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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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행정안전부 산하 지방자치분권실에는 ‘주민자치형공공서비스추진단’이 신설됐다. 19명으로 조직된 이 추진단은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가 지속가능성을 가질 수 있도록 시민역량을 강화하는 일을 돕는다. 전국 70~80개의 주민자치회가 이들이 주목하는 핵심 기구. 주민자치회는 마을의제를 스스로 선정하고, 해결방법을 모색하고, 실천에 나선다. 주차관리와 폐지수거, 마을축제 등도 주민들이 주인이 돼 이끈다. 추진단의 수장인 정보연 단장은 “공동체 활성화는 선택이 아니라 시대의 조류”라면서 두 가지 차원에서 공동체 활성화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하나는 정보화사회로 인한 개개인의 힘의 변화다.

“현대는 공동체가 축소되는 과정이다. 개인의 힘이 세졌기 때문이다. 개인의 힘이 약했던 과거에는 공동체에 속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웠으나 개개인이 거의 모든 정보와 지식에 접근 가능한 지금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발생했다. 개인이 외로워지면서 행복도가 낮아졌다.”

또 하나, 복잡계 사회가 공동체 활성화를 필수불가결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사회문제가 비교적 단순했던 과거에는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줄 수 있었지만 예측 불가능한 문제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는 국가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것. 그는 공공의료 분야를 예로 들었다.

“과거 공공의료는 골절, 전염병 예방 등이 주였다. 전염병은 예방주사를 맞으면 됐고, 골절은 깁스를 하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암, 당뇨, 우울증 등 해결이 어려운 질병이 많다. 지역사회와 협업하지 않으면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많다.”

국가는 복지 확대를 강조하지만 ‘복지 강화’와 ‘공동체 활성화’는 일면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자가 “국가가 모든 걸 다 해결해주겠다”는 입장이라면, 후자는 국가는 슬며시 뒤에 서고 시민이 주인이 된 공동체를 전면에 내세운 형국이다. 이 둘의 평행선 같은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묻자, 정 단장은 “가장 논쟁적인 주제”라며 말을 이었다.

“그동안 진보 측에서는 덴마크와 스웨덴 등 북유럽 모델이 이상이었다. 세금을 많이 걷어서 국가가 많은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국가가 잘 작동하는 1950~1970년대에는 이 모델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1970년대 이후 세계 곳곳에서 조세저항운동이 일지 않았나. 내가 낸 세금에 비해 공공서비스 질이 낮다는 공감대가 넓었기 때문이다. 국가기구를 강화하는 방식만으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는 영국의 보수정권이었던 캐머런 정부에서도 ‘빅 거버먼트(Big Government·거대정부)’보다 ‘빅 소사이어티(Big Society·공동체 역할을 강조한 거대사회)’를 내세웠다고 덧붙였다.

정 단장은 인터뷰가 끝난 후 두툼한 보고서를 한 권 보내왔다. 제목은 ‘관계국가’. 부제는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이 어떻게 국가 역할에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가’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IPPR(공공정책연구소)에서 작성한 보고서로, 영국 정치의 흐름 및 현대사회의 변화를 분석해 미래 전략을 제시한 책자다. 보고서의 주장은 한결같다. ‘전달국가’에서 벗어나 ‘관계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 단순히 객관적·물리적 문제 해결을 넘어서 주관적·관계적 사안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공공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고 삶의 질이 고양된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이다.

김민희 톱클래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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