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2일 오후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있는 정선군립병원을 찾았다. 70대 정도로 보이는 허리가 구부러진 여성이 지팡이를 짚고 병원 입구로 향하는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언덕길은 어림잡아도 100m는 넘게 이어져 있었다.

그 여성의 뒤를 따라 정선군립병원 1층 현관으로 들어갔다. 연노란색으로 벽과 천장이 칠해진 병원 1층 내부는 휑했다. 평일 오후 2시였지만 병원 접수를 받는 공간 앞 대기의자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한쪽에는 혈압계와 철제그네가 놓여 있었다. 이따금 약봉지를 들고 복도를 오가는 노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데려온 아기를 병원 1층에 놓인 철제그네에 태우는 젊은 부모도 있었다.

2016년 5월 문을 연 정선군립병원은 ‘국내 1호 군립병원’이다. 올해 11월까지 예정된 리모델링이 완료되면 본관 53병상, 신관 75병상이 있는 병원급(의원과 종합병원급 사이) 규모로 재탄생한다. 전국에 국립병원, 도립병원(의료원), 시립병원은 많지만 광역지자체가 아닌 군 단위 기초지자체에서 지방의료원이 아닌 일반병원을 운영하는 사례는 전국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53개 병상 모두 텅텅

하지만 ‘국내 1호 군립병원’이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이곳은 개원 2년이 다 되도록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자가 병원을 찾은 3월 12일, 정선군립병원 3층과 5층(실제로는 4층)의 53개 병상은 모두 비어 있었다. 불이 꺼진 복도에 패드 부분이 떨어져나간 병상과 폐의료기기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모습이 대낮인데도 을씨년스러웠다. 염화나트륨과 포도당 수액을 담는 반투명 주머니가 담긴 상자도 바닥 곳곳에 놓여 있었다. 5층 엘리베이터 앞 안내판에는 군이 매입하기 전 민간병원 당시의 이름이었던 ‘한국병원’이라는 글자가 그대로 쓰여 있었다. 정선군립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 병원의 본관 5층은 정선군이 병원을 인수한 뒤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고 한다. 병원 건물이 지어진 지 40년이 넘었기 때문에 병원을 인수할 당시 안전점검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같은 날 정선군립병원 본관 바로 옆에 있는 신관은 한창 마감공사 중이었다. 올 3월 중 신관 마감공사를 마치면 본관의 진료 인력들이 신관으로 이전하고, 올 11월쯤 본관 리모델링을 마치면 다시 본관으로 이사할 예정이다. 두 건물의 리모델링이 모두 끝나면 신관은 75병상 규모의 요양병원과 장례식장으로 쓰일 예정이다. 본관은 외래진료, 수술 등 진료 관련 공간으로 쓰인다.

정선군립병원은 정선군 사북·고한·신동읍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의료 혜택으로부터 소외됐다”는 지적에 따라 설립됐다. 사북·고한은 1970년대 전성기를 맞았던 대표적인 탄광촌 지대다. 하지만 석탄산업이 쇠퇴하고 인구가 줄어들면서 이 지역은 쇠퇴기를 맞았다. 현재 정선에 남아 있는 병원급 의료기관은 정선읍에 있는 정선병원이 유일하다. 정선병원은 1988년 산재 근로자들의 요양을 위해 설립된 진폐 전문 병원이다.

정선군립병원이 있는 사북·고한읍 지역은 정선병원이 있는 정선읍과는 직선거리로 20㎞ 이상 떨어져 있다. 구불구불한 산길이라 승용차를 이용해도 30~40분이 걸리고 반대편의 태백시와도 비슷한 거리로 떨어져 있다.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라 폭설이 오면 교통이 아예 단절되는 경우도 잦다. 이 때문에 의료복지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역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군립병원이 설립됐다.

지난 3월 12일 강원 정선군 정선군립병원 5층 복도. 설계대로라면 병동으로 운영해야 할 이곳은 아직까지 한 번도 실제 운영된 적이 없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3월 12일 강원 정선군 정선군립병원 5층 복도. 설계대로라면 병동으로 운영해야 할 이곳은 아직까지 한 번도 실제 운영된 적이 없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하루 외래환자 150명 수준

정선군립병원은 외적으로는 상당한 규모다. 내과, 외과, 정형외과, 가정의학과, 비뇨기과, 영상의학과 등 6개 과목에 응급실, 물리치료실, 건강검진실 등을 포함하면 총 61개 병상을 갖추고 있다. 진료부, 간호부, 행정부 등 모든 부서를 합치면 현재 이 병원에 근무하는 직원은 총 56명이다. 이 중 진료를 맡은 전문의는 6명으로 모두 위탁운영권자인 의료법인 강릉동인병원 소속이다.

하지만 주변 인구가 얼마 없기 때문에 이 병원을 찾는 환자는 많을 수가 없다. 정선군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정선 고한읍 인구는 4543명, 사북읍 인구는 5202명이다. 두 곳의 인구를 합쳐도 1만명이 채 안 된다. 인구가 적어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 민간병원이 들어와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 병원 측이 밝히는 하루 외래환자 수는 평균 150명 수준이다. 정선군은 사북·고한은 의료취약지역이고 군민의 생명과 관계된 부분이라 수익성을 떠나 의료복지 차원에서 적자를 보더라도 정선군이 병원을 운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선군이 군립병원을 세울 수 있었던 데에는 강원랜드 설립 이후 정선군이 군단위 지방자치단체 중 그나마 재정 형편이 상대적으로 나았다는 점이 작용했다. 정선군이 보유한 강원랜드 주식 배당금이 재정 형편을 개선한 가장 큰 요인이다. 정선군이 집행하는 군비 중 상당 부분은 강원랜드 주식 이익배당금에서 나온다. 강원랜드의 주식 4.9%를 보유한 정선군은 강원랜드 주식 이익배당금으로만 매년 102억~103억원의 수입을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사 한 사람 연봉만 2억5000만원

문제는 “어차피 적자를 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자기 변명 아래 병원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정선군립병원은 근처의 사북·고한 지역 주민들에게도 외면받고 있다. 사북읍 정선군립병원 앞에서 만난 주민 정춘학씨는 “(정선군립병원은) 맹장수술도 못 하는 병원”이라며 “근처 의원을 가지 군립병원에 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정선군청이 있는 정선읍 근처의 주민은 정선병원을 이용하고, 태백시 주민은 태백병원을 주로 이용한다는 것이 지역주민들의 말이다. 유재철 정선군의원은 지난 3월 13일 기자와 만나 “40년 된 건물에 300억원을 쏟아붓느니 그 돈이면 새로 건물을 짓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병원 측도 이 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지난 3월 12일 우영남 정선군립병원장은 기자와 만나 “좀 이상하게 들리긴 하겠지만 이 병원을 만들게 된 동기조차 나는 이해를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비뇨기과 전문의인 그는 한양대병원 병원장을 지낸 뒤 정년퇴임해 강릉동인병원에 와 있다가 정선군립병원 개원 때부터 병원장을 맡고 있다.

“(강릉동인병원 측에서) 진료를 담당해달라고 해서 왔더니 여러 제약이 많았습니다. 병원을 운영하기 위해선 의료진도 있어야 하고 시설도 있어야죠. 여기선 의료진도, 장비도 제대로 구하기가 어려워요. 지역주민이 1만명도 안 되기 때문에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어요. 그렇다 해도 인근 강원랜드 상주 근무 인력만 4000명 가까이 되지 않습니까. 이 사람들이라도 병원에 오면 적자 폭이 줄어들 텐데 아프면 다들 서울이나 원주처럼 큰 도시로 나갑니다. 말이 군립병원이지 지금 제대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선군립병원이 이처럼 지역주민들로부터 소외받는 이유는 병원 운영이 방만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선군의 인구와 의료복지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적자를 고려해도 방만 운영은 심각한 수준이다. 정선군의회 유재철 군의원을 통해 입수한 ‘군립병원 추진현황 및 개선방안’ 자료에 따르면, 정선군립병원의 기본설계 심의는 2014년 3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처음 승인받았다. 당시 최승준 정선군수는 약 6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강원랜드 인근에 부지를 매입하고 새 병원을 건립하고자 했다.

하지만 같은해 6월 지방선거에서 전정환 군수가 당선되면서 계획이 바뀌었다. 새로 당선된 전 군수는 “600억원은 과도하게 큰 규모”라며 총 사업비 230억원의 규모로 군립병원 건립 사업을 다시 추진했고, 정선군은 사북읍에 있는 개인의료법인인 한국병원을 64억원을 주고 매입했다. 한국병원의 전신은 1976년 11월 당시 상공부와 광업진흥공사의 후원으로 건립된 사북 동원보건원이다. 1980년 ‘사북사태’가 발발하자 광부들의 시위를 진압하러 출동했다가 부상당한 경찰과 광부들이 입원했던 곳이 이곳이다.

이후 1980년대 들어 급격한 폐광으로 경영난에 빠져 1998년 사북연세병원으로 경영권이 넘어갔다. 이후 병원이 진폐요양기관으로 지정받으면서 한때 200명이 넘는 진폐 환자들을 동시에 수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부터 2년간 진폐 환자 부정수급사건이 터졌고, 근로복지공단이 진폐요양기관 승인을 취소하면서 2012년 한국병원으로 다시 개원했다. 이후 지역 인구 감소로 경영난을 겪다가 정선군에 병원을 매각하면서 현재의 정선군립병원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2015년 12월 정선군은 강릉동인병원과 군립의료기관 위탁운영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면서 정선군립병원의 실제 운영은 강릉동인병원이 맡게 됐다. 유재철 군의원은 “지자체에서 직접 인수하는 과정에서 별도의 특수법인(SPC)을 설립해 의료법인 대 법인으로 인수하면 30억원대 금액으로 병원을 인수할 수 있었는데 굳이 감정가액으로 60억원이 넘는 금액을 지급했다”며 “예산 낭비의 대표 사례”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병원에서 근무하는 6명의 전문의는 환자 수와 관계없이 군비로 1인당 연 2억5000만원을 보수로 지급받는다.

정선군은 2016년 정선군립병원 개원과 함께 병원 리모델링, 장비 보강, 장례식장 증축 등의 명목으로 이 병원에 총 사업비 230억원을 투입했다. 이후 보건복지부가 응급실과 소아청소년과에 보조금 명목으로 지급하는 일부 금액을 제외하면 이 병원에 투입되는 금액은 대부분 정선군이 지원한다. 개원 이후에도 정선군립병원은 정선군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운영비를 지원받고 있다. 정선군립병원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이 병원이 정선군으로부터 운영지원금으로 받은 금액은 약 25억원이다. 이 금액에는 의료진의 인건비, 장비 구매·대여 비용 등이 포함된다.

병원 매입비와 기타 운영비용을 합치면 이 병원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현재까지 약 300억원에 달하는 군비가 들어갔지만 아직까지 병원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실제 기자가 찾아간 날 병원 주차장에서는 주차 공간조차 부족해 곤경을 겪는 차량을 여럿 볼 수 있었다. 현재 이 병원의 주차장에는 고작 20여대만 주차 가능하다. 정선군 관계자는 “병원이 있는 언덕 중턱 부지를 깎아 주차타워를 세우는 방식으로 주차장을 확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병원 주변에 상권이 전혀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도 군립병원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선군립병원 본관 3층 역시 신관으로 이사하기 위해 비워진 상태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정선군립병원 본관 3층 역시 신관으로 이사하기 위해 비워진 상태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법인 이사장 비리까지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7월에는 정선군립병원을 위탁운영하는 의료법인인 강릉동인병원의 당시 이사장 L씨가 약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사장 L씨는 의약분업 이후 병원 내에서 약국을 운영할 수 없게 되자 병원 근처에 약국을 개설하고 병원 직원들을 보내 운영해오다 적발됐다. 17년간 약국을 통해 그가 챙긴 부당청구금액은 경찰 추산 237억원에 달한다.

L씨는 강릉동인병원 앞 토지를 매입해 건물을 짓고 약국을 차렸다. 약국에는 병원에서 근무하던 약사 3명과 약제과 직원들을 보내 근무하도록 했다. 면허를 빌려준 약사 3명과 L씨는 구속됐다. L씨는 자신의 불법행위가 외부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친인척 관계의 병원 직원들에게 약국 직원 채용을 맡기고 수익금 보관을 위한 차명계좌까지 관리하도록 했다. 특히 이들은 약국의 수익 증대를 위해 병원이 운영하는 도매업체를 통해 특정 의약품을 해당 약국에만 공급하도록 했다. L씨의 모친인 K씨 역시 같은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현재 구속 수감된 상태다. L씨의 비리가 정선군립병원과 직접적으로 관계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군립병원을 위탁운영하는 병원 이사장이 구속 수감되면서 병원은 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됐다.

정선군립병원이 이처럼 문제점을 노출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는 치적 남기기에 급급한 지자체의 성급한 행정이 첫손에 꼽힌다. 정선군은 ‘민선6기 상반기 업무실적 평가자료’를 통해 “폐광 지역 군민의 의료 서비스 질을 대폭 개선했다”며 정선군립병원 설립을 민선6기 최대 치적사업으로 홍보해왔다.

정선군립병원처럼 기초지자체에 공공의료기관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은 올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가속화할 조짐이다. 현재 전국적인 저출산·노령화로 지역 인구가 줄어들면서 수도권을 제외한 기초지자체의 의료복지가 심각하게 저하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립병원 설립과 운영이 쉽지 않다는 것은 국내 1호 군립병원인 정선군의 사례가 보여준다. 현 전정환 정선군수는 오는 6월 지방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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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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