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장 마리 슈발리에 수석엔지니어가 김해공항 확장안을 설명하고 있다. ⓒphoto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지난해 6월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장 마리 슈발리에 수석엔지니어가 김해공항 확장안을 설명하고 있다. ⓒphoto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6·13 지방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소모적인 공항전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전문기관 등의 용역을 거쳐 신설이나 이전을 결정한 전국 3개 공항에서 동시에 터져나오는 점이 이례적이다. 국토교통부 구본환 항공정책실장은 지난 12월 5일 “일부 주민들이 제주 제2공항 예정지역 안개일수 통계 오류와 오름 훼손 가능성 등을 이유로 사전타당성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며 “절차적 정당성 확보와 투명한 갈등관리 등을 위해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1월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와 온평리 일대에 제주 제2공항을 신설키로 결정했다. 하지만 공항 예정지 인근 일부 주민들은 반대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제2공항 신설을 반대해왔다. 심지어 지난 11월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4일간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을 점거하고 부지 선정과정의 재검증을 요구해왔다. 반대 측 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42일간 단식농성을 벌이면서 공항 부지 재검토를 압박했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 국회의원인 민주당 소속 강창일·오영훈·위성곤 의원, 김우남 민주당 제주도당 위원장(전 의원·3선)도 국토부 측에 공항 부지 선정과정의 재검증 등을 요구해왔다. 강창일 의원(제주갑·4선)은 “공항 건설 부지가 왜 성산으로 갔는지 그 내막을 국회에서도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공항 부지 선정과정의 의혹을 키웠다. 오영훈 의원(제주을·초선)은 대정부질문을 통해 “제주 제2공항이 군공항으로 사용될 것”이란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제2공항 예정지를 지역구로 둔 위성곤 의원(서귀포·초선)도 비슷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 중 강창일 의원, 김우남 전 의원은 차기 지방선거에서 제주지사 여당 후보군으로 꼽힌다.

이 같은 전방위 압박에 국토부가 전문기관 용역을 거쳐 결정한 제주 제2공항 입지 선정과정을 재검증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한국항공대 산학협력단(한국항공대·국토연구원·유신엔지니어링)이 실시한 사전타당성 용역은 약 1년이 걸렸고, 8억원이 들어갔다. 그 결과 제주 제2공항은 2015년 11월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와 온평리 일대로 예정부지를 선정하고, 2016년 12월에는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이미 끝마친 상태다. 정부가 결정한 국책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과 관련해 입지 선정과정을 재검증하기로 한 것은 전례가 없다.

재검증 과정에서 2015년 부지 선정 연구용역을 수행한 항공대와 국토연구원 등은 재검증에서 배제돼 부지 선정 자체가 원점에서 재검토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당초 제주 제2공항은 2018년 착공해 오는 2025년 개항을 목표로 했으나 행정절차가 지연되면서 개항 시기가 늦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토교통부 신공항기획과의 한 관계자는 “반대 측에서 주장하는 정석비행장 안개일수 등에 대한 조사를 먼저 실시해 판단을 거치고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며 “입지는 재조사를 통해 중대한 오류가 있을 경우 심의나 검토를 하는 절차가 있다”고 말했다.

이전을 추진 중인 대구공항. ⓒphoto 연합
이전을 추진 중인 대구공항. ⓒphoto 연합

外風에 흔들리는 김해신공항

오는 2026년 개항을 목표로 추진 중인 김해신공항 역시 외풍에 흔들리기는 마찬가지다. 국토부는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해 6월 부산 가덕도를 신공항 후보지로 미는 부산과 경남 밀양을 선호한 대구의 치열한 신공항 유치전 끝에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에 국제연구용역을 맡겨 김해공항을 증축 확장하는 식으로 신공항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터키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공항과 유사한 방식으로 김해공항 신설 활주로의 방향을 ‘V자’로 약간 틀어 기존 활주로 북쪽의 신어산을 피하면서 비행기 이착륙의 안전성을 확보했다. 동남권신공항은 2002년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129편의 돗대산 추락사고 이후 김해공항의 이착륙 안전성을 개선하기 위해 본격화된 사업이다.

아울러 김해신공항은 남해고속도로, 부산김해경전철, 부전(부산)~마산복선전철(건설 중) 등 기존 연계교통수단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 ‘신(神)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강호인 국토부 장관은 “입지 평가 결과는 공항 건설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와 명성을 가진 ADPi가 5개 지자체가 합의한 방식에 따라 오직 전문성에 기초하여 공정하고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내린 최적의 결론”이라고 평가했다.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마저 “박근혜 정부 아래서 이뤄진 가장 책임 있는 결정”이라고 호평했다. 그에 따라 지난 4월에는 사전타당성 조사의 다음 단계인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끝마쳤다.

반면 내년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민주당 경남지사 예비후보군으로 꼽히는 경남 김해을의 김경수, 김해갑의 민홍철 의원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김해신공항 재검토 주장을 내놓고 있다. 김경수 의원은 지난 9월 김해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적극적으로 검토해 봐야 한다”며 “애초에 동남권 신공항이 24시간 관문공항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정치적인 이유로 결론이 났다”고 주장했다. 민홍철 의원도 지난 10월 김해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소음에다 24시간 운영 동남권 관문공항 역할 등을 감안하면 김해신공항은 적지가 아니다”라며 “지난해 왜 갑자기 밀양, 가덕도에서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정됐는지 그 과정을 국감에서 살펴볼 것”이라고 했다. 민홍철 의원은 10월 국토부 상대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해신공항의 소음대책이 부족해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원점재검토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이 속한 김해는 경남에서 민주당 성향이 가장 강한 지역이다. 지난 19대 대선 때 김해는 창원성산, 창원의창, 창원진해, 거제, 양산과 함께 문재인 당시 후보의 득표율이 경남지사를 지낸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보다 높았던 지역이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관 출신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경수 의원이 하는 말이라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것이다. 민홍철 의원 역시 국회 국토교통위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재선의원으로 국토부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위치에 있다. 자연히 오는 2021년 착공, 2026년 개항이란 당초 목표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구시 외곽으로 기존 군공항(K2)과 민간공항의 통합 이전이 결정된 대구공항 역시 잡음이 계속된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군공항만 대구시 외곽으로 이전하고 민간공항 기능은 현 위치에 존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면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진 이진훈 대구 수성구청장은 대구공항 통합이전 강력 저지를 공언하고 있다. 이진훈 수성구청장은 지난 10월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생명을 걸고 대구공항 통합이전을 저지할 것”이라며 “감사원 감사청구는 물론 통합공항 이전지 결정에 대한 행정소송, 헌법소원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대구시장 후보군으로 꼽히는 이재만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전 대구 동구청장)도 대구공항의 통합 이전에 부정적이다. 이들은 통합 이전 결정을 내리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 재선에 도전할 예정인 권영진 대구시장과 경쟁 관계에 있다.

잡음 계속되는 대구공항 이전

대구공항의 90% 이상 부지를 소유하고 있어 대구공항 이전사업을 맡고 있는 국방부는 지난 2월 대구시 외곽인 경북 ‘군위군 우보면’과 ‘의성군 비안면·군위군 소보면’ 2곳을 대구공항 이전예정 복수 후보지로 올리고 통합이전에 필요한 행정절차를 진행 중이다. 반면 대구공항 이전이 결정된 뒤 정작 대구공항은 지난 11월 연간 이용객이 1961년 개항 이래 최초로 300만명을 돌파하는 등 도심에 가까운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 지난 12월 1일부터는 아시아나항공 계열의 저가항공사(LCC)인 에어부산이 2007년 10월 이후 중단됐던 김포~대구 국내선을 복항시키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전예정 후보지인 경북 군위군과 의성군은 군공항을 받는 조건으로 따라오는 민간공항 이전이 무산될 경우 공항을 받을 이유가 없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는 형편이다. 군위군 공항추진단의 한 관계자는 “통합 공항 이전이 원칙”이라며 “군공항만 받을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국방부 군공항이전사업단 이전사업과의 한 관계자는 “선정실무위원회에서 결정을 해야 하는데 이전예정 후보지(군위·의성) 둘 중 하나를 어떻게 결정하겠다는 가이드라인도 아직 없는 상태”라며 “기부 대 양여 사업으로 진행하는 터라 대구시의 입장이 중요한데 대구시 안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등 결코 쉬운 사업이 아니다”고 말했다.

줄잡아 수조원이 투입되는 대형 국책사업이 중심을 못 잡고 휘청이는 것은 공항과 같은 국책사업 상당수가 정치적 목적으로 성급하게 추진된 탓이다. 대구공항 통합 이전은 지난해 대구시에서 추진해온 경남 밀양 신공항이 무산되자 이에 대한 보상으로 성급하게 결정됐다. 김해공항 증축을 통한 김해신공항 결론을 내린 것은 2016년 6월이다. 다음 달인 같은해 7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대구공항은 군과 민간공항을 통합이전함으로써 군과 주민들의 기대를 충족해야 할 것”이라며 대구공항 통합이전을 지시했다. ‘어명’으로 추진된 성급한 통합이전 결정이 두고두고 뒷말을 낳는 것이다. 그 결과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만 제주 제2공항, 김해신공항, 대구공항 무려 3개 공항의 신설 또는 이전 결정이 내려졌다. 군공항인 수원공항을 경기도 화성시 화옹지구로 이전하기로 결정한 것까지 더하면 무려 4곳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 지자체의 무리한 요구에 맞서 중심을 잡아야 할 국토부, 국방부 역시 휘둘리고 있다. 중앙정부의 줏대 없는 결정은 두고두고 부담이 되고 있다. 1993년 아시아나항공 733편의 목포공항 추락사고 후 목포공항을 폐쇄하고 개항한 무안공항이 대표적이다. 당초 무안공항은 목포공항의 대체공항으로 추진됐으나 사업 규모를 키우기 위해 ‘서남권 거점공항’으로 둔갑해 목포공항에 아울러 광주공항의 국내선과 국제선 기능까지 모두 옮겨오는 국책사업으로 추진됐다. 무안공항 이용편의를 도모한다고 공항 개항에 맞춰 무안광주고속도로까지 개통했다.

하지만 2007년 무안공항 개항 후에도 광주공항은 국제선 기능만 무안공항으로 옮겨오고 국내선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당초 결정과 달리 광주공항의 국내선 존치를 요구하는 광주광역시의 고집에 국토부가 밀린 탓이다. 2015년 호남고속철 개통과 함께 광주공항 국내선을 무안공항으로 옮기겠다던 약속도 공염불이 된 지 오래다. 무안공항과 광주공항은 둘 다 반쪽짜리 공항이 됐다. 급기야 국토부는 지난 11월 30일, 무안공항 활성화를 명분으로 호남고속철 2단계 사업(광주송정~목포) 때 호남고속철을 무안공항으로 경유하도록 하는 결정까지 내렸다. 나라살림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는 그간 돈은 많이 들고 효과는 의심스러운 호남고속철 무안공항 경유를 반대하고 지선(支線) 연결을 추진해 왔으나 돌연 입장을 바꿔 찬성했다. 노선 변경으로 증액되는 사업비는 약 1조1300억원가량이다. 국책사업이 정치에 좌우되면 두고두고 국민 세금으로 돌아온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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