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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2503호] 201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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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친일과 반일 사이 선택적 反日주의의 탄생

김효정  기자 

▲ 지난해 8월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 수요집회에 참석한 청년들. photo 이재승 조선일보 기자
일본정부관광국(JNTO)의 발표에 따르면 2017년에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 수는 714만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18년 들어서도 1~2월에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중 가장 많은 수가 한국인이었다. 전체 관광객 501만800명 중 151만1200명, 전체 관광객의 23.4%가 한국인이었다.
   
   한국관광공사가 집계한 ‘국민여행실태조사’를 봐도 일본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2016년을 기준으로 해외 여행객의 20.5%가 일본을 찾아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다. 여행객 다섯 명 중 한 명은 일본을 찾은 셈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젊은 여행객들의 일본 방문 비율이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확연히 높아 20대 여행객의 21.1%가 일본을 찾았다. 일본을 찾은 50대가 전체 여행객의 14.4%, 60대는 18.9%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20대에게 일본은 매력적인 관광지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경기도 수원시의 한 4년제 대학 교양수업에서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업을 듣는 학생 18명에게 물어봤다. ‘보호자 없이 첫 해외여행을 간 나이와 행선지’에 대해서다. 20살에서 23살 사이 대학생 18명 중 해외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없는 학생은 5명으로 모두 대학 새내기였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13명 중 9명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성인이 돼 스스로 계획해 다녀온 첫 해외여행지가 일본이었다는 점이다. 4명은 후쿠오카, 2명은 도쿄와 오사카, 1명은 오키나와였다.
   
   21살 김희현씨는 작년 겨울 도쿄를 다녀왔다. 중학교 동창 3명과 함께 다녀온 여행이었다. 왜 도쿄로 갔을까.
   
   “다들 한 번쯤은 도쿄를 가보고 싶어 했어요. 만화에서나 보던 시부야거리도 가보고 싶어 했고, 일본 배우를 좋아하는 한 친구는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에 나오는 장소를 꼭 가야 한다면서 도쿄를 고집했어요.”
   
   일본으로 여행을 많이 가는 가장 큰 이유는 가깝고 가기 쉽기 때문이다. 비자를 받아야 하는 중국이나 행선지가 주로 타이베이로 집중되는 대만과는 달리 일본은 항공편도 다양하고 저렴한 편이다. 공급은 수요가 많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가깝고 가기 편하다고 해도 낯설게 느껴지면 쉽게 찾아가기 힘들다. 그러나 젊은 여행객들에게 일본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곳’이다.
   
   김희현씨 일행에게도 그랬다. 김씨 일행에게 도쿄는 학창 시절에 함께 즐겼던 만화, 애니메이션 작품의 무대였다. “분명 처음 가 보는데 익숙했어요. 왠지 모르게 중학교 시절이 떠오르곤 했죠.” 도쿄타워 앞에서는 한 추리만화의 내용을 떠올렸고 애니메이션 박물관을 들러서 감상을 나누기도 했다. 김씨는 올해 또 일본을 찾아갈 예정이다.
   
   일본 여행을 가는 20대들은 일본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22살 때부터 일본을 6번 다녀온 유혜성씨는 일본의 유행도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유씨는 일본의 정치 체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일본을 자주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뉴스에서 나오는 일본 뉴스를 귀기울여 듣게 되더군요. 요즘 나오는 아베 총리의 사학스캔들 문제는 일부러 뉴스를 찾아서 읽습니다.” 기자가 만났던 수원 모 대학의 13명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깊이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일본을 다녀오기 전보다 다녀온 후 일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답했다.
   
   이들을 ‘친일(親日)파’나 ‘지일(知日)파’로 불러도 될까. 사전적으로 일본에 친밀감을 느낀다는 뜻에서 ‘친일파’라고 불러도 되느냐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저었다. 유혜성씨는 질문을 듣더니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사회적 기업 ‘마리몬드’에서 판매하는 스마트폰 케이스가 씌워 있었다. 마리몬드는 수익금으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돕는 사회적 기업이다. 유씨는 “일본을 자주 찾으면 찾을수록 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고 더 관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일본 관광과 역사 문제를 분리해 생각한다는 얘기다.
   
   이건 일부 청년의 특수한 이야기가 아니다. 몇 가지 통계를 살펴보자.
   
   2015년 2월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대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 20대가 일본과 일본인에 가지는 호감도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다. ‘일본 사람에 호감을 가진다’고 응답한 20대는 56%로 ‘호감이 가지 않는다’고 답한 29%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나 60대 이상은 달랐다. 60대 이상 응답자의 25%만이 ‘호감이 간다’고 답했고 ‘호감이 가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은 67%가 넘었다. 60대 이상의 노인들에게 일제강점기는 부모 세대에서 직접 겪은 일이다. 이른바 ‘반일(反日)’ 감정이 뿌리 깊게 박혀 있을 수밖에 없다.
   
   아산정책연구원이 비슷한 시기 조사한 결과를 봐도 20대와 60대의 일본에 대한 인식 차이가 드러난다. 주변국 국민을 얼마나 친밀하게 느끼는지를 살펴 보면 20대는 일본인과 미국인을 비슷한 수준으로 친밀하게 느끼는 반면 60대의 일본인에 대한 친밀도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일본에 대한 친밀도와는 별개로 20대의 역사의식 수준은 매우 높은 편이다. 한국갤럽의 같은 조사를 보면 ‘중·고교 교육과정에서 일제강점기 시대를 좀 더 상세히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20대 중 93%에 달했다. 60대는 82%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20대에서는 더 압도적인 결과가 나온 것이다. 20대는 역사적 지식도 풍부했다. 한·일 강제병합이 이뤄진 연도, 3·1 운동이 일어난 연도, 광복이 된 해를 묻는 질문에 옳은 답을 말한 사람이 60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런 사실은 다른 조사에서도 알 수 있다. 신경애 한양여대 교수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일 간 역사 쟁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조사했다. 위안부 문제나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한 사람이 90%가 넘었다. 이들은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역사 쟁점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지도에서 독도를 표기할 때 일본이 주장하듯 ‘다케시마(竹島)’가 아니라 ‘독도’로 표기해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93.6%,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사과해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96.2%,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한 사람이 97.4%에 달했다.
   
   정리해 보자면 20대는 일본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지만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에 자주 여행을 가고 일본 문화에 익숙하지만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에는 분개한다. 얼핏 모순적으로 보이는 20대의 모습은 변화한 한·일 관계를 비춰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친일 혹은 반일로 일본에 대한 태도를 이분법적으로 정리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20대에게 일본은 다양한 시각과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국가다.
   
   
▲ 지난 2월 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일본 후쿠오카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사람들. photo 성형주 조선일보 기자


   사라진 용어 ‘왜색’
   
   우리 국민들의 일본에 대한 인식이 변화한 시점은 2000년대 이후 일본 대중문화가 수입되면서부터다. 일본 대중문화 시장이 개방되기 시작한 무렵에는 우리 대중문화가 ‘왜색(倭色)’에 물들 것이라는 우려가 사회 전반에 만연하곤 했다. 이때 쓰였던 ‘왜색’이라는 단어는 기성세대의 일본과 일본인, 일본 문화에 대한 인식을 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왜색이란 단어가 어떤 뜻으로 쓰였는지 이지원 한림대 일본학과 교수의 논문 ‘한일 문화교류와 반일논리의 변화’를 읽어보자.
   
   이 교수에 따르면 ‘왜색’이라는 단어는 ‘민족의 주체성’이라는 말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잔재를 탈피하기 위해 배제해야 할 것으로 여겨졌다. ‘왜색 문화 침투를 경계하자’는 식으로 쓰였다. 여기에는 문화적 우열을 가르는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도 깔려 있었다. ‘왜색 문화’라고 하면 으레 ‘저속한’ 같은 단어와 함께 쓰이면서 본받지 말아야 하는 문화라는 인식을 줬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에는 ‘왜색’이라는 단어 자체가 거의 쓰이지 않게 됐다. 언론에서도 ‘왜’라는 비하적 의미의 단어 대신 ‘일본’이라는 중립적 단어를 쓰기 시작했고, 일본 문화가 왜 배제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아졌다. 여전히 일본 문화의 수용은 논란거리이기는 하지만 이런 논란이 발생한다는 것 자체가 변화를 보여준다. 이 교수는 “이제 일본과의 각종 교류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왜색이라 단정하고 배제하는 일이 당연시되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했다.
   
   대신 우리는 일본 문화가 여러 문화적 요소와 함께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지금의 20대는 배제하고 없애야 할 ‘왜색’이 아니라 접하기 쉽고 이해하기 편한 ‘일본 문화’가 수입된 사회에서 자라났다.
   
   지난해 교보문고에서 집계한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순위를 살펴 보자. 20위권 책 중에 일본 서적이 10권이나 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추리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오랫동안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점이다. 일본 추리소설은 영미권 추리소설과 비교할 때 사회문제를 다루는 ‘사회파’ 추리소설로 분류된다. 일본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한국의 독자는 자연스럽게 일본의 사회적 문제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일본 소설가를 통해 일본과 한국의 독자들은 정서적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20대에게 일본 대중문화는 또래집단의 문화다. 어릴 때 친구들과 함께 둘러앉아 보던 애니메이션의 상당수는 일본에서 수입된 것들이었다. ‘포켓몬스터’ ‘디지몬 어드벤처’처럼 일본 문화의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작품도 있었지만 ‘명탐정 코난’ ‘짱구는 못말려’ 같은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일본 문화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소위 ‘왜색’ 논란을 피하기 위해 많은 일본 대중문화 작품이 등장인물 이름을 한국이름으로 바꾸는 식으로 ‘현지화’했지만 작품에 깔린 문화적 배경은 지우기가 힘들다.
   
   친구들과 첫 해외여행을 일본 규슈지방의 온천마을로 다녀온 대학생 박승희씨는 여행 중 가장 즐거웠던 일로 만화에서나 보던 일본 문화를 체험한 것을 꼽았다. “일본 만화에 보면 료칸에 가서 유카타를 입고 다다미 위에 앉아서 뜨거운 차를 호로록 마시는 장면이 자주 나오잖아요. 그런 포즈를 취하고 친구들과 서로 사진을 찍어줬어요. 일본 사람들은 밥그릇을 들고 젓가락으로 밥을 헤쳐 먹는다는 것도 알고 있어 밥 먹을 때 흉내 내고 사진을 찍곤 했어요.”
   
   20대는 대중문화를 통해 배운 일본 문화 요소를 일본 여행으로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있다. 그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일본 음식이다. 최근 세워지는 일본 음식 전문점은 한국식으로 변형된 것이 아니라 ‘정통 일본 요리’처럼 일본 현지와 같다는 점을 강조한다. 박진한 인천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는 이런 음식점에서 닭튀김을 일본어 그대로 ‘가라아게(唐揚げ)’라고 쓰고 튀김을 ‘덴푸라(天ぷら)’라고 그대로 쓴다는 점에 주목했다.
   
   “일본에서 유래된 것임을 감추고 한국식으로 변형하는 대신에 미국식, 서양식과는 또 다른 하나의 음식 장르로서 일본 음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본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이 늘어나고 일본 문화를 접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단순하게 일본의 현지 음식을 국내에서도 즐기려는 소비자의 취향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일본 문화는 이제 ‘취향(taste)’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일본 문화는 하나의 취향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역사적 배경, 정치·사회적 관계는 비교적 적게 개입된다. 경험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배와 왜색 논란에서 자유로운 20대는 한·일 간 역사 문제와 일본 문화는 분리해서 생각할 줄 안다.
   
   그렇다고 해서 20대가 역사 문제에 무관심해졌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20대의 역사의식은 다른 세대에 비교해 봐도 높은 편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신경애 한양여대 교수는 대학생들의 역사 인식에 대해 조사하면서 이들의 지식이 학교 교육만큼이나 매스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많이 쌓였다는 점을 발견했다. “한국 언론에서는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부정적이고 편향적인 보도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대학생들의 주된 지식 습득 경로가 매스미디어인 만큼 이런 시각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더욱 주목할 만한 부분은 많은 대학생들이 역사 지식을 인터넷을 통해 얻는다는 점이다. 인터넷에서 잘 정리된 일제강점기에 대한 자료들은 주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장과 함께 배포된다. 2013년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일전에서 응원 현수막으로 쓰여 잘 알려진 이 문장은 젊은층에게 매우 익숙하다. 단재 신채호가 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출처가 불분명한 문장이다. 기존에 있던 명언이 인터넷에서 가공돼 만들어진 것으로 보면 된다.
   
   이 문장은 지식인, 교양을 갖춘 시민이라면 마땅히 한·일 간 역사 쟁점과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에 대해 잘 알고 ‘바른’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20대의 시각을 대변하기도 한다. 20대에게 ‘바른’ 역사의식이란 ‘마땅히 갖춰야 하는’ 당위적인 것이다. 오히려 일본 문화와 정치·사회에 대해 잘 알고 익숙할수록 역사의식을 더 강경하게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만화나 게임 같은 서브컬처(sub-culture), 그중에서도 일본 서브컬처를 좋아하는 네티즌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 ‘루리웹(ruliweb.com)’에는 정기적으로 역사 문제에 대한 글과 일본의 정치·사회적 문제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온다. 역시 서브컬처 이슈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커뮤니티 ‘더쿠(theqoo.net)’에도 일본 방송 화면을 캡처해 자막을 달아 번역한 글이 꾸준히 게시된다. 주로 우리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들거나 비판할 만한 방송 내용을 정리한 글 아래로는 일본을 비판하는 댓글이 연이어 달린다.
   
   20대에게 한·일 간 역사적 쟁점은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져야 하는 역사적 문제는 시민이라면 마땅히 ‘바른’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당위적 문제와 맞물려 오히려 더 강조되고 있다. 일본 정부에 제대로 사과받지 못했다는 역사적 반성과 더불어 역사의식이 시민의식과 동의어처럼 쓰이는 상황이다. 반면 일본 문화는 늘어나는 한·일 교류를 통해 더욱 쉽고 대중적으로 전파되는 상황이다. 완전히 문화적 배경이 다른 서구 대중문화에 비해 받아들이기 쉬운 반면 개성적이기도 한 일본 대중문화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위의 ‘바른 역사의식’ 문제가 있다. 시민으로서 옳은 태도를 취하면서 취향을 즐길 수도 있는 방법은, 문화와 역사를 분리하는 것이다. “일본은 싫지만 일본인은 좋다”거나 “일본 문화를 좋아할수록 역사 문제를 더 잘 알아야 한다”는 ‘선택적 반일주의자’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친일과 반일 사이
   
   ‘선택적 반일주의자’에게 가장 민감한 문제 중 하나는 일본 대중문화계에서 종종 벌어지곤 하는 ‘극우 논란’이다. 일본 배우나 음악가가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가 그려진 패션을 선보이거나 드라마나 게임에서 그와 같은 역사적 인식이 드러날 때 생기는 일이다. 아무리 인기 있었던 일본 배우나 음악가라 할지라도 극우 논란에 휩싸이면 금세 팬덤을 잃는 것이 요즘의 추세다.
   
   한때 폭넓은 팬덤을 지녔던 애니메이션 ‘개구리 중사 케로로’에 일본 군국주의를 미화한 요소가 등장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금세 인기가 시들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의 국가(國歌)인 기미가요(君が代)는 일제강점기에 ‘황국신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인에게 강제로 부르게 했던 역사적 배경 때문에 20대에게는 금기시되는 노래로 알려져 있다. 한 방송사에서 일본인 패널을 소개하며 기미가요를 틀었다가 젊은 네티즌들의 집중 포화를 받고 연달아 사과문을 작성하기도 했다.
   
   일본과 일본 문화라면 본능적으로 반감을 가졌던 기성세대와는 다르다. 20대는 얼마든지 자신의 취향에 맞게 자유롭게 일본 대중문화를 즐긴다. 그러나 선택적 반일주의자로서 20대는 역사적 문제가 자신의 취향과 결부될 때는 단호하게 행동한다. 취향을 버리고 마땅히 주장해야 할 역사적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게 된다.
   
   이런 선택적 반일주의자의 태도는 일본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일 수도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역사 문제에 민감한 한국의 20대와 일본에 친밀감을 느끼는 20대를 분리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를 쓴 일본의 사회학자 다카하라 모토아키는 반일감정을 가지는 청년과 일본 문화에 동경심을 가지거나 친밀함을 느끼는 청년이 다른 집단인 것처럼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실 한 집단 내에서도 일본에 대한 친밀감과 비판적인 태도는 동시에 유지된다.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를 비판하는 20대는 바로 지난 여름 휴가 때 일본 도쿄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기도 하다.
   
   과거에 그랬듯이 친일과 반일의 이분법적 사고로는 선택적 반일주의자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20대의 상당수가 선택적 반일주의자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들을 이해하는 일은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데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이지원 한림대 일본학과 교수는 “한·일 관계에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많은 만큼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차이를 좁혀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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