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시내의 전기차 충전 시설.
상하이 시내의 전기차 충전 시설.

중국 상하이(上海)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 A씨는 최근 울며 겨자 먹기로 중국산 친환경차를 계약했다. A씨가 계약한 차는 상하이차가 생산한 로위(ROEWE) 브랜드의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로 외부 전기충전과 엔진을 병용하는 차다. 로위는 상하이차가 영국의 로버(ROVER)차를 인수한 뒤 붙인 자체 브랜드다. 얼핏 자동차 마크만 보면 영국산 같지만 엄연히 ‘메이드 인 차이나’ 자동차다. 차체는 중형차급인데 전기배터리와 함께 구동하는 엔진배기량은 1.0에 불과해 영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 A씨는 구매를 결정했다. A씨는 “차를 보고 사는 것이 아니고, 상하이 번호판을 보고 사는 것”이라고 푸념했다.

번호판 경매제를 실시하는 상하이에서 상하이의 약칭인 ‘호(沪)’ 자로 시작하는 번호판을 발급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번호판 가격이 한국의 어지간한 소형차 한 대 가격과 맞먹는다. 상하이 번호판은 은근히 신분과 부(富)를 과시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번호판 구매여력이 없는 운전자들은 상하이 인근 장쑤성(江蘇省)의 ‘소(蘇)’ 자나 저장성(浙江省)의 ‘절(浙)’ 자 번호판을 많이 붙이고 다닌다. 하지만 외지 번호판은 출퇴근 시간 상하이 시내 주요 도로에 아예 진입이 허용되지 않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반면 상하이시가 지분을 가진 상하이차가 로위 브랜드로 생산하는 순수전기차(EV)나 ‘반(半)전기차’인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를 구매하면 친환경차를 뜻하는 녹색 상하이 번호판이 무료로 제공된다. 이 녹색 번호판은 기존의 파란색 상하이 번호판과 다름없는 위력을 자랑한다. 출퇴근 시간 시내 주요 도로로 모두 진입이 가능하다. 취등록세 면제에 중도금 무이자 할부까지 금융혜택도 막강하다. 물론 여유가 있다면 폼나는 테슬라(TESLA) 전기차를 구매해서 녹색 번호판을 붙이고 다녀도 되지만, 그 정도 여윳돈이 없는 운전자들로서는 로위의 친환경차가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

한때 랜드로버, 미니 등의 브랜드를 거느렸던 영국의 명차(名車) 로버가 졸지에 중국산으로 둔갑한 것은 2005년 중국의 난징(南京)자동차가 로버를 인수하면서다. 하지만 인수한 지 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난징차는 상하이차에 인수합병됐다. 상하이차는 로버에서 이름을 살짝 바꾼 ‘로위’라는 자체 브랜드를 출범시켰다. 로위 브랜드 출범 초기 로위 브랜드는 ‘짝퉁 영국 자동차’란 비아냥의 대상이었다. 상하이 시내에서 로위 자동차를 보는 것 역시 하늘의 별 따기였다. 하지만 불과 10여년 만에 상황이 급변했다.

상하이시의 강력한 친환경차 지원책을 등에 업고 로위의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는 요즘 상하이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적어도 상하이에서는 지난해 판매량 기준으로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비야디(BYD)나 테슬라를 모두 앞질렀다. 요즘 상하이 시내 곳곳에서는 녹색 번호판을 붙인 로위의 전기차나 플러그인하이브리드를 쉽게 볼 수 있다. 중국판 우버(Uber)인 ‘디디콰이처’를 스마트폰앱으로 호출하면 달려오는 차 역시 십중팔구는 녹색 번호판을 단 로위의 친환경차다. 젊은 운전자들이 로위의 친환경차를 구입해 상하이 번호판을 무료로 확보함과 동시에 사실상 우버 영업에 나서는 것. 요즘은 로위의 친환경차를 끌고 ‘투잡’을 뛰는 기사들이 워낙 많아서 일반택시 기사들의 생계를 위협할 정도다.

상하이시 공안국 소속 경찰차 역시 로위의 전기차가 급속히 대체하고 있다. 과거 상하이 경찰차로는 상하이차가 각각 독일 폭스바겐, 미국 GM과 합작생산하는 상하이폭스바겐, 상하이GM차가 주로 공급됐다. 하지만 2015년 상하이차가 로위 친환경차 40대를 경찰차로 납품한 것을 시작으로 점차 공급을 늘리고 있다. 지금은 로위 브랜드를 붙인 경찰차도 상하이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로위 전기차로 상하이에 즐비한 고급 외제차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솔직히 걱정이 되지만, 이런 정책들이 친환경차 보급 확대에 기여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세계 전기차 절반이 중국에

이런 식으로 상하이시는 자체 브랜드 밀어주기와 함께 친환경차로의 전환을 빠른 속도로 이뤄내고 있다. 중국에서는 순수전기차(EV)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를 ‘신능원차(新能源車)’로 통칭한다. 한국의 ‘친환경차’에 비견되는 개념이다. 완강(萬鋼) 중국 과학기술부장(장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판매된 신능원차는 77만7000대, 누적보유량은 160만여대에 달한다. 전 세계 전기차 중 절반에 해당하는 대수다. 상하이시 경제정보화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2018년 2월 기준으로 상하이에는 중국 신능원차(160만대)의 10%가량에 해당하는 16만6000여대의 차량이 등록돼 있다.

상하이에는 전기차 충전에 필요한 충전기도 개인용 충전기 8만2000여기를 비롯 모두 12만9000여기가 보급돼 있다. 전기차 대수와 충전기의 비율은 1.27 대 1로, 중국 내 최고의 충전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로위 전기차로 ‘디디콰이처’(중국판 우버) 영업을 뛰는 한 기사는 “어지간한 쇼핑몰 주차장에는 전기차 충전소가 설치돼 있다”며 “충전해놓고 밥먹고 볼일 보고 오면 된다”고 했다. 미국의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가 상하이를 중국 진출 거점으로 낙점하고 상하이시와 지분비율을 놓고 밀고 당기는 협상을 벌이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테슬라 역시 이미 상하이 푸둥(浦東)의 한 쇼핑몰에 50대의 차량을 동시에 충전할 수 있는 세계 최대 테슬라 전용 충전소를 갖추고 있다. 푸둥에서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굴러다니는 테슬라 전기차도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상하이의 성과를 경쟁도시인 서울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전기차 시대’를 선언한 서울시의 전기차 누적보급대수는 4911대. 하이브리드 보급대수는 6만1886대에 그친다.(2018년 2월 기준) 서울시가 세운 2025년까지 전기차 누적보급목표가 15만대다.(당초 10만대 계획에서 상향조정함.) 이를 보면 상하이시의 현재 친환경차 보급대수(16만대)가 어느 정도로 빠른지를 새삼 실감할 수 있다. 그 덕분인지 요즘 상하이의 하늘은 몰라보게 맑아졌다. 적어도 전기차에서만큼은 상하이가 서울을 저만치 앞서 달리고 있다.

백춘미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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