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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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일, 홍석진 미 노스텍사스대 항공물류학과 교수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아시아나에 기내식을 납품하는 하청업체 대표가 세상을 등진 날이었다. 그보다 며칠 전인 6월 29일엔 국토교통부가 진에어 면허 취소를 일단 보류하겠다고 발표했다. 홍 교수는 업계에서 학계로 들어온 경우다. 대한항공에서 근무한 후, 인천대와 프랑스 켓지대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지금은 노스텍사스대 소속이다.

홍 교수는 자리에 앉자마자 “국토부가 오해받을 만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토부가 저가항공(LCC)에 신규 업체가 진입하는 걸 막고 있다. 과당경쟁이란 이유다. 어떤 근거로 과당경쟁이라 규정하나. 공교롭게도 과당경쟁이라 선언한 시점부터 한국 항공사들 실적이 비약적으로 좋아졌다. 한국의 어떤 산업이 국내 시장을 기반으로 하나. 시장 상황이 불확실하다고 부연설명하는데, 정부가 민간 시장이 불확실한 것까지 예측하고 커버하나.”

- 한국엔 저가항공 업체가 6곳 있다. “실질적으론 3곳이다. 진에어, 에어서울, 에어부산은 기존 항공사가 만든 항공사고 나머지로 티웨이, 이스타, 제주항공 이 있다. 기존 항공사가 만든 저가항공은 미국이나 유럽에선 성공 못 한 모델이다. 영업이 안 되는 노선을 물려받는 식이다. 이래선 혁신을 할 이유가 없지 않나. 시장에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한국은 예외적으로 규제가 심한 상황이라 기존 항공사가 만든 저가항공사가 성공한 거다.”

홍 교수는 저가항공 신청업체가 법률 상 모든 조건을 충족하면 면허를 주는 식으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장의 경쟁을 인위적으로 막아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홍 교수는 저가항공의 순기능을 묻자 프랑스의 소도시 얘기를 꺼냈다. “프랑스에 도르도뉴라는 곳이 있다. 와인 주산지 보르도 옆에 있는 작은 도시다. 라이언에어가 여기에 취항을 했다. 그러자 연간 100만명이 찾더라.” 라이언에어는 유럽을 대표하는 저가항공이다. 아일랜드 회사다.

홍 교수에 따르면 EU 출범 후 EU 가입국 내에선 전면적인 항공자유화가 이뤄졌다. 일명 오픈스카이협정이다. 라이언에어가 도르도뉴와 영국을 잇는 노선을 취항하자 도르도뉴엔 영국인 은퇴자촌이 생겼다. ‘도르돈셔(Dordogneshire·도르도뉴와 영국의 주(州)를 뜻하는 shire의 합성어)’라는 애칭이 생겼을 정도다. “신규 노선이 관광 수요를 창출한 거다. 즉 공급이 수요를 만드는 시장이란 얘기다.” 이런 사례는 지방 관광 활성화도 LCC를 통해서 도모해볼 수 있다는 시사점을 준다.

- 한국 항공산업은 현재 어떤 상황인가. “한국 항공산업은 1969년 대한항공 창립으로 시작했다. 데이터를 분석하면 20년 주기로 패턴이 바뀌며 성장해왔다. 이때마다 새로운 항공사가 시장에 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1988년엔 아시아나항공이 설립됐다. 2009년 무렵엔 제주항공이 등장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새로운 항공사가 시장에 자극을 준 거다. 지금까지는 잘해왔다. 항공정책이 일본과 중국보단 자유화된 덕이 크다.”

항공 전문가들은 남아 있는 LCC의 블루오션으로 아시아를 꼽는다. 일본과 중국의 항공정책은 어떨까. “일본은 상당히 관료적이다. 일본항공(JAL)이 지금은 민영 기업이지만 아직도 운영 행태는 국영기업이나 다름없다. 전엔 일본 항공기업 중 1위였지만 지금은 ANA보다도 시장점유율이 떨어질 정도다. 나리타-하네다 갈등도 문제다. 나리타는 국제선, 하네다는 국내선 하는 식으로 나뉘어 있지 않나. 소유와 운영이 이원화되어 있다 보니 서로 협조를 하지 않고 싸운다. 윈윈이 될 수 있도록 노선 조정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삿포로 주민들이 미국 갈 때 인천으로 와서 갈아타는 식의 현상이 일어난다. 인천공항이 커진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홍 교수는 공항 간 공조를 잘하는 예로 뉴욕을 들었다. “뉴욕엔 공항이 3개가 있다. 퀸스 지역에 존 F. 케네디국제공항, 라과디아공항이 있고, 뉴저지에 뉴어크리버티국제공항이 있다. 유기적으로 조절한다. 어느 쪽에 비행기가 몰리면 다른 쪽으로 나눠주는 식이다.세군데 모두 뉴욕 뉴저지항만공사가 운영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중국은 어떨까. “중국도 아직까지 유연하지 못하다. 동방항공, 남방항공, 에어차이나 모두 국영기업이나 다름없다. 의사결정 과정이 관료적이란 말이다. 이건 중요한 거다. 아직 우리한테 시간이 있단 얘기다. 우리가 빨리 LCC를 키워서 중국시장에 진출해야 한다.”

홍 교수는 항공산업을 단순히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만으로 보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항공업은 성장이 유망한 직종이다. 중국만 해도 앞으로 수요를 맞추려면 보잉 기준 비행기 4000대가 필요하다. 보잉이 중국 톈진에 생산공장을 세운 이유다. 미국은 항공자유화 이후 항공 리스업에 진출했다. 어마어마하게 커지고 있는 시장이다. GE는 2000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항공사에 빌려준다. 그러다 보니 항공사 비용 중 항공기 구매비용이 10% 미만으로 뚝 떨어졌다. 그만큼 진입장벽이 낮아졌단 얘기이기도 하다.”

항공업도 규모의 경제다. 결국엔 강자 위주로 재편되기 쉽다. 다른 나라의 항공사들은 어떤 전략을 쓰고 있을까. “전 세계 항공사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익을 내고 있다. 싱가포르 에어라인은 새 비행기를 사서 5년 후에 중고로 판다. 중고 시세가 제일 괜찮을 시점에 파는 거다. 항상 새 비행기로 운행을 하니 유지비용도 적게 든다. 최종 승자가 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구사한단 얘기다. 그런데 한국 국토부는 오히려 항공 면허 기준을 비행기 3대 보유에서 5대로 늘렸다. 규제를 없애기는커녕 늘리고 있다.”

홍 교수는 한국 항공산업과 관광산업이 같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으로 LCC전용 터미널 건설을 제안했다. “프랑스 보르도의 예가 있다. 파리에서 테제베로 2시간이면 보르도에 닿는다. 테제베가 개통되고 이용승객이 줄어들 걸 예상해 보르도공항에 아예 LCC 전용 터미널을 만들었다. 공항이용료를 30~40%로 낮췄다. 그만큼 항공사의 비용이 줄어들어 운임을 낮출 수 있다. 많은 항공사들이 보르도에 취항했다. 원래 보르도엔 파리에서 내려와 비행기를 타는 승객 정도밖에 없었다. 저가항공이 경쟁적으로 취항하니 공항 풍경이 바뀌었다. 마드리드, 런던 이런 곳에서 많이 들어오는 거다. 지역이 활성화되는 건 물론이다.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네트워크가 생긴단 얘기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대구공항에 저가항공이 취항하니 대구에서 블라디보스토크, 도쿄에 놀러간다. 반대로 그 지역에서 들어오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서울 중심 구도에서 벗어나는 거다.”

홍 교수는 경쟁이 혁신을 불러온다는 말을 반복했다. “사람과 물자의 이동 비용이 줄어들면서 문명은 발전해왔다. 규정상 불법이거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도 아닌데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막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미국 대학에 가보니,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축 중 하나가 대학 간 경쟁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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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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