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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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 펀드의 목적은 철저히 현금이 많은 기업을 공격해 수익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기업 성장과 주주가치 제고, 구조 개선 목소리는 이를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싱가포르국립대 신장섭 교수(경제학)는 최근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해 반대한 ‘엘리엇’ 등 ‘행동주의 펀드’의 ‘행동’은 “중·장기적 성장이 아닌 철저히 ‘지금의 돈’에 기반한 것”이라며 “자본의 성격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기자 출신인 신 교수는 기업과 금융, 정책을 융합한 연구로 잘 알려진 경제학자다. 최근에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대해 강한 반대 입장을 내놓으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학자이기도 하다.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란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가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처럼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주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위탁받은 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에게 이를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하는 행동지침을 뜻하는데, 최근 문재인 정부는 이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5월 21일 서울역 근처 한 카페에서 신 교수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엘리엇’으로 대표되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최근 행태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논란, 그리고 이 두 주제와 관련해 실패로 결론 난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논란 등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일단 신 교수는 실패로 끝난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논란은 엘리엇으로 대표되는 행동주의 펀드와 정부·국민연금의 역할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사례였다고 했다. 현대차그룹에 지배구조 개편은 ‘3차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과정’인데, 행동주의 펀드와 정부는 자신들의 이해가 걸린 ‘1차 방정식’으로만 이 문제를 풀려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결국 행동주의 펀드가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기업 구조 개편안을 정면으로 반대한 이유가 됐고 정부 역시 명확한 입장을 굳히지 못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그의 견해다.

“3차 방정식 대 1차 방정식의 대결”

신 교수는 지난 5월 21일 주주총회 무산이 발표되며 실패로 끝난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시작은 현대차그룹이 정부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뜻에서 출발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차그룹은 정부가 정해준 시간 안에 풀어야 할 과제가 3개나 생겼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을 향해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정부가 먼저 ‘순환출자 해소’를 요구합니다. 이것이 1차 방정식인 지배구조 개편 작업으로 이어졌어요. 여기에 정부로부터 일자리 확대 요구가 함께 제시됩니다. 2차 방정식이 주어진 것이죠. 현대차그룹에는 이 1·2차 방정식을 푸는 과정에서 주주 가치가 훼손되거나 주주 손실이 발생하면 안 된다는 문제까지 발생합니다. 골치 아픈 3차 방정식이라는 숙제가 된 겁니다.”

3차 방정식 형태로 주어진 지배구조 개편 이슈를 해결하겠다면서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선택은 현대모비스의 사업 중 일부를 분할하고 이를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것이었다. 현대차그룹 측은 이를 통해 복잡한 순환출자고리를 ‘정몽구·정의선 일가→현대모비스→완성차 계열사(현대차·기아차)→현대글로비스와 현대제철 등 기타 계열사’의 형태로 바꾸겠다는 의도였다.

신 교수는 이런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해 “분할과 합병 과정에서 현대차그룹이 제시했던 합병 비율에 대해 행동주의 펀드들이 문제를 제기했던 것은 타당성이 적어 보였다”고 주장하며 “돈이라는 목표와 원하는 수익률이 분명한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이를 얻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결국 합병 비율과 주주가치 문제를 앞세웠던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개편안대로 현대모비스를 부품과 모듈 부문으로 분할하고, 이 중 사업영역이 겹치는 모듈 부문을 현대글로비스에 합병하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기존 주주가치가 유지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자신의 생각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현대모비스 분할 후 글로비스와 합병할 부문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면 글로비스의 가치가 높아지는 반면 남게 될 모비스의 가치는 낮게 평가될 것이고, 글로비스에 합병될 부문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면 반대 경우가 될 것”이라며 “두 경우 모두 기존 주주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을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기존 주주에게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두 기업의 주식을 합병 비율만큼 나눠주는 구조였기 때문에 주주가치 유지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신 교수의 얘기다.

하지만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의 이런 지배구조 개편안을 반대했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표시하지 않았을 뿐 반대 목적이 분명했다”며 “자신들이 정해놓은 수익을 얻기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엘리엇은 현재 분할·합병 대상인 현대모비스와 글로비스에 투자를 집중한 게 아니라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3개 기업에 나누어 투자한 상태”라며 “3개 기업이 합쳐져 현대차그룹 지주회사가 될 것이라는 데 투자한 셈”이라고 했다. 엘리엇의 당초 예상과는 지배구조 개편안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 3개 계열사 투자에서 현대차 주식에 가장 큰 투자를 했어요. 현대차를 중심으로 모비스와 기아차를 합치는 지주사 체제가 수익성이 가장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엘리엇 입장에서는 현대모비스 주가만이 아니라 현대차와 기아차의 주가도 동시에 올라줘야 결국 자신들이 생각한 만큼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얘기지요. 현대모비스 분할과 글로비스로의 합병에 반대했던 건 애초 원했던 만큼의 수익을 올리기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익 올리기 힘들자 개편안 반대”

신 교수의 주장은 엘리엇의 목적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선도, 새로운 방향 제시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오직 자신들이 산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주식의 주가를 단기간에 끌어올려 최대한의 수익을 가져가는 것이 목적이었다”며 “자사주 소각이나 고배당 요구 역시 이 목적에 충실한 엘리엇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사주 소각과 배당은 기업이 보유한 자본 능력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행동주의 펀드들은 기업이 보유한 자본 능력을 넘어, 자신들이 원하는 수익을 채워줄 것만을 요구한다”고 했다. 주주가치를 내세우지만 결국 ‘투자할 때 생각했던 것만큼 벌어가겠다’는 행동주의 펀드의 현실적인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의문이 하나 생긴다. 엘리엇으로 대표되는 행동주의 펀드의 속성이 신 교수의 말처럼 ‘원하는 수익을 가져가는 투자’라고 하자. 그런데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는 엘리엇만 반대하거나 문제를 제기했던 게 아니다. 세계 최대 의결권행사자문사인 ISS와 글라스루이스 모두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외국계 의결권행사자문사만이 아니다. 한국의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역시 ‘반대’ 입장을 제시했다.

참고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자문하는 곳이다. 이들의 의견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신 교수는 이에 대해 “의결권행사자문사들 역시 복잡한 3차 방정식(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단순하게 1차 방정식(금융 논리)으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로 보인다”며 “행동주의 펀드들과 의결권행사자문사들 간 유착 역시 이런 결론이 만들어지는 데 한몫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지배구조 개편 주주총회를 철회한 현대차그룹. ⓒphoto 뉴시스
최근 지배구조 개편 주주총회를 철회한 현대차그룹. ⓒphoto 뉴시스

“기관투자자와 ISS의 유착 구조”

그는 의결권행사자문사들의 보고서들을 살펴봤는데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경우 “‘합병 비율에 대해 문제 삼을 여지가 없다’는 식으로 말해놓고 결론에서 ‘주주가치 훼손이 예상된다’며 반대했다”며 이는 “모순”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이런 결론을 내놓은 것을 굳이 해석하자면 먼저 ‘반대’ 의견을 제시한 ISS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단순히 재벌의 편을 들었다는 말은 듣기 싫었을 것이다. 특히 이번에 ‘반대’ 의견을 내놓으면 앞으로 자신들도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본다.”

신 교수는 이번에 ISS의 ‘반대’ 의견이 주총 무산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ISS가 내놓은 ‘반대’ 의견 역시 생각한 만큼의 구체성을 찾기 힘들었다고 주장했다. “ISS가 내놓은 결과물에는 ‘대주주에게 유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언급돼 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유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지를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 ISS는 ‘금융자본 VS 산업자본의 이해가 엇갈리는 구조’에서 금융자본에 유리한 해석을 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산업자본 분석에 전문성이 높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ISS의 보고서는 전 세계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 기준을 제시하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자신들의 고객인 기관투자자들과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게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ISS의 경우 의결권행사자문과 함께 컨설팅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들에게 컨설팅을 의뢰하는 것이 바로 기관투자자”라고 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이는 일종의 ‘유착’으로도 볼 수 있는 구조다.

신 교수는 “ISS든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든 3차 방정식으로 풀어야 할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문제를 ‘기관투자자의 수익성’, 즉 ‘돈’이라는 1차 방정식으로 접근한 성격이 강하다”며 “여기에 의결권행사자문사와 기관투자자, 특히 행동주의 기관투자자들과의 태생적 친밀성이 결국 ‘반대’ 의견을 내놓게 했던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행동주의 펀드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스튜어드십 코드와 국민연금이라는 주제로 이어졌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논의에서는 찬성·반대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현대모비스와 글로비스 주주총회가 무산으로 결론이 났지만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논의 내내 가장 주목받았던 게 국민연금이다. 현대모비스 지분율이 9.8%에 이르는 국민연금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시각이 컸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을 시작으로, 국민연금이 향후 주주로서 투자한 기업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가능성도 언급돼왔다.

즉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선을 기점으로 국민연금이 자신들이 보유한 돈의 실제 주인인 국민을 대신해 투자 기업을 향해 의견 제시와 목소리를 키울 것이고, 이것이 기업 운영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이어갈 가능성 있다는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처음부터 ‘왜곡’”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강한 반대 입장을 펴온 신 교수에게 “한국 시장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반대하는 것인지, 스튜어드십 코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인지”를 물었다. 신 교수는 “스튜어드십 코드 자체를 반대한다”며 “처음부터 ‘왜곡’이라는 문제를 안고 시작된 것이 스튜어드십 코드”라고 주장했다. 그는 “2010년 영국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처음 도입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1980년대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명칭을 쓰지 않았을 뿐) 캘리포니아주 공무원 퇴직연금(캘퍼스) 등 미국의 기관에서 이미 유사하게 운영해온 정책”이라며 “문제는 영국은 물론 미국 역시 이 제도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주주와 기업가치가 올라갔다는 연구 결과가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스튜어드십 코드로 인해 기업들이 단기적으로 주주가치를 올렸다는 연구 결과는 꽤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주주가치가 제고됐다는 실증 사례가 없다는 점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3년의 연구에서 행동주의 펀드들이 말하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활용한 중·장기적 주주가치 제고 사례’를 한 건밖에 찾아내지 못했다”며 “그나마도 5년간의 성과 연구일 뿐 10년, 혹은 20~30년이라는 ‘중·장기’로 표현할 수 있는 의미를 가진 기간의 성과는 아니었다”고 했다.

신 교수는 금융자본이 ‘산업’이라는 영역에 특별히 관심을 갖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행동주의 펀드가 각종 산업에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투자하는 게 아니라, 단지 갖고 있는 자본(돈)을 투입했을 때 지금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주주가치나 기업의 성장이 아니라 자신에게 돈을 벌어줄 곳에 투자해 기대한 만큼의 수익을 확보하면 다른 투자처를 찾아 떠나는 것이 행동주의 펀드라는 것이다. 이 같은 투자구조는 중·장기적 주주가치 제고가 아닌 단기적 성과에 필연적으로 치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는 중·장기적 주주가치 제고라는 효과는 사라져버렸고 대신 행동주의 펀드 같은 자본이 단기적 수익 확보를 위해 산업계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왜곡돼버렸다는 것이 신 교수 주장의 핵심이다.

그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2010년 영국에서 도입될 당시부터 이미 ‘왜곡’ 문제를 안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제도를 한국 국민연금에 도입하자는 논의는 왜곡에다 ‘변질’ 문제까지 더해졌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논의를 보면 “정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을 통로로, 결국 정부가 기업을 규제하는 수단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활용할 가능성이 짙다”고 했다. 신 교수는 “‘자율규제’여야 할 스튜어드십 코드가 이미 대통령 선거 당시 공약에 포함돼 있었고,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 중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논의가 경제적 필요가 아닌 정치적 문제로 변질돼 가는 중”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우리는 국민연금의 성과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며 “수년간 세계 주요 연기금의 투자 성과에서 국민연금은 최상위권 수익률을 보여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와 무관하게 수익을 내왔던 만큼 중·장기적 성과 확보와 안정적 국민 노후자금 운영 방향을 더 고민해야 할 때라는 게 자신의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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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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