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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01호] 2018.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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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우은진 세종대 사학과 교수

“뼈를 보면 삶이 보인다… 우리 안에 네안데르탈인이”

최준석  선임기자 

▲ 독일 메트만(mettmann) 소재 네안데르탈박물관에 있는 네안데르탈인 복원 모습. 현대인 복색이라 눈길을 끈다. photo 네안데르탈박물관
‘우리는 모두 2% 네안데르탈인이다’(뿌리와 이파리). 최근 출간된 이 책을 읽으며 저자 3명이 책을 왜 썼는지가 궁금했다. 우은진·정충원·조혜란 박사는 네안데르탈인 연구자가 아닌 듯했다. 우은진은 생물인류학자(세종대 역사학과 교수), 조혜란은 뼈대생물학자(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소재 데이비슨칼리지 인류학과 교수), 정충원은 집단유전학자(독일 예나 소재 막스플랑크연구소)이다. 저자 중 유일한 국내 체류자이고 주저자인 우은진 세종대 교수를 지난 3월 26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우 교수는 “2010년 이후 ‘내 안의 네안데르탈인’에 관한 붐이 세계적으로 일었다. 그런데 한국인은 대부분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른다. 네안데르탈인은 재밌는 이야기이고, 극적인 반전의 아이콘이라고 고인류학계는 말한다. 이를 알리고 싶은 갈증이 있었다”고 말했다. 네안데르탈인은 독일 뒤셀도르프 인근의 네안데르탈(네안더계곡)에서 1856년 발견된 고인류. 13만년 전부터 3만년 전까지 살다가 사라졌다. 현생인류(호모사피엔스)와 일정 기간 같은 지역에 살았기에 더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이들의 주거지는 대부분 유럽이었고, 때문에 현재 유럽인과 네안데르탈인과 관계를 두고 많은 상상력이 발휘됐다. 왜 멸종했는지, 현생인류와 유전적인 교배가 있었는지가 미스터리였다.
   
   2010년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스반테 페보(스웨덴) 소장이 이끄는 팀이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서열을 처음으로 읽어냈다. 고(古)유전학자인 페보는 현생인류 유전자의 2~4%가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왔다는 걸 확인했다. 발칸반도 국가 크로아티아의 빈디자동굴에서 얻은 네안데르탈인 뼈 조각에서 얻은 성과였다.
   
   2~4% 유전자가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왔다는 의미에 대해 저자 중 한 명인 정충원은 책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다섯 세대 내지 여섯 세대 전의 우리 조상 중에 네안데르탈인이 있었던 것과 비슷한 비율이다. 증조할머니가 어렸을 때 네안데르탈인 할머니의 품에 안겨 있었다고 상상해 보면 무슨 의미인지 조금 더 와 닿지 않을까?”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다부진 몸에 육식만 했다
   
우 교수는 “네안데르탈인은 우리와 함께 오늘을 숨 쉬고 있었다”면서 “그들은 우리 이웃이자 친구였을 뿐 아니라 연인이자 배우자였다”고 말했다. 우 교수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은 오늘날 우리를 새롭게 정의하도록 하였다. 또 이 과정에서 우리의 뿌리를 찾는 작업이 얼마나 복잡하고 심오한지를 새삼 일깨워줬다. 호모사피엔스는 명료하게 정의되지만, 그들의 등장과 진화 과정은 여전히 모호한 게 많다. 한때 지저분하고 무식한 동굴인 이미지였던 네안데르탈인은 요즘은 양복을 입은 현대인과 같이 친숙한 이미지로 표현된다. 주먹코를 가졌다는 걸 빼놓고는 서울 거리에서 네안데르탈인을 만난다면 우리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는 키가 좀 작으나 몸은 호모사피엔스보다 훨씬 다부지다. 큰바위 얼굴이고 일자눈썹을 가졌다면 그가 네안데르탈인일 가능성이 높다. 뼛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겠지만 육식만을 했기에 질소값이 높다.
   
   우 교수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이 우리 안에 있다는 건 놀라운 반전이었다. 그러나 한국 교과서는 아직도 네안데르탈인에 관해 2010년 이전 그대로 기술한다.
   
   네안데르탈인 관련 책은 고인류학자 에릭 트링카우스(미국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학 교수)의 ‘네안데르탈 1, 2’(1993)가 한국에 소개돼 있다. 그나마 절판 상태. 우 교수는 “이 책은 너무 어렵고 재밌지도 않다”면서 “일반인에게 고인류와 우리 몸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얘기하되 쉽게 얘기하고 싶었다”고 이번에 책을 쓴 배경을 설명했다.
   
   책은 한국고병리연구회(회장 신동훈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우 교수는 “집필 진행 상황을 한국고병리연구회에서 몇 번 보고한 적 있다”고 말했다. 저술도 한국고병리연구회 회장인 신동훈 교수가 “네안데르탈인 연구가 쌓여 있으니 함께 정리해 보자”고 제안해 시작했다. 그런데 신 교수는 중도에 그만뒀고, 우은진 교수가 조혜란 교수와 정충원 박사를 새로운 필진으로 참여시켜 책을 완성하게 되었다. 조혜란 박사(재미 학자)와는 체질인류학(physical anthropology) 학회에서 만나 가까운 사이. 우 교수는 조 교수가 영어로 써온 원고를 한글로 옮겼다. 또 원고를 쓰다 보니 네안데르탈인 관련 분자생물학 부분이 어려워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집단유전학 박사학위를 막 받은,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 후배인 정충원 박사에게 해당 부분 집필을 맡겼다.
   
   우 교수는 고병리연구회가 ‘네안데르탈인’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와 관련 “오래된 뼈를 연구하는 데 한국에서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류학자가 뼈를 분석, 보관하는 등 인골 관련 법 규정이 한국에는 없다. 한국에서는 구석기 인골이 나와도 무연고 묘로 간주해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 문화재 관련 법을 적용하는 게 아니고. 이런 문제를 알리고 사람들이 이에 관심을 가져주길 연구자들은 바라고 있다.” 그에 따르면 외국은 오래된 인골을 ‘고고유물’ 범주로 정해 연구할 수 있도록 한다. 인골이 100년 이상 되고, 고고학 맥락에서 연구 가치가 있고, 후손 관련 문제가 없으면 분석하도록 한다. 나중 연구를 위해서 잘 보관도 해야 한다. 우 교수는 “우리도 빨리 관련 입법을 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우 교수는 서울 은평뉴타운 개발 때 일을 떠올리며 “너무너무 안타까웠다”고 했다. 은평뉴타운 자리는 조선시대 공동묘지 터. 여러 팀이 발굴했는데, 2000~3000기의 유골이 나왔다. “연구 가치가 있는 220개체를 추렸다. 나머지는 포크레인으로 무덤을 밀어버렸다.”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아시아에서는 네안데르탈인 화석이 발견된 바 없다.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는 네안데르탈인 유적이 나왔다. 중국에서 오래된 사람 화석은 1923년 저우커우뎬(周口店)에서 발견된 베이징원인 화석이다. 베이징원인은 호모에렉투스. 베이징원인은 50만년 전~20만년 전에 살았던 걸로 추정된다. 호모에렉투스는 55만년 전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 전 세계로 퍼져나온 인류의 조상이다. 세계에 흩어져 살았고 동아시아에까지 건너왔던 글로벌 1세대이다. 한반도 남쪽에는 공주 석장리와 연천 전곡리에 구석기 유적지가 있으나 사람 뼈는 나온 바 없다.
   
   책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는 네안데르탈인 화석이 많이 발견된 유럽보다, 아시아인에 더 많이 들어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우 교수는 “아직 모른다”고 말했다. 아시아에 네안데르탈인이 산 적이 없는데,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들어있는 이유도 궁금하다. 그에 대해서는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염기서열을 읽어낸 스반테 페보의 설명이 있다. 페보의 책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2014년)에 따르면 현생인류는 6만년 전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 중동을 거쳐 세계로 이주해갔다. 이 현생인류가 탈(脫)아프리카 직후 중동에서, 그곳에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과 만나지 않았나 추정한다. 그곳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 간에 이종교배가 이뤄졌고, 이후 그들의 후손이 전 세계로 흩어졌다는 것. 한반도에도 호모에렉투스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이 사라진 후 호모사피엔스가 6만년 전 아프리카를 출발해 한반도를 다시 찾기 전까지는 인간 흔적은 없었던 걸로 추정된다.
   
   우 교수는 “사람이 나이 마흔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데, 골학자 입장에서는 나이 마흔이 되면 자기 뼈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근육 좀 만들어야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어도, 뼈 좀 만들어야겠다는 사람은 없다. 뼈도 계속 변한다. 뼈도 살아 숨 쉬는 조직이다. 발레리나 강수진,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의 발뼈를 보자. 그들은 발끝으로 서기 위해 발등 뼈로 버텼다. 발에 변형이 왔다. 역도의 장미란 선수의 뼈도 그가 훈련을 통해 더 튼튼하게 만든 것이다.”
   
   그는 뼈에 대한 최상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한 시간 이상 뼈를 본다고 했다. 뼈학자, 즉 골학자는 사람들이 책을 읽는 것처럼 뼈를 읽어서 주인공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우 교수는 “뼈가 다 거기서 거길 거라고 생각하면 잘못”이라며 “골학자도 가능한 많은 뼈를 보아야 유능한 전문가가 된다”고 말했다.
   
   
   마흔 되면 자기 뼈에 책임져야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95학번인 그는 2012년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기 전인 2009~2010년 미국에서 1년간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미국의 3대 뼈 컬렉션을 다 보았다. 미국 테네시대학(녹스빌)의 윌리엄 바스 컬렉션,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의 테리 컬렉션, 클리블랜드자연사박물관의 헤이먼 토드 컬렉션이다. 이들 3대 컬렉션은 모두 현생인류 뼈이다.
   
   우 교수에 따르면 한국에서 뼈를 많이 갖고 있는 건 동아대 김재현 교수(고고미술사학과)다. 한반도 남쪽 해안가 패총 인근의 석회암 토양에서 오래된 뼈가 많이 나오고, 그 유물이 김 교수에게 간다고 한다. 한반도 다른 지역은 산성 토양이어서 뼈가 쉽게 부식된다. 우 교수는 한국에서 나온 가장 오래된 뼈와 관련 “부산 가덕도에서 2000년 이후 발견된 신석기 전기, 즉 기원전 4500년 전 유해 47개체 혹은 48개체가 나왔다. 신공항 건설공사를 하다가 발견한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브가 된 국방부 유해발굴단의 6·25 전사자 유해 발굴과도 인연이 있다. 6·25 50주년 기념 행사로 경북 칠곡에서 다부동전투 사망자 유해를 찾다가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 속 주인공이 웅크린 채 죽어 있는 걸 직접 발굴했다. 2000년이었다. 만년필과 이름이 새겨진 뿔 삼각자가 나오는 바람에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고, 부인이 살아 있어 현장에 찾아왔다고 했다. “학부 때부터 뼈를 봐왔다. 뼈를 닦으며 재미있는 연구 대상이라는 생각만 했다. 누군가의 가족이라고는 생각 안 했다. 6·25 사망자 유해를 발굴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우 교수는 영화 속 주인공의 부인이 그 고지까지 업혀 올라오면서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고 했다. “전화 걸려 올 줄 알았다. 남편이 어젯밤 꿈에 나타나 ‘자네를 찾아갈 것’이라고 했다.” 이후 강제규 영화감독이 내용을 접하고 작품으로 만들었다.
   
   우 교수는 뼈 연구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설명하는 책을 쓸 예정이라고 했다. 이제 막 교수 자리를 얻은 만큼 논문을 써가며 대중을 위해서도 논문 내용을 책으로 정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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