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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2495호] 201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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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특집 3] 71세에 미술학도가 된 이헌국씨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습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엄마는 바빴다. 네 딸과 여덟 손주를 번듯하게 키워내느라 손이 마를 새 없었다. 어릴 때부터 1등을 놓친 적 거의 없는 똑순이 엄마는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졸업과 동시에 자신의 이름을 잊고 살았다. 대학 때 만난 남편과 결혼하면서 주부로서의 삶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 역할도 치열하게 해냈다. 딸들을 교수로, 의사로 남부럽지 않게 키워내고 이 손주 저 손주 돌아가면서 봐주느라 하루 종일 세수를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러던 삶에 변곡점이 찾아왔다. 아이들이 하나둘 독립하면서 여유가 생겼고, 남편까지 세상을 떠났다. 텅텅 빈 시간에는 슬픔이 차올랐다. 감당 못 할 슬픔과 시간 앞에서 엄마는 잊었던 꿈을 꺼냈다. 붓을 들었다. 71세. 민화를 만난 엄마는 무섭게 빨려 들어갔다. 스승은 그에게 “당신같이 진도 빠른 학생은 처음 본다” “좀 더 일찍 시작했으면 대가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중천미술대전 우수상, ㈔한국민화협회 공모전 장려상 등을 수차례 수상한 76세의 민화작가 이헌국씨 이야기다.
   
   지난 1월 말, 이헌국 개인전이 열리는 인사동H갤러리는 입구부터 북적였다. 지상 3층, 지하 1층을 합쳐 4개층에서 열리는 제법 큰 규모의 전시회였다. 붓을 든 지 5년 동안 완성해낸 작품 규모에 전문가들도 입을 떡 벌린다. 손님맞이에 분주한 이헌국씨에게 첫 개인전 소감을 묻자 먼저 “하하하” 기분 좋게 웃는다. “친구들이 저더러 미쳤다고 합니다. ‘우예 이걸 다 했노?’ 하면서요.”
   
   이씨의 민화 세계는 섬세하면서도 강렬하다. 색감의 조화가 묘하게 현대적이다. 그가 지난 5년 동안 민화 공부에 들인 열정은 놀랍다. 민화 수업은 대개 회당 수업 3시간. 대부분의 수강생은 주 1회 수업을 듣지만 이씨는 주 3회 수업을 들었다. 서울 안국동에서는 하루에 2회, 경기도 의정부에서도 1회 수강했다. “의정부에도 좋은 스승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왕복 3시간 거리의 학원을 결석 한 번 없이 다녔다.
   
   “그림 배우러 가는 내 모습이 너무 멋져요. 배낭 메고 그림통 메고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면서 스스로 ‘난 참 멋있다. 대단하다’ 이런 생각을 늘 합니다. 열심히 배웠어요. 진짜 열심히.”
   
   어딜 가나 그는 최고령이었다. 그림 친구들 사이에서는 ‘왕언니’로 불렸다. 하지만 수업 진도는 가장 빨랐다. 손도 야무졌고, 색감각도 남달랐다. 시간이 많다는 이유로 수업 중에 그리던 민화를 싸들고 집에 와서 완성해 가는 날이 많았다. 왜 그렇게 치열하게 배우셨냐는 질문에 그는 “촉박하잖아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라며 담담하게 답한다.
   
   
   엄마의 제3인생은 화려하게 빛날 거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꿈도, 진로도 사치 같던 시절. 공부를 그렇게 잘했으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살고 싶은 욕망은 없었을까. “그땐 그런 생각을 안 했어요. 당시에는 취직하는 여자가 많지 않았죠. 졸업 후 남편을 못 만나거나 남편이 돈을 잘 못 벌면 취직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결혼해서 살다 보니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듭디다.”
   
   돌이켜보면 그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아이들 초등학교 앞 미술학원을 볼 때마다 그림에 대한 욕망이 꾸역꾸역 차올라 무언가에 이끌리듯 학원에 등록했다. 최초의 성인 수강생이었다. 하지만 학원으로서도, 이씨 스스로도 마뜩지 않았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그림 공부를 중단했다.
   
   재능은 어떤 식으로든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프랑스 파리에 본교가 있는 에스모드 서울의 교수로 재직 중인 셋째 딸 정선혜씨는 “엄마는 늘 예술가셨다”고 귀띔했다. 색에 대한 남다른 감각은 살림살이로 발현됐다. 딸들을 위한 하나밖에 없는 옷, 알록달록한 목도리와 장갑, 집안 곳곳의 매듭장식, 기막힌 조화를 이루는 꽃꽂이로.
   
   남편과 사별 후 그는 오래 마음앓이를 했다. 하지만 혼자 남은 엄마를 걱정하는 딸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늘 씩씩하고 긍정적인 엄마의 모습이고 싶었다. 혼자 있을 때 실컷 슬퍼하고 딸들 앞에서는 당당하게 공언했다. “엄마의 제3인생은 화려하고 찬란하게 빛날 거야”라고. 결혼 전이 제1인생, 남편과 함께한 인생이 제2인생이라면, 혼자 남은 이후에는 제3인생이었다.
   
   이헌국씨의 제3인생에서 만난 민화는 구세주였다. “배우러 가면서 막 설레고, 배우면서도 너무 즐겁고, 다 그리고 나면 성취감에 가슴이 막 뛴다”고 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꼭 필요한 덕목이 있다. ‘용기’라는 닳고 닳은 덕목. 그에게 용기가 없었다면 71세에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 수 있었을까. 생각과 실천은 다르다. 누구나 다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우연히 소개받은 민화 스승한테 나이부터 고백했다.
   
   “선생님 제가 나이가 좀 많은데 괜찮을까요? 물었어요. 몇 살이냐고 묻길래 ‘71세요’ 했더니 한동안 답을 안 하시더군요. 그러더니 걱정스럽게 ‘하실 수 있겠어요?’ 해요. ‘할 수 있어요.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하고 큰소리쳤습니다.”
   
   민화의 세계는 신묘했다. 모란도, 십장생도, 연화도, 문자도, 화훼도, 화조도, 초충도…. 비현실적인 색감과 원근법이 사라진 사물들의 조화는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안겼다. 한 나무에서 분홍 꽃과 파란 꽃이 같이 피고, 보라색 바위 옆에는 바위보다 거대한 잉어가 사람 같은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는 화폭은 동심의 해맑음과 동양화의 그윽함을 함께 풍겼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너무 아름다워요. 한 작품을 완성하면 너무 행복해서 보고 또 봅니다. 자다가 일어나서 불 켜놓고 또 보고, 차 한 잔 타 와서 마시면서 또 보고, 한 작품 실컷 보다가 다른 작품 끌고 와서 다시 보죠. 작품이 무거워서 질질 끌고 다니다 보니 거실 바닥이 엉망이 됐습니다. 내가 그림을 참 좋아하긴 하나 봐요.(웃음)”
   
   목표를 묻는 뻔한 질문에 이씨는 “별로 없어요. 하루하루 즐겁게 살면서 그림 친구 만나고 그림 그리면서 사는 거지 뭐”라고 답한다. 그는 과장과 허식이 없었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그림 친구들에게도 소탈하고 푸근했다.
   
   “나는 내가 멋있어요. 늙어가는 내 모습도 참 좋아요. 거울 볼 때마다 주름이 서서히 늘어가는 게 보이지만 ‘늙었구나’ 생각하고 끝이에요. 화려하게 치장하고 보톡스 맞으면서 외형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게 시시해요. 이것도 교만한 생각일까요?”
   
   주위에 있던 그림 친구들이 다 같이 기분 좋게 웃었다. 웃음 꼬리가 잦아들자 이씨는 한마디 덧붙인다. “참, 잘 늙어가려면 표정을 밝게 해야 해요. 젊은 아이들을 많이 예뻐해주고요. 우리가 사랑의 말은 얼마든지 해도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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