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4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 상공. ⓒphoto 로이터·연합
지난해 12월 24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 상공. ⓒphoto 로이터·연합

서울에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지난 1월 18일, 출퇴근시간 무료로 탄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 대기질지수(AQI) 앱을 켰다. 뿌연 하늘의 서울의 AQI 지수는 예상대로 157. 문득 서울 하늘로 미세먼지를 날려 보냈을 중국 수도 베이징(北京)의 대기질이 궁금해졌다. 입력창에 ‘베이징’이란 키워드를 치자 튀어나온 숫자는 55. 잠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수치대로라면 서울의 공기가 베이징보다 줄잡아 3배가량 나빴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미세먼지가 최악이었던 1월 셋째 주(14~20일) 내내 실제로 벌어졌다. 1월 14일부터 20일까지 서울의 공기질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지난 1월 15일에는 사상 최초로 출퇴근시간 서울시내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을 무료화하고, 공공기관 주차장을 폐쇄하는 등의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동됐다. 비상저감조치는 초미세먼지가 50㎍(이하 ㎥당) 이상일 때 시행된다. 그나마 비상저감조치가 첫 발동된 1월 15일은 아침에 흩뿌린 비로 인해 다행히 예보가 빗나가면서 ㎥당 초미세먼지는 50㎍, 미세먼지는 71㎍에 그쳤다.

하지만 그 다음날인 1월 16일 초미세먼지는 85㎍, 미세먼지는 114㎍까지 치솟았다. 서울 시민들은 아무런 경보조치도 듣지 못한 채 미세먼지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그 다음날인 1월 17일과 18일에는 초미세먼지와 미세먼지가 각각 88㎍과 112㎍, 59㎍과 87㎍을 기록해 이틀 연속 비상저감조치가 발동됐다. 1월 20일에도 초미세먼지와 미세먼지가 각각 63㎍과 102㎍

까지 치솟아 비상저감조치 발령기준(초미세먼지 50㎍ 이상)을 충족했지만, 주말이라는 이유로 발동되지 않았다. 지난 일주일 중 초미세먼지가 50㎍ 이하였던 날은 1월 19일 단 하루에 불과했다. 서울 시민들은 평일과 주말을 막론하고 미세먼지를 온몸으로 호흡한 셈이다.

하지만 한때 미세먼지 본거지란 악명을 떨쳤던 베이징은 요즘 정반대다. 요즘 베이징 언론들은 “베이징 독스모그( 雾霾) 어디로 갔나?” “베이징 시민 다시는 마스크 안 써도 된다” “공기청정기를 되팔아야 하나?” “겨울에 하이난다오(海南島)로 갈 필요가 없어졌다”는 등의 제목이 달린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베이징시 환경보호국도 지난 1월 3일 “2017년 베이징의 초미세먼지(PM2.5)가 평균 58㎍으로, 전년 대비 20.5% 감소했고, 중대오염일도 전년 대비 16일 줄었다”고 확인했다. 적어도 지난해만큼은 지긋지긋한 미세먼지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음을 공식 선포한 것이다.

기적적인 변화는 2017년 초부터 일 년 내내 계속되고 있다. 베이징시 환경당국이 발표한 월별 미세먼지 변화표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베이징시 환경당국은 대기질을 6단계로 구분하는데, 이 중 빨간색으로 표기되는 ‘중도(中度)오염(4단계)’은 2016년 12월(초미세먼지 133㎍)을 마지막으로 단 한 차례도 기록되지 않았다. 난방수요로 미세먼지가 급증하는 지난해 1·2월 경도오염(3단계), 무더위로 공기이동이 정체되는 5·6·7월 경도오염을 보였을 뿐, 모두 ‘양호(2단계)’ 대기상태를 보였다. 특히 지난해 8월부터 해를 넘긴 올해 1월까지는 6개월째 ‘양호’ 등급을 받고 있다. 1년 12달 가운데 무려 8개월간 양호한 공기를 마신 셈이다.

난방수요가 급증하는 이번 겨울에도 이 같은 추세는 변화가 없다. 지난해 11·12월 두 달 모두 ‘양호’ 등급을 획득했다. 올 1월 현재도 초미세먼지 38㎍, 미세먼지 68㎍, 대기질지수 71로 ‘양호’ 등급을 보이고 있다. 베이징 시민들은 겨울철이면 늘 우중충한 잿빛 하늘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았다. 지금은 그야말로 하늘이 조화를 부린 ‘천지개벽’ 같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중국공산당 베이징 제공권 장악

서울과 베이징이 공기역전 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일주일간 최악의 미세먼지를 뒤집어쓴 서울과 달리 베이징은 내내 양호한 하늘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전 중국을 놓고 보면 아직 대기오염이 극심하다.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등 서북부 사막을 비롯 허베이, 후베이, 후난 등 화중(華中)지방은 초미세먼지(PM2.5)가 200~400㎍에 달하는 ‘엄중오염’ 상태에 놓여 있다. ‘엄중오염’은 중국에서 6단계로 구분하는 미세먼지 오염의 최고 단계다. 팔을 앞으로 뻗치면 손이 안 보일 정도의 ‘독가스실’을 방불케 하는 곳들이다. 그 아래 5단계인 ‘중도(重度)오염’ 단계에 놓인 지역들도 아직 수두룩하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은 지난 수년간 단행한 극단적인 미세먼지 저감조치로 적어도 베이징의 ‘제공권(制空權)’은 장악한 것으로 보여진다. 독스모그로 인해 한때 천도(遷都)설이 불거지기도 했던 베이징은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를 비롯해 공산당 간부들이 집중 거주하는 곳이다. 지난해 10월, 시진핑 집권 2기의 개막식이 된 중국공산당 제19차 당대회를 전후로 베이징의 대기질이 양호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실제 그간 베이징시 당국은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올해 182억위안(약 3조443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책정해 한국 관료사회에서는 감히 채택하기 힘든 초강경 조치를 거듭해왔다.

베이징시의 팡리(方力) 환경보호국장에 따르면, 베이징의 미세먼지는 석탄 난방, 자동차 배기가스, 공장 매연, 건설현장 비산먼지 등 크게 4가지로 출처를 나눌 수 있다. 베이징 미세먼지 대응의 핵심은 석탄 난방을 천연가스 및 전기로 바꾸는 소위 ‘매개기(煤改氣), 매개전(煤改電)’ 프로젝트다. 중국에서 국가주도 중앙집중식 난방이 공급되는 곳은 남북경계선인 회하(淮河) 이북이다. 회하 이북, 즉 화북지방은 석탄이 풍부해 겨울난방을 석탄에 의존해왔다. 석탄보일러로 만든 열을 각 가정에 설치된 라디에이터를 통해 공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석탄보일러를 때는 과정에서 미세먼지가 뿜어져 나오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이에 석탄보일러를 한국의 도시가스와 같은 천연가스로 바꾸는 작업을 해왔다. 베이징시는 조잡한 석탄보일러를 사용한 무허가건축물을 지속적으로 철거하고, 지난해에도 석탄 난방에 의존해온 30만호를 바꾸었다. 화북지방 전체적으로는 300만호가 난방 방식을 바꾸었다. 베이징시 환경보호국에 따르면, 이 같은 프로젝트 덕분에 2005년 3000만t에 달했던 난방용 석탄 수요는 2016년 1000만t으로 3분의 1 이상으로 떨어졌다가 지난해 500만t으로까지 급격히 줄어들었다. 베이징시는 올해도 85억위안(약 1조4200억원)을 투입해 6환(環) 순환고속도로(도심에서 30㎞ 거리) 이내의 난방연료를 모두 천연가스로 대체한다는 구상이다.

환경부 장관을 베이징시장으로

이 같은 미세먼지 초강경 대응은 차이치(蔡奇) 베이징시 당서기, 천지닝(陳吉寧) 베이징시장(부서기) 콤비가 주도하고 있다. 차이치는 시진핑이 저장성 서기로 있을 때 그 아래 조직부장·부성장을 지낸 최측근으로, 지난해 5월 중앙후보위원에서 중앙위원을 건너뛰고 정치국원으로 두 단계 승진발탁된 인사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칭화대 총장을 지내고 환경보호부장(장관)을 지낸 천지닝은 지난해 5월 베이징시장으로 발탁됐다. 우리로 치면 환경부 장관을 서울시장에 앉힌 파격인사다. 자신의 최측근과 장관급 인사를 베이징시의 1·2인자 자리에 앉힌 것이다.

물론 석탄 난방을 천연가스 난방으로 급격히 대체하는 과정에서 겨울철 난방 수요 급증으로 ‘가스기근(氣荒)’ 사태에 봉착하기도 했다. 난방가스 공급이 달려 학생들이 햇볕을 쬐기 위해 한겨울 운동장에서 수업을 하는 사진이 공개된 것도 이런 여파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가 지난해 12월 ‘백성들이 추위에 떨며 겨울을 넘기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하기도 했다. 미세먼지를 없애기 위한 대가치고는 상당히 값비싸지만, 베이징시 지도부의 강경조치 덕분에 시진핑을 위시한 중국공산당 간부들은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게 된 셈이다.

베이징 전체 미세먼지의 31.1%를 차지하는 자동차 배기가스에 대한 대응조치도 엄격하다. 급속한 자동차 보급은 베이징시 미세먼지의 최대 원인 중 하나다. 게다가 체면을 중시하는 베이징 운전자들은 큰 차를 선호한다. 2017년 기준 베이징시의 등록차량은 590만대. 자동차 보유량이 200만대가 넘는 중국 24개 도시 가운데 가장 많다. 베이징시 관내 자동차는 매년 600만t의 휘발유와 경유를 소모하는데 약 50만t의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배기가스 중 질소산화물(NOx)은 공기 중에서 2차 화학반응을 일으켜 광화학 스모그 등 호흡기 유해물질(초미세먼지와는 다름)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시는 아예 차량 구입 단계에서부터 신규발급 번호판의 수를 연간 10만개로 엄격히 제한했다. 특히 번호판 제한발급을 통해 전기차 구매를 유도했다. 2018년의 경우 신규발급 번호판 10만개 중 전기차 등 신에너지차에 할당된 것이 6만개, 일반 자동차에 할당된 것이 4만개다. 일반 차량보다 전기차가 더 많은 것이다. 이 경우 베이징에서 차를 운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전기차를 구매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늘린 베이징시 등록 전기차만 12만대다. 한국에서 ‘전기차 천국’으로 불리는 제주도(1만대)의 12배고, 서울(5500대)의 21배에 달하는 경이적인 보급속도다. 서울시는 오는 2025년까지 10만대 보급이 목표다.

번호판 발급 통제, 외지차량 통제

교통체증으로 인한 자동차 배기가스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외지 번호판 부착 차량에 대한 엄격한 통행제한 조치도 취했다. 중국 자동차 번호판에는 각 지역을 표시하는 약칭이 적혀 있다. 베이징의 경우 수도를 뜻하는 ‘경(京)’ 자가 알파벳과 숫자 앞에 나오는 식이다. 베이징을 둘러싼 허베이(河北)성의 경우 ‘기(冀)’, 톈진(天津)의 경우 ‘진(津)’ 자가 붙어 있다. 베이징시의 경우 이 중 ‘경’ 자 번호판을 제외한 차량이 베이징시 6환 순환도로 이내(도심에서 30㎞ 거리)로 들어오려면 일주일간 유효한 별도의 통행증을 발급받도록 했다.

외지 차량의 경우 통행증을 발급받아도 출근시간인 오전 7~9시, 퇴근시간은 17~20시 내에는 아예 5환 순환도로(도심에서 15㎞ 거리) 이내로 진입하지 못하게끔 했다. 또한 2017년부터는 ‘유로(EURO) 규제’와 흡사한 중국의 자체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 ‘국(國)1’ ‘국(國)2’에 해당하는 노후차량은 아예 5환 순환도로 이내 진입을 막아버렸다. 한국에 비유하자면 경기도나 인천 번호판을 단 차량과 노후차량의 불필요한 서울 진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해버린 것이다. 베이징에 차를 끌고 들어오려면 베이징 번호판을 발급받으라는 노골적 압박이다.

대신 베이징은 지하철 등 대중교통망은 급속히 늘려나갔다. 베이징 지하철은 총 22개 노선으로 총길이는 608㎞에 달한다. 주목할 것은 미세먼지 문제가 심해진 2014년 12월부터 거리에 상관없이 지하철의 경우 2위안(약 360원), 버스의 경우 1위안(약 180원)만 받아 사실상 공짜로 운행하다시피한 대중교통 운임을 거리비례정산제로 바꾼 것이다. 베이징시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자동차 교통 수요를 흡수한다면서 대중교통 일괄요금 체계를 도입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낮은 요금은 지하철 추가확장에 필요한 재원을 충당하기에도 벅찼다. 결국 2014년 12월, 일괄요금제를 전격 폐지하고 거리비례정산제를 도입한 것이다.

그 결과 2014년 12월 당시 16개 노선 499㎞에 불과했던 베이징지하철은 불과 3년 만에 6개 노선 100㎞ 이상이 늘어났다. 베이징시는 오는 2021년까지 27개 노선 998㎞까지 지하철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오는 2035년까지는 2500㎞로 확장한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실질적인 대중교통 이용편의를 개선해 자동차 교통 수요도 지하로 흡수하고 배출가스도 잡아나간다는 복안이다. 공짜 대중교통과 편리한 대중교통 중 어떤 것이 더 매력적일까. 강경한 사회주의식 통제와 자본주의식 요금체계를 결합해 중국공산당은 하늘까지 길들이고 있다.

서울시 미세먼지 대처는

무료통행 150억원이면 6호선 급행도입 가능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두 번째로 발령된 지난 1월 17일 서울 광화문광장 상공. ⓒphoto 성형주 조선일보 기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두 번째로 발령된 지난 1월 17일 서울 광화문광장 상공. ⓒphoto 성형주 조선일보 기자

서울의 경우 베이징과 같은 석탄 난방 문제는 없다. 한국가스공사에 따르면, 미세먼지 문제가 없는 천연가스(LNG)를 원료로 하는 도시가스 보급률은 서울이 전국 지자체 가운데 가장 높은 98%에 달한다. 결국 문제는 중국발 미세먼지를 제외한 자동차 배기가스 등 자체 미세먼지를 어떻게 흡수하느냐에 모아진다. 서울시 도시고속도로 가운데 교통량이 가장 많은 도로 1·2위는 서울의 동서 간 이동을 처리하는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다. 하지만 이명박 서울시장 때 불필요한 교통량 흡수 대안으로 논의됐던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버스전용차로 도입은 잠깐 반짝했다가 자가운전자들의 반발에 막혀 무산됐다.

올림픽대로의 동서 간 교통 수요를 온전히 흡수할 수 있는 서울지하철 9호선 증차는 여전히 미적대고 있다. 여의도와 강남 등 중심상업지구(CBD)를 동서로 관통함에도 불구하고 지하철 9호선은 1기 지하철(1~4호선, 10량), 2기 지하철(5~8호선, 8량)의 절반 규모인 4량에 불과하다. 당초 8량 규모로 설계된 널찍한 지하철 9호선 역사를 절반 이상 놀리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해 12월부터 6량 열차가 일부 투입됐다지만 3편성에 불과하다. 서울시 측은 “전체 6량 운행은 3단계(종합운동장~보훈병원) 개통 예정인 오는 12월 이후부터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지하철 6호선 급행열차 도입도 별다른 진전이 없다. 중간중간에 대피선이 갖춰진 지하철 6호선의 경우 약 160억원이면 급행열차를 도입할 수 있다는 서울도시철도공사(서울교통공사에 합병)와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의 선행연구가 있었다. 서울시가 미세먼지 저감조치가 발동된 날 출퇴근시간 대중교통 무료화에 쏟아부은 돈만 하루에 약 50억원씩 모두 150억원이다. 서울시는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시 대중교통 무료화에 투입할 예산을 250억원가량 확보하고 있다. 이 돈이면 지하철 6호선 급행열차 도입 등 지하철 이용의 실질적 편의를 개선하는 데 쓸 수도 있다.

6호선 급행열차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5대 교통공약’ 중 첫 번째다. 당시 분당선, 수인선, 경의중앙선과 함께 특정됐다. 6호선만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 대중교통이 무료라 해도 실질적 편의가 개선되지 않으면 도로 교통량을 충분히 흡수할 수 없다. 서울시 대중교통과에 따르면,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발동한 날의 출퇴근시간대 교통량은 각각 1.8%(1월 15일), 1.73%(1월 17일), 2.36%(1월 18일) 줄어드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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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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