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8일 월요일 저녁 경영자독서모임 참석자들이 초청 저자의 강의를 듣고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6월 18일 월요일 저녁 경영자독서모임 참석자들이 초청 저자의 강의를 듣고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경기도 시흥시 시화공단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김기석(56·굿스틸뱅크) 대표는 매주 월요일 오후엔 어떤 약속도 하지 않는다. 이날은 꼭 가야 할 곳이 있다. 전철 타고 왕복 4시간 거리지만 해외출장 등 불가피한 때를 빼고는 한 주도 거른 적이 없다. 벌써 15년이 넘었다. 지난 6월 18일도 그는 어김없이 퇴근시간보다 조금 일찍 회사를 나섰다. 전철을 한 번 갈아타고 두 시간 걸려 오후 6시쯤 그가 도착한 곳은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에 있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였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경영자독서모임(MBS)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저녁은 학교 측에서 제공하는 도시락으로 간단하게 때운다. 강의는 7시에 시작해 9시에 끝난다. 시흥에 있는 집까지 서둘러 가도 밤 11시가 넘는다.

그는 강의실에 자리를 잡아놓고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1층 카페로 간다. 김 대표처럼 MBS에 강의를 들으러 온 수강생들이 곳곳에 앉아 있다. 강의실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이지만 섞이지는 않는다. 그중에는 박용현(75) 두산연강재단 이사장도 있다. 박 이사장도 혼자 앉아서 도시락을 먹고 있다. 박 이사장이 이 모임에 참석한 것은 20년이 다 되어간다. 조성식(68) 전 포스코에너지 대표이사도 있다. 조 전 대표는 23년째로 MBS의 원년멤버이다. MBS는 현재 46기째이다. 1기 6개월 과정으로 23년이 됐다. 독서모임은 수없이 많지만 23년을 끌고 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MBS는 국내 최장수 독서모임이다. 대기업 회장도 중소기업 대표도 매주 월요일 저녁이면 달려오게 만드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MBS를 만든 사람은 한국의 경영구루로 꼽히는 조동성(69) 인천대 총장이다. 시작은 1995년 9월이었다. 당시 대학마다 최고경영자과정을 경쟁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과정들에 인맥 쌓기를 목적으로 오는 경우가 많았다. 정작 공부보다는 술자리, 골프모임 중심이고 학비보다 과외활동에 돈이 더 많이 들었다. 소모적인 과정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진짜 공부만 하는 모임을 만들어보자.” 당시 서울대 경영대 교수이자 산업정책연구원장이었던 조 총장은 뜻을 같이한 사람들과 MSB를 만들었다.

‘뒤풀이 없기’ ‘저자 직강’을 원칙으로

조 총장은 MBS를 만들면서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뒤풀이 없기’와 ‘저자 직강’이었다. 그 원칙은 현재까지 지켜져오고 있다. 술자리는 고사하고 커피타임도 없다. 일반적인 모임에 가면 명함 주고받기 바쁘지만 이곳에서는 강의 끝나자마자 집에 가기 바쁘다. 그렇다 보니 10년 넘게 얼굴 보는 회원들끼리도 눈인사가 고작이다. 주변에 술자리 거절할 핑계 대기도 좋다. ‘월요일은 공부하는 날’로 우선 순위를 놓고 술 약속을 거절하다 보면 나중에는 알아서 피해준다. 월요일 저녁 강의 시간은 23년째 그대로다. 강의 장소만 바뀌었다. 처음에는 김승유 전 하나은행 행장이 당시 서울 을지로 입구에 있던 하나은행 건물 식당을 제공해줬고 그 다음엔 백낙환 인제대 명예총장이 백병원 강의실을 빌려주기도 했다. 조 총장이 맡고 있던 산업정책연구원에서 운영하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에서 하고 있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는 산업정책연구원(IPS)에서 1995년부터 진행했던 교육 프로그램을 이관하여 2004년 설립된 석·박사 경영전문대학원이다.

6개월 과정의 강의는 4월과 10월 매년 두 차례 시작된다. 한 기수당 총 20권의 책을 고르고, 책의 저자를 초청해 강의를 듣는다. 저자 직강을 원칙으로 내세운 만큼 책은 번역서가 아니라 국내 서적 위주다. 책 선정위원회가 머리를 맞대고 매 기수가 시작되기 전 20권을 고른다. 선정위는 조 총장을 비롯해 김태현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총장, 신호상 MBS 주임교수, 김주남 브랜드진흥원장 등 7~8명이다. 경영인 대상으로 시작한 만큼 경제·경영서 비율이 절반이다. 나머지는 인문·사회·예술과 문학·고전을 적절한 비율로 선정한다. 지금까지 MBS에 초청된 저자는 800명에 이른다. 금난새, 김병종, 김정운, 김혜자, 김홍신, 김훈, 박원순, 백낙청, 신경림, 유홍준, 이회창, 장하준, 조국, 조훈현, 황석영 등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각계 저명인사들이 초청 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MBS를 거쳐간 누적 수강생은 7000여명에 이른다. 10년, 20년 장수 회원도 많다. 처음에는 CEO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엔 의사, 교수, 직장인 등으로 다양해졌다. 기수별로 평균 재가입률은 75%에 달한다. 강의에 참석하기 어려운 회원을 위해 통신회원제도 있다. 회원수는 기수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 150여명 정도 유지되고 있다. 오래된 회원 중에는 딸, 아들을 데리고 와 2대째 다닌 경우도 있다. 매 기수마다 한 번씩 ‘패밀리데이’를 진행하는데 이때는 지인들을 강의에 초청할 수 있다.

지난 6월 18일 초청 저자는 ‘미술관에 간 수학자’를 펴낸 이광연 한서대 수학과 교수였다.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을 소개하고 그 안에 숨은 고대 철학자들과 수학적 비밀들을 풀어냈다. 쉬는 시간 없이 90분 동안 저자 강의가 이어졌다. 강의 후에 저자에게 쏟아지는 수강생들의 질문들은 날카로웠다.

“글로벌 기업에서는 수학자들을 많이 뽑는다는데 우리나라는 왜 수학이 홀대받는다고 생각하나?”

“수학의 발전은 어디까지 왔나?”

“미분보다 적분이 1500년 먼저 나왔다는데, 무엇을 설명하기 위해 적분이 만들어졌나?”

질문은 30분 넘게 이어지다 겨우 끝났다. 매번 질문의 첫 테이프를 끊는 사람은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아 강의를 듣는 하영목 커리어코치협회 회장이다. 16년째 모임에 나오는 하 회장은 개근 회원이다. 하 회장이 첫 질문을 던지는 것이 강의실의 암묵적 룰처럼 됐다. 질문들의 수준이 높아 질문을 통해 배운다는 회원이 많다. 신호상 주임교수는 “주제에 따라서는 질문에서 질문으로 이어지며 격론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배움은 경영 현장으로 이어진다. 김기석 굿스틸뱅크 대표는 “여기 나오는 덕분에 다양한 책을 읽게 된다. 일부러 전철을 타고 오는 이유도 책을 읽기 위해서다. 책을 통해 기업경영에 대한 생각도 바뀌더라”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책을 읽히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직원들 신청도서는 무조건 회사가 구입해준다. 점심시간 1시간 중 30분 책읽기에 나선 직원에게는 근무시간 30분을 빼서 독서시간을 준 적도 있다. 독서모임도 독려했다. 직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직원들이 읽은 책을 소개하고 독서평을 올려놓는다. ‘감성경영’을 내걸고 정기적으로 난타 공연, 인문학 강연도 했다. 덕분에 문화체육관광부와 언론사가 주최한 ‘독서경영 우수직장’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책읽기가 당장 어떤 결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이직률 잦은 중소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길이라고 믿는다. 인근 기업들 사이에서는 이미 ‘책 읽는 회사’로 소문이 났다. 월요일은 모든 일정을 미루고 무조건 MBS에 참석한다는 그는 “죽을 때까지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1기부터 참여한 조성식 전 포스코에너지 대표는 “매주 새로운 것을 얻어간다. 특히 저자가 왜 책을 썼는지, 책 뒤에 숨은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어 좋다. 덕분에 책 읽는 습관이 들었다. 일하면서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양명학에 관한 책이라든가 순수이성 비판 책 같은 경우 강의를 듣지 않았다면 평생 읽기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책 속에 세상 사는 이치가 들어있는데 주입식 교육이 책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다”면서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요즘엔 재미있어 보이는 강의만 골라 온다는 박용현 이사장은 “배우러 온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도 강의가 끝나자 수강생들은 각자 강의실을 나섰다. 꽉 찼던 강의실이 순식간에 텅 비었다.

경영자독서모임(MBS) 46기 선정도서 20권

1.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생태학과 통섭을 지혜의 장으로 옮겨와, 최재천의 경영 십계명을 제안한다. 경영 십계명에는 개성의 시대에 공존하는 지혜와 경험담을 담았다.

2. 위클리비즈 테크트렌드 2018 류현정 IT조선 본부장

놀랄 만한 변화가 전방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이 격변의 시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해야 할까? 비즈니스 질서를 완전히 뒤흔들고 있는 혁명적 변화들을 만나보고 대응책을 세워본다.

3. 패권의 비밀 김태유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 및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성장 문제에 대한 이론을 정리하여 출간한 ‘경제성장론’을 바탕으로, 이 이론이 과연 얼마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지 검증한다.

4. V이론에 의한 제3의 경영 노부호 서강대학교 경영대학 명예교수

인간의 행복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경영을 제시하고 있다. 행복은 자아실현이고 자아실현은 인격 완성과 잠재력 개발임을 전한다.

5. 로지스타 포캐스트 김철민 CLO 대표

VALUE WEB의 관점에서 다가올 2018년 유통·물류 환경을 바라보고 물류와 유통산업의 미래를 해석하기 위해 로지스틱스 에코체인 모델을 제안한다.

6. 말이 칼이 될 때 홍성수 숙명대 법학부 교수

혐오 표현의 문제에 대응하고 해결할 길을 찾는 것은 공존사회를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다. 우리 사회와 구성원들이 행동해야 할 정책적·사회적 방향을 함께 고민해보고 찾아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7. 서유기 서경호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4대 기서 중의 하나로, 황제의 칙명으로 불경을 구하러 인도에 가는 현장 삼장과 손오공의 기상천외한 모험기.

8. 퍼펙트체인지 송재용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우리 경제가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의 본질 내지 원인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위기상황 속에서 우리 기업의 새로운 경쟁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9. 골목길 자본론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도시재생을 통한 성공적인 도시 브랜딩을 위해 골목길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에 주목하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골목길 문화는 어떻게 태어나고 유지되는지 살펴본다.

10. 미술관에 간 수학자 이광연 한서대 교육대학원 교수

수학이 어떻게 그림의 구도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는지 신화와 역사를 곁들여 흥미진진하게 살펴본다.

11. 김상욱의 양자 공부 김상욱 경희대 교수

100년에 걸친, 이해 불가능한 현상들을 설명하려는 물리학자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양자적 사고 능력을 알아본다.

12. 사주경영학 김원 명리전문가

명리학을 기반으로 비즈니스맨들이 자신의 커리어와 관련해서 운을 어떻게 경영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좋은 운을 끌어당길 수 있는지 알려준다.

13. 논백 경쟁 전략 신병철 래보러토리 대표

치열한 레드오션의 시장에서도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을 때, 사람들이 모이고 돈을 모을 수 있다. 레드오션에서 성공할 수 있는 대안을 하나씩 찾아간다.

14. 의천도룡기(김용 무협지) 전형준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원명교체기 혼란한 시대에서 격랑의 운명을 타고난 장무기. 그가 절대 무공 비법을 통해 강호 최고의 고수가 되기까지 웅장한 역사를 그렸다.

15. 유대인 경제사 홍익희 세종대 교수

천년 전 아브라함 시대의 다신교 사회에서 현대 미국의 달러 지배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별 주요 경제사를 정리했다.

16. 한근태의 재정의 사전 한근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700명 CEO들의 코치이자 멘토인 한근태 교수가 독자들이 자기만의 재정의를 내릴 수 있도록 안내한 책.

17. 율곡인문학 한정주 고전역사연구회 뇌룡재 대표

율곡 이이가 평생 삶의 지표로 삼았던 ‘자경문’을 중심으로 그가 말하는 인문정신이 무엇인지 사람다움의 길이 무엇인지 생각하게끔 한다.

18. 중국식 경영 우진훈 중국 인민대학 교수

역사를 관통하는 변치 않는 원리를 깨달아 이를 현실에 적용하는 사유와 실천이 중국식 경영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에 적용되는 중국식 경영을 배워본다.

19. 로쟈의 러시아 문학강의: 20세기 이현우 작가

러시아 작가들은 자의든 타의든, 이전과는 모든 것이 달라진 세계에서 저마다의 눈으로 시대를 그려냈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은 20세기, 그 중심에서 살아간 러시아 민중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20. 아트 비하인드 변종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장

현실을 빗댄 내용에서부터 미술사에서 끝없이 논쟁되어온 문제 등을 주제로 예술가와 작품, 혹은 예술사에 관한 이야기를 발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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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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