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조현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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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9일 초대장이 날아들었다. 발신인은 최진석 건명원장, 제목은 ‘건명학관을 열며’. 초대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더 나은 삶과 더 높은 결정은 지금 우리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좌우하는 급한 일이 되었다.” 건명원 특공대 교수들이 작당해서 새로운 일을 또 벌였다는 직감이 왔다. 새 시대를 여는 인재양성소 ‘건명원’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응원해온 입장에서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간조선은 건명원 1주년을 맞아 원생들의 인터뷰까지 담아 커버스토리로 다룬 적이 있다.(2016년 2월 1일 2393호, ‘한국의 스티브잡스 양성소 건명원 1년, 범생이들 반역자 되다’)

최진석 원장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초대장을 받은 지 딱 1주일 후인 3월 26일 서울 종로구 북촌로 건명원에서 최 원장과 마주 앉았다. ‘건명학관을 왜 열어야 했는지’ 답을 듣기 위해서는 두 시간 이상이 필요했다. 근황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교육과 정치, 세대와 역사적인 담론으로 확장돼갔다. 그는 자주 먼 곳을 쳐다봤다. 그의 사유의 시선 또한 그렇다. ‘지금 여기’가 아니라 ‘다음 세상’을 향해 있다. 그래서 그는 평지에서 수평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드론을 띄우고 겹겹으로 둘러싼 세상의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하다.

그의 언어는 명징했다. 단어 선택에 신중했고, 매 질문마다 기승전결이 분명했다. 방대한 독서와 사색을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갖게 된 이의 내공이 느껴졌다. 대화 내용은 심오했지만, 그의 언어는 쉬웠다.

건명원 마당에서 첫 질문을 던졌다. 마당 한가운데에 사각형꼴로 비어 있는 제법 넓은 흙바닥에 대해서였다. 봄의 길목, 땅에선 이름 모를 초록 잡초들이 제멋대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 마당 한가운데 흙바닥의 용도는 뭔가. 화초를 심을 건가. “아무것도 심지 않으려 한다. 이름 모를 잡초들이 제멋대로 자라도록 놔두려 한다. 지난해와는 또 다른 풀들이 올라오고 있다. 비어 있으면서 자연 그대로의 생명성을 인정하는 이런 공간이 하나쯤 있어도 되지 않을까.”

무심한 대답에 기자의 선입견이 부끄러워졌다. 마당 한가운데 주인공 같은 공간에는 응당 멋들어진 꽃화분이 심어지고, 이름 모를 잡초들은 이내 뽑혀 생을 다하겠거니 생각하던 참이었다.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이름의 잡초들이 존재 그대로 존중받고 주인공이 되는 공간이었다. 과연 건명원다웠다.

- 20년 동안 몸담은 서강대 교수직을 최근 그만뒀다. 어떻게 지내시나. “달라진 건 없다. 공부하고 사색하고 글을 쓰고 강의한다. 밥벌이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다.(웃음) 학교를 그만두니 사람들이 자꾸 뭘 하려고 그만둔 것인지 묻는다. 그만둔 자체가 나에겐 미학적 결정이었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 나에겐 가장 중요하다.”

-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란. “지적이고 인격적으로 성숙하면서 실천도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워낙 크다. 대학은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큰 결정을 했느냐고 하는데 나에겐 큰 결정이 아니었다.”

- 대학의 어떤 면이 스스로 되고 싶은 모습이 되는 데 방해가 된 건가. “새로움과 위대함은 스토리에 있다고 본다. 논증이 아니라. 논증은 이미 있는 개념들의 조작이고, 스토리는 치밀하지는 않지만 꿈과 이상이 담긴다. 위대한 사람은 논증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토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런데 대학은 계속 논증하라고 한다. 건명원은 있는 지식을 사용하고 소비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원하지, 논증 잘하는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안정적이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람을 흔들어 놓는 것이 목적이다. 사람은 흔들리면서 불안해하고, 불안해하면서 자신만의 빛을 찾는 존재다.”

- 퇴직까지 7년 남은 시점에서 그만두기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었나. “전혀 없었다. 학교와 나와의 관계가 더 이상 생산적이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대학이 크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변하지 않고 있다. 대학에서 양성하는 인재로는 새 시대을 맞을 수 없다고 생각하다 보니 학교와 불화가 일 수밖에 없었다.”

- 건명원의 철학으로 대학에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었을 텐데. “대학 안에서 수선만 피우는 것 같았다. 다들 건명원 철학을 좋아하지만 현 대학 시스템은 너무 견고해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 건명학관 이야기를 해보자. 왜 열었나. “건명원은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다. 현재와의 연결성이 약하면 추진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던 차에 사회 각 현장에서 이미 실전에 임하고 있는 반성적 다수로부터 건명원의 정신과 비전에 동참하고 싶다는 요구가 많았다. 건명학관은 그 요구에 대한 응답이다. 아직 부족한 배움의 터전이라는 건명원의 겸손한 의지를 담아 ‘학관’이라고 이름 붙였다.”

건명원과 건명학관은 교육 철학과 지향점은 같다. 새 시대를 여는 인재 양성이 목표이고, 최진석 원장을 비롯 김개천·김대식·박훈·배철현·서동욱·정하웅 교수 등 내로라하는 특공대 교수들의 깊이 있는 수업 구성도 같다. 대상이나 운영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건명학관의 지원 자격은 35세 이상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선도해 나가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고, 모집 정원은 30명이며 수강료가 있다. 강의시간은 주 1회 180분, 한 학기는 4개월이다. 반면 건명원은 모집 연령대가 낮고, 정원은 40명, 수강료는 무료다. 한 기수는 1년 단위이고, 공부와 사색에만 몰두하길 요구받는다. 잘 알려진 대로 단추공장 하나로 자수성가한 ㈜두양문화재단 오정택 이사장이 사재를 털어 시작됐다.

- 모집공고를 낸 지 일주일이 지났다. 지원 현황은. “벌써 모집 정원 이상이 접수했다. 기업가, 예술 방면 지원자가 특히 많다. 어쩔 수 없이 심사과정을 거치게 됐다.”

- 건명학관과 건명원의 교육 내용에 차이가 있나. “내용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교수진도 같고. 교수들은 대상이 달라지면 자세가 달라진다. 건명원 학생들에게는 미래를 꿈꾸는 자세, 건명학관 학생들에게는 현실에 적용하는 자세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만들 거다. 건명학관의 경우 자신의 분야에서 일정 부분 성과를 내고 있는 이들인 만큼 친목 도모로 흐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입학 첫날부터 바로 180분 수업에 들어간다. 강력한 깨달음을 얻어가길 바란다.”

- 어떤 깨달음을 말하는 건가. “깨달음에 대한 내 나름의 정의가 있다. ‘깨져서 새로운 곳에 도달하는 것’.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가장 큰 문제는 기존의 공고한 것들이 깨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건명학관에 온 이들은 일정 부분에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다. 그 성취에 대해 돌아보고 더 큰 성취로 나아갈 수 있도록 깨졌으면 좋겠다. 한 단계 높은 결과를 기대한다면 다른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익숙한 방법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한다. 익숙한 방법과의 결별은 굉장히 어렵다. 성공한 사람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성공기억이다. 성공기억과 새로운 도전 사이에서 전략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리더의 중요한 덕목이다.”

- 건명원을 열면서 ‘교육은 당장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분야’라고 했는데, 건명학관을 열지 않으면 안 되는 조급증 내지 절박함이 있었나. “건명원은 건명원대로 높은 이상과 꿈을 펼치도록 하고, 지금 당장 건명원의 뜻과 방향과 이상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건명원이 이해하는 한국 상황은 모든 것이 한계에 도달했다. 그만큼 절박했고, 조급했다.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문명은 ‘따라하기’의 문명이었다. 따라하기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에 도달했다. 그 다음 시대에는 따라하기가 아니라 선도력이 필요하다.”

- 선도력(先導力)이란. “말 그대로 앞서서 세상을 이끄는 것이다. 선도력을 갖기 위해서는 이전 방법과는 달라져야 한다. 결과만 중시하던 습관에서 벗어나 동기와 과정을 중시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이 단계를 넘어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있다.”

- 따라하기 문명으로 이룰 수 있는 정점에 우리가 이르렀다고 했는데, 이 상태에서 손쓰지 않은 채 내버려 두면 어떤 국면이 펼쳐질까. “비효율성이 쌓일 수밖에 없다. 따라하기로 갖게 된 거대한 양이 질적으로 관리되지 않으면 급격한 추락이 예상된다. 아르헨티나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한때 아르헨티나는 세계 10위 안에 드는 경제대국이었다. 시선을 높여 다른 방식으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추락해버린 거다. 대학 들어와서 발전하지 않은 학생과 아르헨티나의 공통점이 있다. 낮은 어젠다를 유지했다는 거다.”

- 현재 한국의 어젠다는 뭔가. “그게 가장 문제다. 주변국 중 유일하게 어젠다가 없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일본은 아베 정권 찬반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들이 어디로 가는지 안다. 바로 보통국가 회복이다. 미국은 다시 위대해지는 미국, 중국은 중국몽, 중국굴기이고. 한국은 스스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사회경제적 조건과 어젠다가 일치할 때 사회가 발전한다. 한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발전을 거듭해왔다. 일치된 어젠다가 있었고, 차근차근 이뤄왔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광복한 이후에는 건국, 그 이후에는 먹고사는 문제인 산업화, 그 다음에는 민주화가 국가적 어젠다였고, 모두 이루었다. 이후에는 어젠다가 사라졌다.”

- 최 원장 입장에서는 어떤 어젠다를 던지겠나. “선진화다. 선도력을 갖는 능력.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나라가 아니라 꿈을 펼치는 나라, 독립적인 삶의 자세를 견지하는 주체들이 많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 독립성이란 개개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자세이다. 인격이 존중받아야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존감이 높아져야 용기를 발휘할 수 있고, 용기를 발휘해야 창의성이 높아지고, 창의성이 높은 인재가 많아야 선도력을 갖게 된다.”

- 선진국과 중진국의 차이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선진국은 앞서가고 중진국은 따라간다. 지금 한국은 중진국 트랩에 갇혀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과 제도는 대부분 외국에서 가져왔다. 우리가 만들어 쓴 것이 거의 없다. 이것이 습성화되면 ‘좋은 것은 바깥에 있다, 외부에 있다’는 시선이 고착화된다. 그렇게 되면 분열된 존재가 된다. 시선이 내 안에 있지 않고 외부에 존재한다. 나의 욕망보다 사회적인 평가가 중요하게 된다. 분열상이 있는 한 인간은 행복하지 않다.”

- 분열된 주체들이 많은 세상은 결국 시대의 질병이라는 얘기인가. “그렇다. 한국의 한계와 맞물려 있다. 시선과 기준이 외부에 있는 분열된 주체는 다른 사람들이 잘한 것을 박수 치고 칭송한다. 보편적 기준에 나를 견주므로 나는 항상 초라하다. 짧은 인생에 한 번도 자신은 별처럼 살다가지 못한다. ‘따라하기’ 문명은 별처럼 살다간 이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거다. 이제 우리는 각자가 별이 되어야 한다. 자기 삶 속에서 누구나 별이 될 수 있다.”

- 분열된 주체가 아니라 독립된 주체로 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내가 누구이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내가 되고 싶은 형상이 간절해지면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가난과 불안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게 인생의 승리라고 본다.”

- 그 질문이 내 안에서만 맴돌지 않게 하려면. “부단히 읽어야 한다. 세계를 보는 안목을 높이고 지식을 고양하면서 수양까지 되는 행위는 독서밖에 없다. 독서는 마법의 양탄자다. 내가 원하는 높은 곳으로 데려다준다.”

- 지금 최 원장이 천착한 질문은 뭔가. “‘어떻게 생존해온 민족인데, 어떻게 세우고 어떻게 발전해온 민족인데 여기까지만 살다가도 괜찮은가’ 하는 거다. 이 질문이 간절하다. 각성이 없으면 우리 민족은 여기까지가 정점이다. 우리는 하던 소리를 너무 오랫동안 해왔다. 새로운 문법을 꿈꾸지 않았다. 새 말, 새 몸짓이 필요하다.”

- 혁명가 같다. “우리는 혁명의 역사가 있는 나라다. 대학생들이 정권을 바꾼 나라다. 당시 대학생들은 정의와 도덕으로 무장했다. 그들이 사회로 나온 후 정의와 도덕의 질과 양이 증가했는가. 그렇지 않다. 함석헌 선생은 이런 말을 했다. ‘왜 혁명이 완수되지 않는가. 혁명가가 혁명되지 않은 채 혁명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혁명의 이념이나 학습된 혁명을 실천한 것이지 진정한 혁명이 아니었다.”

- 최근 몇 년 새 혁명과도 같은 진통이 끊이지 않았고, 현재에도 혼란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먼 훗날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까. “변화의 필요성은 느끼면서 변화의 핵심을 붙잡지는 못하는 단계.”

- 사회질서가 재편되는 와중에 있다. 혼란을 뚫고 더 나은 시대로 안착할 수 있을까. “가능성을 묻지 않기로 했다. 다만 각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깨어 있기. 일본의 발전 과정에는 각성한 사람들이 많았다.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사람들은 사무라이 집단이었다. 한때 막부시대를 지탱하던 힘이었으나 사회 변화를 감지하고 자기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했다. 일본의 변화는 사무라이들의 자기부정의 힘이 컸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386에서 586으로 바뀌면서 자기부정과 자기각성이 없었다. 자기부정은 자기를 깨고 새로운 자기에 도달하는 것이다. 장자(莊子)는 이를 오상아(吾喪我·내가 나를 장례 지낸다)라고 했고, 나는 ‘자기 살해’라는 표현을 쓴다.”

- 새로운 어젠다를 붙잡으려면. “결국 정치력 문제다. 지금까지 우리는 진영의 정치만 했지 꿈의 정치가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정치는 이쪽과 저쪽이 변증법적 갈등을 통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 양쪽을 왔다 갔다만 하고 있다. 민주화 세력도, 산업화, 건국 세력도 구세력이다. 새로운 꿈을 꾸는 새로운 세력으로 교체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속칭 민주화 세력이 시대를 담당하면서 미래라고 생각한다. 과거를 연장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 정치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새로운 세대의 새 말, 새 몸짓이 필요하다. 20대, 30대 세계관을 가진 지식인이 필요하다. 옛날 이야기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새로운 삶의 태도가 간절히 요구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결과지향적 삶을 살아왔다. 결과지향적 삶은 수명을 다했다.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성취로 이 사회를 채워야 한다. 자리싸움이 아닌 가치싸움이 필요한 시대다.”

최진석

1959년생. 서강대학교 철학과 학사 및 석사, 베이징대 철학 박사. 1998년부터 2018년 2월까지 20년간 서강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새 시대를 여는 인재양성소 ‘건명원’ 원장을 맡고 있다. ‘생각하는 힘, 노자’ ‘인간이 그리는 무늬’ ‘중국사상 명강의’ ‘장자철학’ ‘노장신론’ ‘탁월한 사유의 시선’ ‘경계에 흐르다’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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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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