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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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8일 변호사와 세무사의 희비가 엇갈렸다. 변호사의 세무사 자격 자동부여를 폐지하는 세무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표결 전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던 한국세무사회 관계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법안처리에 반대하며 국회 앞에서 삭발식까지 가졌던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 인사들은 망연자실했다.

세무사법 개정안의 통과는 막판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다. 지난해 10월 4일 발의된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 1년간 계류 중이었다. 법사위 내 변호사 출신 의원들은 개정안 통과에 반대해왔다. 법사위 통과가 사실상 어려워지자 11월 24일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개정안이 본회의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변협의 강한 반발에 따라 자유한국당이 직권상정에 대한 원내대표 합의를 유보하면서 본회의 상정은 무산됐다. 이후 극적으로 3당 원내대표 합의가 이뤄졌고 12월 8일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개정안이 본회의 표결에 부쳐졌다. 표결 결과 재석의원 247명 중 215명의 찬성으로 개정안이 통과됐다.

세무사법 개정안은 16대 국회부터 발의돼 20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법사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 법안 통과는 국회선진화법의 적용을 받아 상임위인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로 상정된 최초 사례다.

지난 15년간 세무사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싸워온 인물이 있다. 이창규(70) 한국세무사회 회장이다. 이 회장은 앞서 2003년 세무사회 부회장으로 재직할 당시에도 세무사법 개정안 통과에 기여한 바 있다. 하지만 2003년 세무사법 개정에도 변호사의 세무사 자격 자동부여는 계속됐다. 12월 13일 이창규 회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국세무사회를 찾았다. 한국세무사회 빌딩 전면에는 세무사법 개정안 통과를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펄럭였다. 이 회장의 얼굴은 인터뷰 내내 밝았다.

- 변호사의 세무사 자격 자동부여 조항은 왜 폐지돼야 했나. “1961년 세무사법이 제정될 당시에는 세무사가 많이 부족했다. 부족한 세무 인력을 충당하기 위해 변호사, 회계사, 재정학 관련 석·박사 학위자, 세무공무원 등에게도 세무사 자격을 부여했다. 지금은 이미 충분한 숫자의 세무사들이 활동 중이다. 이제는 세무 분야에 특화된 전문성을 가진 세무사들이 세무 서비스를 전담해서 제공하는 것이 타당하고 국민에게도 유익하다. 변호사라고 해서 시험도 보지 않고 전문성도 검증하지 않았는데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전문자격사제도의 기본원칙에 어긋난다. 특혜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에 따르면, 과거 세무사가 절대 부족하던 시절에는 대학 재정학 교수, 공인회계사에게도 세무사 자격이 자동부여됐다. 심지어 10년 이상 경력의 세무공무원, 사무관의 경우 5년 이상만 돼도 세무사 자격이 자동부여됐다. 하지만 사회가 전문화되면서 1972년 재정학 관련 석·박사 학위자 및 교수를 시작으로 1999년 세무공무원, 2012년 공인회계사의 세무사 자격 자동부여가 순차적으로 폐지됐다.

- 세무 소비자가 얻는 혜택은 무엇인가. “세무 소비자가 세무를 전문으로 하는 세무사에게 세무대리업무를 맡기게 됨으로써 보다 전문적인 세무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변호사는 아무래도 세무 분야 전문성이 떨어진다. 부실한 세무업무 처리로 인한 납세자의 재산권 침해를 방지할 수 있게 됐다.”

- 변협 측에서는 세무사법 개정이 국민 선택권을 박탈한다고 주장한다. “국민 선택권을 박탈한다는 주장은 세무 인력이 부족했던 세무사자격제도 시행 초기에는 타당했을지 모른다. 현재는 맞지 않다. 세무사는 현재 공급과잉 상태다. 매년 800여명의 세무사가 배출된다. 정부에 세무사 배출 인원을 오히려 줄여달라고 요구해야 하는 형편이다. 로스쿨 도입 취지에 반한다는 주장도 맞지 않다. 의료전문변호사가 의료 분야를 열심히 공부했다 해서 의사면허를 주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변호사가 세무 분야를 열심히 공부해서 세무전문변호사로는 활동할 수 있지만, 자격시험 없이 세무사 자격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 2003년 세무사법 개정 후 변호사들은 사실상 세무사 활동에 제약을 받아왔다. “당시 법 개정에 따라 2004년 이후 자격을 취득한 변호사의 경우 세무사 명칭 사용이 금지되고 기장대행 등 세무대리업무를 할 수 없게 됐다. 다시 말해 변호사의 세무사 자격은 형식적 자격에 불과했다. 변호사들이 위헌소송도 제기했으나 헌법재판소는 ‘변호사는 세무실무능력(세무전문성)이 없다(2007헌마248)’고 결정했고, 대법원에서는 ‘변호사는 기장·세무조정을 할 수 없다(2012두1105)’고 판결했다. 이번 세무사법 개정은 변호사에게 세무사 활동은 못 하게 하면서 세무사 자격만 부여했던 법체계의 모순을 바로잡은 것이다.”

- 변호사들이 세무사법 개정 자체보다 추가 여파를 차단하기 위해 강력 반발했다는 분석이 있다. “일리 있는 분석이다. 세무사법 개정을 시작으로 변리사, 법무사, 노무사 등 관련 직군과의 다툼이 차례로 불거질 것에 대비해 강하게 반발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 변호사만 할 수 있던 특허침해소송을 변리사도 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변리사법 개정안이 발의돼 17대 국회 이래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장기 계류 중이다. 지난해 발의된 공인노무사법 개정안에는 노무사가 노동 관련사건 고소·고발인을 대리해 수사기관에서 피해사실을 대신 진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 국세청 출신 전관(前官)세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등 세무사들에 대한 비판도 있다. “과거 문제가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현재는 불법이 일어날 수 없도록 제도적으로 보완돼서 전관예우와 같은 일이 일어나기 어렵다.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앞으로 더 고쳐나가겠다.”

- 선진국과 비교해 보완해야 할 세무서비스에는 무엇이 있나. “독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세무사가 조세소송을 대리할 수 있어서 납세자의 권익을 마지막까지 책임진다. 일본은 세무사가 법원에서 납세자를 대리해 의견진술을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조세소송대리나 의견진술이 변호사의 직무로만 분류돼 있다. 납세자의 권익보장을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 한국세무사회 회장으로 향후 추진과제는 무엇인가. “가까운 미래에 AI(인공지능), 빅데이터 기술이 적용돼 세무 업무도 자동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트코인과 같은 새로운 분야도 나왔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국민에게 양질의 세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앞서 대응할 생각이다. 무료 세무상담 및 마을세무사 제도도 지속 시행할 예정이다. 국민 편에 서서 공익에 기여하는 한국세무사회가 되도록 힘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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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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