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2494호] 201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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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탈원전의 그늘 쪽방촌이 한파에 떨고 있다

▲ 지난 1월 26일 서울역 근처의 한 쪽방촌. 하루 중 가장 따뜻한 오후 3시에도 다니는 사람이 없다.
“전기장판에 누워도 등만 따뜻해요. 창문하고 문틈으로 외풍이 들어오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죠.”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를 밑돈 지난 1월 26일, 서울역 근처 쪽방촌에서 70대 주민 김모씨를 만났다. 전날인 1월 25일 최저기온은 영하 16.4도, 1월 24일 최저기온은 영하 16.3도였다. 1950년대부터 서울역 근처에서 살았다는 김씨는 남색 패딩점퍼가 불룩해 보일 정도로 옷을 여러 겹 껴입고 있었다.
   
   김씨를 따라 건물 2층의 한 쪽방에 들어섰다. 발 디딜 틈 없이 좁은 방 벽 한쪽에 난 손바닥만 한 창문을 갖가지 이불과 옷, 가방 등으로 막아놓은 모습이 보였다. 두꺼운 이불을 여러 겹으로 깐 자리에 올라서니 전기장판의 온기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는 집안에서도 두꺼운 옷을 대여섯 겹씩 껴입고 지냈다. 문을 여닫기 위한 공간을 만드느라 이불을 깔지 않은 방문 앞 바닥은 얼음장 같았다. 짜릿한 냉기가 두꺼운 양말을 뚫고 느껴졌다. 김씨는 “다행히 아직까지 전기가 나간 적은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이 1인 가구로 구성된 쪽방촌에서는 어디에서도 보일러를 찾기가 어렵다. 공용 복도에 연탄으로 때는 난방기구가 하나 있으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대부분 주민은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을 나야 한다. 지역 상담센터에서 배급해주는 전기장판은 쓰다 보면 고장이 나는 경우가 잦다. 센터에 전기장판을 가져가면 수리를 해주지만 대기자가 많아 일주일씩 기다려야 할 때가 다반사다. 매년 겨울이면 쪽방촌 수백 가구에 쌀, 이불, 전기장판 등을 제공하느라 바쁜 센터 직원들을 탓할 수도 없다. 시장에 가면 전기장판을 4만원, 깎으면 3만원에 살 수 있지만 그 돈이 없어 못 사는 사람이 태반이다.
   
   
   오로지 전기장판에 의존
   
   정부가 추진하는 탈(脫)원전, 즉 에너지전환정책이 경제적 취약계층의 생존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연일 지속된 한파로 인해 전력사용량이 산업부 수요예측을 넘어서면서 제기되는 우려다. 여기에 정부가 막고 있는 전기요금 상승이 현실화하면 경제적 취약계층에 더 큰 타격이 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에 한파가 몰아닥친 지난 1월 24일과 25일 전국의 최대 전력수요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한국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월 25일 오후 5시 최대 전력수요는 8725만㎾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종전의 역대 최고치는 바로 전날인 1월 24일의 8628만㎾였다. 이틀 모두 지난해 12월 발표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정부가 예상한 최대전력수요 전망치 8520만㎾를 넘어섰다. 지난 7차 전력수급계획의 최대전력수요 전망치는 8820만㎾이었다. 최대전력수요는 하루 중 전력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1시간 동안의 평균 전력량이다.
   
   에너지정책의 영향은 산업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처럼 정부가 예측한 전력수요를 넘어서면 전기에 난방을 의존하는 저소득층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가구는 소득이 낮을수록 전열기구에 난방을 의존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3년마다 조사하는 에너지총조사의 최신판인 ‘2014년 에너지총조사’에서는 전기를 난방으로 하는 가구의 경우 난방용 조명과 문화용 조명을 포함한 전력소비 비중이 71.1%, 취사용 전력소비 비중이 28.9%로 나타났다. 난방용 조명에는 전기를 난방으로 하는 심야전력, 전기보일러, 전기온돌이 포함된다. 보고서는 “일부 표본가구에서 1인 가구 중 주된 난방설비가 없이 매트류, 옥매트, 옥장판을 난방으로 하는 가구가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기자가 만난 쪽방촌 주민들도 이구동성으로 “동네 어디에도 보일러 있는 집은 없다”고 말했다.
   
   여름에 쪽방촌에 가면 집 밖에서 더위를 피하는 주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흰색 러닝셔츠를 입은 이들은 더위를 피해 집 밖 공터에 나온다. 겨울은 반대다. 추울 때 쪽방촌에 가면 사람들이 다니는 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쪽방촌에 사는 이들은 집안에서 추위를 피한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대부분인 쪽방촌 주민들은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해 겨울을 나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 취약계층에 특히 힘든 계절은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이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의 경우 전기난방기구에 의존하기 때문에 겨울철에는 소득이 낮을수록 전력 사용이 늘어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은 겨울철 전력 사용이 다른 계절보다 크게 늘지 않는다. 주로 가스난방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의 경우 가스 보일러를 사용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 가스 사용료를 감당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소득이 낮은 가구라 해도 전기료 등 공공요금은 줄이기 어렵다. 2016년 9월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표한 ‘공공기관 요금체계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1분위(최하위 20%) 1인 가구의 가처분소득 대비 공공요금 비중은 9.44%로, 5분위(최상위 20%) 가구의 1.86%에 비해 5배에 달했다. 5인 이상 1분위 가구의 경우 가처분소득에서 공공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40.69%로, 2.75%인 5분위 가구의 약 15배에 달했다. 공공요금에는 전기요금과 가스, 상하수도, 도로·철도 이용 요금이 포함된다. 이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이다. 에너지 분야 국책 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2016년 12월부터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개편되면서 2017년부터는 변화가 생겼겠지만 크게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월평균 소득 100만원 미만의 가구는 월평균 소득이 300만~400만원인 가구에 비해 에너지 비용 부담 정도가 약 2.8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계층은 연탄 및 등유 사용 가구가 많아 고비용 저효율의 에너지를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에너지는 연탄, 석유류, 가스류, 전력, 열을 모두 포함한다. 최문선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통계실 연구위원은 “2017년도 에너지총조사는 아직까지 취합하는 중”이라며 “5월 이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력예비량이 기준치 이하로 떨어질 경우 대규모 정전사태(블랙아웃)가 발생할 수도 있다. 2011년 9월 15일 발생한 대규모 정전이 대표적이다. 당시 늦더위로 전력수요량이 급증하면서, 전력예비량 안정선인 400만㎾h 아래까지 떨어지자 한전은 제한 송전을 실시했다. 이날 전국 753만가구에서 정전이 발생했고 영세 자영업자, 식당, 중소기업 등은 620억원가량의 재산 피해를 입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신호등이 고장나 도로가 아수라장이 됐고, 금융거래가 끊겼으며, 병원에서 치료가 중단되기도 했다. 이 일로 최중경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이 사임했다.
   
   정권 차원에서 탈원전정책을 추진하던 대만도 지난해 늦여름 고온에 갑자기 전력수요가 몰리면서 대정전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차이잉원 총통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한파는 특히 호흡기 질환을 지닌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미친다. 기상청 국립기상과학원이 1991년부터 2010년까지 20년간 서울의 기상청 기후 자료와 통계청 사망원인 통계를 분석한 결과 한파로 인해 호흡기 질환자의 초과사망률(사망률이 평소보다 증가한 비율)은 10.6%로, 모든 사망원인의 초과사망률 중 가장 높았다. 여기서 한파 기준은 일평균 기온이 영하 13.9도 이하, 최저기온이 영하 16.6도 이하, 최고기온이 영하 10.3도 이하일 때를 말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매년 겨울 한파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은 평균 130명에 달한다.
   
   전력수요가 급증하면서 산업현장도 타격을 받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월 24일부터 26일까지 사흘 연속 전력 ‘급전지시’를 발령했다. 이 세 번을 합치면 정부는 올겨울 들어서만 여덟 번 수요감축 요청을 했다. 사흘 연속 전력 급전지시 발령은 2014년 제도 도입 이후 처음이다. 이날 전력감축에 참여한 기업은 2400곳이 넘었다. 감축 규모는 230만㎾이다. 2016년까지 발령된 급전지시는 총 3차례에 불과했다.
   
   
▲ 쪽방촌의 한 독거노인이 전열기구로 한파를 버티고 있다. photo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빈번한 급전지시
   
   전력수요 증가가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기 위해서는 수요감축요청(Demand Response·DR)제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14년 11월 도입된 수요감축요청제도는 전력수요 급증이 예상되면 사전에 계약을 맺은 기업에 연락해 전력 사용 감축을 지시하고 이에 상응하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이 지시를 ‘급전지시’라고 한다. 공급을 늘리기보다는 수요를 줄여 전력수급을 조절하는 제도다.
   
   수요감축요청제도는 2011년 대규모 정전 사태를 계기로 도입됐다. 한파나 폭염이 발생하는 특정 시점에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국내 전력소비 형태를 고려하면, 발전설비를 확충하는 것보다 하루 1~2시간 정도인 최대전력수요를 줄이는 게 경제적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은 것이 도입 이유다. 현재 3580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고 감축 가능한 수요자원 총량은 427만㎾.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한 한국형 원전(APR1400) 3기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올겨울 들어 이처럼 급전지시가 자주 발령되면서 섣부른 탈원전정책의 부작용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가 원전을 통해 전기를 산업현장에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탈원전정책 이후 원전 정비 등에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해 원전 24기 중 11기를 가동 중지시킨 것이 급전지시를 빈번하게 발동하게 했다는 것이다. 최대전력수요가 정부 예측치를 웃도는 상황에서 전력예비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질 경우 ‘전력공급이 과잉이기 때문에 탈원전정책을 시행해도 문제가 없다’는 정부의 기존 주장이 공격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수요감축요청제도에 참여한 기업들의 급전지시 이행 여부가 자율적이라 공장을 돌리는 것이 이익이라면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기업에 공식적으로 수요감축을 요구하면 거절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없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급전지시를 따르는 기업들에 제공되는 인센티브가 국민 세금으로 메워진다는 점에 대한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정부는 앞으로 수요감축요청제도를 확대할 방침이다. 최근 수요감축요청에 등록된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감축 요구량은 급전지시가 최초 발동된 2014년 12월 18일 142만㎾보다 2배가량 늘었다. 정부는 수요감축요청에 등록된 기업들의 전력 감축 요구량을 현재 427만㎾에서 2031년 최대 약 800만㎾까지 늘린다는 방침이다.
   
   
▲ (좌) 쪽방 내부 모습. (우) 갖가지 옷과 가방으로 밖에서 들어오는 냉기를 막고 있다.

   전기요금까지 인상하면…
   
   문제는 한파로 인한 전력수요 증가만이 아니다. 탈원전과 ‘분산형 전원(電源)’ 등 정부가 추진하는 전력 관련 정책이 앞으로 전기요금을 상승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른다. 정부가 추진하는 분산형 전원으로의 전환 정책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현재 11.2%인 소규모 분산형 전원의 비중을 2035년까지 18.7%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소규모 분산형 전원이 늘어나면 대규모 발전단지에서 얻을 수 있는 고품질 전기를 얻기가 어려워진다. 이는 전기 생산비용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덕환 서강대 탄소문화원 원장은 “연료·발전용수의 공급과 송·배전 시설을 공유할 수 있는 대규모 발전단지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할 수 있다”며 “지역적으로 분산된 소규모 발전소와 송·배전 설비가 늘어나면 전력망이 복잡해지고 따라서 효율적·안정적 관리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이외에 정부가 추진하는 송·배전망 분할, 전력망 지능화 등의 정책은 모두 전기요금을 상승시키는 요인이다.
   
   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은 이미 지난해부터 한전의 영업이익률을 낮추고 있다. 원전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원전을 돌려 만든 전기를 한전에 공급하는 한수원의 실적이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원전 가동률이 2016년 대비 6%포인트 하락하자 한수원의 지난해 1~3분기 영업이익(1조4070억원)은 전년 동기(3조446억원) 대비 반토막이 났다. 한수원은 100% 한전 출자 기업이라 한수원의 적자는 한전으로 그대로 전가된다. 2013년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사태로 한수원이 일시적으로 일부 원전 가동을 중단했을 때 한전이 입은 손실이 96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1월 중순 원전 24기 중 11기가 가동이 중단된 상황에서 약 2조원의 손해가 났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현재 정부는 저소득층의 에너지 사용을 지원하기 위해 여러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에너지바우처제도가 대표적이다. 이 제도는 저소득층에 겨울철 최소한의 난방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 수급자가 원하는 형태의 에너지를 구입할 수 있는 카드 형태의 바우처를 지급한다. 지원 대상은 기초생활수급자 혹은 의료급여수급자로 만 65세 이상 노인, 만 6세 미만 영·유아, 장애인, 임산부가 포함된 가구이다. 2018년 상반기 기준 1인 가구의 경우 8만4000원, 2인 가구는 10만8000원, 3인 이상 가구는 12만1000원에 해당하는 금액을 차감받을 수 있다. 이외에 한전은 일정 기준 이하에 해당하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전기요금을 감면해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정부는 아직까지 전기요금을 인상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산업부는 2022년까지 에너지전환(탈원전)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요인은 거의 없다고 했다. 전망에 따르면 2022〜2030년 연평균 인상 요인도 1.1〜1.3%에 불과하다. 4인 가족으로 환산하면 월평균 610〜720원 오르는 수준이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전기요금 인상분을 축소하고 부담을 한전에 떠넘긴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여러 측면에서 전기요금을 인상할 요인이 많은데도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통제할 경우 손실을 입는 것은 한전이다. 문제는 한전이 입는 손실을 국민 세금으로 보전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의 말이다.
   
   “신재생에너지 전환이 세계적 트렌드인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국민이 전기요금 상승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냐는 점이죠. 전기요금 상승 요인이 많아도 정부는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전에 적자를 떠넘기면 되죠. 하지만 한전이 적자 나면요?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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