고 했다. 사람들이 발 씻는 사진을 보여주니 그때서야 이해하더라. 1년 내내 청소만 한 것 같다.” 장 관장은 공무원, 주민은 물론이고 군부대까지, 공공미술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새로 디자인한 해안산책로의 안내표지판들은 제부도의 자연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이게 비싼 소재다. 알루미늄에 아노다이징 처리를 해 부식이 안 되고 단단하다. 녹슬어 매년 교체하는 것보다 비싸도 이런 소재를 쓰면 10년은 문제없다. 돈은 이런 데 쓰는 거다.” 장 관장이 장갑 낀 손으로 안내표지판 먼지를 쓱쓱 닦으며 말했다.
   
   “공공디자인은 도시에 어울려야 한다. 튀면 안 된다.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도시가 주인이다. 갯벌, 철새, 낙조…. 제부도의 가장 좋은 것만 보여주자. 그것이 디자인이다.” 장 관장의 설득에 ‘눈에 띄게, 화려하게’를 외치던 공무원들도 달라졌다. 장 관장은 “서류 한 번 도는 데 6개월이 걸린다. 담당 공무원이 원칙만 외쳤다면 진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제부도의 상징이 된 아트파크는 이날 흰 옷을 걸치고 있었다. 새로 시작된 전시의 설치작품이었다. 황순원 작가의 ‘바람결’ 전시로 제부도 바닷바람을 시각적·청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든 작품이었다. 건물 전체를 그물망으로 감싸고 그 위에 포장할 때 쓰는 바인더끈으로 수만 개의 수술을 만들어 달았다. 전날 내린 눈에 얼어붙은 수술을 제부도의 차가운 바람이 ‘사그락사그락’ 소리를 내면서 지나갔다. 아트파크 전시 공간에 걸려 있는 빛바랜 사진 속에는 수십 년 제부도의 기억이 살아 있었다. 주민들이 기증한 것이다.
   
   제부도에서 27년 거주했다는 아트파크 지킴이 이연희씨는 “개발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자연과 어우러지면서 상업과 문화가 얼마든지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문화예술섬 프로젝트 덕분에 주민들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차를 세우고 항의를 해대서 처음엔 도망다녔다. 이젠 주민들이 먼저 인사한다. 제부도 프로젝트가 공공미술의 모델이 됐으면 좋겠다.” 장 관장의 말이다. “지자체의 사업항목에는 디자인료가 없더라. 우리나라는 생각의 가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동안 장 관장의 마음고생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 찜질방을 미술관으로 만들고 제부도를 변신시킨 장동선 소다미술관장.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찜질방을 미술관으로
   
   장 관장이 제부도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은 소다미술관에서 시작됐다. 경기 화성시 안녕동에 위치한 소다미술관은 화성시 최초의 사립미술관이다. 공사가 중단된 채 오랫동안 방치된 대형 찜질방을 2014년 미술관으로 변신시켰다. ‘2015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최우수상’, 2015·2016년 2년 연속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상’, ‘2017 한국건축가협회 베스트7’. 수상 이력이 말해주듯 소다미술관의 공간은 독특하다. 수상 소식을 듣고 화성시에서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제부도와 인연을 맺게 됐다.
   
   소다미술관은 장 관장과 남편인 권순엽 건축가(SOAP건축사사무소 대표)의 작품이다. 장 관장은 미국에서 MBA를 마치고 디자인전략컨설팅 회사에서 일했다. 부부가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들어와 처음 맡은 사업이 소다미술관이었다. 찜질방 건축주가 건물의 활용을 고민하다 수십 군데 건축사무소를 거쳐 SOAP을 찾아왔다. 부부가 고민 끝에 내놓은 키워드는 문화예술과 지역재생이었다. 동탄신도시에 밀려 낙후된 안녕동은 아파트만 군데군데 서 있을 뿐 문화 불모지였다.
   
   예산도 장소도 한계가 많아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 찜질방의 뼈대를 고스란히 살렸다. 목욕탕서 볼 수 있는 대형 원형 기둥도 그대로 있다. 마감이 덜 된 내장시멘트도 그대로 두었다. 전시에 필요한 곳만 흰색 페인트를 칠했다. 한쪽은 천장을 뜯어내 하늘로 뻥 뚫린 전시실을 만들었다. 2층에 컨테이너를 놓고 전시 공간을 만들었다. “화성은 물류도시이다. 곳곳에 컨테이너가 널려 있다. 컨테이너가 이렇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 장 관장의 말이다. 사각형 탕은 목욕탕 의자를 놓고 작품 감상하는 장소로, 폭포탕 자리는 넓은 창을 두고 머무르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2층 컨테이너 전시실에서는 다양한 각도의 도시를 볼 수 있다.
   
   공간이 다르니 전시의 내용도 색다를 수밖에 없다. 젊은 작가를 위주로 건축, 디자인, 설치작품이 주로 전시된다. 전시뿐만 아니라 플리마켓, 재즈콘서트, 푸드트럭, 핼러윈파티 등 지역민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공간 리모델링만 맡았는데 관장을 못 찾아 결국 장 관장이 총대를 멨다. “3년 내 자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고 큰소리 치고 건축주의 투자까지 받았다. 올해로 3년째, 자생이 가능하느냐 물어보니 “차라리 갈비집을 할 걸 그랬다”면서 웃었다. 커피값 5000원은 팍팍 쓰면서 미술관 입장료 4000원은 아까워하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미술관을 만든다고 했을 때 공무원도 아파트 주민들도 당황했다. “아파트값 떨어지게….” “쓸데없이 무슨 미술관?” 재즈콘서트 공연에 ‘시끄럽다’고 민원을 넣는가 하면 2층에 설치한 작품에 햇빛이 반사된다는 항의가 들어와 작품에 천을 씌웠다 벗겼다를 반복하기도 했다. 신축 아파트 횡단보도 때문에 미술관 입구를 변경해야 했다. 처음엔 서울에서 온 관객 비율이 훨씬 많았다. 그나마 상 덕을 톡톡히 봤다. 큰 상을 잇달아 받으면서 방문객이 부쩍 늘었다. 인근 부동산은 ‘미술관’을 동네 홍보용으로 내세운다. 지역민 비율도 늘었다. 지난 5개월간 2만명이 찾았다. 소다미술관은 입장권 한 장으로 전시기간 내내 무료 입장할 수 있다. “전시는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 장 관장의 생각이다.
   
   “신도시가 들어서면 아파트, 학원, 마트가 가장 먼저 생긴다. 그 다음이 키즈카페다. 7살 어린이에게 어디서 살고 싶냐고 물어보면 아파트 브랜드를 말한다. 아이들이 갈 곳이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경험에 돈을 쓰기 위해 비싼 돈 들여 여행도 가는데 가장 싼 돈으로 생각을 넓힐 수 있는 곳이 미술관이다.” 소다미술관에서 제부도까지. 문화예술을 통한 지역재생이 공공미술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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