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박상훈
일러스트 박상훈

“카톡!”

소리에 잠을 깼다. 아직 해뜨기 전. 시계를 보니 5시45분이다. 어제 업무로 만나 명함을 주고받은 60대 지인에게서 온 톡이다. ‘스승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 중국 고대 송나라 때 재상에 얽힌 이야기가 읽기 좋게 정리돼 있다. 짧은 호흡의 문장이 적당한 단락으로 나뉘어 있고, 중간중간 중요한 부분은 압정 모양의 이모티콘이 박혀 있다. 작은 폰트로 조정을 해두었는데도 두 화면이 훌쩍 넘는 긴 글이다. 맨 마지막 단락엔 ‘오늘의 명언’이 한 번 더 정리된다.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

30대 중반의 회사원 정모씨는 “받자마자 짜증이 확 났다”고 소감을 전했다. “원치 않는 단톡방(단체 톡방)에 초대되면 알림을 꺼두는데, 갑자기 초대된 톡이라 꺼둘 새가 없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이른 아침에 저런 글을 받으면 좋은 마음으로 읽히지 않는다. 비슷한 단톡방이 5~6개 정도 된다. 나이 드신 분들이야 아침잠이 없으셔서 깨어 계시겠지만 대부분 잠든 시간 아닌가. 보내시는 분의 의도는 ‘나눔’이겠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공격’받는 느낌이다.”

정씨는 ‘카톡 어택(attack)’이라는 표현을 썼다. 정씨의 단톡방 피로감은 증세가 심각하다. 원치 않는 글을 받을 때마다 침해당한 느낌이 들어 화부터 확 난다. 탈출 시도도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몇 개의 방은 ‘차마’ 나올 수 없어서, 몇 개의 방은 나가도 나가도 어김없이 다시 초대되면서 아예 탈출을 포기해버렸다.

‘카톡지옥’ ‘카톡쏘우’ ‘카톡감옥’이라는 말이 커뮤니티에서 공공연하다. ‘카톡쏘우’는 탈출이 거의 불가능한 방을 소재로 한 영화 ‘쏘우’를 패러디한 용어. “감금당하고 있습니다. 무한초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가르쳐주세요” “단톡방 때문에 머리 아파 미치겠어요” “시아버지·시어머니 카톡 때문에 돌아버리겠어요”라는 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카톡지옥, 카톡감옥, 카톡족쇄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라는 말이 있다. 원래의 의미는 업무시간 외에 업무와 관련된 연락을 받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근로자의 사생활 보호와 여가시간 보장을 위해 만든 개념이다. 프랑스에서는 올해 1월 1일부터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기 시작했고, 독일에서는 업무시간 이후 상사가 직원에게 전화나 이메일로 연락하지 못하게 하는 지침을 내리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 10명 중 7명은 카톡 등 SNS 업무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240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0.3%가 “업무시간 이외 또는 휴일에 스마트폰으로 업무 지시를 받아 일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대선 과정에서도 이슈였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SNS 등을 이용한 지시에 따라 근로하는 경우도 업무시간으로 봐야 한다고 했으며, 문재인 대통령 또한 퇴근 후 업무 지시 제한을 당시 공약으로 발표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비단 사업장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정확하게는 ‘초대받지 않을 권리’ ‘원치 않는 글을 수신하지 않을 권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반(半)강제성을 띠는 카톡방의 속성상 초대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그다지 많지 않다. 과거 MSN 메신저의 경우 초대받은 자가 ‘차단’할 권리가 보장됐다. 상대방이 자신을 초대하면 ‘수락·차단’을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원치 않으면 ‘차단’해버리면 그만이었다. 촘촘하지 않았던 연결망에서 차단은 꽤 흔한 일이었다. 그러면 초대한 방 혹은 그룹에 들어가지 않아도 됐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과도한 개방성을 지닌 카카오톡은 다르다. ‘초(超)연결사회’의 중심에 있는 SNS답게 방과 방 사이의 자물쇠가 느슨하다. ‘초대받는 자’보다 ‘초대하는 자’의 권한이 막강하다. ‘초대’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 방에 들어가 있다. 그때부터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방에 있는 사람들(적게는 1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 개개인이 보내는 메시지를 받아야 한다. ‘나가기’를 해도 단톡방 누군가 초대를 하면 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방에 어느새 들어가 있다. ‘카톡족쇄’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올라오는 글을 읽고 싶지 않아도 안 볼 수 없다. 단톡방을 선별적으로 ‘알림팝업 끄기’ 할 수 있는 기능이 없다. 설정에서 한 번 ‘알림팝업’을 선택하면 모든 글이 올라올 때마다 팝업이 뜬다. 자주 사용하는 단톡방이든 1년 내내 한 번도 참여하지 않는 단톡방이든 마찬가지다.

물론 카톡의 순기능도 많다. 편리성과 효율성 면에서 압도적이다. 여러 명이 약속을 정하는 경우, 공지를 전달하는 경우, 얼굴 보기 힘든 지인들과 안부인사를 나눌 경우 그보다 더 효율적인 공간도 드물다. 기발한 이미지를 담은 새해인사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말보다 더 강한 전달력을 지닌 이모티콘 하나에 배꼽 잡고 웃기도 한다.

그러나 순기능 못지않게 역기능을 호소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그 스트레스의 중심에 단톡방이 있다. 40대 초반 이모씨는 단톡방 스트레스 때문에 아예 SNS를 끊었다. 이씨는 단톡방을 ‘시간도둑’이라고 표현했다. 문화센터에서 알게 된 주부 15명의 단톡방이 계기가 됐다. “그중 한 엄마가 단톡방에 자신의 일상을 거의 실시간으로 올렸다. 아이 픽업하는 이야기부터 점심메뉴, 저녁메뉴를 사진까지 찍어서 거의 매일 올리고, 아이가 아프면 아이 똥 사진까지 올렸다. 어쩌다 해외여행이라도 가면 여행지 사진으로 도배했다. 왜 내가 이걸 보고 있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더라.”

SNS를 끊으면 불편한 점이 많지 않을까. 그는 “나만 소외될 것 같아 불안했는데, 의외로 그럴 일은 많지 않았다”고 했다. “카톡 안 하니까 신세계다. 꼭 필요한 소통은 전화와 문자만으로 충분하다. 직접 전화를 많이 하다 보니 오해의 소지도 적고 더 친근해지는 느낌이다. 시간의 여유도 많아졌다. 마음이 고요해졌다고 할까. 일상에서 짜증 내는 일도 적어진 것 같다.”

가짜정보의 온상

단톡방의 종류와 올라오는 글의 종류는 다양하다. 동향(同鄕)방, 가족친지방, 학부모방, 동호인방 등.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장문의 글 외에도 유머, 동영상, 건강, 음악 등도 올라온다. 개중에는 잘못된 의학정보도 종종 보인다. 배우 김주혁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에는 ‘혼자 있을 때 심장마비가 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제목의 글이 여기저기 올라왔다. 글에 의하면 “겁먹지 마시고 강하게 기침을 하라”고 돼 있다. 폐 안쪽에서부터 가래 생성과 배출이 쉽도록 2초 간격으로 끊임없이 반복해서라는 구체적 팁과 함께. 출처는 ‘서울아산병원’이어서 꽤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루머였다. 서울아산병원 측은 “병원에서 제공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일반인이 병원 이름을 자의적으로 가져다 쓴 것으로 보인다. 이 정보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침을 하느라 중요한 시간을 놓치지 말고 반드시 주위에 도움을 청하라”고 조언한다. 무엇보다 김주혁씨의 사망원인은 심장마비가 아닌 두부손상으로 밝혀졌다.

이런 가짜뉴스가 한두 개가 아니다. 고춧가루 효능, 생강 효능, 우엉차 효능 등의 제목으로 올라온 글들을 보면 하나같이 만병통치약이다. 혈액순환, 항암효과, 피부미용, 변비개선 등 해당 음식만 먹으면 백세라도 가능할 것처럼 돼 있다. ‘구강청결제의 효능’으로 떠돌아다니던 글 역시 상당 부분 유언비어였다. 구강청결제의 역사와 함께 단락별로 정리된 ‘전문가들조차 깜짝 놀란 7가지 효과’에 의하면 무좀 제거, 비듬 예방, 뾰루지 예방, 벌레 물려 가려운 데 등 놀랄 만한 효과가 있다고 돼 있다. 이 정보를 맹신하고 구강청결제를 세숫대야에 콸콸 붓고 30분 동안 발을 담갔다가 발톱에 시퍼런 물이 든 사람이 여럿이었다.

건강 정보는 주로 가족 단톡방에 많이 올라온다. 올리는 주체는 60대 이상 인 경우가 많다. 해당 정보 뒤에는 집안 어르신의 당부 말씀이 따라붙는다.

“아가야, 이거 읽어봐라. 생강이 이렇게 좋다는구나. 생강 쌀 때 사다가 꿀이랑 재워서 너도 먹고 애비랑 애들 먹여라” 식이다. 이런 글에는 답변을 안 할 수도 없다. 읽었는지 여부가 숫자로 친절하게 표시되니 시치미 떼기도 불가능하다. 소위 읽씹(읽기만 하고 답변을 안 하는 경우)하면 바로 한마디 더 붙는다. “아가! 읽었지?”

유머 관련 글도 꽤 올라온다. 노부부의 대화를 테마로 한 유머가 가장 많고, 가끔 야한 농담도 고급스럽게 포장돼 올라온다. 어디서 구했는지 삭제되기 전 핫한 19금 동영상을 퍼다나르는 경우도 많다. 음악을 좋아하는 어르신들은 유튜브 링크와 함께 해당 음악가 및 곡에 얽힌 스토리를 들려준다. 휴대폰 요금제에 대한 잘못된 정보도 올라오고, 아름다운 시가 소개되기도 한다. 많은 글 뒤에는 이런 말로 끝난다. “이걸 보시는 즉시 지인들에게 널리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지런함이 몸에 밴 세대답게 60대 이상 어르신들은 반응 속도도 즉각적이다. 보는 즉시 광속으로 단톡방에 퍼다 나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의하면 한국인의 70%는 단톡방을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간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0월 말 언론진흥재단은 20~50대 성인 남녀 1000여명을 대상으로 ‘메신저 단톡방 인식 및 행동조사’를 온라인으로 실시해 조사 결과를 미디어이슈 3권에 실었다. 일명 ‘한국인의 단톡방 보고서’라 할 만하다. 조사에 의하면 ‘참여하고 싶지 않은 단톡방에 초대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64.7%에 달했다. 이 가운데 52.5%는 ‘참여하고 싶지 않은 단톡방에 초대되면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그런가 하면 응답자의 70.8%가 ‘단톡방에서 나가고 싶었으나 못 나갔다’고 답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심기를 불편하게 할까 봐’(48.7%)가 가장 큰 이유였다.

한국인 평균 단톡방 5.7개

재미있는 것은 어떤 단톡방도 100% 사적 공간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 ‘단톡방에 대한 사적·공적 인식’에 대한 조사를 보면 조사 대상 중 29.5%가 단톡방을 공적 공간으로 인식했다. 직장동료와 업무 관련자의 경우 79.0%가 공적 공간으로 인식한다고 답했다. 이 부분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심지어 가족 단톡방을 공적 공간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12%에 달했고, 친구들의 단톡방을 공적 공간으로 인식한다는 응답자도 14.4%나 됐다.

이 수치는 무엇을 의미할까? 메신저 대화가 지닌 불가역성 탓이 크다. 온라인 대화에서는 한번 전송되면 돌이킬 수 없다. 톡방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 한번 전송해버리면 끝장이다. 삭제나 수정이 불가능하다. 삭제를 해도 내 방에서만 지워질 뿐 상대방 창에서는 지워지지 않는다. 네이버 밴드(band)나 댓글 등에서는 수정의 기회가 있다. 전송을 한 이후라도 수정을 하면 수정 버전으로 다시 올라간다. 하지만 메신저 대화는 지우개가 없다.

50대 김모씨는 단톡방을 개인톡으로 알고 엄청난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바로 앞에 글을 올린 사람만 보고 그 사람과의 개인톡인 줄 잘못 알고 욕까지 섞어 누군가를 험담한 것. 알고 보니 그 ‘누군가’까지 속한 단체톡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잠이 안 왔다. 미안하다고는 했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더라. 이후로는 그 사람 앞에서 죄인처럼 지낸다. 그때부터 카톡 공포심이 생겼다. 꺼진 불도 다시 보는 심정으로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톡방을 몇 번씩 확인하고 올린다.”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한 사람이 사용하는 활성화된 단톡방 개수는 평균 5.7개. 3~4개인 사람이 35.5%로 가장 많았고, 5~9개는 29.6%였다. 0~2개는 23.2%였고, 10개 이상인 사람도 11.9%나 됐다.

10여년 전쯤 이메일로 주고받는 ‘아침편지’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금과옥조 같은 명언에 아름다운 이미지가 입혀진 글과 사진은 나른한 아침에 활력소가 됐다. 아무리 바빠도 꼭 열어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귀하게 읽어내려갔고, 한 구절 한 구절 가슴에 콕콕 새긴 이들도 많았다. 지금은 어떤가. 원하지 않는 감동적인 글과 명언들이 내 방에 어느새 들어와 있고, 점점 넘쳐나고 있다.

연결 과잉 시대다. SNS의 힘은 크다. 세계 30억명이 SNS를 사용하고 있고, 이 거대한 연결망이 여론을 형성하고 마케팅 수단이 되면서 정치와 경제를 쥐락펴락한다. 사회에 끼치는 파급력만큼 개개인의 일상에 끼치는 영향력도 막강하다. 한국인의 1일 평균 SNS 사용시간은 1시간3분. 해마다 사용시간은 점점 느는 추세다. 기술에 지배받지 않고 기술을 지배하기 위한 성찰이 필요한 시대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누리기 위한 개개인의 성찰 역시 필요하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는 세컨드폰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방법은 두 가지. 알뜰폰 등 중저가 휴대폰을 하나 더 사용하는 경우와 단말기 하나에 2개의 전화번호를 사용한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위한 자신만의 처방전인 셈이다.

미국에서는 ‘더 라이트폰(The light phone)’이 출시됐다. 통화기능 위주로 최소한의 기능만을 탑재한 이 폰은 크라우드펀딩 서비스를 통해 2015년 선보였다. 신용카드 사이즈의 초박형 전화기에는 통화기능 외에 시계기능과 9개의 전화번호 저장이 가능하다. ‘킥스타터’는 ‘더 라이트폰’을 출시하면서 이렇게 표명했다.

“더 많은 연결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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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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