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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2502호] 201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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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가족은 ‘전쟁 중’ 가족 갈등, 집안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다

김민희  기자 

▲ 일러스트 이철원
사례 1. 40대 초반 직장맘 최승희(가명·이하 모두 가명)씨는 60대 초반 엄마와 이틀에 한 번꼴로 모녀 전쟁을 한다. 레퍼토리는 엇비슷하다. 최씨는 “이젠 제발 내 맘대로 하게 내버려두세요”라고 호소하고, 엄마는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넌 엄마 말만 들으면 돼”라고 응수한다. 바쁜 딸을 대신해 엄마는 모든 집안일과 초등학생 두 손주의 숙제는 물론 방과후 학원까지 챙긴다. 사사건건 엄마의 간섭을 받는 최씨의 스트레스는 몸의 징후로도 나타났다. 만성두통과 소화불량을 안고 산다.
   
   사례 2. 중2 김민준군은 하교 전 아빠의 퇴근시간을 체크한다. 어쩌다 아빠가 일찍 퇴근한 날이면 아빠를 피해 집이 아닌 독서실로 하교한다. 이런 날은 엄마가 독서실로 아들의 저녁 도시락을 배달한다. 아빠와 아들이 부딪치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둘은 한 공간에만 있으면 어김없이 싸운다. 김군은 “내 인생은 내 것이니 자유를 달라”고 울부짖고, 틀이 강한 아빠는 “내가 너보다 인생을 많이 살았으니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실패 안 해”라며 호통친다. 김군은 “왜 이런 집에 태어났는지 원망스럽다”며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사례 3. 80대 후반 시아버지와 50대 중반 며느리 한지영씨는 한 지붕 아래에서 눈도 안 마주치고 지낸다. 유교적 가풍을 중시하고 법도를 따지는 시아버지는 한씨의 행동 하나하나가 맘에 들지 않는다. 밥상에서 자신이 먼저 일어나기 전에는 아무도 일어나서도 안 되고, 며칠 나갔다 오면 큰절로 맞이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건만 며느리는 따르지 않는다. “요즘 세상에 누가 그러고 사나요?”라며 따박따박 따지던 며느리는 침묵을 택했다. 둘 사이의 대화가 단절된 지는 오래다. 꼭 필요한 말이 있으면 한씨의 남편인 아들이 전달자 역할을 한다.
   
   
   가족이 아픈 시대다. 최근 들어 가족 간 갈등이 급증하고 있다. 열거한 사례들은 상담소를 찾는 특수한 경우지만,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어느 집안이든 크고 작은 갈등이 있게 마련이지만 최근 들어 부모와 자식 간 세대 갈등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특히 거세다. ‘세대전쟁’이라는 말이 공공연하다.
   
   이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가족 변화에 따른 가족 갈등 양상과 정책과제’(2015)에 따르면 응답자의 3분의 1에 달하는 32.5%가 최근 1년간 가족 갈등을 경험했다고 답했는데, 갈등 유형으로 보면 가족 내 세대 갈등이 37.5%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음으로 형제자매 갈등 20.6%, 부부 갈등 19.4% 순이었다. 세대 갈등 중에서는 역시 부모와 자녀 갈등이 28.3%로 가장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족 갈등 양상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 들어서다. 과거에는 가족 갈등을 집안 문제로만 치부하면서 쉬쉬해왔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가족 갈등을 사회문제로 접근하는 시각이 강하다. 특히 전쟁과 혁명을 거친 독일과 프랑스 등에서는 세대에 걸친 방대한 연구를 통해 가족 트라우마의 비밀과 해결 방안을 모색해왔다. 가족 갈등이 사회문제의 불씨가 된다는 인식이 폭넓기 때문이다. 가족 갈등을 방치하면 가족 해체로 이어지고, 이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가족 갈등 예방과 해소를 위해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의 가족 갈등 연구 역시 미약하다. 관련 서적 대부분은 번역본이고 국내 저자의 저서는 학술서 위주다. 대중서가 거의 없다. 여기저기 싸움판인데 왜 싸움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싸움을 말려야 하는지 모르는 형국이다. 대처능력이 약하다 보니 수업료도 세게 치르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위 조사에 따르면 가족 갈등으로 부모 및 형제자매와 의절하는 경우가 9.8%나 됐다. 열 가족 중 한 가족이 가족 갈등을 제대로 봉합하지 못해 인연을 끊는다는 충격적인 조사다. 가족 갈등으로 가족원이 가출하는 경우는 0.9%. 100가족 중 한 가족은 누군가 집을 나가는 방식으로 싸움이 끝난다는 얘기다.
   
   가족상담 및 가족치료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의 가족 갈등 상황을 ‘전무후무한 싸움판’으로 본다. 이나미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현 상황에서 세대 간 갈등이 가장 첨예하다”며 “가족의 해체냐, 성숙한 가족으로의 안착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현 가족 갈등을 ‘고성장으로 인한 압축사회가 낳은 부작용’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세대 간 갈등과 통합의 과정을 거칠 시간이 없이 갈등만 쌓이고 있다. 서로 다른 세대를 사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서 서로 옳다고 주장하는 형국이다.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시대가 낳은 가족 갈등의 불씨
   
   우리는 각자 개별적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대와 사회의 공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2018년 한국은 가족 갈등으로 이어질 위험한 불씨를 무수히 배태하고 있다. 가족 갈등의 불씨 몇 가지만 열거해 보자. △급속한 사회 변화로 인한 세대 간 가치관 차이 △맞벌이 부부는 증가했지만 양성평등 의식 미흡 △성인자녀의 만혼화로 부모 의존도 증가 △급속한 고령화로 맞게 된 준비되지 않은 노후 △저성장 기조로 인한 기회 부족으로 더 바쁘게 더 열심히 살면서 가족 간 대화 시간 부족 등.
   
   가족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고성장 압축사회가 낳은 세대 차이다. 느리게 흐르는 사회에서는 세대 갈등이 별로 없다. 세대 간 변화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초고속 경제성장은 세대 간 가치관 차이를 낳았다. 이나미 교수는 현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가장 큰 차이는 ‘자아의 탄생’이라고 집어냈다. “자녀 세대는 ‘나’를 주장하기 시작한 첫 세대다. 과거 가족은 덩어리로 움직였지만, 지금은 가족 구성원 각자가 움직이는 세상이다.”
   
   문제는 경제적으로는 과거처럼 부모 세대에 의존하면서 가치관으로는 자아를 내세우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이런 모순은 부모 세대로부터 “네 맘대로 하려면 너 혼자 살아”라는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다.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장은 상담소를 찾는 주체가 변했다고 한다. “과거에는 부모가 자녀를 억지로 끌고 왔다면, 지금은 자녀가 더 적극적인 경우도 많다. ‘좋다, 누구 말이 맞는지 따져 보자’며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편다.” 자녀 세대의 주체적인 성향은 일면 긍정적이다. 주체적인 삶의 태도는 장려되어야 하지만, 부모나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이런 변화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다 보니 당혹스럽고 기가 막히다.
   
   김현수 교수는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패러다임 자체가 달라졌다고 본다. “고성장시대 출신 부모 세대의 패러다임이 ‘생존’이라면 저성장시대 출신 자녀 세대의 패러다임은 ‘외로움’이다. 부모 세대는 배고픔 탈피를 위해 공부와 취업에 목숨 건 세대였지만, 자녀 세대에 배고픔은 상처가 아니다. 외로움 탈피를 위해 친구 관계와 인기 관리가 절박하다.”
   
   이남옥 서울부부가족치료연구소장은 ‘효(孝)’ 인식의 변화를 지적한다. “과거 부모 세대에는 부모를 위해서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서 먹이고, 허벅지살을 베어서 먹인다는 얘기가 미담이었다. 지금 세대는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부모의 입장에서는 서운하다. 현 부모 세대의 ‘관계통장’은 마이너스다. 모든 세대에는 가계에서 대대로 전수되는 관계통장이 있는데, 부모 세대가 그들의 부모 세대를 위해 드리면 다음 세대에서 채워줘야 관계통장이 유지된다. 그런데 현 부모 세대는 위로는 드렸으면서 아래로는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허탈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남다른 가족 친밀도 역시 가족 갈등과 밀접하다. ‘우리 가족’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고,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는 의식이 강하다. 박수룡 센터장은 한국처럼 일가족 동반자살 사건이 많은 나라가 없다는 점을 눈여겨본다. 가족 중심의 문화는 자녀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으로 이어진다. 최근 상담실을 찾는 가족 중에는 아버지의 성공 방정식을 자녀 세대에 그대로 전승하려다가 갈등을 겪는 경우가 특히 많다고 한다.
   
   분화가 안 된 부모와 자식 관계는 양쪽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 자녀를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다 너를 위한 것이야”라는 인식이 사실 자녀에게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남옥 소장은 “자율성과 독립성 추구의 욕구는 기본적 욕구”라며 “배고프면 죽듯, 자율성과 독립성이 침해당해 죽으면 모든 심리적 욕구 자체가 죽는다”고 분석했다. 부모의 과도한 간섭에 시달리던 아이가 매사에 의욕을 잃고 폐인이 되어 게임중독 등에 이르는 것이 이 때문이다.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가족 트라우마
   
   또 하나,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았던 중요한 원인이 숨어 있다. 바로 ‘가족 트라우마’다. 뼈아픈 역사의 한복판을 겪어낸 개인에게는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있고, 이 트라우마는 자녀 세대에 대물림된다고 한다. 최근 출간된 책 ‘굿바이 가족 트라우마’에 따르면 원인 모를 우울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면 얼마간 조상을 탓해도 된다.
   
   한국의 아픔 많은 굴곡진 현대사가 가족 갈등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다. 식민 지배로 억눌린 시절을 보냈고, 6·25전쟁을 치르면서 누군가는 가족을 잃고, 누군가는 가족과 생이별을 했으며, 좌우익 대립의 역사는 대립과 분열을 일상화했다. 5·18민주화운동, 제주4·3사건 등은 과거의 역사지만 가족 트라우마 이론에 따르면 이들 사건의 상흔은 현재진행형이다. 제주도의 이혼율이 가장 높은 것은 4·3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6·25전쟁 때 피란하다가 가족을 잃어버린 기억은 다음 세대에 유기(遺棄) 불안을 물려준다고 한다.
   
   전쟁의 상흔이 깊은 독일의 연구에 따르면 한 세대가 겪은 충격적인 경험은 대대손손 이어진다. 증손자 세대의 정서발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임상학 연구 결과가 수두룩하다. 최대 300년까지 트라우마가 이어진다는 연구도 있다. ‘가족의 두 얼굴’ 저자인 최광현 트라우마가족치료 연구소장은 “개인의 성향이 있더라도 가족 트라우마의 상흔이 더 강력한 원심력을 발휘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현재 한국의 가족 갈등을 ‘집안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가족 갈등은 ‘보이지 않는 불행의 뿌리’라는 것이 심리학계의 통설이다. 마음이 아파서 정신과나 상담소를 찾는 내담자들을 보면 표출되는 문제 양상은 다양하지만 원인을 따라가 보면 대부분 가족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최광현 소장은 ‘가족 관계는 인간 관계를 찍어내는 붕어빵 틀’에 비유했다. 가족 관계가 어떤 틀이었는가에 따라 이후의 수많은 인간 관계가 그와 유사하게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어린 시절 외로웠던 사람은 어른이 된 이후에도 외로운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가족에게 입은 트라우마가 많은 사람일수록 스트레스 대처능력에 약하다.
   
   그렇다면 가족 갈등을 어떻게 봉합해야 할까. 이남옥 소장은 “가족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혼자 있어도 갈등한다. 갈등은 인간의 숙명이다. 여러 사람이 같이 사는 가족 간 갈등은 당연한 것이다. 가족 갈등의 원인은 두 요소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침해받지 않으면서 독립적으로 지내고 싶은 욕구와 남들과 관계를 잘 맺고 싶은 욕구. 자율성 욕구와 관계 욕구는 상반된 것이다. 이 두 욕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핵심이다.”
   
   가족 갈등은 모든 가족이 거치는 통과제의이고, 특히 현재 한국의 가족 갈등은 사회의 성숙 과정에서 거치는 진통 중 하나라는 시각이 필요하다. 김현수 교수는 스웨덴이나 덴마크 등 북유럽 선진국 또한 높은 자살률과 낮은 행복도 등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해결을 위해서는 가족 차원의 노력과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보건사회연구원은 다음과 같은 정책 과제를 던졌다. △세대 간 관계 개선을 위해 의사소통 강화 및 공유시간 확대, 양성평등적 인식 확산과 제도 개선 △부모와 자녀 간 이해증진 프로그램과 가족친화 프로그램 활성화 △가족상담 및 치료서비스의 접근이 용이하도록 지원 체계 강화.
   
   
   부모 관계→부부 관계 위주로
   
   가족 내의 해결 키워드는 ‘상호 존중’과 ‘진심 어린 소통’이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위적인 말이지만 가족 갈등에 이만한 특효약이 없다고 한다. 이남옥 소장은 ‘정서적 대화’를 강조했다. “갈등의 잘잘못을 가리려 하면 오히려 갈등을 심화시킨다. 연락을 잘 안 하는 며느리에게는 ‘네가 잘 안 찾아오니까 서운하더라’ 식으로 해야지, ‘며느리로서 도리는 다 해야 하지 않겠니?’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자주 찾아뵙느냐가 아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것이다.”
   
   이나미 교수는 “상호 존중에 답이 있다. 각 개체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를 잘 만드느냐 아니냐에 따라 가족이 더 성숙할 수도, 해체될 수도 있다”고 했다. 김현수 교수는 “해결의 키는 어른이 쥐고 있다. 경청이 중요하다. 아이들의 말을 그저 들어줘라”는 해결책을 내놨다. 가족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인 최광현 소장은 “알아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이전 세대에서 해소되지 않은 분노는 1+1로 커진다. 가족 트라우마는 다음 세대로 전승될 수도 소멸될 수도 있는데 내 분노와 상처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해결에 큰 도움이 된다.”
   
   또 하나,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강조한 해법이 있다. 바로 ‘부부 관계 중심으로 가족 관계를 재편하라’는 것. 그래야 부모 세대도 건강하고, 자녀 세대도 행복하고, 둘 사이의 관계도 쾌적하다고 한다. 결국 가족 갈등을 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가족의 행복도가 달렸다는 얘기가 된다. 이남옥 소장의 말이 뇌리에 남는다.
   
   “천국도 가정 안에 있고, 지옥도 가정 안에 있다.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것도, 가장 큰 사랑을 받는 것도 가족이다. 가정 안의 갈등이 치유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 사회는 부모 자녀 관계의 복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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