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조현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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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7일 서울 중구 동국대 법학관에서 박선영(62) 전 서울시교육감 후보를 만났다. 보수 진영 단일 서울시교육감 후보로 선거에 나선 박 전 후보는 지난 6월 13일 지방선거에서 36.2%를 득표해 46.6%를 받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게 패했다. 10%포인트 이상 차로 패했지만 박 전 후보는 ‘화제의 낙선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선거 한 달 전에야 보수 진영 인사들의 요청으로 나선 선거에서 사전 여론조사에서의 예상 득표율보다 훨씬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박선영 펀드’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선거운동 기금 마련 펀드에 전국의 유권자가 총 16억원 이상을 모아준 것도 화제였다.

1956년생으로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법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박 전 후보는 현재 동국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 전공은 헌법학이다. MBC 기자 출신인 박 전 후보는 18대 국회에서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원내부대표와 대변인을 지내기도 했다. 박 전 후보를 만나 “보수가 워낙 어려운 상황에서 예상보다 선전했다는 반응이 많다”고 운을 떼자 그는 “대체로 그런 반응이 많지만 생각한 것보단 안 나왔다”며 “나는 져도 박빙, 붙어도 박빙일 거라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 선거 직전 “박선영 찍었다”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발언이 선거법 위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발언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해당 발언이 보도된 당일이나 이틀 뒤까지는 덜하더니 사흘째부터 유권자들이 급속도로 냉담해지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나중에는 ‘홍위병’이라는 말도 들었다. 홍준표의 홍을 언급한 것이다. 선거운동 초반에는 유권자들에게 명함을 주면 ‘직접 나오셨어요’ 하고 반가워하고 사진도 찍고 굉장히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당선되겠네’ ‘표차가 좀 나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나도 4년간 국회에 있으면서 대변인까지 하느라 온갖 상황을 다 접해봤는데 선거에서 그런 경우가 잘 없다. 그런데 지방선거 사흘 전쯤부터 이상하다 싶어 인터넷에 들어갔다가 그 기사를 봤다. 난리가 나 있더라.”

- 홍 전 대표는 선의에서 말했을 텐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1970~1980년대에는 그런 솔직함이 먹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정치공학적으로 보면 기자들이 물었을 때 ‘내가 누구 찍었을 거 같아?’만 해도 괜찮았는데 아쉽다. 딱 ‘박선영 찍었다’ 하면 그게 바로 제목으로 나온다. 그걸 보면서 ‘이게 뭐야, 도대체’ 싶었다.”

- 홍 전 대표의 접근 방식이 ‘올드’했다고 봐야 할까.

“그건 아니다. 그냥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게 그분 스타일이다. 18대 국회에서 홍 전 대표가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냈고, 나는 자유선진당 원내부대표를 하면서 자주 봤기 때문에 성향을 안다.”

- 결과적으로는 안 좋게 된 것 같다.

“우리나라는 정치에서 피아 구분을 하는 경향이 유독 심하다. 내 편이 아니면 남의 편이다. 어떤 분은 내가 명함을 건네니 ‘나 너 찍으려 그랬어. 근데 홍준표가 널 찍었대. 그럼 너 찍어줄 수가 없어’라면서 명함의 얼굴 사진 부분을 짓밟고 내 어깨를 자기 어깨로 치고 갔다.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 이번 선거에서의 주요 패인을 뭐라고 보는가.

“보수가 이제 그만 분노와 울분을 승화시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화내고 난리 치는 사람 옆에는 안 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보수의 분노와 울화, 국가 걱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근데 그걸 담아내는 그릇을 너무 투박하게 하면 점점 고립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은 울분을 승화시키기에는 숙성 시간이 더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고 본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이 후보자를 내지 않기 때문에 기호와 정당명이 없다. 이 때문에 보수나 중도, 진보로 후보자들의 성향이 크게 분류되긴 하지만 교육 정책에 대한 공약이 중요하다. 이번 선거의 주된 이슈였던 교육정책으로 화제를 돌렸다.

- 교육정책에서 다른 후보와 차별화를 시도한 것 같다.

“유치원 바우처 제도를 주장했다. 바우처 제도는 그냥 무상급식하곤 다르다. 50만원짜리 바우처를 주면 아이의 엄마가 유치원에 이 바우처를 갖다낸 후 아이를 입학시키는 것이다. 유치원은 바우처로 아이들 먹이고 교육을 위한 비품을 사고 선생님들 인건비를 주면 된다.”

- 유치원 바우처제 도입을 주장한 이유가 뭔가.

“가까운 곳에 A라는 유치원이 있지만 조금 멀어도 B라는 유치원을 보내고 싶다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학부모의 선택권이 보장되고 유치원 교육과정과 교사들의 질이 좋아진다. 경쟁을 하게 되니까. 우린 경쟁을 죄악시하고 있다. 문제는 ‘무자비한 경쟁’이다. 한 번 낙오된 사람이 다시 사다리를 오르지 못하게 하는 게 문제지 경쟁 자체는 중립적인 것이다. 성취욕을 키워주고 계기와 기회를 만들어준다.”

- 바우처 정책은 직접 고안했나.

“아들이 독일에서 공부를 했다. 독일의 한 주에서 바우처 제도를 운영하는 것을 보았다. 독일도 유치원이 부족해서 문제가 되다가 이제 아이들이 줄면서 우리와 비슷한 현상을 겪고 있다. 인구절벽과 마주한 우리나라에는 없어져야 할 대학도 많고 유치원도 많다. 중·고등학교는 학급당 인원을 줄이면 유지가 가능하지만 유치원은 다르다. 그런데도 지금 국공립 유치원을 짓는다고 한다. 경쟁력 없는 유치원은 닫아야 한다. 아이는 안 낳는데 유치원만 지어선 안 된다.”

- 눈에 띄는 다른 주요 교육정책들도 많았던 것 같은데.

“중·고교생에게 학교 선택권, 학교에는 학생 선발권을 주겠다는 공약을 했다. 부모가 돈이 없어서 집값이 싼 지역에 살아도 다니고 싶은 고등학교에 지원해야 한다. 예전에는 교통이 불편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한 시간이면 서울 시내 어디든 다 간다. 설립 취지가 좋고, 좋은 선생님들 계시고, 좋은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에 원한다면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경쟁력 없는 학교는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초등학교부터 기숙학교를 확대하겠다는 공약도 했다. 24시간 돌봄학교다. 사감이 지키는 기숙학교와는 다른 개념이다. 21세기형으로 다양한 융복합 학교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예를 들어 K팝(pop) 중학교 같은 식이다. 외국 학생들도 오겠다면 ‘들어와서 배워라, 우리나라 초중등학교는 무상교육이지만 너희는 돈내고 와’ 하는 식으로 운영하면 된다.”

- 이런 정책들에 대한 유권자들 반응은 어땠나.

“폭발적이었다. 특히 학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현장에서 보인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내가 내놓은 정책이 잘 알려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정책공약집도 있었지만 교육감 공약집까지 자세히 보는 사람은 잘 없는 듯하다. MBC가 주최한 정책토론회가 한 차례 있었지만 발언할 시간이 너무 짧아 차별화가 안 됐다. 그래서 유세 다니며 소그룹 설명회를 많이 했다. 정말 반응이 폭발적이었지만 그러다 꺾여버렸다.”

- 한국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21세기는 20세기까지의 삶과 완전히 다르다. 20세기 중후반에는 80%를 20%가 먹여살렸다면 앞으로는 5%가 95%를 먹여살리는 시대다. 그럼 교육은 어떻게 가야 하겠나. 5%는 죽어라 두뇌활동을 하고, 나머지 95%는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세기까지는 개미가 베짱이를 먹여살리는 시대였지만 21세기엔 베짱이에게도 가치를 부여해줘야 한다. 21세기의 사회구조를 염두에 두고 교육을 리모델링해야 한다.”

- 다른 문제점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건 대학교육이 아니라 유아교육이다. 유치원에선 관찰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내가 네다섯 살 때쯤 일이다. 나팔꽃 꽃잎이 아침에는 피어 있고 저녁에는 닫히는데 꽃잎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려고 밥도 먹지 않고 관찰하다 결국 움직이는 걸 못 봐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관찰하는 능력이 없으면 나중에 대학에 가서도 엉덩이 붙이고 책을 볼 수가 없다. 또 하나는 타인과의 사회성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 유치원에 가보면 애들이 신발을 막 흐뜨려놓으면 선생님들이 치워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배우면 나이 80이 돼도 똑같다. 자기 일을 자기가 책임 안 지고 전부 공무원이나 복지정책이 대신 해주길 바란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내가 신고 온 신발은 나갈 때를 위해 내가 가지런히 놔야 한다. 선생님이 해 줘서는 안 된다.”

- 선진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스포츠나 악기를 가르치는 걸로 안다.

“큰아이가 독일 유치원을 다닐 때 세 살 때부터 수영을 배웠다. 겨울에는 네 살짜리가 조그만 스키를 탔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자기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푸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들 나라엔 화병이 없다. 우리처럼 그걸 다 점수로 매기지 않는다. 평생 즐길 수 있는 악기와 스포츠를 유치원 때부터 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 오니까 체육 시험을 본다고 하더라. 축구 골대로 골을 몇 개 넣는지, 농구공을 던져 몇 개를 넣는지를 수행평가로 점수를 매긴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단소 같은 건 시험 볼 때만 배우고 끝나면 전혀 안 하게 된다. 정말 전교조가 잘못한 건 지필고사 없애고 수행평가란 이름으로 모든 과목을 점수화시킨 것이라고 본다.”

- 교육감선거 무용론도 많은데 어떤 것이 가장 큰 맹점이라고 보나.

“전교조에 아주 유리한 구조다. 전교조는 민주노총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기본 40%의 지지를 깔고 간다. 민주노총이 전교조 후보자를 조직적으로 밀기 때문에 그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40%는 먹고 간다고 봐야 한다. 직선제의 맹점인데 사실 간선제로 가더라도 결과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원초적으로는 교육감 선거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가 낮기 때문에 간선제로 가는 방안이 맞다고 생각한다.”

- 최근 교육감 당선자 10명이 전교조의 법외노조 판결을 정부가 직권취소하라는 압박을 가했는데.

“이상하다고 보진 않는다. 다만 그것은 실제 취소를 요구한다기보다는 전교조식 교육을 더 강화하라는 압박이라고 본다. 조희연 교육감이 앞으로 활동하기에도 편해질 것이다.”

박 전 후보는 인터뷰 말미에 지난 선거운동 기간 선거운동원들이 입었던 티셔츠에 동백꽃과 한련화 그림을 그려넣었다고 소개했다. 동백꽃의 꽃말은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한련화의 꽃말은 ‘애국심’이다. “선거는 전쟁이 아니라 즐거우면서도 이성과 논리가 살아 있는 축제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신이 꽃 그림을 기획했고, 울산 어느 시장에서 작은 족발집을 운영하는 지지자가 박 전 후보를 위해 그려줬다고 한다. 그는 “최선을 다했고, 유권자분들의 사랑도 너무 많이 받았다”며 “선거 결과에 대해 아무런 아쉬움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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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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