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형 인공관절 수술 로봇 마코를 이용해 수술 집도 중인 궁윤배 세란병원 인공관절센터 부장.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최신형 인공관절 수술 로봇 마코를 이용해 수술 집도 중인 궁윤배 세란병원 인공관절센터 부장.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7월 23일 오전 10시10분, 수술실 문이 열렸다. 약품과 함께 피와 살 냄새가 비릿하게 퍼졌다. 닳아버린 무릎관절을 절개하고 인공관절로 바꿔 넣는, 무릎 인공관절 수술이 진행 중인 수술실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무릎 인공관절 수술이라고 부르는 슬관절 치환술은 2016년 한 해에만 6만5229건이 이뤄졌다. 한국에서 가장 자주 이뤄지는 수술 중 하나로 수술 건수가 제왕절개 분만 횟수보다 많다. 2000년대 들어서 내비게이션과 로봇을 이용한 수술 방법이 개발되면서 정확도와 안전성이 높아져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술 중 하나다.

그러나 이날 수술에는 다른 6만건의 수술과 확연히 다른 부분이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가 환자를 둘러싸고 있는 수술실 한쪽에 놓인 로봇이다. ‘마코’라는 이름의 로봇은 수술실이 아니라 제조업체 작업장에서나 볼 법한 외향을 가지고 있다. 집도의인 궁윤배 세란병원 인공관절센터 부장이 마코의 머리 부분을 오른팔로 잡고 수술대 위로 끌고 왔다. 마치 로봇팔을 장착한 아이언맨 같은 모습으로 드러난 무릎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외과수술이라면 날카로운 칼과 드릴이 내는 소음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편견은 금세 깨졌다. 수술실 귀퉁이에서 방 전체를 지켜보듯 자리 잡은 모니터 앞에 수술 보조 간호사가 서서 연신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었다. 궁윤배 부장은 마코를 로봇팔처럼 오른팔에 끼고 무릎뼈 한 곳 한 곳을 눌러가며 눈앞의 커다란 모니터를 주시했다. 삑삑거리는 전자음이 들릴 때마다 모니터 안에서는 무릎관절의 모양이 3D로 드러났다. 환자의 무릎 부분은 반 뼘 정도만 절개했을 뿐인데 모니터에 비치는 무릎관절 모양은 마치 뼈를 꺼내서 보는 듯 앞, 뒤, 옆 360도로 생생했다.

궁윤배 부장은 힘 없이 펼쳐져 있던 환자의 다리를 굽혔다.

“이렇게 계속 뼈의 모양을 잡는 이유는 마코 로봇이 기존의 로봇과 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있으면 인공관절이 대체할 원래 무릎뼈를 절삭하기 시작할 건데, 기존의 로봇은 다리를 편 상태에서 얼마만큼 절삭할 건지를 미리 정해두고 그에 벗어나지 않게 절삭합니다. 내비게이션은 절삭할 뼈를 보면서 변경할 수 있는데 딱 정해진 틀에 맞춰서 절삭합니다. 마코는 둘의 단점을 모두 보완한 형태입니다. 이렇게 굽혔다 폈다 달라지는 뼈를 3D로 모양을 다 잡아서 정해진 틀 없이 때에 따라서는 입력해둔 것을 수정해가며 절삭할 수 있습니다.”

알 듯 말 듯한 이야기를 하던 궁윤배 부장이 시범을 보이듯 마코의 머리 부분에 뼈를 잘라낼 수 있는 날을 붙였다. 시선은 커다란 모니터에 두고 무릎뼈를 깎아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리를 편 채로 무릎뼈를 깎아내던 궁 부장은 무릎을 굽혔다 폈다 왼쪽으로 돌렸다 하면서 여러 방향으로 마코를 움직였다. 마코의 날이 뼈 위를 지날 때마다 모니터 속에서 녹색으로 표시되던 절삭면이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화면에 비치는 무릎뼈 모양도 360도로 이리저리 변했다.

화면에서 녹색이 완전히 사라지자 궁 부장은 환자의 다리를 두 손으로 들었다. 화면에 각종 수치가 환자의 무릎이 움직이는 대로 변했다.

“18㎜, 17㎜입니다.” “2도, 1도, 0도.”

모니터에 뜨는 숫자를 부르는 의료진들의 목소리가 사뭇 진지했다. 무릎을 펼쳤다 굽혔다 숫자를 맞추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무릎이 비틀어지지 않는 각도, 0도를 맞추는 과정이다. 무릎이 수평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뼈의 길이도 맞춰야 한다. 한동안 모니터에만 집중하던 궁윤배 부장은 수술이 끝나고 나서 이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이전까지 무릎 인공관절 수술은 뼈를 절삭하기 전에 정해둔 수치대로 절삭해야 했습니다. 정해진 자세, 정해진 수치대로요.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무릎을 한 자세로만 쓰는 게 아니잖아요. 무릎 뼈 사이 각도가 1, 2도만 차이가 나도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로봇수술은 수술 중에 이걸 체크하기 어려웠습니다. 막상 수술하고 나니 각도가 맞지 않아 여전히 불편함을 호소하는 환자가 있었던 이유입니다.”

궁 부장의 비유대로 설명해보자. 인공관절을 ‘문틀’이라고 하고 환자의 무릎을 ‘문’이라고 한다면 기존의 내비게이션이나 로봇수술은 방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문틀에 문을 맞추는 형태로 진행됐다. 그러나 마코 로봇은 문에 문틀을 맞추는 방식이다. 문틀이야 둥글게 깎이더라도 문이 잘 열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 그러니까 실시간으로 환자의 무릎 형태를 관찰하고 그에 맞게 조종이 가능한 최첨단 로봇이 바로 마코인 셈이다.

기존의 로봇수술은 의사보다 로봇이 하는 일이 더 많았다. 그러나 마코는 좀 다르다. 마코 로봇을 이용한 수술의 정식 명칭은 ‘마코 로봇 보조 기술(Mako Robotic-Arm Assisted Technology)’로 말 그대로 로봇이 의사의 움직임을 보조해주는 것이다. 마블의 수퍼히어로 ‘아이언맨’의 로봇팔이 아이언맨의 조종에 따라 레이저를 쏘기도 하고 주먹을 쥐기도 하는 것처럼 ‘아이언 닥터’에게 마코는 의사의 손놀림을 더욱 정확하고 안전하게 하는 보조장치로 활용이 된다.

의료 신기술이 병원에 도입되기까지

2시간에 걸친 수술이 끝나고 궁윤배 부장을 진료실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 마코 로봇을 처음 도입해 무릎 인공관절 수술에 활용하고 있다. 궁 부장이 마코 로봇을 처음 들여온 것은 아니다. 마코는 세브란스병원에서 임상실험을 마친 상태다. 본격적으로 수술실에서 사용한 것이 궁 부장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처음이지만 미국에서는 최근 대세가 돼버린 것이 마코 로봇이다.

마코 로봇은 2016년 8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준을 받아 출시된 지 갓 2년이 된 최신형 로봇이다. 그러나 기존의 내비게이션, 로봇수술의 단점을 보완한 형태라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500대 넘게 설치되었고 한국에도 2015년 11월 처음 세브란스병원에서 임상 연구를 시작했다.

“무릎관절 수술을 하는 의사들에게 좋은 기계란 정말로 중요합니다. 예전에는 어떤 인공관절을 삽입하느냐에 따라서도 수술의 질이 달라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연구가 이뤄져 이제는 인공관절 자체에는 큰 차이가 없는 상황입니다. 대신 얼마나 정확하고 환자에게 적합한 수술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저 인공관절을 끼워 넣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환자의 무릎근육이 앞으로 얼마나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움직일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기술은 언제나 무릎관절 수술을 하는 의사들의 관심거리였다. 인공관절 수술 자체가 삶의 질과 관계가 있는 수술이기 때문에 수술 예후(豫後)를 더 좋게 만드는 일이 중요했다. 궁윤배 부장 역시 마코 로봇 소식을 듣자마자 어떤 기술인지 무엇이 달라졌는지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코 로봇에 대한 소식을 전해듣자마자 외국에서 열리는 학회에도 참석하고 참관하기도 했습니다. 로봇에 대한 확신이 서자 곧 로봇을 들여오는 일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비용도 문제이지만 최신 기술에 대한 신뢰가 적은 것도 문제였다. 아무리 기존의 단점이 보완된 최신 기술이라고 해도 사용하는 의사의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또 그에 대한 환자의 신뢰가 없으면 사용하기 어렵다. 다행히 환자들은 최신 기술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

“지난 6월 말에 처음 들여와 20명 남짓 환자를 수술해봤는데 환자들 역시 저를 믿고 따라줬습니다. 덕분인지 예후가 뛰어나 예전의 로봇수술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른 무엇보다 제가 그동안 미진하게 생각해왔던 부분을 보완해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개인적인 만족감도 큽니다.”

궁윤배 부장은 운이 좋은 편이다. 그가 신기술을 빨리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마침 마코 로봇을 시범 가동한 곳이 그의 출신 대학 병원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몸담은 세란병원의 병원장 역시 최신 기술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마코 로봇이 사용 승인을 빨리 받을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지난 7월 19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발표 현장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에 힘을 실은 것은 의료 분야에 신기술이 빨리 도입되지 않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사실 의료기기 분야는 다른 어떤 기술 분야에 못지않게 빠르게 변화·발전하는 분야 중 하나다. AI, 3D 프린팅, 로봇 같은 신기술이 적극적으로 도입된다. 한번 자리 잡으면 전 세계로 확산되는 확장성 높은 기술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의료 신기술은 유독 도입이 느린 분야 중 하나다. 완전히 새로운 의료 기술, 그러니까 신의료기술이라고 부르는 기술이 병·의원에서 급여를 인정받고 환자에게 쓰이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식품의약안전처에서 사용허가를 받고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해 평가를 받으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넘어가 급여 적정성과 경제성을 확인받아야 한다. 이 과정이 최소 2~3년, 길게는 4~5년은 걸린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만성질환자의 투약 부작용과 투약량을 줄여줄 수 있는 기술이 있습니다. 환자들이 먼저 원하는 기술이죠. 그러나 벌써 5년 가까이 신기술로 인정받지 못해 필요한 환자들이 비급여로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전문가인 의사들이 먼저 전화가 와 아직 급여로 인정받지 못했냐고 물어오곤 하죠.”

한 의료기기 업체 관계자는 안전성과 재정건전성을 생각해보면 의료기기 분야에서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이해가 간다면서도 “지나치게 오래 걸리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특히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삶의 질을 높여주는 기술일수록 더 그렇다. 서울 시내 대학병원의 한 신경외과 전문의는 “현대의 의료기술은 삶과 죽음의 영역을 가르는 것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영역에 와 있는데, 규제가 이런 발전 방향을 가로막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신의료기술이 도입된 현장에서 환자들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 궁윤배 부장에 따르면 마코 로봇은 다른 기술에 비해 더 빠른 수술시간, 더 합리적인 비용절감 같은 장점은 갖고 있지 않다. 대신 더 정확한 수술, 안정적인 예후를 보장해준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의사들이 요즘 신기술을 바라보는 관점은 속도나 비용에 대한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환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수술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그게 신기술을 도입하는 목적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술이 그만큼 따라오고 있지요. 아마 마코 로봇은 내비게이션이 그랬던 것처럼 무릎관절 수술의 대세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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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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