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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2490호] 2018.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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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그 골목에선 매일 누군가 사라진다

남대문 쪽방촌 간호사의 하루

▲ 한진희 간호사(앞쪽)가 치매를 앓고 있는 쪽방촌 주민을 위해 약봉지를 요일별로 꽂아뒀다. photo 이대영 사회복지사
지하철 1호선 서울역 10번출구로 지상에 나오면 오른편에 좁은 언덕길이 보인다. 대로변 빌딩에 가려 사시사철 볕이 안 들고 바람이 몰아치는 길이다. 이 길을 50m 정도 오르면 왼쪽에 2층짜리 노란 컨테이너로 된 남대문지역상담센터 건물이 있다. 길 오른편에 여러 채 몰린 허름한 건물들은 ‘남대문 쪽방촌’으로 불린다. 약 550가구로 구성된 이곳 주민들의 대다수는 쪽방에 혼자 산다.
   
   지난 1월 2일 오후 서울 남대문지역상담센터 입구 앞에서 한진희(48) 간호사를 만났다. 자그마한 체구에 두꺼운 후드티와 패딩조끼를 껴입은 한 간호사는 노란가방을 옆으로 멘 채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마침 쪽방촌을 돌며 주민들의 상태를 살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 간호사는 서울시가 2016년 2월 도입한 쪽방촌 간호사 6명 중 한 명이다. 서울역 10번출구 근처 ‘남대문 쪽방촌’을 만 2년째 전담해 주민들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있다. 다른 간호사들은 서울역, 영등포, 동대문 등 서울 다른 지역의 쪽방촌을 담당한다. 이날 한 간호사, 이대영 남대문지역상담센터 사회복지사와 함께 쪽방촌의 10여가구를 돌며 남대문 쪽방촌의 새해 풍경을 살폈다.
   
   
   엄마 같은 역할 하는 사람
   
   한진희 간호사가 쪽방촌의 한 건물 입구로 들어섰다. 대낮인데도 건물 내부 복도는 깜깜했다. 복도 양옆으로는 마주 보고 줄줄이 붙은 갈색 방문들이 보였다. 한 간호사가 가장 안쪽에 있는 방문에 다가가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아저씨 계세요?” 문이 열리자 안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쪽방촌 주민 서모씨였다. 그는 두꺼운 외투를 여러 벌 껴입고 이불을 여러 겹으로 겹친 위에 앉아 있었다. 얼굴을 비롯한 온몸이 퉁퉁 부은 모습이었다. 그는 불편한 듯 연신 눈을 깜빡였지만 표정은 밝았다. 방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한 간호사가 서씨의 발치에 앉아 노란가방에서 휴대용 혈압 측정기를 꺼냈다. “점퍼 하나만 벗어봐요. 혈압 좀 재 보게.” 한 간호사가 회색 혈압측정기를 서씨의 팔에 감았다. 방 한쪽에는 얼핏 보기에도 잔뜩 쉰 김치가 여러 개의 플라스틱통에 담긴 채 쌓여 있었다. 이불 옆 전기밥솥 위에는 개봉하지 않은 꽁치통조림이 보였다. “복약지도서 이거는 제가 갖고 볼게요. 약은 잃어버리면 안 되고 음식은 짜게 드시면 안 되는거 알죠?” 한 간호사는 나긋나긋한 말투로 환자에게 약을 복용하는 방법과 생활 전반의 요령을 설명했다. 서씨가 “병원에서 제한해 먹을 게 없다”며 툴툴댔다.
   
   서씨는 최근 심한 하혈로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기존에 앓던 대장 질환이 악화된 탓이다. 서씨와 친하게 지내던 같은 층 주민이 ‘화장실에 들어간 사람이 안 나온다’며 한 간호사에게 신고했고, 구급차가 제때 도착한 덕분에 병원으로 이송됐다. 당시 그의 혈압은 55/45. 출혈 때문에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서씨는 지난해까지 대장암, 치질, 전립선 세 가지 수술을 받았다.
   
   한 간호사는 꼼꼼하게 서씨가 식사를 언제 했는지를 확인했다. “지금 아저씨 몸이 부었어요. 음식을 짜게 드시면 안 돼. 아저씨는 음식이 짠 편이라. 통조림도 짜지 않게 드셔. 응? 반찬을 사서 드셔 싱겁게.”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 한 간호사가 쪽방촌 주민들을 부르는 호칭이다.
   
   한 간호사가 같은 층의 다른 방 문으로 다가섰다. “방금 본 분이랑 ‘절친’(매우 친한 친구)이에요, 절친.” ‘절친’이라 불린 주민 문모씨가 문을 열었다. 몸이 부은 서씨보다 훨씬 건강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한 간호사는 문씨와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다. 서씨의 건강 상태가 주된 대화 소재였다. “우리 아저씨가 바빠요. 옆 아저씨 상태가 안 좋으면 전화해 주시고.” 얼마 전 서씨가 화장실에서 쓰러졌을 때 한 간호사와 함께 119에 신고하고 응급실까지 동행한 사람이 문씨였다. 얼마 전 직장을 잃은 문씨는 이날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쪽방촌에 막 돌아온 길이었다.
   
   쪽방촌 간호사의 근무시간은 원칙적으로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주 5일이다. 하지만 정시퇴근은 어렵고 주말근무도 다반사다. 쪽방촌에서 사건·사고가 언제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쪽방촌 주민 중에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많다.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월 60만~70만원 중 방값으로 18만~25만원을 지불하면 수중에 남는 돈은 40만원 선이다. 이들은 당뇨, 고혈압, 심장질환을 가진 경우가 많다. 끼니를 거를 때가 많은 데다 술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환자들을 돌보고 주민들과 소통할 쪽방촌 간호사가 필요한 이유다.
   
   한 간호사는 특히 구급차 사이렌 소리에 민감했다. 이날 쪽방촌 순회를 마친 뒤 남대문지역상담센터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한 간호사는 반사적으로 뛰쳐나갔다. 다행히 이날 소리를 낸 구급차는 쪽방촌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급성 질환자는 병원에 후송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본인들이 스스로 건강관리를 해야 해요. 관리가 안 되니 매 끼니 식사는 잘 하시는지, 약은 잘 드시는지 잔소리할 사람이 필요한 거죠. 실제 간호사로 역할을 하는 것보다도 시어머니 같은 사람, 엄마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에요.”
   
   한 간호사는 쪽방촌 간호사가 되기 전 서울 성북구의 성가복지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당시 친하게 지내던 환자 한 명이 퇴원 뒤 고시원에서 사망한 것을 계기로 쪽방촌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때가 설 연휴였어요. 되게 소심하고 내성적인 분인데 저한테는 마음을 조금 여셨어요. 연휴 끝나고 출근할 때 제가 개나리꽃 꺾어다 드리기로 했었는데. 출근하고 나서 아저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어떻게 고시원에서 죽을 수 있지’ 화가 나면서 한편으로는 어떻게 생활하는 건지 궁금하더라고요.”
   
   
▲ 한진희 간호사(앞쪽·오른쪽)가 쪽방촌 주민의 혈압을 재고 있다. photo 이대영 사회복지사

   친한 주민 사망하면 한 달은 아파
   
   한진희 간호사를 따라 쪽방촌의 다른 건물 3층 복도에 들어섰다. 마찬가지로 어두컴컴한 복도 양옆으로 8개의 방이 보였다. “옆방에는 다 남자들이 사는데 이 방에는 할머니 한 분이 계세요. 옆방 주민분들이 할머니가 밖에 안 나오면 모시고 나와서 같이 산책하곤 해요. 지원받는 쌀이나 음식도 갖다드리고요.” 설명하며 한 간호사가 방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약은 다 드셨어요?” 치매를 앓는 70대 주민이었다. 방에 들어선 한 간호사는 바닥을 손으로 짚어 온도를 확인했다. 한 간호사는 약봉지를 들어 접은 뒤 푸른색 판 한 줄에 일렬로 꽂았다. 판에는 2주간의 날짜가 요일별로 적혀 있었다. “할머니, 약을 여기 맨 위에 올려 놓을게. 할머니 오늘 며칠이라고 했죠?” 한 간호사의 말에 할머니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과 공간을 알고 있는지를 통해 환자의 지각능력을 확인하는 지남력(指南力) 테스트였다.
   
   한 간호사가 맞은편 방문을 두드렸다. “여기 아저씨가 할머니를 그렇게 잘 챙겨주세요.” 털모자를 쓴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 문을 열며 멋쩍어했다. “잘 챙겨주긴 뭘 잘 챙겨줘, 근데 경식이 죽었다며?” 예상치 못한 얘기를 들은 한 간호사가 동작을 멈췄다. “반경식 아저씨?” “나도 어저께 알았다니까. 그저께 화장실에서 뇌진탕으로 죽었대. 119에 갔잖아.” “화장실에서 누가 쓰러졌다는 건 들었는데 그게 그 사람인지는 몰랐네.” 평소 친밀하게 지내던 쪽방촌 주민의 죽음을 전해들은 한 간호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몇 번이나 되물었다.
   
   “반경식님은 저한테 각별한 사람이에요. 진짜 100m 앞에서 절 봐도 ‘간샘(간호사 선생님), 간샘’ 하고 불렀는데. ‘밥 먹었어요? 간샘, 간샘’ ‘나 약 먹었어요. 간샘, 간샘’. 안 그래도 그 아저씨 자꾸 술 먹어서 걱정이었는데. 혈압이 높았다가 떨어졌다가 하는 분이었는데. 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하는데 약을 안 먹고 밥도 안 먹고 술만 먹으니까.”
   
   한 간호사의 목소리가 잠겨들었다. 날씨가 추워지는 동절기면 쪽방촌 주민들 중 평소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한 간호사의 설명이다. 지난해 마지막 날 숨진 이는 마흔네 살이었다.
   
   한 간호사 혼자 매일 550가구 규모의 남대문 쪽방촌을 다니다 보니 힘든 일이 많다. 이따금 남대문센터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쪽방촌을 다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 간호사 혼자 간호를 다닌다. 이 때문에 쪽방촌에 오래 거주한 주민들이나 연세 지긋한 주민은 한 간호사의 안전을 종종 걱정한다. 한 간호사가 올라간 층 방에서 한참 동안 내려오지 않을 때는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해 다른 주민들이 따라 올라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것이 한 간호사의 설명이다. “아저씨들이 ‘빨리 들어가라’고도 해주고. ‘어두운데 위험하게 왜 나왔냐’고도 하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힘이 나죠.” 겨울철 해가 짧을 때면 쪽방촌은 일찍 어둑어둑해진다.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산 밑에 있는 탓이다.
   
   실제로 쪽방촌에 입주한 지 얼마 안 되거나 술 취한 사람은 한 간호사를 여성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날 기자와 함께 쪽방촌을 다닐 때도 한 간호사에게 짓궂은 동작을 취하는 40대 남성 두 명을 골목길에서 만났다. 그들 중 한 명은 손에 막걸리 네댓 병을 담은 봉투를 들고 있었다. 한 간호사는 “무섭긴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싫어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한 간호사는 쪽방촌에서 하루 평균 20가구 정도를 찾아 주민들의 상태를 살피고 대화를 나눈다.
   
   이날 친밀한 주민의 죽음을 전해들은 한 간호사는 줄곧 우울한 표정이었다. “사실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어요. 진짜 친밀감 있는 분들이 돌아가시면 (여파가) 한 달은 가요.” 당뇨, 고혈압 등 각종 질환을 달고 사는 쪽방촌 주민들은 제때 병원에 가는 경우가 적다. 쪽방촌 간호사라 해도 주민을 병원에 강제로 보낼 수는 없다. 자발적으로 병원에 가도록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한번 사회에서 밀려나는 아픔을 겪은 쪽방촌 주민들은 간호사라고 해도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다. “당장 병원에 가면 입원할 거 같으니까 자꾸 미루는 거예요. 하루라도 더 놀다 가고 싶으니까요. 그렇다고 아저씨들을 내가 끌고 갈 순 없으니까. 계속 약속을 하고 다음에 와서 안 지키면 또 약속을 하고. 그러다 보면 아저씨가 오히려 저한테 미안해하고. 이렇게 신뢰를 쌓아서 병원에 스스로 가게 하는 거죠.”
   
   
   대부분 만성질환자
   
   한진희 간호사는 쪽방촌을 다니면서 만나는 주민들과 밝게 인사를 했다. 주민들도 대부분 반갑게 인사를 받았다. “밝게 인사하고 한마디 나누는 것 자체가 마음의 벽이 무너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바깥에서 소외받으면서 쌓인 마음의 벽이요. 이렇게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되는 것 아닐까요?”
   
   기초수급자가 대부분인 쪽방촌 주민들은 각계로부터 물질적 지원을 받는다. 정부, 지자체가 지원을 주도하고 각종 기업체와 종교단체의 후원도 이어진다. 서울역, 영등포역 주변 등 서울의 대표적인 쪽방촌에는 각종 단체가 제공하는 무료급식 시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일을 하지 않아도 주위의 도움으로 최소한의 식사와 옷은 보장받을 수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쪽방촌 거주민들을 돕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 무위도식하는 이들을 세금으로 먹여살린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기자가 이날 만난 주민들 중에서도 평일 대낮에 쪽방에 앉아 TV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한 한 간호사의 생각을 물었다.
   
   “이분들의 현실을 직접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어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인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사회에서 밀려난 분들이고 가족들한테도 버림받은 경우가 많아요. 병 때문에 아파서 술을 먹고, 술을 먹으니까 더 건강이 안 좋아지고 악순환이에요. 불쌍하게만 보면 끝이 없어요.” 이날 만난 주민들 중 대부분은 고혈압, 당뇨 등 질환을 앓고 있었다. 당뇨 합병증으로 인해 손이나 발을 절단한 이들도 여럿 있었다.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잊으려 술에 의지하다가 더 큰 고난에 빠지게 된 것이다.
   
   한 간호사는 쪽방촌 주민들 중에는 자기 이름도 제대로 못 쓰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교육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특히 40·50대 젊은 주민들도 문맹(文盲)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릴 때 부모에게 버림받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은 탓이다. 현재는 고아원에 수용된 이들도 일반적으로 고등학교까지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생활하면 악순환이 시작된다. 여기에 감옥이라도 다녀오면 직업을 찾기 어려워지고 삶은 더욱 각박해진다는 것이 한 간호사의 설명이다.
   
   “주민들을 꾸준히 찾으며 신뢰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주 만나고 신뢰를 쌓아서 이분들이 저를 믿고 따라올 수 있게끔 하는 거죠. 사람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조건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쌀하고 물건만 주는 게 전부가 아니니까요. 지금 계시는 분들은 저희 주민이니까. 이분들이 다시 거리로 나가지 않도록 도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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