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태백산맥’ 제3권 ⓒphoto 교보문고
조정래 ‘태백산맥’ 제3권 ⓒphoto 교보문고

소설가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이 국내 저명시인의 시(詩)를 무단수록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태백산맥’은 1986년 첫 출간 후 지금까지 850만부 이상 팔린 초(超)베스트셀러다. 주장을 제기하는 측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순이,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로 시작하는 ‘달 포도 잎사귀’(1936)란 시로 유명한 초애(草涯) 장만영 시인(1914~1975)의 유족 측이다. 장만영 시인은 서정적 문체로 유명한 일제강점기 시인으로 광복 후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다. 2015년에는 장만영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교보문고 대산문화재단에서 기념문학제를 개최하고, 도서출판 ‘국학자료원’에서 장만영 전집 4권을 출간하기도 했다.

장만영 시인 유족 측이 “‘태백산맥’에 무단수록됐다”고 주장하는 시는 ‘농부(農夫)의 설움’이다. ‘나는 타는 듯한 햇볕 아래를/ 맨발로 헤매며 논에 왔노라/ 집에 병들어 누운 아내를 생각하며/ 서 마지기 조그만 나의 논에/ 파랗던 어린 모는 가뭄에 타 마르고/ 쪼개진 논바닥엔 새우새끼 누웠고야/ 아, 이 모양 차마 보기 어려워/ 나는 논두렁 치며 엉엉 울었노라/ 해 넘어가는 것도 그저 모르고’라는 시다. ‘태백산맥’ 3권 ‘농민, 그 사무치는 설움’이란 장에 등장한다. 해당 시가 ‘태백산맥’에 수록된 것을 최근에야 확인한 유족 측은 “‘태백산맥’ 출간 당시 유족 측과 전혀 논의된 바 없다”고 주장하며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를 통해 출판사와 작가를 상대로 합당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 중이다.

유족 측에 따르면, 해당 시는 일제강점기 때인 1932년 발행된 잡지 ‘농민(農民)’ 제3권 제7호에 실렸던 시다. ‘농민’은 1925년 창간된 천도교(동학) 계열의 농민계몽 잡지다. 장만영 시인의 아들이자 한국문인협회 회원인 장영훈 시인은 “‘농부의 설움’이란 시가 ‘농민’이란 잡지에 수록된 것은 장만영 시인의 전집에도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물론 문제의 책을 살펴보면 조정래 작가와 출판사 측이 무단도용을 한 것 같지는 않다. 해당 시 바로 아래에는 “시인 장만영이 일천구백삼십이년에 쓴 시 ‘농부의 설움’이다”라고 친절한 부연설명이 붙어 있다.

다만 유족 측은 “시의 출처를 밝힌 것과 합당한 저작권료를 지불했는지는 별개 문제”란 입장이다. 장만영 시인의 시는 가수 최헌의 히트곡 ‘순아’(1979)에 도용돼 역시 한 차례 저작권 분쟁을 빚은 바 있다. ‘서울 어느 하늘 아래 낯설은 주소엔들 어떠리/ 아담한 집 하나 짓고 순아 단둘이 살자’로 시작하는 노래 ‘순아’는 ‘서울 어느 뒷골목 번지 없는 주소엔들 어떠리/ 조그만 방이나 하나 얻고 순아 우리 단둘이 살자’로 시작하는 장만영 시인의 ‘사랑’과 거의 같다. 장만영 시인의 장남 장석훈 전 대한언론인회 전문위원은 “약 20년 전의 일로 당시 돈으로 100만원 정도 보상을 받았다”며 “지금도 한 달에 일정금액이 저작권료로 들어온다”고 했다. 해냄출판사 이진숙 편집장은 “유족 측에서 장만영 시인의 시가 어떤 연유로 ‘태백산맥’에 실리게 됐는지를 문의해왔다”며 “조정래 작가가 국외 출장 중인데 입국하는 대로 당시 저작권자의 허락이 있었는지, 당시 관례는 어땠는지 등 자초지종을 따져 유족 측에 답변을 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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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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