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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2502호] 201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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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방북을 기다리는 사람들

김태형  기자 

▲ 지난 2월 26일 신한용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등 위원들이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성공단 방북 승인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동안 경직됐던 남북관계에 따뜻한 봄날이 찾아온 건 맞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 봄날이 좀 더디게 오는 것 같다. 아직 북한 땅을 밟기에는 넘어야 할 벽이 많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북한행을 준비할 생각이다.”
   
   지난 4월 3일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이 한 말이다. 신 회장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다. 지난 2월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는 개성공단 방북승인 호소문을 발표하고 통일부에 방북승인을 요청했다. 호소문에는 ‘개성 공장과 설비들이 남북관계 단절로 방치된 지 2년이 넘었고 공장 시설 점검과 보존대책을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전면중단을 선언했다. 박 전 대통령이 개성공단 폐쇄라는 초강수를 빼든 계기는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도발이었다. 당시 정부의 갑작스러운 발표에 입주기업들은 재산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한 채 개성공단에서 철수해야 했다. 이로 인해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었다.
   
   공단이 폐쇄된 이후 입주기업들은 경영 정상화를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현재 대부분이 문 닫을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 개성공단입주기업협회 측의 말이다. 입주기업들은 공단 중단 이후 1조5000억원의 피해를 본 것으로 자체 추산했다. 이 가운데 영업손실을 제외한 9446억원을 정부에 피해 신고한 상태다. 정부는 지금까지 5100여억원을 지원했고, 지난해 연말 660억원의 추가 지원을 결정해 집행 중이다.
   
   
   개성공단기업의 방북허가는 유보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석촌도자기 조경주 대표의 경우 2007년 개성공단 1만9800㎡ 부지에 120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짓고 2009년부터 공장가동을 시작했다. 원래 인천에서 공장을 운영했던 그는 북한 근로자들에 대한 기술 이전 등이 마무리되면서 생산설비를 모두 개성으로 옮겼다. 2010년 초 그는 매년 1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개성공단 폐쇄 결정 이후 500t가량 되는 50억원어치의 물품을 그대로 개성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석촌도자기 조경주 대표의 말이다. “최근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공동입장, 4월 남북 정상회담 등 화해모드로 돌아선 남북관계에만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런데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2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서 부푼 기대를 안고 북한행을 준비하는 기업이나 민간단체들이 늘고 있다. 아직은 여러 제약 때문에 막상 방북허가를 받은 곳은 거의 없다고 들었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조 대표의 말처럼 지난 3월 12일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의 방북 신청에 대해 통일부는 “북측의 반응이 없어 방북승인이 유보 조치된 상태”라고 답변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북한행이 일단 좌절된 것이다.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해에도 방북 신청을 했지만 불발됐다.
   
   최근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처럼 ‘북한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접수된 방북신청건수는 42건이다. 방북 관련 문의나 추진 중인 사람들까지 합하면 300건에 달한다. ‘북한 러시’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방북을 추진 중인 단체들은 모두 오는 4월 말에 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 어린이들의 교육이나 보건 관련 지원을 하는 민간단체인 ‘어린이어깨동무’도 가까운 시일 내에 방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기범 ‘어린이어깨동무’ 이사장의 말이다. “남북관계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화해모드로 전환되면서 대북지원을 하는 단체들이 긍정적으로 방북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방북 시기를 4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로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린이어깨동무도 이르면 6월 방북을 목표로 논의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대북지원을 하는 민간단체들이 방북 신청에 적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민족화해협력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photo 이덕훈 조선일보 기자

   북한 수학여행 촉구 운동까지
   
   민간단체 중에서는 유진벨재단이 가장 먼저 북한 땅을 밟는다. 오는 5월 1일부터 3주간의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하기로 확정됐다. 유진벨재단은 북한에서 다제내성결핵(MDR-TB) 치료 사업을 하는 민간단체다. 지난 3월 유진벨재단은 1500〜2000명의 결핵환자가 6개월간 복용할 수 있는 분량의 약을 배편으로 북한에 미리 보낸 상태다. 통일부의 대북물자반출 승인은 지난 2월에 이뤄졌다. 재단은 이번 방북 기간 재단에서 지원하는 다제내성결핵센터 12곳을 방문한다고 한다. 의료진과 환자들을 만나고, 반출된 결핵약과 기타 지원물품을 전달할 계획이다. 유진벨재단의 한 관계자는 “재단이 매년 봄과 가을에 걸쳐 두 차례 진행하는 정기 방문 차원이다. 방북이 결정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조심스럽다”며 “북한에 다녀와서 구체적인 활동과 성과에 대해서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아직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은 상황 때문인지 유진벨재단은 방북과 관련해 말을 아꼈다. 현재 유진벨재단의 방북 명단과 세부일정 등 구체적 사안은 베일에 싸인 상태다. 유진벨재단 소속의 미국인인 제럴드 해먼드 신부가 지난 1월 미국 정부에 북한 방문을 위한 특별여권을 신청해 승인이 떨어졌다고 알려진 것이 전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민족화해협력국민협의회(이하 민화협) 대표상임의장도 방북을 준비 중이다. 김홍걸 의장이 이끄는 민화협은 민족화해와 통일을 위해서 남쪽의 정당과 사회단체들이 참가한 통일운동 상설협의체다. 남북 간 화해와 교류협력 및 평화실현을 통해 민족동질성 회복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세워진 단체다. 이를 위해 통일 사업, 남북 간 화해와 협력 사업, 대정부 정책 건의 등을 하고 있다. 방북을 준비 중인 김홍걸 의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 정부 대 정부 차원의 접촉뿐만 아니라 민간도 나서서 정부를 적극 도울 때가 됐다”며 “4월 남북 정상회담이 마치면 방북을 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인원과 내용 등에서는 아직 말하기 이르지만, 민간 교류를 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종교계도 서둘러 방북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기독교와 천주교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기독교 측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방북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강석훈 목사의 말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북한 조선그리스도연맹이 수차례 국제 기독교 기구들의 방북을 허용했지만 북핵 문제로 여러 번 무산된 바 있다. 이번에도 북한 조선그리스도연맹이 초청을 했다고 들었는데, 오는 6월 스위스에서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회의에서 방북계획이 구체적으로 정해질 것 같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 기독교 연합단체다.
   
   
   10년간 중단된 금강산 관광 재개될까
   
   천주교 측은 주교회의 중심으로 방북을 타진하고 있다. 주교회의는 2015년 12월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대축일마다 평양 장충성당에 사제를 파견해 미사를 봉헌하기로 합의한 적이 있다. 이후 남북 분위기가 급속도로 경색되면서 실현되지는 못했다. 지난 3월 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가톨릭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15년 12월에) 평양 장충성당에 사제를 파견해서 정기적인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협력하겠다는 협의를 봤었다. 이후 그 협의가 끊어졌으니까 다시 만나서 얘기를 나눠야 할 것 같다.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에 대해서 서로 논의를 하고 연대를 맺는 일도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이다.”
   
   교육계에서는 광주광역시교육청의 방북 신청으로 인해 잡음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3월 25일 광주광역시교육청은 청와대와 통일부에 남북교류의 내용을 담은 제안서를 발송했다. 이 제안서에는 남북 학생 교류,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식에 북한 학생대표단 초청, 시·도 교육감단 방북, 남북 교원 간 학술 교류 등의 내용이 담겼다. 특히 광주시교육청은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방편으로 ‘학생 수학여행단의 방북’을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명소를 학생들이 찾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통일 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는 취지다. 광주시교육청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 상황 변화를 주시하며 남북 교육 교류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3월 29일부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광주지부도 청소년들의 북한 수학여행을 촉구하는 국민청원 운동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교육적으로 접근해도 될 만큼 여건이 무르익었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을 때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방북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기업도 있다. 바로 금강산 관광 사업을 진행했던 현대아산이다. 금강산 관광은 2008년 박왕자씨 피격 사건 이후 전면 중단됐다. 최근 남북관계 개선으로 인해 지난 10년간 중단된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며 현대아산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한국장외주식시장(K-OTC)에 따르면 현대아산의 주가는 장외시장에서 지난 3월 28일 장중 6만6500원까지 치솟으며 52주 최고가를 경신했다. 불과 한 달 전인 지난 3월 2일 1만4800원에 비해 무려 3배 가까이 올랐다.
   
   그렇지만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친다고 해도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려면 아직 많은 절차들이 남아 있다. 남북 경협 재개를 위해선 풀어야 할 매듭이 여럿인 데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방침도 여전하다. 이런 이유로 현대아산은 대북사업 재개에 관해서 아직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김홍인 현대그룹 상무는 신중한 의견을 내놓았다. “지난 10년간 언제 다시 재개될지 모르는 금강산 관광에 대해서는 늘 철저한 준비를 해오고 있었다. 실질적인 금강산 관광 재개의 걸림돌은 UN 제재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뿐만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한 북·미 간 합의도 중요하다. 이런 조건들이 갖춰진 이후에나 금강산 관광 재개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서 기대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금강산 관광 사업을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
   
   방북을 준비하는 단체와 기업의 시선이 오는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을 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치기 전까지는 모든 단체와 기업들이 방북을 무리하게 추진하진 않을 전망이지만 남북 정상회담 이후 방북 러시가 시작될 것”이라며 “그동안 견고했던 방북의 벽이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허물어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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