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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13호] 201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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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 양남면 가보니

“주민 공청회 한 번 없었다” 사분오열 민심 폭발

배용진  기자 

▲ 지난 6월 18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본부 정문 앞. photo 배용진
주말을 앞둔 지난 6월 15일, 한국수력원자력 이사진은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이사회를 열었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을 비롯한 12명의 한수원 이사진은 이 자리에서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 폐쇄와 신규원전 4기 백지화를 결정했다. 한수원은 이날 이사회 개최 일정을 비밀로 유지하다 개최 4시간 전에야 언론에 ‘경영현안설명회’란 이름으로 개최 장소만 알려줬다.
   
   군사작전처럼 보안을 유지하면서 월성1호기 조기폐쇄를 기습 결정한 한수원 이사회를 향해 비판이 쏟아졌다. 6월 19일 한수원 노동조합을 포함한 원자력정책연대는 서울 국회에서 국회 원전수출포럼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의 전격적인 월성1호기 조기폐쇄와 천지·대진 신규원전 4기의 사업종결 결정을 규탄한다”고 했다. 국회 원전수출포럼과 원자력정책연대는 “한수원 이사진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하고 이사진 결정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신청과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는 등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을 원전 조기폐쇄 결정의 또 다른 당사자인 월성1호기 인근 주민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 6월 18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일대를 찾았다.
   
   월성원자력발전본부 정문은 양남면 나아리에 있다. 정문 앞에 펼쳐진 잔디밭 옆 도로변에는 ‘월성원전 맥스터 추가건설 결사반대!’ ‘우리마을 핵단지화 결사반대’라고 적힌 노란색 현수막들이 보였다.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 명의로 된 것들이었다. 검은 비닐하우스에 ‘집회 1394일’이라고 쓰인 화이트보드가 붙어 있는 모습도 보였다. 주위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국내 유일의 중수로 발전소인 월성원전이 있는 경주 양남면 일대에는 월성1호기 조기폐쇄 외에도 여러 원전 관련 이슈가 산재해 있다.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이 내려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시위대의 현수막 내용들은 대부분 이전부터 문제가 되어왔던 ‘사용후핵연료 보관 문제’ ‘삼중수소 누출 가능성’ 등에 대한 우려가 주를 이뤘다.
   
   
   인구 6500명 지역에 단체 50개
   
   하지만 월성1호기 조기 폐쇄에 따른 여론도 급격하게 달아오르는 중이다. 기자가 들른 18일만 해도 경주 양남·양북면 일대에서는 급작스러운 월성1호기 폐쇄를 두고 민·민 갈등이 심각해지는 양상이었다. 대부분의 민간단체들은 일단 ‘주민 안전’을 앞세우고 있었다. 양남면발전협의회의 김익재 사무국장은 기자와 만나 “주민 안전이 우선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발전협의회는 노후원전 계속 가동을 주장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조기폐쇄를 그것도 서울에서 날치기로 결정한 것은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양남면발전협의회에 따르면 인구 6500명 규모인 양남면에는 50개가 넘는 각종 민간단체가 있다고 한다. 인구 규모에 비해 매우 많은 숫자다. 원전 보상금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달라 단체가 여러 개로 쪼개지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양남면 내에서도 원전과 가장 인접해 있는 나아리, 나산리, 읍천1·2리 등에 사는 주민들이 별개 단체를 만들면서 주민들 간 의견 대립도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양남면 소재 민간단체 중 그동안 원전과 관련해 가장 목소리를 높여온 단체는 양남면발전협의회다. 하서리 양남면사무소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사무실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나아리, 양북면 봉길리에 걸쳐 있는 월성원자력본부와는 5㎞ 정도 떨어져 있다. 양남면발전협의회의 입장은 “월성원전1호기를 폐쇄한다는 정부 정책에는 반대하지 않되 사용후핵연료 문제에는 적극 대응한다”는 것이다. 지난 6월 18일 양남면발전협의회 회장실에는 ‘1호기 연장 상생협력 사업비’ ‘방폐장 특별 지원금’ 등의 명목으로 각종 금액이 적힌 화이트보드가 걸려 있었다.
   
   반면 월성원전과 가장 인접한 마을 주민들의 의견은 다르다. 양남면발전협의회와 의견을 달리하는 월성원전 최인접 5개 마을(나아리, 나산리, 읍천1·2리, 환서리) 주민들은 또 다른 단체를 만들고 활동하고 있다. 양남면 인접 5개 마을 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중표씨는 월성1호기 조기폐쇄가 발표되자 6월 18일 경주 양북면의 한수원 본사를 항의 방문했다. 다음날에는 한수원 앞에서 주민들과 함께 집회를 열기도 했다. 홍 위원장은 기자와 만나 “월성원전과 가장 가까운 우리 주민들은 국가가 나서서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켜달라는 입장”이라며 “원전 가동을 중지하면 거래도 안 되는 땅에 사는 주민들은 어떻게 생계를 꾸리냐”고 말했다.
   
   신월성1·2호기가 있는 양북면 감포읍 주민들의 의견은 또 다르다. 감포읍발전협의회는 대책 없는 월성1호기의 조기폐쇄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신수철 감포읍발전협의회장은 “월성1호기를 폐쇄하겠다고 했으면 적어도 주민과의 소통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며 “2015년 월성원전 계속운전을 동의할 당시 한수원 측이 ‘앞으로 주민들과 월성원전 운영과 관련된 사안은 모두 협의하겠다’고 합의했는데 이를 깡그리 무시했다”고 말했다.
   
   월성원전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한수원을 상대로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우리 지역에서 생기는 일을 왜 당사자인 주민들이 서울에 있는 언론사보다도 늦게 알아야 하냐”는 것이다. 월성원전에서는 이에 앞서 지난 6월 11일 중수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월성3호기에서 1차 냉각재인 중수 3.63t이 누출되면서 작업자 29명이 방사선에 피폭됐다. 이와 관련해 한수원 측은 “이들의 피폭량이 최대 2.5mSv로 원전 근무자의 연간 허용 피폭량 20mSv에 비해 낮은 수치”라고 밝혔다. 주민들은 “당시에도 피해를 받는다면 가장 먼저 받을 주민들은 놔두고 서울에 있는 언론사를 통해 듣게 만들었다”며 반발했다.
   
   한수원은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월성1호기의 폐로 승인을 요청할 경우 폐로까지 빠르면 2년, 길게는 3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원안위에 자료를 제출하는 데만 6개월 이상이 걸리고, 다시 원안위가 1호기 폐쇄를 검토하고 승인이 나는 데 1년 이상이 걸린다는 것이 한수원 측의 설명이다.
   
   
   “지역민 없는 사람 취급하는 처사”
   
   월성원자력본부 인근 해안에 있는 읍천리 주상절리는 천연기념물 제536호로 지정된 관광지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횟집이 죽 늘어서 있고 그 사이에 노인들이 주로 찾는 마을회관이 있다. 6월 18일 오후 찾은 읍천1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 김모씨는 월성1호기 폐쇄 결정에 대해 “주민들은 원자력발전소가 있으면 많은 혜택을 본다”며 이렇게 말했다.
   
   “월성1호기를 회사 이사회에서 2022년까지 운영한다고 결정해 놓고 폐쇄한다는 거 아닌교. 저거 정비하느라 돈이 얼마나 들어갔는데. 정부에서 그래 안 해도 기간이 되면 자연적으로 폐쇄되는데 주민들 피해줘가며 그래 할 필요가 뭐가 있는교. 고리는 뭐 하라고 했는데(신고리5·6호기 건설 재개를 지칭). 여기는 폐쇄시켜뿌라 하고. 그러면 아예 정비도 하지 말든지. 경비가 얼마나 듭니까. 1호기 하나 폐쇄시키면 거기 근무하는 직원 500~600명 되는데 그건 어떻게 합니까. 나도 원자력1호기 지을 때부터 해서 한 20년 저기서 노동일 했어요. 주민들은 경제가 좀 되도록 해줘야 하는데. 지금 거기서 벌어먹는 사람들 어디 가는교. 어디 갈 데도 없는데.”
   
   하서리 인근에는 월성원자력문화진흥회 사무실도 있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현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소속으로 주민에게 원전의 경제성과 안전성을 설명하는 단체다. 원전 운영이 한창 활발하던 시기에는 직원도 여럿 두었지만 현재는 80세가 넘은 김광치 회장만이 홀로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김 회장은 “두 달 전 월성본부에서 월성원자력문화진흥회 문을 닫으라는 공문이 왔다”며 “6월까지만 운영하고 문을 닫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한수원의 월성1호기 조기폐쇄를 두고는 절차상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양남면 인접 5개마을 대책위, 감포읍발전협의회 등 월성1호기 조기폐쇄에 반대하는 5개 단체는 지난 6월 18일 공동성명서를 내고 “한수원이 비밀리에 기습 이사회를 개최해 월성1호기 조기폐쇄를 결정한 것은 우리 지역민들을 무시하다 못해 없는 사람 취급하는 처사”라고 했다. 수십 년을 국가 전력수급에 협조해온 지역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기습 이사회를 열어 조기폐쇄를 결정했다는 것이 단체들의 주장이다.
   
▲ 지난 6월 19일 경북 경주시 한수원 본사 앞에서 홍중표 양남면 인접 5개마을 대책위원장을 비롯한 월성1호기 조기폐쇄에 반대하는 단체 회원들이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 photo 양남면 인접 5개마을 대책위원회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2월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설계수명 30년이 끝난 월성1호기의 수명을 2022년까지 연장했다. 하지만 한수원은 이번에 월성1호기의 조기폐쇄를 결정하면서 “후쿠시마 사고 및 경주 지진에 따른 강화된 규제환경과 최근의 낮은 운영 실적 등을 감안하면 계속가동에 따른 경제성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한수원에 따르면 월성1호기 계속운전 설비투자금은 약 5925억원으로 6월 말 기준 잔존가치는 약 1836억원이다. 지금부터 2022년까지 운전할 경우 최소 1836억원의 가치는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월성1호기 조기폐쇄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월 한수원에 협조요청 공문을 보냈지만 경북에서는 광역자치단체장과 지방자치단체장을 비롯한 누구도 이같은 움직임을 사전에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정당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띠는 경북에는 현재 가동 중인 원전 24기 중 절반인 12기가 들어서 있다. 월성원자력본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경북도지사, 시장, 군수를 비롯해 시의원, 군의원까지 지방선거 때문에 정신이 없는 때라 아무도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이 내려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역구에 원전이 있는 자유한국당 강석호(영양·영덕·봉화·울진), 김석기(경주) 국회의원은 6월 19일에야 “월성1호기 조기폐쇄와 신규원전 4기 전면 중단과 관련해 주민 공청회도 열지 않았고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과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았다”며 “이번 한수원 이사회 결정은 절차적 정당성이 없어 재논의를 촉구한다”는 공동성명을 냈다. 실제로 지난 2월 산업부가 한수원에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검토 관련 공문을 보낼 때 경북도지사는 김관용 전임 지사였고, 새로 당선된 이는 이철우 지사다. 경주시의 경우 전임은 최양식 시장, 신임은 주낙영 시장이다. 지역구 의원과 광역·기초단체장이 모두 자유한국당 소속이다.
   
   현재 한수원 내부에서는 탈원전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청와대와 산업부가 한수원을 방패막이로 사용한다는 불만이 상당한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수원의 한 관계자는 “탈원전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라 어쩔 수 없이 이행해야 한다면 정책을 결정하는 정부가 직접 국민에게 해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맞다”며 “정부 지시를 이행할 수밖에 없는 한수원 뒤에 숨어 있는 것이 말이 되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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