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5일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앞에서 자유한국당이 비상의원총회를 열었다. ⓒphoto 주완중 조선일보 기자
지난 4월 25일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앞에서 자유한국당이 비상의원총회를 열었다. ⓒphoto 주완중 조선일보 기자

4월 25일은 한국 미디어 역사에 어떤 날로 기록될까. 언론이 포털에서 탈출한 첫날일까, 그저 언론이 한목소리를 낸 어느 특이했던 수요일일까. 조선일보·동아일보·한겨레 등 주요 언론사 사설에 네이버가 등장했다. 네이버, 다음 같은 포털사이트가 실질적으로 언론 역할을 하면서도, 규제 무풍지대에 있단 지적이었다. 가두리 양식장처럼 언론사들을 가둬놓고 뉴스를 이용한다는 비유도 등장했다. 최근 한국 언론이 같은 목소리를 낸 건 연극인 이윤택 사건 이래 처음인 것 같다. 희극이라고 해야 할까, 네이버를 성토하는 사설마저도 네이버 안에서 읽힌다.

침묵하던 네이버는 4월 25일 입을 열었다. 한 사람이 하나의 기사에 달 수 있는 댓글을 3개로 제한하고, 하루에 댓글 공감 버튼을 50번까지 누르게 하겠다는 게 요지였다. ‘개선책’이라 쓰고 ‘미봉책’으로 읽을 수 있다. 댓글을 몇 개 달 수 있느냐는 본질과 별 관련이 없다. 드루킹과 동료들은 네이버 아이디 2000개를 이용했다. 앞으론 아이디 개수만 조금 더 늘리면 될 뿐이다.

드루킹 사태로 포털의 역기능이 부각됐지만, 사실 이 문제는 뿌리가 깊다. 당장 작년 대선 시기 발생한 일을 보자.

안철수가 사라졌다

대선 한 달 전인 4월 6일, 네이버 사이트에선 특이한 사건이 일어났다. 모두 세 가지. 우연일까,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세 가지 사건이 하루에 다 일어났다. 첫 번째 사건은 오전 7시10분경에 벌어졌다. 이날 중앙일보는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톱기사로 보도했다. 이런 제목이었다. ‘다자대결 땐 문 38.4 안 34.9 … 양자대결 땐 안 50.7 문 42.7’. 네이버 뉴스 화면에선 제목이 좀 바뀌었다. 뒷부분에서 한 글자가 빠졌다. 안철수의 ‘안’이다. ‘양자대결 땐 50.7 문 42.7’이란 제목으로 화면에 노출됐다. 네이버 측은 이렇게 해명했다. “담당 큐레이터가 실장급인 뉴스운영 리더로부터 지시를 받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실수다.”

두 번째 사건은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실검) 순위에서 일어났다. 오후 1시29분30초부터 오후 6시8분까지 특정 검색어가 실검 1위에 머물러 있었다. ‘안철수 조폭’. 4시간40여분 동안이었다. 한국 인터넷 이용자 10명 중 7명이 이용한다는 네이버 첫 화면에 안철수 조폭이란 문구가 5시간 가까이 떠 있었단 얘기다. 같은 시간 특이한 현상이 또 벌어졌다. 세 번째 사건이다. 네이버 ‘연관검색어’에서였다. 연관검색어 기능은 검색창에 특정 단어를 입력하면 연관성 깊은 단어를 골라 자동으로 제시해주는 기능이다. ‘노무현’을 치면 ‘봉하마을’이 뜨는 식이다. 4월 6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의 아들 문준용씨의 취업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었다. ‘문재인’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문준용’ ‘취업 특혜’ 등이 자동완성되는 시점이었다. 그런데 문재인을 입력하면 아무 연관검색어도 뜨지 않았다. 오후 5시21분부터 5시50분까지 30여분간 이런 현상이 이어졌다. 네이버의 해명이다. “19대 대선 후보등록 마감 후 17일부터 공식선거기간이 시작됐다. 이날부터 후보자 인물명 검색에 대해 자동완성 기능을 제공하지 않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마침 4월 6일 개발을 완료해, 문재인 검색어로 시범 구동 중이었다. 이를 테스트가 아닌 실제 서비스와 연동된 툴에서 진행하면서 문재인 검색어의 자동완성이 노출되지 않았다.” 이 또한 우연이었단 설명이다. 당시 네이버 대표는 한성숙 현 대표였다. 윤영찬 전 부사장은 이 일이 일어나기 전인 3월 15일 네이버를 그만두고 다음날인 16일 문재인 캠프에 합류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초대 국민소통수석으로 임명됐다.

하루에 일어난 이 세 가지 사건은 네이버가 공론장에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준다. 네이버는 실질적으로 언론이다. 그것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자를 거느린 매체다. 한국의 주요 신문·방송을 통신원으로 뒀다. 제휴한 수백 개 언론사의 기사를 실시간으로 골라 배치한다. 청탁 문자를 받고 기사를 내린, 네이버식으로 하자면 ‘재배치’한 사례도 있다. 네이버 이사가 한국 프로축구연맹의 부탁을 받아, 프로축구연맹에 불리한 기사를 잘 안 보이는 곳에 배치한 일이다. 기사를 작성한 언론사에 연락하는 게 아니라 직접 ‘최종 보도매체’ 네이버에 연락했단 얘기다. 지난해 10월 MBC스포츠플러스가 밝혀냈다. 보도가 나오자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즉시 공식사과문을 냈다. 뉴스 편집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처음으로 인정했다. ‘스포츠 담당자가 외부의 기사 재배열 요청을 일부 받아들인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는 내용이었다.

네이버 모바일 페이지의 뉴스 화면. 네이버가 배치한 기사를 봐야 한다.
네이버 모바일 페이지의 뉴스 화면. 네이버가 배치한 기사를 봐야 한다.

실검 순위 왜 포기 안 하나

공정성 시비는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그때마다 네이버는 여러 해명을 내놓으면서도 ‘첫 화면 뉴스’를 끝까지 붙들고 있다. 첫 화면 뉴스 편집권을 놓지 않는 것이다. 2014년엔 ‘뉴스 스탠드’를 도입했다. 사용자들이 원하는 언론사를 선택해 첫 화면 뉴스로 볼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이 기능은 PC 버전에만 적용된다. 스마트폰 앱에선 여전히 네이버가 편집한 뉴스 화면을 첫 화면으로 봐야 한다. 네이버는 뉴스 스탠드를 도입하며 마치 첫 화면 뉴스 편집권을 포기한 듯이 설명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단 얘기다.

‘실검 순위’도 네이버가 포기하지 않는 것 중 하나다. 실검 순위는 전 세계 포털 중 한국 포털에만 있는 메뉴다. 구글은 ‘구글트렌드’라는 별도의 페이지에서 검색어 순위를 알려준다. 야후는 ‘트렌딩 나우’가 있지만, 네이버 실검과는 좀 다르다. 야후 트렌딩 나우 순위는 주로 사람이나 기업의 이름이 차지한다. 연예인이 등장하는 경우가 잦다. 네이버는 특이하게도 특정 이슈를 알려주는 검색어가 자주 등장한다. ‘김흥국 아내 폭행’ ‘홍준표 장인’ ‘고마워요 문재인’ 같은 식이다. 일종의 ‘검색 포르노’라고 할까, 별별 기상천외한 단어들이 등장한다.

네이버 실검 순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네이버 측이 밝힌 기본 알고리즘은 이렇다. A라는 검색어가 지난 7일간 100회 검색되었다고 하자. 최근 30초간 A의 검색 횟수가 갑자기 치솟으면 실검 순위에 오른다. 각 검색어의 30초간 증가폭을 비교해 그 비율 순으로 순위를 정하는 식이다. ‘구글’ ‘다음’ ‘국민은행’ 등의 단어는 실검 순위에 오를 수 없다. 네이버 측에서 임의로 뺀다.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검색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당시 네이버 실검 순위는 그 자체로 유세장이었다. ‘문준용 취업 특혜’가 올라왔다가 ‘안철수 갑질’이 밀고 올라오는 식이었다. 당시 실검의 부작용을 묻는 기자에게 네이버의 최서희 부장은 이런 설명을 했다.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서비스를 접으라는 외부의 요구도 많았다. 정보제공업자의 입장에서 보면, 사용자가 넣는 검색어는 일종의 ‘사인’이다. 기존의 미디어들은 굵직한 이슈들을 중심으로 보여주지 않는가. 롱테일(Long tail)에 있는 작은 트렌드의 시작은 검색어를 통해 감지되기도 한다. 순기능이다.”

실검 순위를 두고 끊임없이 조작 가능성이 불거져왔다. ‘실검 조작해준다’며 구체적인 가격을 내세우는 마케팅업체가 언론에 소개된 적도 있다. 이 업체 대표자는 “네이버의 경우 조작업체에 의뢰해 실시간 검색어를 조작하는 데 시간당 700만원에서 800만원이 든다. 성공확률은 70%로 시간대 트래픽 양과 키워드의 성공 난이도에 따라 단가가 달라진다. 조작이 쉬운 검색어는 시간당 500만원에 계약하기도 한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드루킹의 경우처럼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단 얘기다.

한국은 한 곳으로 수렴된다

문제는 네이버 실검이 ‘간추린 실시간 톱뉴스’ 기능을 하는데도 어느 공공기구의 심의도 받지 않고 있단 사실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콘텐츠를 평가하지 실검 순위는 심의하지 않는다. 어떤 검색어를 뺐는지 사후에 분석하는 기구가 있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의 검색어 검증위원회다. KISO는 네이버, 카카오 등이 자율 규제하겠다며 모여 만든 단체다.

이 상황에선 별 의미 없는 지적 같지만, 네이버 시대를 사는 뉴스 이용자들은 스스로 주의해야 하지 않을까. 실검이나 베스트 댓글에서 공작하는 세력이 있다 해도, 최종 이용자가 주의하면 부작용은 줄어든다. 두 외국인의 지적이 떠오른다. 그레고리 핸더슨과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다. 외부인의 지적엔 어쨌든 일정한 함량의 새겨들을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레고리 핸더슨은 1960년대 주한 미대사관에서 근무한 후 미국으로 돌아가 책을 냈다.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다. 요지는 이렇다. ‘한국인은 단일민족이라는 동질성 때문에 오히려 원자처럼 분열돼 있다. 원자화된 한국인은 모두 정치권력을 향해 소용돌이처럼 몰려든다. 그렇기 때문에 중앙집중화가 이뤄진다. 이런 환경 때문에 한국 정치는 당파성과 개인 중심의 기회주의가 판친다. 합리적 타협이나 응집을 배양할 수 있는 토양이 아니다. 이런 소용돌이 정치패턴에 대한 처방은 다원주의와 분권화밖에 없다.’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가 지난해 출간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한국은 사회 전체가 주자학이고 한국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주자학인 곳이다. 오직 하나의 완전 무결한 도덕, 이(理)로 모든 것이 수렴된다는 원칙이 여전히 작동하는 사회다. 스포츠 선수나 가수도 경기 성적이나 노래 실력만으로는 평가받지 못하고, 자신이 얼마나 도덕적인가를 국민에게 납득시킨 후에야 비로소 스타가 될 수 있다.’

두 외국인의 의견을 합해보면, 한국 사회는 도덕주의를 중심에 두고 전 국민이 정치판에 소용돌이처럼 모여들어 누가 도덕적으로 완벽한지 평가하는 곳이다. 이번 기회에, 네이버라는 거대 언론이 어떻게 하면 공론장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지 제도를 개선하는 동시에, 이용자의 의식도 조금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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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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