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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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5일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긴급 이사회를 열어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조기폐쇄와 신규 원전 4기의 건설 백지화를 결정했다. 당시 참석한 한수원 이사 12명 중 11명이 월성 1호기 조기폐쇄에 찬성했다. 최근 한수원은 회사 이름에서 ‘원자력’을 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지난 7월 6일 서울 상암동에서 김병기 한수원 노조위원장을 만나 월성1호기 조기폐쇄를 결정한 이사회와 ‘원자력’ 빠진 한수원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2001년 한수원 창사와 함께 조직된 노조는 현재 7000명 규모로, 1만 2000명 정도의 전체 직원 중 약 60%가 가입해 있다. 수력, 양수발전 분야에 종사하는 노조원이 600명이고, 나머지 6400명이 원자력발전 분야에 근무한다. 김 노조위원장은 2001년 초대 한수원 노조위원장을 맡아 3년간 노조를 이끌었고, 박근혜 정부가 실행한 공기업 성과연봉제에 맞설 ‘구원투수’로 2016년 상반기 다시 위원장으로 추대됐다. 현재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맞서는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김 노조위원장은 1982년 고리원자력본부에서부터 37년간 원전 분야에서만 일해왔다.

- 노조에서는 한수원 사측의 월성1호기 폐로 움직임을 알고 있었나. “알았다. 정확히 언제 어디서 이사회를 열 것이라는 건 몰랐지만.”

-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나. “이사회를 열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3일 전, 그러니까 6월 12일쯤 알았다. 그래서 13일에 긴급히 노조 전국 중앙위원회를 소집하고 대응책을 마련했다. 한수원 이사회는 원래 14일 오후 경주 본사에서 이사회를 열 계획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미리 회의실을 점거하고 봉쇄하자 15일로 시간을 연기하고 장소도 옮겼다. 처음에는 서울 상공회의소로 장소를 옮긴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도 파악하자 결국 서울 홍은동 호텔에서 이사회를 열었다.”

- 공식적인 창구로도 물어봤나. “물론이다. 공문을 보내서 이사회 계획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14일 오전까지도 ‘현재까진 계획이 없다’는 답이 왔다. 그리고 나서 사측은 오후에 이사회를 소집했다. 오후에 소집하고 이튿날 10시30분에 이사회를 열었다.”

- 그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가 될 만한 소지가 있었나. “이사회 규정을 어겼다. 원래 정기이사회는 7일 전, 긴급이사회는 24시간 전에 이사들에게 소집 통보를 해야 한다. 하지만 14일 오후에 이사들을 소집하고 15일 오전 10시30분에 이사회를 연 거니 규정 위반이다. 알고 지내는 이사 몇 명에게 물어보니 하나같이 ‘14일 점심 때까지 소집 통보를 못 받았다’고 하더라.”

- 이사회 개최 이후 노조원들의 반응은 어떤가. “심란한 정도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원자력 업계 종사자들은 벌어먹고 살려고 이 일에 뛰어든 것이다. 사측은 모르지만 원전 종사자들은 진짜 죽자 사자 일만 했다. 공사 기한에 맞추느라 한 달에 100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해왔고, 한때는 정말 집에서 옷만 갈아입고 다시 출근했다. 그런 원전이 한국의 경제 성장에 엄청난 역할을 했다는 건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런 우리가 왜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적폐’가 됐는지 모르겠다.”

- 노조 구성원들의 울분이 느껴진다. “원전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건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 종사자라고 생각한다. 내가 37년간 원전에서 일했는데 이게 위험하다면 여기서 일을 했겠나. 가족도 원전 최인접지의 사택에 있는데. 월성본부 근처에 사는 분들이 ‘소변에서 무슨 성분이 검출됐다’ 하곤 하는데, 그럼 그 안에 직접 들어가서 일하는 사람은 어떻겠나. 우린 들어가서 실제 방사선 맞으면서 일을 한다. 직접 기계를 만지고 정비하고 방사능 체크도 하는 것이 우리 일이다. 그런데 원전 밖에 있는 사람들이 ‘방사능에 피폭된다’ 하는 걸 보면 솔직히 안타깝다. 우린 1, 2년이 아니라 수십 년을 원전 내부 방사성구역에서 일해온 당사자들이다.”

- 핵연료를 다루는 원자력발전소에 대해서는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맞지 않나.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고, 실수가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 안전성에 위험이 있을 정도의 실수가 있고 그렇지 않은 실수가 있다. 운전으로 예를 들면 심각한 브레이크 고장, 음주운전 등은 사람 목숨으로 직결될 수 있다. 하지만 실수로 맑은 날에 와이퍼를 작동시킬 수도 있는데, 이런 건 안전하고 상관없지 않나. 그런 걸 두고 ‘너는 맑은날 와이퍼를 작동시켰으니 벌금이 5억원’ ‘실수로 라디오를 켰으니 벌금이 10억원’ 이런 식으로 제재를 한다면 운전을 어떻게 하겠나. 설비 개선도 못 한다. 괜히 개선을 시도하다 고장나면 엄청난 과징금을 받으니까. 직원들이 사기가 떨어진 상태에서 설비 개선도 더 하지 않고 원전을 운영한다면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다.”

- 정부는 국내에서 탈원전을 추구하면서도 해외에는 원전을 적극 수출한다는 입장이다. “앞뒤가 안 맞는다. 쉽게 얘기하면 ‘난 우리 자동차 불안해서 못 타는데, 넌 우리 차 타’라고 하는 격이다. 모순이다. 미국이 TMI원전사고 이후에 1980년대부터 그런 식으로 외국에만 원전을 지었다. 결국 인력, 연구개발, 공급망과 연쇄 사슬이 모두 노후화됐다. 이제 다시 원전을 지으려 해도 사람도, 공급망도, 기자재 업체도 없다.”

- 한수원 노조의 현재 최우선 목표는 무엇인가. “노조는 조합원의 생존권이 가장 우선이다. 탈원전 정책이 계속되면 인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우리는 원전 정책이나 에너지 정책을 공론화에 맡기자는 입장이다. 일방적으로 탈원전을 할 것이 아니라, 왜 탈원전을 해야 하는지 지난번 신고리 5·6호기 건설 문제를 공론화한 것처럼 전문가를 모아 공론화하자는 입장이다. 신고리 5·6호기는 법에 의해 승인받은 건설 건을 공론화에 맡긴 건데, 대통령 공약이라고 해서 상위의 법에서 승인받은 사항을 정지시키고 공론화에 맡긴 것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 2013년 한수원에 대규모 납품비리가 있었다. “그 부분에 있어선 우리 한수원 노조도 반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11년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이 일어난 뒤에 급격히 발전 용량을 충원하는 과정에서 원전 건설도 빠르게 승인이 났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의 불안감이 상승한 것이 사실이다. 그 측면을 잘 설명하고 말씀드려야 했는데 그 부분이 미흡했다. 원전 납품비리 등의 측면에서 잘못한 건 반성하고 개선해야 한다. 특히 안전성이 중시되는 원전이라는 분야에서 비리가 발생한다면 일벌백계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본질은 아니다. 안전이 본질이지 비리가 본질이 아니다. 일부 비도덕적인 사람들의 납품비리가 있었다고 해서 원전 종사자들을 모두 불안하게 보는 시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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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max@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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