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6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오토차이나 2018’에서 관객들이 BMW X3를 보고 있다. 이번 행사는 미·중 무역분쟁으로 빛이 바랬다. ⓒphoto AP
지난 4월 26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오토차이나 2018’에서 관객들이 BMW X3를 보고 있다. 이번 행사는 미·중 무역분쟁으로 빛이 바랬다. ⓒphoto AP

상하이는 외산 브랜드 자동차의 경연장이다. 서울 강남에 해당하는 상하이 푸둥(浦東)에서는 벤츠, BMW, 아우디 등 고급 명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필자가 거주하는 상하이 푸둥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역시 벤츠, BMW, 아우디는 기본이고 포르쉐, 테슬라 등의 수퍼카가 즐비하다. 중국 브랜드 차를 모는 필자는 지하주차장에만 들어서면 고가의 외제차를 긁지 않을까 늘 조마조마하다.

사실 중국의 외산 브랜드차 상당수는 ‘무늬만 수입차’다. 벤츠, BMW, 아우디는 모두 중국 현지에 생산라인을 두고 있다. 때문에 상하이 부자들은 ‘무늬만 수입차’가 아닌 진짜 수입차를 한 수 더 쳐준다. 같은 벤츠와 BMW, 아우디라도 자동차 후면부에 ‘베이징벤츠’ ‘화천바오마(BMW)’ ‘이치아우디’라는 중국어 상표가 적혀 있으면 한 수 아래 취급을 당한다. 이들 자동차는 각각 벤츠와 BMW, 아우디의 중국 현지 합작공장에서 생산한 ‘메이드 인 차이나’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상하이에 생산공장을 둔 폭스바겐, 뷰익(GM) 등은 아예 국산차 취급을 당한다. 중국 토종 브랜드인 지리(吉利)차가 인수한 스웨덴의 볼보 역시 어엿한 국산차로 대접받는다.

수입차 선호 현상 때문에 중국의 수입차 시장 역시 매년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2016년 104만대에 달했던 수입차는 지난해 121만여대로 16.8%나 급증했다. 업계에서는 올해 중국 수입차 시장 규모가 사상 최초로 150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중국의 수입차 열풍을 주도하는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BMW, 벤츠, 렉서스 등 독일과 일본의 고급차들이다. 지난해 브랜드 기준으로 중국 수입차 시장 1~5위를 차지한 차량은 BMW, 벤츠, 렉서스, 도요타, 포르쉐 순이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이 같은 중국의 수입차 시장 역시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15일 중국산 자동차를 비롯해 500억달러 상당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고율관세를 부과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 4월 9일 자신의 트위터에 “자동차 한 대가 중국에서 미국으로 올 때는 2.5% 관세가 부과되는데, 미국에서 중국으로 갈 때는 25% 관세가 부과된다. 과연 이것이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인가. 수년간 계속되는 바보 같은 무역”이란 글을 남기며 중국의 자동차 관세에 강한 불만을 표시한 바 있다. 중국 상무부 역시 지난 6월 16일 새벽, 미국산 자동차를 비롯한 659개 품목, 500억달러 상당의 미국산 제품에 25%의 추가관세를 부과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관세 인상에 날벼락을 맞은 것이 당장 오는 7월 6일부터 25%의 추가관세를 부과받는 미국산 수입차들이다. 중국 상무부는 당초 미·중 간 사전 협의에 따라 오는 7월 1일부로 25%에 달하는 수입차 관세를 15%로 인하하기로 발표했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산 수입차는 오는 7월 6일부터 기존 협의에 따라 인하된 15% 관세에 추가로 25%의 관세를 더해 도합 40%의 고율 관세를 적용받는다. 15% 인하된 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는 기간은 7월 1일부터 5일까지 단 5일간에 불과하다. 당초 10% 인하된 가격에 수입차를 구매하려던 상하이 부자들 사이에서는 “하룻밤 사이 해방 전으로 돌아갔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엄밀히 말해 중국과 미국이 자동차로 무역전쟁을 벌일 경우 당장 피해를 보는 쪽은 미국이다. 2017년 기준, 중국이 수입한 미국산 자동차는 131억달러(약 14조원)어치다. 중국 수입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국가별 비중은 금액 기준으로 미국(131억달러)이 가장 크고 그 뒤를 독일(129억달러), 일본(92억달러), 영국(71억달러)이 따라온다. 반면 지난해 미국이 수입한 중국산 자동차는 14억달러(약 1조5000억원)에 불과하다. 트럼프로서는 14억달러에 불과한 자국 자동차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정작 131억달러 시장을 놓칠 수도 있는 모험을 한 셈이다.

사실 중국의 미국산 자동차 관세 인상으로 직접 타격을 받는 순수 미국 업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피아트에 인수된 크라이슬러를 제외하고 미국 완성차 업체는 중국 현지 생산 체계를 잘 갖추고 있다. 중국에서 돌아다니는 GM, 포드 등 미국 브랜드 자동차는 대부분 중국산이다. GM의 경우 중국에 판매하는 차는 100% 중국 현지 생산 체제를 갖추고 있다. 특히 상하이는 GM의 중국 공장이 위치한 곳이라 뷰익(GM)이나 쉐보레(GM) 차를 쉽게 볼 수 있다. 포드의 경우도 미국에서 직수입하는 링컨 등 고급 차종을 제외하고 중국 현지화율이 90%에 가깝다. 관세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는 미국 자동차는 100% 수입하는 테슬라 정도다.

현대기아차에는 기회

정작 유탄을 맞는 것은 미국에서 생산해 중국으로 수출하는 벤츠, BMW, 인피니티(닛산 계열), 어큐라(혼다 계열) 등 독일과 일본의 고급차들이다. 벤츠 GLS, 벤츠 GLE, BMW X5, 인피니티 QX60, 어큐라 MDX 등 고급 SUV는 독일과 일본이 아닌 미국 공장에서 생산해 중국으로 물량을 공급하고 있다. 자연히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이들 차종은 수입관세 인상으로 판매가격을 올리거나 기존 공급망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실제 중국 수입차 업계 1, 2위인 BMW와 벤츠는 일부 제품의 지도가격(권장판매가)을 올리고 있다. 미·중 간 고래싸움에 정작 등 터지는 곳은 독일과 일본의 수입차들인 셈이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미국 차에 대한 반감이 생기고, 독일과 일본의 고급차가 유탄을 맞는 것은 현대기아차로서는 중국 시장을 만회할 절호의 기회다. 베이징의 천안문 앞을 활보하는 현대차는 상하이 황푸강변에서는 테슬라보다 찾기가 힘들다. 상하이 사람들의 수입차 선호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 탓에 현대기아차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박하다. 기아차의 경우 상하이와 불과 4시간 거리의 장쑤성 옌청(鹽城)에 생산거점을 두고 있으나 브랜드 파워가 약해 상하이 공략에 애를 먹고 있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소비여력이 커지면서 고급 수입차 시장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2008년 ‘라오언스(勞恩斯·영문명 Rohens)’란 이름으로 제네시스(BH)를 한국에서 수입해 중국 시장에 선보였으나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2015년 제네시스 브랜드 독립과 함께 이름을 라오언스에서 ‘제언스(捷恩斯·영문명 Genesis)’로 바꾸었으나 여전히 존재감이 없다.

제네시스의 중국 현지 생산 여부를 두고도 기술 유출과 노조의 반발을 우려해 아직 명확한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제네시스보다 잘나가는 벤츠와 BMW는 중국 현지에서 생산도 하고 동시에 수입도 병행한다. 렉서스와 인피니티는 이미 10여년 전에 중국 시장에 들어갔다. 좌고우면할 때는 오래전에 지났다. 상하이 황푸강변을 달리는 제네시스를 하루빨리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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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미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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