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미국인들이 코딩을 배웠으면 좋겠다.”

2013년 12월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이 컴퓨터 교육 주간을 기념해 공개한 영상 연설에서 한 말이다. 미국이 과학기술 발전을 이끄는 입장을 유지하려면 미래 세대가 코딩을 배워야 한다는 요지였다. 찬반 논쟁이 이어졌다. 반대 입장의 요지는 이랬다. “운전하려면 자동차 엔진 설계를 배워야 하나? 모든 사람이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은 모든 사람이 수도 배관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것과 비교해 별로 나아 보이지 않는다.” 논쟁에선 일단 찬성 측이 판정승했다. 주에 따라 다르지만, 미국의 많은 공립학교에 코딩이 정규 교육으로 도입됐다. 플로리다, 아칸소, 캘리포니아 등이다. 미국 외에도 이스라엘, 핀란드, 영국, 일본에서 정규 교과로 교육 중이다.

한국에도 올해부터 학교 교실에 코딩이 들어온다. 정확히는 소프트웨어(SW) 교육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엔 올해부터, 초등학교 5·6학년엔 내년부터 SW 교육이 단계적으로 도입된다. 중·고등학생들은 연간 34시간, 일주일에 평균 한 시간 SW 수업을 듣게 된다. 2019학년도부터는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도 연간 17시간, 일주일에 평균 0.5시간 교육을 받는다. 2015년에 결정된 사안이다. SW 교육이란 이름으로 실질적으론 코딩을 가르친다.

코딩은 한마디로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배워 그걸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도입 배경은 역시 4차 산업혁명이다. 대비를 위해 ‘컴퓨팅 사고력’을 기르자는 얘기다. 컴퓨팅 사고력이란 개념은 1980년에 처음 등장했다. 시모어 패퍼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제기했다. 당시엔 별 반향이 없었다. 2006년에 본격적으로 주목받았다. 지넷 웡 카네기멜론대 교수가 그해 신문에 쓴 기고문 때문이었다. 웡 교수는 “인간이 더하기, 빼기를 알아야 하듯, 21세기를 살아갈 아이들에겐 컴퓨팅 사고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컴퓨팅 사고력은 컴퓨터(사람이나 기계)가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문제를 정의하고 그에 대한 답을 기술하는 것이 포함된 사고 과정을 뜻한다. 복잡한 설명 같지만, 어떤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 과정을 컴퓨터가 잘 해낼 수 있도록 설계하고 답을 찾는 능력을 뜻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어렸을 때 코딩을 접하는 것 자체가 나쁠 건 없다는 의견이 많다. 문제는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으로 이어지는 거다. 결국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이 컴퓨터와 대화하는 알고리즘을 재미있게 익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컴퓨팅 사고력을 익힐 수 있으면 최선이다. 어린 나이에 주입식 교육은 의미가 없다고 업계 종사자들은 말한다. 프리랜서 코더 전승희씨의 설명이다. “컴퓨터 프로그램 자체가 몇 년이 지나면 변한다. 전공자도 몇 년 업계를 떠나 있으면 새로 익혀야 한다. 기계처럼 코딩 관련 프로그램 구동하는 법만 배워봤자 쓸모없다는 얘기다.”

 ⓒphoto 코드닷오알지 홈페이지 캡처
ⓒphoto 코드닷오알지 홈페이지 캡처

AI가 코더 업무 대체할 수도

코딩 교육을 반기는 건 사교육시장이다. 사교육 기관이 밀집해 있는 서울 일부 지역에는 코딩학원이 한자리 차지한 지 오래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서울시교육청의 학원·교습소 현황 자료를 분석해 보니 서울의 코딩학원·교습소는 2015년 3곳에서 2017년 25곳으로 늘었다. 여기에 수학학원이나 컴퓨터학원이 코딩 강좌를 개설한 경우까지 더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서울 강남과 목동엔 코딩 유치원도 생겼다. 유치원생들에게 ‘자바 프로그램’ 구동법을 가르친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규과정 편성 대비 코딩 선행학습’ 캠프도 운영 중이다. 학부모의 심리는 간단하다. 아이가 어렸을 때 코딩을 못 배우면 4차 산업혁명 물결에서 도태될까 하는 우려다. 과연 그럴까.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은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올려뒀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재직 시절 프로그램 코드를 단 한 줄도 짠 적이 없다.” 워즈니악의 말이 맞다면 스티브 잡스의 성공은 코딩이 아니라 창의력에서 나왔단 얘기다.

‘코딩만 잘하면 취업 걱정 없다’는 코딩 환상론도 코딩 사교육을 부추긴다. 관련 종사자들의 얘긴 다르다. 코딩을 하는 사람을 코더라고 한다. 실제로 현재 미국 등 일부 IT강국에서 코더의 숫자가 부족한 건 사실이다. 코딩은 프로그램 기획에 비하면 단순한 업무이기 때문에 금방 공급이 채워지고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인도가 이미 세계 IT 인력시장에 코더를 대거 공급 중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AI가 코딩을 할 거라는 전망도 있다.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이 일자리의 미래에 관해 연구했다. 그 결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업무는 자동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AI의 ‘머신러닝’이 더욱 발전하면서 알고리즘을 이용해 소프트웨어 설계를 최적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코딩 자체가 구직에 결정적 요소는 아니란 얘기다. 우리 아이들에게 알고리즘과 친숙한 기회를 주는 것은 바람직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알고리즘, 컴퓨팅적 사고력을 익히게 하는 데 꼭 코딩만 유효한 건 아니다. “바둑이나 체스, 장기를 두게 하는 것도 전통적인 좋은 방법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코딩 교과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혹시 영향을 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입시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도록 선행학습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대해선 교육 당국의 섬세한 설계가 필요하다. 당장 교육 현장에선 코딩을 가르칠 교사가 부족하다는 문제점을 든다. 지난해 12월을 기준으로 전국 3200여개 중학교에 속한 정보·컴퓨터 관련 교사는 1400여명이다. 학교 1곳당 0.3명꼴에 불과하다. 특히 초등학교 교사는 전공이 따로 없기 때문에 각 교사가 일정 수준의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초등교원 16만명 가운데 SW 교육 이수자는 4.7%에 불과(2015년도 교육부 정보화 실태조사)한 실정이다. 자칫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고, 아이들이 컴퓨터를 싫어하게 되는 부작용도 가져올 수 있다.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에서 학교로 프로그래머를 파견하기도 한다. IBM 은 아예 코딩스쿨을 설립했다.

전문가들은 사교육에 의존하지 말고 가정에서 코딩 교육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스크래치’ 같은 무료 코딩 학습 프로그램이나 ‘코드닷오알지(CODE.ORG)’ 등의 무료 코딩 교육 사이트를 통해서다. 코드닷오알지는 미국의 비영리단체다. 2013년 출범했다. 어린이 코딩 교육을 위해 무료 도구를 제공한다. 빌 게이츠 자선단체인 빌앤멜린다재단, 인포시스재단 USA,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를 비롯해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주요 IT기업이 후원한다. 코드닷오알지는 한국어 홈페이지도 있다. 부모가 아이와 함께 접속하면 기초과정부터 쉽게 아이가 코딩을 접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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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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