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Too·나도 당했다)’와 ‘사과’는 짝패다. 미투 운동에 여지없이 따라붙는 것이 바로 ‘사과’다. 미투가 터져나오면 즉각적이든 뜸을 들이든 대개 ‘공식 사과문’이 발표된다. 3월 7일 현재, 각계 각층에서 미투 가해자들이 내놓은 사과문은 스무 개 가까이 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뻔한 속담을 들먹이지 않아도 사과의 힘은 크다. 마음을 담은 진심 어린 사과, 피해자의 고통을 헤아리는 사과는 용서와 화해의 여지를 제공하지만, 변명으로 일관한 사과, 하나마나한 사과는 오히려 분노를 부른다.

이번 미투 사과문들은 대체로 후자다. 반쪽짜리 사과, 하나마나한 사과로 피해자는 물론 오랫동안 성차별적 문화에서 고통받아온 이들을 더 분노케 했다. 미투 사건이 벌어진 상황은 백인백색일 텐데, 사과문은 신기하리만큼 천편일률적이다. 김형희 한국바디랭귀지연구소장은 “미투 사과문들이 하나같이 형식적이고, 진정성이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과문에서 일정한 패턴이 발견된다. 서론, 본론, 결론이 있다. 서론에서는 ‘제 잘못입니다’ ‘부족한 탓입니다’, 본론에서는 ‘무엇을 잘못했고, 괴로웠습니다’, 결론에서는 ‘자숙하겠다’ ‘반성하면서 살겠다’ 식이다. 대부분 소송을 염두에 두고 법률 자문을 받은 듯하다.”

심지어 사과문을 내놓기까지의 패턴도 엇비슷하다. 대체로 이렇다. 일단 부정→강경 대응→추가 폭로→결국 사과.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을 때 코너에 몰린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사과문을 내놓는 분위기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죄의 경중을 떠나 어떤 사과는 피해자를 진정시키고 여론을 잠재우지만, 어떤 사과는 오히려 분노를 부른다. 대표 사례가 배우 오달수와 한재영의 차이다. 피해자에게 눈물로 사죄한 배우 한재영은 용서의 여지로 이어졌지만, 오달수의 사과문은 두고두고 언론과 대중의 뭇매를 맞고 있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좋은 잘못, 나쁜 잘못은 없지만 분명 좋은 사과와 나쁜 사과는 있다.

사과의 시작은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이고, 사과의 끝은 용서다. 죄의 속성에 따라 용서받을 수 있는 사과가 있고, 용서받기 어려운 사과가 있다. 미투의 사과는 용서받기 어려운 부류의 사과라는 것을 분명히 해둔다. 이유는 두 가지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고통을 주었고 피해자가 고백하기 전에는 가해자에게 사과의 의지가 없었다는 점, 또 하나는 성차별의 문화를 오랫동안 견뎌온 여성들의 한(恨)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비명이라는 점이다.

좋은 사과, 나쁜 사과

사과학 연구의 역사는 길지 않다. 1970년대 들어서야 사과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고, 1990년대 후반에는 사과의 구체적 방법론과 심리학 연구를 접목한 본격 연구가 진행됐다. 사과학 연구자들에 따르면 21세기는 사과의 시대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일상화된 투명사회에서는 숨을 곳이 없다. 여기저기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넘쳐난다. 언론과 미디어에서도 사과 보도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한 중앙일간지의 보도를 보면 1990년대 10년간 1000건에도 미치지 않았던 사과 횟수가 2000년대 들어서는 3200여건으로 늘었다. 2010년대 들어서는 1만건 이상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좋은 사과에는 5R이 있어야 한다. △잘못의 확인(Recognition) △책임감의 인정(responsibility) △양심의 가책 표현(remorse) △원상복구를 위한 배상 제시(restitution) △재발 방지의 다짐(repetition). 5R은 어디까지나 이론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과의 진정성’이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씨의 저서 ‘쿨하게 사과하라’에 따르면 사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고, 진정성이 느껴지기 위해서는 ‘공감’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용서의 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즉 상대방의 분노와 상처를 떠올리고 공감해야 진심어린 사과가 나온다.

그런 면에서 배우 한재영과 사진작가 배병우의 사과문에서는 비교적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지적이 많다. 한재영은 이번 사태에서 유일하게 당사자에게 직접 전화해 용서를 구했다. 피해자 박씨는 한씨의 전화를 받고 자신의 SNS에 “한재영에게 직접 사과 받았다”며 “한재영에 대한 일은 털고 웃으며 살고 싶다. 그가 열심히 연기하는 모습을 봐도 이제 아플 것 같지 않다”는 글을 올렸다. 배병우 작가의 경우 즉각적인 인정과 반성으로 여론을 잠재웠다. 미투가 터지자마자 작가실을 통해 “작가님이 해당 사실을 모두 인지하고 반성하고 있다”며 “성폭력 교육을 이수하고 새로운 사회 분위기에 맞춰 가겠다”고 표명했다. 이 둘은 비교적 좋은 사과에 속한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경우 사과문 자체만으로 보면 좋은 사과에 속한다. “모든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라며 일절 변명 없이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고, “오늘부터 도지사직을 내려놓겠다, 일체의 정치활동도 중단하겠다”며 도의적으로 책임지는 자세도 취했다. 그러나 워낙 ‘바른 생활 사나이’ ‘깨끗한 정치인’으로서 이미지를 다져온 안희정에 대한 국민적 배신감이 커 어떤 사과문으로도 충격을 덜어내기 힘들어 보인다.

반면 나쁜 사과도 있다. 사과 전문가들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싶다면 네 가지를 피하라고 한다. 먼저, ‘사과하겠다’ ‘사과하고 싶다’는 모호한 표현을 피하고 ‘사과한다’는 분명한 표현을 써야 한다. 둘째, 사과 뒤에는 ‘그러나’ 같은 말을 덧붙이면 안 된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그때는…” 식의 사과는 사과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갈등만 유발한다. 셋째, ‘~다면 미안해’ 식의 조건부 사과는 피해야 한다. 이는 피해자가 예민하거나 속이 좁아 보이게 하는 역효과를 낳는다. 넷째, “실수가 있었습니다” 같은 수동태 표현. 이는 주체를 모호하게 만들어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변명, 조건부 사과, 유체이탈 화법…

배우 오달수의 사과는 나쁜 사과의 종합세트다. 오달수의 사과문이 발표되자 “마치 피해자처럼 행동한다” “변명으로 일관한다”는 비난이 쏟아져나왔다. 법적 조치를 염두에 둔 사과문일지 몰라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사과문에 대중들은 화가 났고, 오달수에 대한 이미지는 더욱 추락해버렸다. 결국 안 하느니만 못 한 사과가 되고 말았다. 사과문을 구체적으로 보자. “상처를 받으신 분들에 대한 기억이 솔직히 선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해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조차 모른다는 것을 드러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의 내용과 제 기억이 조금 다른 것이 사실이었습니다”라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가장 분노를 유발한 대목은 “잠시나마 연애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란 부분이다. “호감이 있었다” “순간은 진심이었다”는 성폭력 가해자들의 단골 멘트로 위험한 변명이다. 연애감정은 상호적이어야 한다.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너를 좋아해서 그랬다’는 식의 일방적 감정은 스토커나 성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다. 여기저기 유체이탈 화법과 책임회피 표현이 눈에 띈다. “(피해자가) 상처를 안고 살아온 것에 안타깝고 죄스럽다”는 말은 유체이탈 화법이자 조건부 사과다. ‘자신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피해자가 상처를 안고 살아왔다고 하니 안타깝다’는 뜻으로 읽혀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안타깝다’는 표현은 가해자가 잘못을 뉘우칠 때의 어휘가 아니다. 제3자로 인한 고통에 위로를 보낼 때라면 몰라도 ‘유감이다’ ‘안타깝다’는 표현은 진정한 사과의 언어가 아니다. “금방은 힘들겠지만 그 상처 아물길 바란다”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유체이탈 화법으로, 가해자의 표현으로 적절치 않다. 가해자의 반성의 언어가 아니라 제3자의 위로의 언어다.

자신의 괴로움을 과하게 드러낸 것도 거슬린다. 오달수는 사과문에서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했습니다” “저는 이미 덫에 걸린 짐승처럼 팔도 잘렸고, 다리도 잘렸고, 정신도 많이 피폐해졌습니다” “행운과 명성은 한순간에 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세상 이치는 알고 있습니다”라며 자신의 고통과 처지를 호소했다. 이나미 서울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위해서는 최대한 자기 감정을 절제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너도 괴롭지만 나도 괴롭다는 식의 표현을 드러내면 반성과 사과가 물타기가 돼 버린다”는 지적이다.

이윤택의 ‘사과 리허설’은 진정성 없는 대표적 사과다. 사과문만으로는 문제없다. 좋은 사과문의 조건인 ‘5R’을 골고루 갖추었고, 태도도 좋았다. 하지만 사과 회견문 발표를 위해 “노래 가사를 쓰듯, 시를 쓰듯이” 사과문을 만들었고, 표정까지 연습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사과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리허설까지 한 가해자의 사과는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 사과를 연기한 것에 불과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배우 조민기, 조재현의 사과문 또한 비난을 받았다. 무엇을 내려놓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해명 없이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책임 소재를 애매하게 회피한 측면도 있고, 자신의 분야에서 대단한 일가(一家)를 이룬 사람이 쓸 법한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표현을 써 거만해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타이밍의 과학

천주교에서 터져나온 미투에 대한 사과문은 하나마나한 사과문이라는 것이 중평이다. 김희중 대주교는 200자 원고지 10매가 넘는 장문의 사과문을 통해 사제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사과했지만, 구체적 정황에 대한 재발방지 약속 없이 “국민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드린 데 대해 용서를 구한다” “사제들이 겸손하게 살아가도록 이끌겠다” “부끄럽고 송구스럽다”는 식의 일반론적 표현을 나열해 뜬구름 사과문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웠다.

사과 전문가들에 의하면 자신의 언어로,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솔직하게 사과할수록 용서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인간인 이상” “남성들은 원래” 식의 일반론적인 전제는 분노를 유발한다. 의료 과실로 사망케 한 한 의사가 사과문에서 “의사도 인간인 이상 실수를 한다”고 하면 피해자 가족의 심정이 어떨까. 이 말을 하는 순간 용서는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한편 전문가들은 책임 당사자가 나서지 않고 대타를 보내거나 이메일 사과는 하지 말라고 한다. 피해자를 직접 찾아가는 사과가 가장 바람직하고,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전화나 편지로 할 것을 권한다.

사과의 타이밍에도 과학이 있다. 덜 심각한 경우라면 즉시 하는 사과가 효과적이고, 심각한 사건일수록 분노를 식힐 시간이 필요하다. 즉 우연히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사과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투 사과와 관련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오랫동안 사과하지 않았다고 죄가 희미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피해자의 아픔이 깊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민희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