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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01호] 2018.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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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우리가 ‘에교협’을 띄운 이유

전력 수급 위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덕환  에교협 공동대표,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 제주도 동복·북촌 풍력발전단지 photo 뉴시스
지난 3월 23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조촐하지만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의 출범을 알리는 창립 기념 토론회였다. 산업부가 지난해 12월 29일 확정·공고한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대한 다양한 시각에서의 분석을 통해 정부가 성급하게 추진하고 있는 ‘에너지 전환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합리적인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전국의 교수들이 모였다. 참석자가 많았던 것도 아니고, 행사가 화려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언론의 관심은 뜨거웠다. 절차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치달리는 어설프고 성급한 에너지 정책에 대한 불안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었다.
   
   
   백년대계를 걱정하는 학자적 양심
   
   ‘에교협’은 전국 57개 대학에 재직 중인 인문·사회·자연·공학 계열 교수 210명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임의 단체다.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을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에교협의 활동 목표가 아니다. 굳이 밝히자면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더욱 합리적인 방향으로 다듬어줄 것을 촉구하는 친(親)정부적 모임이다. 어떠한 이해관계도 단호히 거부하고 오로지 순수한 학자적 양심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 정책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합리적·현실적·미래지향적인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에교협은 특정한 이념적·정치적 성향을 표방하지도 않고 특정 기업이나 단체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을 계획도 없다.
   
   에너지 정책은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이다. 국가의 에너지 환경은 언제나 변화하기 마련이다. 경제 성장과 기술 개발에 따라 산업구조가 변화하고 국민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 에너지에 대한 수요도 달라진다. 에너지 환경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에너지 정책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만 한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에너지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산업과 국민 생활에 필요한 새로운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는 ‘에너지 전환(energy conversion)’은 특별한 과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에너지 소비의 절약과 효율화가 핵심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다고 소비자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에너지 수요를 억지로 억제해서는 안 된다.
   
   국가 백년대계인 에너지 정책을 조령모개식으로 바꿀 수는 없다. 국가 차원에서의 에너지 전환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엄청난 규모의 사회적 인프라를 새로 마련해야 하고, 산업구조를 완전히 개편해야 하고, 제도도 바꿔야만 한다. 에너지 전환으로 촉발되는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는 일도 간단하지 않다. 어설픈 에너지 전환의 피해는 상상을 넘어서게 된다. 국가 경제가 무너지고, 안보가 흔들리고, 국민 생활이 어려워지고, 환경도 파괴되는 극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에교협이 에너지 정책의 합리화를 강조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신재생 이익을 위한 탈원전 정책
   
   에교협이 주목하는 탈원전은 느닷없이 치르게 된 조기 대선의 산물이다. 대선후보들이 차분하게 공약을 준비할 여유가 없었다. 급조된 대선캠프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핑계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던 ‘신재생 마피아’들의 놀이터가 돼버렸다. 거의 모든 대선후보들이 심각한 고민 없이 탈원전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5월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정농단의 혼란 속에서 무리하게 확정해버린 고리 원전 1호기의 영구정지 선포식이 ‘탈핵(탈원전) 선언식’으로 변해버렸다. 우리에게 역사상 처음으로 전기의 풍요를 즐기도록 해주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고리 1호기에 대한 감사의 표시도 없었다. 탈원전의 현실성이나 필요성에 대한 어떠한 사회적 합의도 없었다. 여전히 시행 중인 ‘원자력진흥법’을 비롯한 에너지 관련 법률이 통째로 무력화돼버렸다. 탈원전을 약속한 대선 공약집이 무소불위의 위력을 발휘해버렸기 때문이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던 신고리 5·6호기의 공사도 돌연 중단해버렸다. 국무총리 훈령으로 낯선 공론화위원회가 급조되었다. 원전 공사의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공론화위원회였지만 정작 원전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자료를 제공할 수도 없었고, 위원들을 설득할 기회도 충분히 보장받지 못했다. 그나마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했던 공론화위원회 젊은 위원들의 현명한 판단 덕분에 신고리 5·6호기의 공사는 재개될 수 있었다.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은 국민들에게 수천억원의 손실만 떠안긴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나버렸다.
   
   
   위험한 적폐가 ‘신의 축복’으로
   
   대선 공약을 핑계로 탈원전을 밀어붙이던 정부는 곧바로 치명적인 자가당착과 자기모순에 빠져버렸다. 온전하게 우리 기술력만으로 건설 중이던 UAE의 ‘바라크원전’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위험해서 폐기해야만 한다는 원전을 다른 나라에 수출하겠다는 주장은 윤리적으로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실제로 문제는 심각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우리가 세계 최초로 개념 설계에 성공한 중소형 SMART 원자로의 실시설계를 공동으로 추진해왔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자신들의 원전 건설에서는 우리를 외면해버렸다.
   
   영국이 우리를 자신들의 원전 건설을 위한 우선협상 대상으로 선정해준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영국은 1956년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를 건설했던 원전 종주국이다. 우리가 그런 영국에 자력으로 개발한 한국형 원전을 수출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물론 우리가 우선협상 대상으로 선정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UAE에 건설 중인 한국형 원전의 기술적 우수성과 안전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남들이 인정해주는 우리의 기술력을 정작 우리 자신은 온갖 핑계로 폄하해왔다는 사실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최근 UAE를 방문 중 바라크원전 공사현장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원전을 ‘바라크(신이 내린 축복)’라고 선언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바라크원전을 졸속으로 추진하던 탈원전 정책을 수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력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리고, 미완성 상태의 미래 기술로 승부를 걸겠다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라는 서양 격언도 있다. 섣부른 공약을 고집하기보다 과감하게 현실을 인정하고 방향을 바꾸는 것도 국가의 미래를 책임진 대통령의 진정한 용기이고 지혜가 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전 수출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물론 절차적 정당성이 의심스러운 원전 수명 연장 불허 방침과 신규 원전 백지화 정책도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재검토해야 한다. 법적·제도적 근거가 없는 어설픈 여론조사가 정책 결정의 수단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성급한 탈원전은 지난 60년 동안 이룩한 우리 기술력의 퇴화를 뜻한다. 지금은 원전 건설 기술을 상실해버리고 안타까워하는 미국의 현실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친환경에 대한 과도한 환상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태양광·풍력 기술 완성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와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어차피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 자원은 조만간 심각한 고갈의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지속가능하고 환경에 영향을 적게 미치면서 국민 안전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에너지원의 개발이 절실하다.
   
   그렇다고 태양광·풍력이 ‘친환경’이라는 일방적인 주장은 경계해야 한다.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전기를 생산해주면서 환경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친환경’은 비현실적인 꿈이다. 그런 주장은 우리의 이기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환상일 뿐이다. 실제로 태양광과 풍력도 환경에 적지 않은 피해를 준다. 더욱이 태양광과 풍력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반드시 가동해야 하는 LNG발전소가 쏟아내는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와 응축성 미세먼지까지 고려하면 현재의 태양광과 풍력은 환경적으로 결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태양광·풍력 설비의 수명이 20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태양광·풍력 시설 때문에 인근 주민들이 겪어야 하는 불편이 상당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태양광·풍력 시설을 설치하는 과정에서의 환경 파괴는 더욱 심각한 문제다. 애써 키워놓은 산림을 파괴해야 한다. 거의 모든 지자체가 태양광·풍력을 혐오시설로 규정해놓은 것은 괜한 것이 아니다. 수익을 올리기 어려운 쌀농사 대신 태양광 설비로 ‘전기 농사’를 지으라는 ‘태양광 마피아’들의 권고는 농민들에게 모욕적인 것이다. 태양광 패널의 그늘에서 썩어가는 경작지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하는 농민들의 절박한 심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태양광과 풍력 설비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소비되는 자원과 에너지에 의한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수명을 다한 설비를 해체·폐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도 적지 않다.
   
   지난 겨울은 혹독했다. 서울의 최저기온이 1월 26일에는 영하 17.8도까지 떨어졌고, 2월 7일에도 영하 13.4도를 기록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던 극한 추위가 다반사였던 1970년대의 기억이 떠오를 정도였다. 지구온난화로 편서풍이 약화되면서 북극의 차가운 냉기가 중위도 지역까지 밀고 내려온 탓이라고 한다. 지구촌의 온난화가 지역과 계절에 따라 엉뚱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경험이었다.
   
   그런데 최강 한파로 고생한 것은 국민들만이 아니었다. 전력 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당국도 홍역을 치렀다. 전력 사정이 넉넉했던 2000년대 초반부터 크게 늘어나기 시작한 난방용 전력수요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다급해진 전력 당국이 12월 이후 무려 12차례의 급전(수요감축) 지시를 발령했고, 그때마다 전국의 2700여개 공장이 일시적으로 조업을 중단해야만 했다. 예상치 못했던 기상이변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산업부의 변명은 옹색한 것이었다.
   
   
   시작부터 빗나간 전력수요 예측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말았다. 지난 2월 6일의 전력 수요가 사상 최대인 88.2GW를 기록했다. 산업부가 지난해 12월 29일에 졸속으로 확정·공고한 지 고작 40여일 만에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지난 겨울의 최대 수요 전망치 85.2GW가 3.5%나 빗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쉬고 있던 LNG발전소를 총동원해서 어렵사리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깨끗하게 전기를 생산하는 24기의 원전 중 11기는 예정에 없던 점검을 핑계로 멈춰놓은 상황이었다. 결국 발전 단가가 비싼 LNG발전으로 온난화를 부추기는 온실가스와 재앙적인 미세먼지만 잔뜩 쏟아내고 말았다.
   
   전력수급계획의 수요 전망이 시작부터 빗나가버릴 정도로 축소된 이유가 도대체 석연치 않다. 수요 전망의 핵심은 미래의 GDP 성장률이다. 제8차에서는 GDP가 연평균 2.4% 증가한다는 기재부의 전망을 근거로 했다. 그런데 제7차 기본계획에 사용했던 연평균 성장률은 3.4%였다. 기재부가 2004년 GDP 산정기준을 변경하면서 ‘구계열’과 ‘신계열’의 전망치가 등장하게 됐지만 단순히 GDP 산정방식을 변경했다고 전력 수요가 달라질 이유는 없다. 4차 산업혁명으로 전기차·로봇·데이터센터 등 전력 다소비 기술이 일반화되면 전력 수요는 오히려 더 늘어날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상식을 반영했어야만 했다.
   
   
   신재생에너지가 불러올 낭비
   
   정부의 섣부른 탈원전·탈석탄 정책과 태양광·풍력·LNG 확대 정책이 소비자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주게 된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라 2030년까지 건설해야 하는 총발전 설비는 무려 173.7GW나 된다. 현재의 총발전 설비 107.8GW보다 61%나 늘어난다. 그런데 태양광·풍력 설비의 내재적 간헐성이 문제다. 58.5GW의 태양광·풍력 설비에서 실제 생산할 수 있는 실효 전력량은 8.8GW뿐이다. 이에 따라 2030년이 되면 정격용량 설비예비율이 2017년 37.3%에서 72.8%로 치솟게 된다. 정격용량은 지어놓은 발전시설이 최대 생산할 수 있는 규모를 뜻하는데 예비율이 72.8%라는 것은 72.8%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놀린다는 의미다. 예비율이 이렇게 치솟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2030년의 그래프를 보면 전체 정격용량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33.7%나 되지만 실질적으로 가동되는 실효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1%에 불과하다. 정격용량과 실효용량이 별 차이가 없는 원전, 석탄, LNG와는 완전히 다르다. 신재생에너지의 정격·실효용량의 차이가 전체 예비율을 72.8%로 밀어올리는 이유다.
   
   과연 우리가 72.8%의 예비율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을 전 국토에 걸쳐 엄청나게 지어놓고 놀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비율의 상승은 필연적으로 전기요금의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멀쩡한 원전의 가동률을 억지로 줄이고, 조기 폐쇄하는 비용도 전기요금으로 소비자에게 떠넘겨지게 된다. 석탄화력이 노후되었다고 해서 무작정 폐쇄해버리는 것도 감당하기 어려운 낭비다. 상황이 이런데도 전기요금은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는 산업부의 주장은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에교협의 관심은 산업부가 준비를 하고 있는 ‘제3차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이다. 무엇보다도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법률에 정해진 절차를 확실하고 투명하게 따라야 한다. 원전의 건설과 수명 연장의 문제는 단순히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워킹그룹이 즉흥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합리적인 기본계획을 위해 이해상충의 가능성도 확실하게 경계해야 한다. 워킹그룹이 국가의 에너지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전문가를 배제하고, 아무 전문성도 없으면서 특정 에너지를 통해 엄청난 이익을 챙기려는 이익집단과 시민단체의 대표들로 채워진다면 상황은 심각해질 것이다. 통일에 대한 적극적인 대비도 필요하다. 무리한 탈원전 시도의 혼란스러운 경험을 되풀이하는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에너지 정책의 합리화가 최상의 목표가 돼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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