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부터 풀어보자. 다음 예시들이 가정폭력에 해당할까, 해당하지 않을까?

1.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

2. 친정(본가) 식구와 연락하거나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

3. 항상 어디에 있는지 꼭 알려고 들었다.

4. 무시하거나 냉담하게 대했다.

5. 이성과 이야기를 하면 화를 냈다.

6. 바람을 피운다고 자꾸 의심하고 비난했다.

7. 병원에 가야 할 때는 허락을 받도록 하였다.

정답은 ‘해당한다’이다. 만일 부부 중 한 사람이 7개 항목 중에서 한 가지라도 한 적이 있다면 당신도 가정폭력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행동을 한 쪽이라면 가해자일 것이고 당한 경험이 있다면 피해자이다. 혹은 상호폭력일 수도 있다. 7개 항목은 여성가족부가 가정폭력 실태조사를 할 때 부부폭력의 유형 중 하나인 ‘통제’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이게 무슨 가정폭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가정폭력특별법이 시행된 지 딱 20년이 됐다. 1998년 7월 1일, 가정폭력은 ‘남의 집안 일’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며 국가가 개입해야 할 범죄행위로 규정, 가정폭력특별법을 시행했다. 특별법은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약칭 가정폭력 처벌법)’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약칭 가정폭력 방지법)’, 즉 처벌과 피해자보호로 이원화돼 있다. 법 테두리로 들어온 가정폭력은 20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부부폭력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여성가족부는 가정폭력방지법 4조2항에 따라 2004년부터 3년 단위로 전국가정폭력실태조사를 시행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부 사이에 발생하는 신체적 폭력은 2004년 15.7%, 2007년 11.6%, 2010년 16.7%, 2013년 7.2%, 2016년 3.7%로 크게 줄었다. 2000년 연세대 김재엽 교수가 우리나라 최초로 실시한 전국가정폭력실태조사의 34%와 비교하면 신체적 폭력은 10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 특히 2013년 박근혜 정부 들어 가정폭력을 4대 악 중 하나로 규정하면서 가정폭력은 중대 범죄라는 인식이 크게 확산됐다.

물리적 폭력 넘어 심리적 폭력으로

신체적 폭력이 줄었다고 우리 사회가 가정폭력으로부터 안전해졌을까. 폭력의 양상이 달라졌을 뿐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눈에 띄는 것은 정서적 폭력이다. 2016년 12.5%로, 2013년 36.1%에 비해 크게 낮아지기는 했지만 다른 폭력 유형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여기에 더해 주목해야 할 것은 가정폭력의 새로운 유형으로 등장한 ‘통제’이다. 가정폭력 상담 위탁기관인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부장은 “신체적 폭력에서 정서적 폭력이나 통제로 폭력이 이동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지난 6월 29일 가정폭력특별법 시행 20년의 성과와 과제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한 이서원 한국분노관리연구소장은 “가정폭력은 상대에 대한 지배와 통제행위이다. 신체적 폭력은 배우자를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배우자의 행동을 제약하고 제한하는 통제야말로 가정폭력의 본질이다”라고 지적하고 “가정폭력에 대한 시선이 물리적 폭력을 넘어 심리적 폭력으로 전환할 시기에 있다”고 주장했다. 가정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폭력의 본질인 ‘통제’를 중심으로 접근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실제 상담 사례를 봐도 상대에 대한 통제행위가 결국 신체적 폭력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례 1. 장모씨(남·50대)는 아내가 동창회 모임에서 외도했다며 모두 칼로 찔러 죽이고 자신도 죽겠다고 협박. 동창 모임에 함께 가기를 강요하는 등 아내의 모든 관계를 통제하려 들었음.

사례 2. 남모씨(남·30대)는 아내가 지인의 집에 있다고 하자 집에서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나갔다고 화를 내며 ‘칼을 들고 왔다, 들어가서 죽여버린다, 아이까지 죽이겠다’고 협박.

사례 3. 강모씨(남·50대)는 아내가 친정집에 자주 다닌다는 이유로 다투던 중 “망치로 친정집을 다 부수겠다”는 등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고 아내의 배를 차고 목을 조르는 등 폭행.

세 사례 모두 신체적 폭력은 행위로 나타난 결과이고, 결국 통제가 원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통제행위가 문제로 부각되면서 여성가족부도 2016년부터 전국가정폭력실태조사에서 통제 행동 부분을 수정, 통합했다. 앞에서 예시한 7개 항목은 WHO(세계보건기구)의 국제기준에 맞춘 것이다. 전국 19세 이상 남녀 600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통제 행동을 호소한 응답자는 37.7%에 달했다. 국민 3명당 1명 이상이 가정 내 통제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수치는 통제를 통한 가정폭력은 여전히 일상화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체적 폭력이 발생했을 때는 이미 피해자가 통제행위 등 심리적 폭력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높다.

가정폭력의 핵심 개념은 통제

영국과 미국은 이미 가정폭력의 핵심 개념을 폭력이 아닌 통제로 재정립했다. 이서원 소장은 “2015년 영국은 신체적 폭력이 없었다 하더라도 강압적이고 통제적인 행위가 반복되고 피해자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쳤을 경우 독립된 범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도 가정폭력은 ‘권력과 통제를 획득하거나 유지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학대적 행위의 패턴’으로 정의했다”고 전했다. “비난, 모멸감 등이 법적으로 유의미한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통제를 위해 사용되는 행위라면 가정폭력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통제는 사실 신체적 폭력보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이다.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48세의 주부 A씨는 사람 좋아하고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결혼 후에는 프리랜서로 인테리어 관련 일을 했다. 결혼생활 20여년 만에 A씨는 무기력하고 소심한 성격으로 변했다. 남편은 일 관계로 사람을 만나는 것부터 시작해 집안 살림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자신이 통제해야 직성이 풀렸다. 가전제품이나 물건을 사는 것도 늘 남편의 결정에 따라야 했다. 결혼 초기 반발도 해봤지만 후유증을 감당하기 힘들어 결국 포기했다. 최근에는 상담치료까지 받고 있는 A씨는 항상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 이런 사례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가정폭력 사건 발생 건수는 크게 늘었다. 2013년 1만6785건에서 2016년에는 4만5619건에 달했다. 가정폭력특별법 시행 이후 신고율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가정폭력은 사생활로 치부되고, 경찰이 개입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가정보호사건으로 법원에 송치된 사건 건수를 보면 1998년 235건에 불과하던 것이 1999년에는 10배가 넘는 2552건이었다. 2013년 ‘4대 악’이 된 이후 또 한 번 수치가 크게 뛰었다. 2013년 5699건이 2016년에는 2만1802건으로 늘었다.

문제는 불처분 비율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보호처분과 불처분 비율이 1998년에는 76 대 23에서 2016년에는 52 대 45가 됐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느끼는 심각성과 법의 잣대 사이에는 아직도 풀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여성단체들은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한 경찰의 미온적 대응, 높은 불처분율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더 강력한 처벌법을 요구하고 있다.

특별법 20년 동안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시스템은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다. 여성긴급전화 1366에서 24시간 상담을 하고 피해자 및 자녀를 위한 긴급 피난처와 쉼터를 제공한다. 법률, 의료기관 등과도 연계하고 쉼터 퇴소 후엔 주거지원도 하고 있다. 반면 가해자에 대한 교정 효과는 그에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 가정폭력 사건이 경찰에 신고되면 검찰에 송치된 후 가정보호사건으로 분류될 경우 가정법원으로 보낸다. 법원에서 보호처분을 내린 경우 상담위탁, 사회봉사·수강명령, 접근제한 등 8개 항목 가운데 필요한 처분을 내린다. 여기까지 통상 3개월이 걸린다. 가장 많은 처분은 상담위탁이다. 위탁기관은 전국 140여개 상담기관이다. 서울은 직장, 집 주소지 등을 고려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등 9곳 중 한 곳에서 상담치료를 받도록 처분을 내린다. 상담은 위탁기관별로 다르지만 20회 60시간을 권장하고 있다.

상담치료의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상담을 받은 가정폭력 행위자와 피해자 부부 117쌍을 대상으로 상담 효과를 조사했다. 상담 후 신체폭력 재발 여부를 묻는 질문에 행위자의 88.9%, 피해자의 69.2%가 재발하지 않았다고 했다. 폭력 재발방지 요인을 묻는 질문에는 행위자의 33.6%가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 25.4%가 ‘폭력에 대한 확실한 인식’, 23.1%가 ‘피해자에 대한 이해력 증진’을 꼽았다.

상담 프로그램이 재발방지에 효과가 있긴 하지만 행위자가 상담처분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불이행에 대한 강력한 법적 제재도 필요하고 상담의 전문성도 높여야 한다. 보호처분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다. 실제 8개 항목 중 가장 강력한 처벌인 감호처분이 내려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난 7월 2일, 대법원의 한 판결이 화제였다. 37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한 60대 여성이 상고심에서 징역 4년이 확정됐다. 계모임에서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로 머리채를 잡고 유리잔을 집어던진 남편의 머리를 장식용 돌로 수차례 내리쳐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였다. 남편이 방어권을 상실한 채 도망가고 있는 상태에서도 돌을 내리쳤다는 이유로 정당방위는 인정되지 않았다. 응급실까지 실려갈 정도로 남편의 폭력에 지속적으로 시달려왔던 아내의 공포와 분노는 법의 심판대 위에서는 설 곳이 없었다.

이 사건은 ‘정당방위냐’ ‘고의살인이냐’를 놓고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뤄진 1심에서부터 논란이 됐다. 정당방위이든 살인이든,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불행의 악순환은 가정폭력특별법이 시행되기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그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가정폭력의 본질을 바라보고, 거기에서부터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통제’에 대해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다시 기사의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7개 항목에서 과연 나는 자유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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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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