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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496호] 201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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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예술성과 도덕성 사이

대물들의 추락

하주희  기자 

역시 연희단거리패였다. 나쁘지 않은 연기에, 구성도 좋았다. 흥행도 성공이었다. 지난 2월 19일 아침 10시 서울 명륜동에 있는 30스튜디오. 연희단거리패의 전용 소극장이다. 관객석은 시작 전부터 가득 찼다. 입구에 채 발도 못 들인 취재진들이 극장 앞을 서성인다. 역시 카메라기자들에 밀려 자리를 잡지 못한 기자는 건물 뒤쪽으로 살짝 돌아갔다. 그곳엔 분장실로 이어지는 입구가 있다. 무대 바로 옆 계단으로 살금살금 올라갔다. 그곳에서 연출가 이윤택의, 어쩌면 마지막이 될 연극을 지켜봤다.
   
   온통 검은색 무대. 한 줄기 핀조명 아래 이윤택이 섰다. 백발 아래 처연한 표정. 모노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내용은 예상한 대로였다. 매일 밤 받았다는 ‘황토방 안마’는 이렇게 해명했다. “극단 내에서 18년간 관습적으로 일어난 아주 나쁜 형태의 일이었다. 어떨 때는 나쁜 짓인지 모르고 저질렀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죄의식을 가지면서 제 더러운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문학적 해명이었다. 성폭행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성관계 자체는 있었지만 폭력적이고 물리적인 방법으로 강제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가 팔을 내민다거나 머리를 만지거나 할 때마다 수십 개의 카메라플래시가 터졌다. 쏟아지는 질문에도 그는 침착했다. 그 침착함은 모든 걸 내려놓았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맨 앞줄에 앉아 있던 기자가 질문했다. “낙태 후 반복된 성폭행 증언은 어떻게 생각하나.” 취재진들이 그 단어에 놀라 술렁거렸다. 이윤택은 정작 별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담담히 답했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갑자기 귀곡성 같은 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야! 거짓말하지 마세요.” 연극배우 홍예원씨였다. ‘사죄는 당사자에게, 자수는 경찰에게’라고 쓴 피켓을 손에 든 채였다. 그는 무대 옆 계단 위에서 이윤택을 내려다보며 기자회견 내내 추임새를 넣었다. 뒤에는 설유진 극단 907 대표가 있었다. 설 대표도 이윤택에게 따져물었다. “발성을 가르쳐준다며 배우의 몸을 더듬은 일이 없냐.” 이윤택은 단전호흡 운운하며 설명을 늘어놨다. 이날의 콘셉트는 비장미였던 듯하다. “다시는 연극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말을 끝으로 무대에서 퇴장했다.
   
   
   리허설 거친 사과 기자회견
   
   극장 앞 마당에서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명배우로 꼽히는 연극계 인사다. 이윤택의 뒤를 이어 2009년부터 연희단거리패(이하 거리패) 대표를 맡고 있다. 2004년부턴 호원대에서 후학을 기르고 있다. 원래 기자회견 2막에서 ‘극단 해체’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이윤택이 퇴장하며 기자들이 우르르 뒤따라 나간 통에 마당에서 몇몇 기자들에게 털어놓는 식으로 발표했다. 김 대표는 나름의 속내를 털어놨다. 요지는 세 가지였다. 첫째, 거리패는 스스로 해결하려 노력했다. “3~4년 전이었다. 선생님(이윤택)에게 항의했고 선생님이 단원들 앞에서 공개 사과를 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도 했다.” 당시 피해자 중 한 명이 인터넷에 ‘당했다’는 글을 썼고, 이윤택은 단원들 앞에서 ‘공개 사과’한 후 글을 지운 적이 있었다고 했다.
   
   둘째, 왜 ‘노’라고 안 했는지 모르겠다. “나도 선생님께 사타구니(김 대표는 다리 위쪽이라고 표현) 안마를 요구받은 적이 있다. 단호히 거부했다. 그 후부턴 그런 일이 없었다. 후배들에게도 왜 거부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싫다고 하면 안 할 분이다.”
   
   셋째, 익명으로 올린 글의 진위 여부를 따져 봐야 한다. 처음 익명으로 이 문제를 폭로한 홍선주씨는 기자가 김소희 대표를 만난 이후인 2월 21일 실명과 얼굴을 드러냈다.
   
   김 대표는 이상하리만치 이윤택의 가족들을 챙겼다. 가족들이 노출되면 안 된다며 그 자리에 남은 기자들에게 거듭 강조를 했다. 불가능한 얘기다. 이윤택의 딸 역시 연극계 종사자다. 극단 가마골에서 상임 작가와 연출을 맡고 있다. 극단 가마골은 실질적으로 거리패와 같은 극단이다. 피해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했단 얘기다. 단순히 기사에 언급하지 않는다고 그 사실마저 감춰지는 건 아니다. 김 대표의 말들에선 피해자에 대한 배려를 찾기 힘들었다. 물었다. “낙태와 성폭행 얘기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 대표는 두 눈 가득 눈물을 글썽였다. “낙태라니, 처음 듣는 얘기다.”
   
   거리패의 마지막 연극을 깜빡 믿을 뻔했다. 2월 21일 오동식씨의 폭로가 없었다면 말이다. 거리패 단원인 오씨는 페이스북에 기자회견을 준비한 전후 사정을 썼다. 그의 말이 맞다면, 기자회견은 사전에 기획한 그야말로 연극이었다. 기자들이 던질 질문도 뽑아 사전에 연습했고, ‘좀 더 불쌍한 표정을 지으라’며 이윤택에게 연기지도도 했다. 낙태 얘기엔 어떻게 대처할지 사전 조율도 했다. 김 대표도 이 자리에 있었다. 오씨의 페이스북 글에 따르면 이들의 최종 계획은 이거였다. 일단 극단은 해산한다. 네 달쯤 후 세상이 잠잠해지면 가마골 소극장에서 다시 만나 연극 활동을 이어간다. 이윤택이 나설 수 없으니 다른 연출자를 내세운다.
   
   앞서 문제가 된 고은 시인은 시인 최영미씨의 시(詩) ‘괴물’이 뒤늦게 화제가 되며 과거 성추행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후 수주가 지났지만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수원 자택 창문에서 밖을 내다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잠깐 포착됐을 뿐이다.
   
   
▲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가 지난 2월 19일 기자회견이 끝난 후 극단의 입장을 밝히는 모습. photo 하주희 기자

   미투를 보는 세 가지 관점
   
   한국판 미투는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첫째, 업계의 특성이다. 연극계, 영화계, 미술계, 국악계, 무용계 등 무슨 무슨 계로 통칭되는 집단에서 추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쯤되면 중심 조직이 없는 느슨한 결속이면서 폐쇄적인 무리의 생존방식이라 볼 수도 있겠다. 여기선 소위 몇몇 ‘대가’를 지망생들이 떠받들며 도제식으로 뭔가를 배운다. 학습이 끝난 후엔 대부분이 프리랜서로 살아간다. 파벌에 매달려, 파벌 내부의 범죄엔 침묵하는 게 생존에 유리한 이유다.
   
   연극계는 특히 ‘왕’의 권한이 크다. 한국 연극은 연출자 연극이다. 연출자가 작품을 쓰고, 각색하고, 재구성하는 극작가까지 겸한다. 방송으로 치면 피디가 연출과 극본을 다 맡는 식이다. 그러니 연출자에게 권한이 쏠릴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이윤택과 함께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극단 목화의 오태석도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일었다. 같은 맥락으로 영화계와 방송계도 성범죄에서 자유롭지 않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해 ‘영화인 성평등 환경조성을 위한 성폭력(성차별) 실태조사’를 했다. 영화업계에 종사하는 여성 열 명 중 한 명이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요구받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방송작가들의 게시판에는 ‘나도 당했다’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가해 형태는 다양하다. ‘피디가 집 근처까지 따라오더니 강제로 입을 맞추고 바지에 손을 넣었다.’ ‘담당 피디가 노래방에서 성추행을 하길래 계속 피했더니 마이크로 머리를 때렸다.’ ‘기자 출신 부장이 저녁을 먹자더니, 특파원을 다녀온 후 여자들과 연락이 끊겼다. 원룸을 얻어줄 테니 나와 만나자고 했다.’ 2016년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방송작가들을 상대로 조사를 했다. 응답자 647명 중 39%인 253명이 성폭력을 당했다고 답했다.
   
   물론 최종적인 책임은 가해자 개인에게 있다. 약자 괴롭히기를 즐기는 성품이 폐쇄적인 업계 구조, 방관자들의 침묵과 맞물렸다. 약자를 노리지 성별을 가리지는 않는다. 여성 약자에겐 성폭력을 저지르고, 남성 약자는 때리는 식이다. 3년 전엔 제자에게 인분을 먹인 교수가 있었다. 이윤택은 동국대에서 교수로 재직할 땐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대학생들은 성범죄를 당하면 학교에 호소할 수 있다. 최소한의 기댈 데가 있단 얘기다. 거리패 단원이라면 다르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홍선주씨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 없이 자랐다고 한다. 이윤택을 아버지로 여겼다고도 했다. 성추행 당시 감당하기 힘든 큰 충격을 받았고, 그래서 쉽게 털어놓지 못했을 수 있다.
   
   둘째, ‘세대’라는 관점이다. 고은, 오태석, 이윤택 모두 원로다. 시대와 시대정신은 바뀌었고, 지금도 바뀌고 있다. 이들은 여성에 대한 사고방식,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서의 행동윤리 등을 바꾸지 않고 ‘예전에 살던 대로’ 살고 있었단 얘기다. 최영미 시인의 ‘괴물’을 실은 황해문화 주간 김명인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의 생각은 이렇다. “문단의 젠더(gender) 감수성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보여준다. 문단이건 다른 문화 예술판이건 젠더 감수성, 일상적 인권 감수성은 거의 제로라서 어딜 가든 크고 작은 ‘En’ 선생들이 그야말로 즐비했다고 보면 된다. 1980년대만 해도 소설의 거의 모든 여성 등장인물을 성적으로 대상화해 표현했다. 이런 식이다. 주인공이 다방에 앉아 있는데 여성 ‘레지’의 육체를 묘사한다. 개연성도 없는데 말이다.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만 보는 이분법적 인식이 고스란히 반영됐다고 할까.”
   
   셋째, 예술가의 작품과 도덕성을 별개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이다. 한국엔 예술가의 기행에 너그러운 정서가 있었다. 사실 한국만의 얘긴 아니다. 로만 폴란스키, 우디 앨런은 국제 영화계에서 살아 있는 대가로 꼽히는 영화인이다. 이들의 명성엔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로만 폴란스키는 1977년 당시 13살이었던 소녀에게 계획적으로 술을 먹이고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됐다. 미국에서 재판을 받다가 프랑스로 도피했다. 이후 쭉 유럽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지만 시상식은커녕 미국에 입국도 못 했다. 아동성범죄를 엄격히 처벌하는 미국 땅을 밟는 순간 법정에 설 것이 뻔해서다. 폴란스키는 총 4건의 성범죄에 연루되어 있다. 우디 앨런은 행태가 좀 다르다. 미아 패로와 부부였을 때 입양한 딜런 패로를 딜런이 7살이었을 때부터 추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역시 입양한 딸이었던 순이 프레빈과 나중엔 결혼도 했다. 지금까지 할리우드와 영화계는 이들의 예술성만 주목하며 추악한 이면엔 눈을 감아왔다. 그랬던 것이 바뀌고 있다. 지난해 10월 5일부터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 때문이다.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 의혹을 다뤘다. 와인스타인은 영화사 미라맥스를 세운 그야말로 거물이다. ‘펄프픽션’ ‘굿윌헌팅’ ‘시카고’ 등을 제작했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도 그가 세운 와인스타인컴퍼니에서 제작했다. 와인스타인에게 당한 사실을 처음 공개한 배우 애슐리 주드의 용기에 자극받아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줄줄이 세상에 알렸다. ‘미투(me, too)’다. 앤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셀마 헤이엑 등 2월 말 기준 드러난 피해자만 100여명에 달한다.
   
   
   도덕성과 작품은 별개인가
   
   할리우드는 이번 기회에 ‘거물들의 성범죄’를 털고 가자는 분위기다. 콜린 퍼스는 우디 앨런과 다시는 영화 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배우 미라 소비노는 과거 우디 앨런과 영화작업을 한 데 대해 피해자 딜런 패로에게 사과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과거 폴란스키를 옹호했던 걸 후회한다고 발표했다. 내털리 포트먼도 폴란스키 옹호를 철회했다. 도덕성을 결여한 예술성이 과연 위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됐다. 뉴욕타임스 2월 21일자 영화면 기사의 제목은 ‘우디 앨런은 과연 위대한 감독인가?’이다.
   
   시대의 변화에 대한 반동이라고 할까, 구세대의 저항이라고 할까. 반대 목소리도 있었다. 1월 9일 르몽드지에 한 편의 글이 실렸다. ‘성의 자유에 필수불가결한 유혹할 자유를 변호한다.’ 카트린 드뇌브와 99인의 문화계 여성 인사들이 함께 투고한 글이었다. 대략의 요지는 이렇다. ‘여성의 환심을 사려는 남성의 행동은 범죄가 아니다. 마녀사냥을 그만하자.’ 전 세계에서 비난이 일었다. 결국 5일 후 카트린 드뇌브는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한국의 경우엔, 일단 시작은 교과서가 될 것 같다. 유승민 의원이 “고은의 시를 교과서에서 빼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한 후, 논의가 이어지는 모양새다. 한 교과서 출판사의 국어 담당자 생각은 이렇다. “올해 교과서는 이미 배포돼서 어쩔 수 없지만, 내년도 교과서에서 고은의 시는 모두 삭제될 거다. 다른 좋은 문학작품이 얼마든지 많은데 굳이 고은의 시를 실을 이유가 없다.”
   
   예술가의 도덕성과 그의 작품은 별개인가. 김명인 교수의 말이다. “발표된 작품은 작가 소유라기보단 공적인 것이다. ‘저런 성범죄자의 작품’ 식의 매도나 ‘작품은 좋으니 별개다’ 식의 접근 같은, 양극단적 인식을 벗어나야 한다. 역사주의적 평가와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검열해서 다 고치자고 할 수도 없다. 그건 또 다른 파시즘이 될 수 있다. 단 작가들이 지금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는 중요하다. 통렬한 자기반성과 자기고백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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