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2502호] 201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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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슬러시 도쿄 2018’을 가다

스타트업을 팝컬처로!

안순화  일본 KDDI총합연구소 애널리스트. 일본 와세다대 국제정보통신학 박사  

▲ 스테판 토마스 리플 CTO가 지난 3월 28일 도쿄 빅사이트에서 개최된 ‘슬러시 도쿄 2018’에서 기조발표를 하고 있다.
지난 3월 28일 일본 도쿄의 대표적인 국제 전시회장인 오다이바의 ‘빅사이트’. 어두운 이벤트홀 안으로 들어서자 강렬한 음악이 귓가를 울린다. 잠시 후 현란한 레이저 광선이 메인무대를 흔들자 모자를 눌러쓴 디제이가 디제잉과 함께 개회를 알렸다. 순간 록페스티벌을 방불케 하는 환호와 탄성이 터져나왔다.
   
   라이브 공연장 같은 이곳은 ‘슬러시 도쿄(Slush Tokyo) 2018’ 행사장이다. ‘슬러시 도쿄’는 핀란드에서 시작된 세계적 스타트업 컨퍼런스의 아시아 행사이다. 슬러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창업·스타트업 이벤트와는 사뭇 다르다. 2008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300여명의 젊은 창업가와 이노베이터들의 커뮤니티로 시작된 작은 이벤트가 기존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운영과 연출로 회를 거듭할수록 덩치를 키웠다. 2014년에는 78개국에서 1300여기업, 1만4000여명이 참가하는 세계적 규모의 스타트업 이벤트로 발전했다.
   
   슬러시의 주요 프로그램은 IT·스타트업계 저명인사들의 발표와, 상금(투자금)을 놓고 스타트업이 스폰서 기업들 앞에서 자사의 사업을 발표하는 ‘피치 콘테스트’이다. 모든 프로그램은 통역 없이 영어로만 진행된다. 슬러시 폐막일 밤에는 참가기업이 주최하는 애프터 파티가 열린다. 스타트업들에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발표자와 참가자가 일체가 되어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서로 자극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는 테드(TED)와 비슷하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200여개가 넘는 스타트업 가운데 선발된 80개의 스타트업 기업이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스폰서 기업에 어필한다는 점에서는 해커톤(해커와 마라톤의 합성어로 집중 프로그램 개발대회)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단순히 아이디어 경연장이 아니라 기술과 비즈니스, 그리고 문화 교류의 장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실제 슬러시의 최대 특징은 스타트업을 팝컬처로 바꾼 점이라 할 수 있다. 스타트업 매칭 이벤트는 자칫 ‘돈줄을 쥐고 있는’ 투자가를 위한 자리가 되기 쉽다. 그러나 슬러시에서는 풍부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독자적인 매칭시스템을 도입, 투자가와 스타트업을 이어준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장이 되는 것이다.
   
   일본에서 슬러시를 발족한 것은 우리에게 ‘앵그리버드’로 잘 알려진 핀란드 게임 개발업체 로비오엔터테인먼트의 일본법인 전 대표 안티 소니넨씨다. 2015년 ‘슬러시 아시아’라는 이름으로 핀란드 이외의 국가로는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올해 일본 슬러시의 테마는 ‘장벽 허물기(Breaking Barriers)’. 국적, 연령, 성별, 문화, 스타트업과 대기업,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 창업가와 투자가, 사회인과 학생 등 다양한 입장 간에 존재하는 모든 장벽, 계급을 없애고 자유롭게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다. 올해 일본 슬러시에는 세계 각국 600개의 스타트업 기업과 200여명의 투자가가 참석해 정보수집과 매칭에 나섰다.
   
   일본에서 ‘슬러시’는 창업가들과 학생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600명의 학생 자원봉사자가 참여했고, 참가등록을 한 사람은 6000여명에 달했다. 학생 자원봉사자들은 행사 진행을 하면서 관심 있는 스타트업의 발표와 대담도 들을 수 있다. 대학 4학년생으로 평소 스타트업에 대해 관심이 있어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는 여학생은 “주변에서 스타트업에 대한 정보를 얻기 힘들었는데 슬러시에 참여해 이벤트를 즐기면서 직접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4회째인 올해의 화두는 단연 가상화폐, 블록체인과 AI였다. 첫 번째 무대의 주인공은 가상화폐로 세계 3번째 시장 규모를 자랑하는 ‘리플’의 CTO인 스테판 토마스. 요즘 최고로 ‘핫한’ 가상화폐는 올해 슬러시에서도 단연 화제였다. 그가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연을 말했다. “2006년 런던에서 광고대행사를 운영할 무렵 세계 각국의 프리랜서 디자이너들과 같이 일을 했다. 파키스탄 디자이너의 보수 지불을 위해 이용해왔던 송금업자가 파키스탄에서 철수하는 바람에 지불이 불가능해졌다. 결국 파키스탄 디자이너와 더 이상 업무를 같이할 수 없었던 경험이 나를 가상화폐로 이끌었다.” 이날 그는 가상화폐뿐 아니라 현재의 웹 비즈니스 모델의 문제점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지금까지의 웹 수익은 광고, 과금 등이었지만 이 같은 웹 비즈니스 모델이 붕괴되고 있다는 것. 이용자가 웹에 상응하는 가치를 반환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가치의 흐름이 일방통행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때문에 웹사이트는 이를 메우기 위해 이용자가 원하지도 않는 광고나 피싱을 이용해 수익을 얻고 있다고 지적했다. 레스토랑에서 자신이 먹은 요리에 대해 돈을 지불하듯 직접적인 등가교환을 웹에서도 가능케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날 무대에 오른 스타트업 대표들은 기존의 중앙집권형 웹 구조에서 벗어나 분권(분산)형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각자 데이터 오너십을 가지고 상호 공헌해 나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슬러시가 의도하는 메시지와도 일맥상통한다. 슬러시가 짧은 역사에 비해 빠른 속도로 젊은이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개개인이 자유롭게 모여 힘을 합하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공감대의 형성이라 할 수 있다.
   
   
   스타트업 롤모델을 만들어라!
   
   슬러시 무대에는 ‘스타트업계의 아이돌’이라고 할 수 있는 성공 신화의 주인공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물류배송의 우버’로 불리는 홍콩의 첫 유니콘 기업 ‘고고밴’의 스티븐 램 CEO, 창업 2년6개월 만에 일본 제2의 통신사업자인 KDDI와 거액의 인수를 성사시킨 IoT플랫폼 기업 ‘소라콤’의 타마가와 CEO, 방일 여행객용 무료 SIM카드와 인바운드 여행자용 앱을 제공해 6개월 만에 이용자 1만2000명을 확보한 ‘WAmazing’의 가토 CEO 등이었다. 발표를 마친 후에는 바로 옆에 마련된 슬러시 카페로 자리를 옮겨 참석자들과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발표자와 참가자 양방향 교류와 소통은 슬러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슬러시 열기에서 보듯 최근 일본 정부도 젊은 창업가 지원에 발 벗고 나섰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의식개혁 △스킬 향상 △사업화 △성장촉진 등 4단계로 벤처 육성에 나서고 있다. 첫 번째 단계인 의식개혁을 위해서 ‘일본벤처대상’을 설립하고 문부과학성과 제휴하여 창업자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일본벤처대상은 스타트업 롤모델을 만들기 위해 2014년 만들어졌다. 유망 스타트업 기업이 정부의 지원제도를 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도 구축되고 있다. 개발에서 양산 단계로 이행할 때의 설비투자를 보조하는 등 정책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기업가치 1000억엔 이상의 ‘유니콘’ 탄생을 지원하고 나섰다.
   
   현재 일본에서는 2012년 말부터 경기회복 기조가 완연해지면서 창업 열기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창업자 수는 2002년 38만3000명에서 2012년 30만6000명으로 줄었다. 연령별 창업자도 60세 이상은 증가 경향을 보이고 있는 데 비해 29세 이하 젊은 창업가의 비율은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 대학 재학 중 창업을 희망하는 학생의 비율은 조금씩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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