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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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6일 국회 세미나실엔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졌다. 비행기 승무원 유니폼을 갖춰 입은 20대 청년들이 세미나실 가득 모여앉았다. 항공시장으로 ‘출항’을 기다리고 있는 예비 승무원들이었다.

이들이 모인 자리는 ‘항공산업 활성화를 위한 진입규제 개선방안’ 토론회. 토론자로는 항공 관련 교수들과 경제학 교수,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구조개선과 과장 등이 나섰다. 윤후덕, 변재일, 이원욱 등 국회의원들도 참석했다. 국토교통부에선 원래 박명주 항공산업과 과장이 참석하기로 했던 걸, 사무관을 대신 참석시켰다.

이날 토론회가 열린 배경은 이렇다. 지난해 6월 에어로K와 플라이양양(지금은 플라이강원으로 사명 바꿈)이 국토부에 항공운송사업자 면허신청을 냈다. 국토부가 요구하는 요건을 모두 갖춘 채였다. 반년 후인 작년 12월 국토부는 이들의 신청을 반려했다. 사유는 ‘과당경쟁 우려’였다. 국토부는 이들의 신청을 반려하기까지 법에 규정된 절차를 모두 지켰다는 걸 강조했다. 이 절차라는 걸 자세히 살펴보면 흥미롭다.

항공사업법 시행규칙 9조 ‘면허 관련 의견수렴’ 조항이다.

① 국토교통부 장관은 법 제7조 제1항에 따라 면허 신청을 받거나 법 제28조에 따라 면허를 취소하려는 경우에는 법 제7조 제5항에 따라 관계기관과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하여야 한다.

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제1항에 따른 의견청취가 완료된 후 변호사와 공인회계사를 포함한 민간 전문가가 과반수 이상 포함된 자문회의를 구성하여 자문회의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③ 국토교통부 장관은 제2항에 따른 자문회의에 면허의 발급 또는 취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하여 필요한 자료와 제1항에 따른 의견청취 결과를 제공하여야 한다.

④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의견청취, 자문회의의 구성 및 운영, 그 밖에 면허의 발급 또는 취소와 관련된 의견수렴에 필요한 세부사항은 국토교통부 장관이 정한다.

조항들을 보면 ‘이해관계자’란 단어가 눈에 띈다. 여기엔 기존 항공사업자가 포함된다. 이를테면 플라이강원에 면허를 줄지 말지를 대한항공에 묻는단 얘기다. 이 과정에서 목격되는 문제점은 3가지다. 첫째, 소비자 편익 무시다. 사회적 편익은 공급자 편익과 소비자 편익을 합쳐 산출한다. 서울 택시업계를 보자. 택시총량제로 택시 면허 공급을 조절한다. 신규 공급이 없다 보니 기존 택시 면허가 웃돈이 붙어 거래된다. 이 웃돈이 소비자가 내는 택시비에 반영된다. 단순히 택시비가 싸다 혹은 비싸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택시총량제를 시작할 때의 정부 논리가 바로 ‘과당경쟁 우려’였다. 우버 등 새로운 운송 서비스를 정부가 금지한 이유이기도 하다. 전형적으로 기존 공급자의 편익만 배려한 결정이다. 소비자, 즉 시민들이 받을 편익이 사회적 비용을 상쇄하는지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게 정부의 제대로 된 역할이다.

현재 국토부는 항공시장을 마치 서울만 누비는 서울 택시업계처럼 다루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항공시장은 전 세계 시장을 기반으로 한다. 당장 저가항공(LCC) 시장은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이 위치한 아시아는 전 세계 여객시장에서 가장 성장률이 높고 비중이 큰 지역이다. 2016년 기준 전 세계 국제항공여객 숫자 중 아시아가 82%를 차지한다.

토론회에서 국토부 홍승희 사무관은 ‘2009년 한성항공 사태’ 얘길 꺼냈다. 준비 안 된 저가항공 출범으로 소비자가 예약금을 제때 환불 못 받는 등 피해를 입었단 얘기다.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예다. 신규 업체 진입이 늦어져 소비자들이 얻는 불이익은 언급도 안 한다.

둘째, 절차의 투명성이다. 국토부는 면허 취득 심사 과정에 대해 거의 아무런 설명을 내놓지 않는다. 대략의 과정은 이렇다. 절차의 공정성을 위해 무작위로 선정해 10명 안팎으로 자문회의를 꾸린다. 회의 바로 전날 통보해 자문회의를 연다. 자문회의엔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전달한다. 누가 어떤 이유로 신규 면허 허가에 찬성 혹은 반대했는지 어떤 얘기도 들을 수 없다. 국토부가 사전 로비를 우려해 느닷없이 자문회의를 여는 거라면, 차라리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나을 수 있다. 기존 사업자와 신규 사업자들까지 모두 모여 방어할 수 있는 기회를 두세 차례 주면서 공청회를 여는 식으로 말이다. 자문회의단이 어떤 논리로 결정했는지 기록을 남기면 불필요한 사후 논란을 막을 수 있다.

셋째, 불확실한 반려 사유다. 정부는 ‘과당경쟁’이란 말을 무책임하게 던지면 안 된다. ‘과당’이란 말을 내밀 땐 상세한 시장 상황 분석과 통계를 첨부해야 한다. 원칙적으론 시장 상황은 사업자가 판단하는 게 맞다. 항공산업이 규모의 경제이고 기간산업의 측면이 있다 보니 정부의 규제가 일정 부분 용인될 뿐이다. 신규 진입을 원하는 업체들 중엔 한 달에 5억원씩 지출하며 국토부가 면허를 주길 기다리는 곳도 있다. 국토부는 작년 12월 면허신청 반려 이후엔 제도개선을 이유로 반년 넘게 시간을 끌고 있다. 이런 식으로 몇 년을 더 흘려보내면 자본잠식 외엔 도리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부가 ‘과당경쟁’을 선언한 지난해를 전후로 저가항공 업계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 제주항공은 저가항공 최초로 2015년에 상장까지 해 지난해엔 항공사 중 유일하게 2년 연속으로 배당까지 했다. 티웨이의 경우 자본잠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올 1분기엔 모든 저가항공사가 흑자를 이뤘다. 국토부의 과당경쟁 운운이 근거가 부족해 보이는 이유다. 국토부는 이외에도 정비인력 부족을 이유로 들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역시 전형적으로 기존 사업자의 편익만 고려한 논리다. 이밖에도 국토부는 면허 취득을 위한 비행기 최소 보유대수를 지난해 3대에서 올해 5대로 올렸다. 자본금도 15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늘렸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모두 비행기 1~2대로 시작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사다리 걷어차기로 보인다. 국토부가 정량적 요인이 아닌 정서적 요인으로 결정을 내린다는 의혹이 이는 이유다.

저가항공은 단순히 항공사가 생기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관광산업, 고용창출과도 연관이 있다. 기자는 올해 휴가지로 일본 사가현을 고려 중이다. 예전엔 생각도 못할 지역이다. 티웨이가 직항 노선을 개설한 이후 사가현엔 한국인 방문객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일본 각 현(縣)에서 지사들이 새로 취임하면 경쟁적으로 대한항공을 찾는다고 한다. 직항 노선을 만들어달라 부탁하기 위해서다. 플라이강원은 양양공항을 모기지로 인바운드 승객, 즉 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수요를 창출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강원도가 투자한 이유다. 에어로K의 경우엔 청주공항이다. 시장에 대한 판단과 책임 모두 사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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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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