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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2503호] 201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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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미혼모들 패션쇼 무대에 서다

황은순  기자 

▲ 미혼엄마 모델과 엄마 연예인 모델들(오른쪽 사진)이 패션쇼 무대에 서기 위해 워킹 연습을 하고 있다. photo 조현호 영상미디어 기자
두 번의 용기가 필요했다. 한 번은 아이를 낳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또 한 번은 아이를 키울지 입양을 보낼지. 그들은 삶의 고비에서 용기 있는 선택을 했지만 우리 사회는 그들을 ‘미혼모’로 구분했다.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아이와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꼭꼭 숨는 것이었다.
   
   그들이 세 번째 용기를 냈다.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다. 미혼엄마 8명이 패션쇼 무대에 선다. 오는 4월 22일, 스포트라이트 쏟아지는 런웨이에서 당당한 워킹을 선보인다. 스타강사 김미경(54)이 2016년 론칭한 비영리패션브랜드 ‘MK&LILY’의 첫 번째 패션쇼이다. ‘MK&LILY’는 대표인 김미경의 MK와, 그의 어머니 홍순희 여사가 충북 증평에서 평생 운영했던 릴리(LILY) 양장점의 이름을 조합한 것이다. 양장점을 하며 네 명의 딸을 키워낸 엄마처럼 ‘MK&LILY’를 통해 세상의 딸들을 성장시키겠다는 김미경 대표의 의지가 담겨 있다.
   
   롯데백화점 서울 영등포점 10층 문화홀에서 열리는 이날 패션쇼에는 용기를 낸 미혼엄마들을 응원하기 위해 17명의 연예인 엄마들이 함께 무대에 선다. 개그우먼 김지선, 정주리, 안선영을 비롯해 김민희, 정가은, 에바 등이 자발적으로 모델로 나섰다. 수퍼모델 변정수, 박둘선은 재능기부로 워킹교육을 맡았다. 패션쇼 무대에 오를 50여벌의 옷은 김미경씨가 직접 만든 옷이다. 자신을 숨기기 바쁘던 미혼엄마들이 무대에 올라 ‘커밍아웃’을 하고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편견의 문을 박차고 나오다
   
   정유미(가명·38)씨는 모델에 지원하고 2개월 만에 몸무게를 18㎏ 감량했다. 옷 사이즈보다 달라진 것은 표정이다. 예전의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믿기 힘들 정도로 밝아졌다. 불과 몇 달 안 돼 일어난 변화이다.
   
   9년 전, 정씨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정씨는 결혼식을 앞둔 예비신부로 임신 4개월이었다. 유산 위험이 있다는 병원 진단을 받고 출산 뒤로 결혼식을 미뤘다. 시댁 근처에 마련해둔 신혼집에서 살림을 시작한 후 아이 아빠의 거짓말이 하나씩 드러났다. 남자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였고 집안에 빚도 많았다. 남자는 한 직장에서 진득하게 3개월을 못 버텼다. 게다가 외박도 잦았다. 싸움으로 이어진 날, 아들에 대한 집착이 심했던 남자의 엄마는 아들 편을 들며 그에게 폭언과 함께 폭행을 휘둘렀다. 만삭의 몸으로 병원에 실려간 그날로 그는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친정 부모는 입양 대신 미혼모를 선택한 딸과 연락을 끊었다.
   
   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그는 홀로 아이를 키웠다. 그를 힘들게 한 건 아이를 어떻게 키우나 하는 걱정보다도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나 때문에 아이가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면 견딜 수가 없었어요. 아이가 학교에 적응은 잘할까. 주눅들진 않을까. 엄마가 미혼모라는 것을 알면 어떡하나. 모든 것이 불안했어요. 미안하면서도 예민해지니 아이한테도 날카롭게 대하게 되고. 아이가 어릴 땐 안간힘을 다해 버티던 것들이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몸 안의 에너지를 소진한 것 같았다.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다. 1년 전, 정씨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김현정(가명·39)씨는 씩씩하고 유쾌하다. 9년 전 사귀던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 그러나 남자도, 남자의 부모들도 아이는 좋아하면서 그를 받아들일 생각은 없어보였다. 출산 후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지만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다. 남자는 유약한 데다 책임감도 없었다. 결국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들은 잘 컸다. 아직까지 두 사람 주위를 맴도는 아빠에 대해서도 아들은 쿨하다.
   
   “어느 날 아들이 그래요. 엄마와 나는 둘인데 아빠는 혼자이니 더 불쌍하다. 그러니 밀어내지 말고 그냥 놔두라고. 나 혼자 미안해하고 안쓰러워했지 아들은 그 안에서 나름대로 잘 살아남았더라고요. 옷이 없다고 내가 투덜대는 이야기를 듣더니 아들이 그래요. 엄마, 나는 옷이 충분하니 앞으로는 엄마 옷 사라고. 아이만 바라보고 살았지, 아들도 날 보고 있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이제 나를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서야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는 엄마의 친구가 될 만큼 쑥 자랐는데, 나만 아이 아빠에 대한 원망과 주변 시선 신경 쓰느라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구나. 수퍼맨 같은 엄마가 아니라 예쁜 엄마가 되자!’ 바꾸고 싶었다.
   
   정씨와 김씨가 자신들을 가둔 문을 열고 나와 도움을 찾아 나선 곳은 사단법인 ‘그루맘(GROWMAM)’이었다. ‘그루맘’은 김미경 대표가 지난해 4월 만들었다. ‘미혼엄마들의 성장을 돕겠다’는 뜻을 담은 이름이다. 비영리패션브랜드 ‘MK&LILY’의 수익금은 모두 ‘그루맘’을 위해 쓰인다. ‘그루맘’은 경제적 자립만큼이나 정신적 자립을 중요하게 여긴다. 미혼모들의 무너진 자존감을 살리기 위해 심리상담 치유와 자존감 높이기 수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그루맘’의 회원은 150여명. 미혼엄마만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쉼터 시설은 10~20대 미혼엄마들이 많지만 ‘그루맘’ 회원들은 30~40대가 많다.
   
   지난 4월 9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주택가에 있는 ‘그루맘’ 사무실을 찾았다. 주택 2층은 ‘MK&LILY’의 작업실이고, 1층은 ‘그루맘’을 위해 내놓았다. ‘그루맘’ 사무실은 일반 가정처럼 꾸며져 있다. 거실처럼 소파와 책장, 책상이 놓여 있고 한쪽은 주방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패션쇼 의상 피팅을 하러 온 정씨와 김씨를 만났다. 그들에게 이곳은 사무실이 아니라 ‘쉼터’이자 ‘친정’ 같은 곳이다. 빨간 냉장고, 예쁜 그릇, 서가로 채워진 공간은 그들이 꿈꾸던 ‘집’이다. 이곳에서 상담도 수업도 진행된다. 정씨와 김씨가 처음 ‘그루맘’의 문을 두드린 것은 심리상담을 받기 위해서였다. 상담은 ‘직관하면 보인다’의 저자인 철학자 신기율씨가 맡고 있다. 그루맘 회원들의 정신적 지주다. 지난해 3월부터 매주 2번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신청이 밀려 매일 상담이 있다시피 한다. 정씨의 말이다.
   
   “그동안 정부가 지원하는 상담도 많이 받아봤어요. 하나같이 종이부터 내밀어요. 시험 보듯 설문지 작성하고 나면 ‘힘내세요’ ‘다 그래요’ 같은 뻔한 말 몇 마디로 끝나요. ‘문제 가정’으로 단정하는 것도 상처로 돌아오고. 이곳도 별 기대 없이 찾았어요. 그런데 종이가 아니라 차를 내밀더라고요.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제 말을 들어주었어요. 5시간 동안이나.”
   
   그들이 필요한 것은 어설픈 위로가 아니었다. 그들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래도 잘 살아냈다”고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정씨는 그날 5시간 내내 상처를 토해내듯 펑펑 울었다. 매주 상담을 받으며 그는 자신을 조금씩 받아들여가고 있다. 정씨는 “지하 6층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지상까지 올라와 있는 느낌이다. 나를 다독이고 변화를 꿈꾸기까지 37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상담은 3~4시간이 보통이다. 상담 받다 스태프들 밥상에 숟가락 얹고 같이 밥 먹다 보니 그야말로 ‘식구’가 됐다. 김씨는 “이곳에 오면 마치 집에 온 것 같다. 있는 그대로 나를 온전히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자존감 수업을 통해 임신 전 에너지 넘치던 ‘나’를 다시 찾아가고 있다.
   
   “나는 미혼엄마니까, 나는 힘드니까. 그렇게 변명하면서 나를 합리화했던 것 같아요. 내가 누구인지 잊고 살았어요. 미혼엄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요. 울고 짜고 우울한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김씨가 패션쇼 모델로 나선 이유이다. 미혼모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들은 편견의 벽은 여전히 높다고 말했다. 미혼모가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사람들의 시선은 ‘미혼모’라는 단어에만 집중된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제 편견에 맞설 자신이 생겼다.
   
   “미혼모가 신분은 아니잖아요. 상태일 뿐이지. 거기서 못 벗어난 엄마들도 있고, 세상도 여전히 꼬리표를 달아놓고 바라보지만 누구 엄마가 아니라 우리도 여자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아름다운 ‘전사’들의 당당한 워킹
   
   2016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미혼모는 2만3936명. 저출산 대안으로 미혼모가 관심을 받으면서 지원 정책 관련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미혼모를 위한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이 20만 청원을 넘어 답변을 대기 중이다.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은 양육 부담을 회피한 생부에게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법이다.
   
   정씨와 김씨는 “질적인 양육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엄마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언제까지 정부의 지원 테두리 안에 숨어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지금은 오히려 복지가 발목을 잡고 그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측면도 있습니다.”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기 위해서는 생계급여 선정 기준 이상의 소득이 있으면 안 된다. 지원을 포기하고 일을 선택한 경우 수급비뿐만 아니라 교육비, 돌봄비, 통신비 등 다양한 혜택까지 포기해야 한다. 월 평균 최저임금 157만원을 벌어도 그 혜택을 감안하면 오히려 일 안 하고 수급비 받아 취약계층으로 사는 게 나을 수 있다. 임신을 하는 순간 직장을 그만둘 수 밖에 없는 미혼모들이 복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안정적 빈곤’을 택하게 되는 이유이다. 정씨와 김씨도 마찬가지다. 지원을 유지하면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디딤돌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말이다.
   
   이야기가 끝나고 패션쇼 의상 피팅을 위해 2층 작업실로 올라갔다. 옷걸이에 화려한 옷들이 죽 걸려 있었다. 패션쇼 준비를 위해 김미경 대표도 직원들도 매일이 야근이다. 마침 강연을 끝내고 돌아온 김미경 대표가 이들에게 입힐 옷을 골랐다.
   
   “이왕이면 화려한 옷을 입고 싶다.” “우리가 언제 이런 옷을 입어 보겠어.” 두 사람의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김씨는 몸에 딱 붙는 드레스를 입고, 정씨는 프릴이 달린 블랙 투피스를 입었다. 하이힐을 신고 대형 거울 앞에서 고개를 들고 가슴을 편 채 프로 모델처럼 워킹을 했다. 펑퍼짐한 옷 속의 ‘누구 엄마’는 사라지고, 거울 속에서 아름다운 ‘전사’들이 당당하게 걷고 있었다. 많은 미혼모들을 대표해서 그들은 세상의 편견과 싸울 준비가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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