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2507호] 201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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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반월·시화공단에는 ‘임대’ 현수막만…

김태형  기자  

▲ 지난 5월 8일 경기도 시흥시의 시화MTV에서는 방치된 공장부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5월 8일 지하철 4호선 안산역 2번 출구. 도로를 사이에 두고 1번 출구와 2번 출구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1번 출구 부근에는 버스환승센터와 번화가가 있었고 카페와 식당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반면 2번 출구에는 작업복을 입은 외국인 노동자 몇 명만이 보였다. 2번 출구와 연결된 한 오피스텔 건물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2번 출구로 나오자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큰 규모의 반월공단이 펼쳐졌다. 반월공단은 7000여개에 달하는 중소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1537만㎡(465만평) 규모의 국가산업단지다. 그 규모에 걸맞지 않게 반월공단으로 가는 길은 한산했다. 오히려 사람보다 광고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눈에 더 잘 띄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 사이에 걸린 현수막이 펄럭거렸다. 한 현수막에는 빨간 글씨로 ‘공장 급매·서안산IC 5분 거리·최적 위치’라고 적혀 있었다. 이런 매물광고가 적힌 현수막은 반월공단 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안산 공장 매물’을 검색했다. 그러자 한 포털사이트에 등록된 매물만 200여개가 검색됐다.
   
   최근 지어진 한 아파트형 공장건물은 공실률이 30~40%에 달했다. 1층의 상가 자리는 절반도 입점하지 못한 상태였다. 건물 입구와 외벽은 ‘공장 매매’가 적혀 있는 여러 장의 현수막으로 도배돼 있었다. 공단 골목의 전봇대마다 ‘대출 90%까지 보장·아파트형 공장 임대’가 적힌 소형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려 있었다. 공단 한복판에 있는 한 대형 공장의 문은 잠겨 있었는데, 공장의 건물에는 ‘현 위치 전속임대’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철판을 두드리고 절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쾅거리는 작업 소리가 들려오는 한 공장을 들여다보니 창고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었다. 한 직원은 창고에 남아 있는 일감들을 지게차로 옮기고 있었다.
   
   반월공단 골목에서는 일감이 없어 한산한 공장들의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한 주인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점심시간에 공단직원들로 바글바글했는데, 요즘은 ‘외부인 환영’이라고 식당 문에 써 붙여도 장사가 잘 안 돼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생산설비 10대 중 3대 중단 상태
   
   국내 최대 중소기업 집적지인 반월·시화·시화MTV(멀티테크노밸리) 국가산업단지 일대는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전국 산업단지 통계포털인 이클러스터넷에 따르면 반월공단의 가동률은 2016년 2월 67.4%에서 2018년 2월 62.0%로 떨어졌다.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3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제조업 침체는 반월공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통계청 발표에서 우리나라의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전달보다 1.8%포인트 감소한 70.3%로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 수치는 10대 중 3대의 제조업 생산설비가 놀고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신음하던 2009년 3월(69.9%)과 비교해봤을 때도 0.4%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창고에 쌓여 있는 재고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3월 제조업 재고 및 출하 비율은 114.2%를 기록하며 전월 대비 2.9%포인트 상승했다.
   
   제조업 위축은 설비투자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설비투자는 전월대비 7.8% 감소하며 5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 4월에는 17개월 연속 증가하던 수출 증가세마저 꺾였다. 4월 수출액은 500억6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 감소했다. 전년 대비 수출이 줄어든 것은 2016년 10월(-3.2%) 이후 처음이다. 무역흑자도 66억달러로 지난해 4월(129억달러) 대비 반 토막 난 상황이다.
   
   현재 반월공단의 상황에 대해 안산상공회의소 이성일 팀장은 “공단 통계를 내보진 않았지만 제조업 불황으로 인해 최근 2년 이내 공장 문을 닫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공장주들의 애로사항도 많이 접수되는 편이지만 특히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상공회의소로 전화를 많이 걸어온다. 매물로 나오는 공장이 많으니, 이곳에 들어올 공장주들을 소개해 달라는 것이다. 요즘에는 아예 부동산 업자들이 컨설팅 업체를 끼고 전문적으로 공장주들을 연결해 달라는 식이다.”
   
   공단 일대의 부동산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반월·시화공단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한 공인중개소를 찾았다. 공단에서만 15년간 공인중개소를 운영해왔다는 최모 사장은 “호황기였던 5~6년 전만 해도 경기도에서 지가상승률이 용인과 1~2위를 다툴 정도로 공단지역인 시흥도 떠오르는 곳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안산과 시흥공단에 수요에 비해 공장 매물이 늘어나다 보니 임대료는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공단 일대를 돌아다녀보면 확실히 예전보다는 공장 일감이 줄어든 게 눈에 보일 정도”라고 지적했다.
   
   최씨에 따르면 반월과 시화공단은 인근 지역인 경기도 부천과 안양 지역에 비해 공장의 월세나 매매가격이 30%가량 저렴한 편이다. 최근 공단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아파트형 공장의 경우 공급면적 330㎡(100평·전용률 50%)를 기준으로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150만원 내외라고 한다. 최씨는 “안산과 시흥 공단은 가격 경쟁력과 인프라 등 장점이 많아 어려워도 참고 버티는 공장주들이 많지만, 불경기가 계속 이어지면 이곳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시흥시의 시화MTV(멀티테크노밸리)를 가보면 비어 있는 공장 부지를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최씨가 말한 시화MTV로 향했다. 안산반월공단과 시화MTV는 하나의 공단처럼 이어져 있다. 시화MTV는 바다를 매립해 조성된 공단으로 4호선 정왕역에서 5㎞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시화호를 중심으로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꿈꾸며 탄생한 곳이다.
   
   시화MTV에 들어서자 확 트인 시화호가 눈에 들어왔다. 깨끗한 하늘 아래 새 건물들이 즐비하게 펼쳐진 풍경을 보다보니 공단보다는 신도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공단 안쪽 골목길에 들어서자 황량한 풍경이 펼쳐졌다. 잡초만 무성한 대규모 공장부지가 보였다. 한눈에 봐도 몇 년 동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방치된 모습이었다. 공단 골목부터 첫 삽조차 뜨지 못한 부지가 수두룩했다.
   
   비어 있는 공단 부지 역시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국가산업단지 가운데 부지를 분양받았지만 공터로 남아 있는 곳이 약 67만㎡에 달한다. 특히 충남 당진 석문국가산업단지는 총 23개 업체가 착공을 미루고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13곳의 중소기업은 분양받은 공장 부지를 내놓은 상황이다.
   
   시화MTV에서 만난 중소기업 A사의 한 대표는 “투자한 비용이 많아서 공장 문을 못 닫고 있을 뿐이지, 적자에 허덕이는 공장이 한두 곳이 아니다”라면서 “안산과 시흥을 벗어나 인근의 인천 남동공단도 거의 폭격을 맞은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 5월 8일 경기도 시흥시의 한 아파트형 공장건물 외벽에 ‘임대 현수막’이 걸려 있는 모습.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수출할수록 적자 나는 구조
   
   다음 날 오전, 인천 남동구 남동공단을 찾아가 봤다. “요즘 제조업이 힘들다고 하면 사람들은 한국GM 공장 가동중단만 걱정하는데, 실은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출시장은 갈수록 위축되지, 최저임금 상승에 노동시간 단축까지 경영자 입장에서는 삼중고가 따로 없다.”
   
   남동공업단지에 위치한 중소기업 I사 이사직을 맡고 있는 정모씨는 기자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가 재직하는 I사는 각종 화학제품을 생산해 연매출 400억원대를 올리는 강소기업이다. 이 기업은 최근 5년간 수백억원대 매출을 기록하며 다른 기업들의 부러움을 받아왔지만 최근 몇 년간 순이익이 급감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3년간 I사의 순이익은 매년 전체 매출액의 4%대에 불과하다. 연매출 400억원이면 순이익이 약 16억원인 셈이다. 연매출과 순이익의 간극이 매우 컸다. 이에 대한 정 이사의 설명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매출액은 수백억원에 달하지만 사실 실속은 전혀 없다. 경기가 어렵다보니 생산 원가를 낮춰 박리다매로 수출을 하고 있다. 팔면 팔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지만 수출 통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는 셈이다. 제 살 깎아먹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기업의 미래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 이사의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오는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노동시간이 현행 68시간에서 주 52시간으로 단축된다. 정부는 이 법을 대기업과 공공기관부터 우선 적용하고 점차 중소기업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제조업 같은 경우에는 근로시간이 단축된다면 납품 기한을 제때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날 수 있다. 정 이사는 “추가 고용을 하면 쉽게 해결될 문제지만, 일이 상대적으로 힘든 제조업은 젊은 인력을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해 인건비 부담도 중소기업에는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근로시간이 단축될 경우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연간 8조6000억원이 넘는 인건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부족인력도 26만6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중소기업연구원도 ‘근로시간 단축 현황 및 과제’ 보고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인 생산성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하면 중소기업이나 근로자 모두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만난 이영재 J사 대표는 “근로시간 단축제도는 중소기업의 상황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정책”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중국은 대규모 인력과 낮은 인건비를 자랑하고, 뛰어난 제조업 기술력까지 갖춘 상태다. 지금도 제조업 시장에서 중국과 비교할 때 점점 열세인 상황에서 최근 정부가 내놓은 최저임금 상승,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은 중소기업에 정말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이 없다.”
   
   
   근로시간 단축이 타격인 이유
   
   그가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근거가 있다. 지난해 중소기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소제조업의 대기업 하도급 비중은 41.9%이고, 이들 기업의 위탁기업 의존도는 81.4%에 이른다. 특히 위탁기업과의 거래 시 애로사항 중 ‘납기 단축 촉박’이 차지하는 비중은 34.1%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시간마저 단축하면 중소제조업체는 더욱 힘든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을 보완할 수 있는 제도를 널리 시행하고 있다. 미국, 일본, 프랑스의 경우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최대 단위기간을 1년으로 설정하고 있다.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정한다고 하더라도 몇십 주는 52시간 미만, 몇십 주는 52시간 초과 식으로 1년 단위에서만 맞추면 된다는 식이다.
   
   실제로 일본은 노동협약 시 ‘특별조항’을 넣어 연중 6개월 동안 별도의 제한 없이 근로시간 한도 초과를 허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50인 미만 중소기업의 경우 노사합의로 근로시간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탄력근로제 최대 단위기간은 3개월로 미국과 일본의 1년에 비해 짧은 편이다.
   
   우리의 경우 가령 2주 단위 탄력근로제가 적용되면 첫 주에 58시간을 일할 경우 다음 주에는 46시간 이하로 근무해야 평균 52시간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제조업 생산 현장에서는 최소 6개월 이상 집중적으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아 탄력근로제 적용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영재 J사 대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상생도 중요한 부분”이라면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이 수년간 개발한 제품들을 표절해서 사용하는 악폐는 사라져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했다. 그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아이디어 제품을 개발하고 시제품으로 만들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4~5년. 이렇게 탄생한 아이디어 제품을 대량 생산하고 전국에 판매하기 위해서는 대형 유통망과 마케팅팀을 소유한 대기업과의 계약은 필수조건이다. 대기업은 통상 계약을 할 때 중소기업에 제품의 도안과 발명특허 내용까지 모두 요구한다. 사실상 아이디어 제품의 개발 내용을 모두 대기업에 건네주는 셈이다. 설사 대기업이 표절한다고 하더라도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란 것이다. 이영재 대표는 “제품을 개발하는 데 5년이 걸리지만, 아무리 복잡한 제품도 카피를 하는 데는 5개월이 걸리지 않는다”면서 “그래서 아무리 좋은 제품을 개발한 중소기업이라도 대박은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기자가 만난 반월·시화·남동공단 사람들은 제조업 위기가 찾아왔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다만 중소기업들이 애로사항을 겪는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차이가 있었다.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에 나선 한국산업단지공단 경기지역본부 측의 설명이다. “최근 최저임금 상승, 노동시간 단축 등 경영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중소기업인이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산업공단에서 중소기업 대표들과의 소통간담회, 다양한 기업지원프로그램 등을 통해 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현장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중소기업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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