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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2519호] 201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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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보물선 소동 원조는 일본

잊을 만하면 ‘보물 찾기’로 들썩 다양한 전설… 관련 책만 수백 권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지난 5월 말, 필리핀 북부 루손 지방의 카포네스섬에서 벌어진 뉴스가 일본 전역에 퍼졌다. 일본인 4명과 필리핀인 14명 체포 소식이었다. 죄명은 ‘무단 굴 파기’. 인적이 드문 밤을 이용해 허가 없이 폭 5m, 깊이 6m 정도의 굴을 파다가 경찰에 체포됐다는 소식이었다.
   
   일본인이라면 ‘필리핀에서의 굴 파기’란 얘기를 듣는 순간 어떤 상황인지 금방 이해한다. 그 유명한 야마시타(山下) 보물이 또 소동을 일으켰을 것이라는 짐작들을 하는 것이다. 야마시타 보물은 일명 ‘야마시타 재보(山下財宝)’라 불리는 도시 전설(Urban Legend). 일본에서는 각 지역마다 진위 여부가 애매한 독특한 전설이 전해져오는데 그중 하나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이 미얀마 등지에서 모은 엄청난 금괴를 필리핀에 묻어놓았다는 얘기다. 당시 일본군은 전쟁이 끝난 뒤 필리핀에 숨겨놓았던 금괴를 일본으로 옮겨갈 생각이었지만, 은닉작전을 수행했던 책임자들이 전범으로 처형되면서 허공에 뜨게 됐다는 것이 야마시타 재보 전설의 줄거리다.
   
▲ 일본 야마시타 보물 전설의 주인공인 야마시타 도모유키. 태평양전쟁 당시 동남아시아 지역 최고사령관으로 미얀마 등지에서 모은 금괴를 숨겨놓은 것으로 전해져왔다.

▲ 일명 야마시타 골드로 불리는 2차대전 전시용 비상 금화. 야마시타 보물의 대부분이 야마시타 골드일 것으로 추정된다.

   쏟아지는 보물선 전설
   
   한국이 난데없는 보물선 소동을 일으킨 돈스코이 사건으로 떠들썩하지만 사실 보물선 소동의 원조국은 일본이다. 일본은 보물 관련 전설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나라다. 일본 열도는 물론 인근 바다와 동남아의 밀림까지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단순히 숨겨진 보물 찾기 소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은 액수지만 실제로 보물을 찾아낸 성공담도 적지 않다. 관련 책이나 자료도 엄청나다. 아마존닷컴 재팬에 들어가 숨겨진 보물을 뜻하는 ‘매장금(埋蔵金)’이나 ‘재보(財宝)’를 키워드로 치면 약 300건의 책이 등장한다.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의 보물 전설 지도에서부터 보물 찾기 요령에 관한 책까지 다양하다. TV도 질세라 연예인을 통한 보물 찾기 프로그램 제작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보물 전설이 깃든 지역에 실제로 가서 땅을 파고 보물을 찾는 내용들이다. 한 가지를 깊게 파는 오타쿠(オタク) 문화의 나라답게 보물 매니아도 넘쳐난다.
   
   한국의 돈스코이호 사건과 관련해서도 잠시 일본이 등장했었다. 돈스코이호가 1932년 ‘보물선을 사냥하는 일본’이라는 뉴욕타임스 기사에 등장했던 그 배라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확인 결과 1932년 11월 28일자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동해에서 발견된 돈스코이호 관련 기사가 아니었다. 동해가 아니라 쓰시마섬이 기사가 다룬 보물 발굴 현장이었다. 돈스코이호에 실렸다는 5000상자, 200t의 금괴는 시가 150조원어치로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소유였다는 게 정설처럼 굳어져 있다.
   
▲ 최근 보물선 소동을 일으킨 돈스코이호가 동해에 가라앉아 있는 장면. 돈스코이호에는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소유였던 200t의 금괴가 실려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심심하면 화제가 되는 야마시타 보물의 경우 매장 규모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최소 775㎏에서 최대 수십t까지 거론된다. 돈스코이호의 200t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일본인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큰 규모다. 보물 이름에 야마시타란 이름이 붙은 것은 태평양전쟁 당시 동남아시아 지역 최고사령관 ‘야마시타 도모유키(山下奉文)’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는 1942년 개전 당시 필리핀 주둔 미군사령관이었던 맥아더를 쫓아낸 인물이었다. 이른바 ‘말레이시아의 호랑이’로 불리던 육군대장으로 보물 은닉을 지시한 핵심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전쟁이 끝난 뒤 1급 전범자로 지목돼 필리핀 현지 군사재판을 통해 사형에 처해졌다.
   
   
   야마시타 보물 필리핀도 들썩
   
   원래 야마시타 보물은 일본 내에서만 떠돌던 도시 전설이었다가 1992년을 기점으로 세계적 전설로 확산됐다. 전설을 확산시킨 주역은 필리핀 전 대통령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다. 이멜다는 부정축재 혐의에 몰리는 과정에서 자신이 소유한 거액의 출처가 야마시타 금괴라고 주장했었다. 이멜다는 자신이1945년 마르코스와 결혼할 당시 이미 야마시타 금괴를 발굴한 상태로, 1960년대 필리핀이 어려울 때 달러로 바꿔 국가경제에 활용했다고도 말했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얘기지만, 흥미롭게도 이멜다의 주장에 대해 필리핀 정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정부의 애매한 대응에 힘입어 당시 필리핀 국민들 중 상당수가 이멜다의 주장을 진짜로 받아들였다.
   
   이후 야마시타 보물 찾기 붐이 전국화됐고 필리핀 정부는 아예 보물 찾기 규정까지 만들었다. 보물 찾기에 나설 경우 반드시 신고를 해야 하고 수수료도 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보물을 찾았을 때 어떤 비율로 나눠 가질지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도 법제화됐다. 예를 들어 공유지에서 발견될 경우 정부가 75%, 발굴자가 25%로 나눠 갖고 사유지일 경우에는 정부가 30%, 발굴자가 70%를 갖는다는 식이다.
   
   전쟁은 보물 전설을 만들어주는 최적의 환경이자 조건이다. 야마시타 보물만이 아니라 크고 작은 보물 전설이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점령지에서 탄생됐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유명한 태국 서부 칸챠나부리 지방의 보물 전설도 그중 하나다. 2014년 5월 11일 태국인 4명이 칸챠나부리국립공원 내 동굴에서 체포되면서 알려진 전설이다. 당시 태국인들은 일본군이 숨겨둔 보물을 찾으려 길이 30m의 굴을 파던 중 체포됐다. 태국에서의 일본군 보물 스토리는 전설을 넘어선 ‘역사적 팩트’로 자리 잡은 상태다. 어디인지 모를 뿐 일본군이 엄청난 금괴를 태국 어딘가에 숨겼다고 다들 확신하고 있다. 물론 보물 관련 세세한 정보들을 퍼뜨린 사람들은 모두 일본인 매니아들이다. 태국의 보물 전설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대단한가는 총리가 직접 보물 찾기에 나선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2001년 당시 탁신 총리의 진두지휘하에 칸챠나부리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보물 찾기 작업이 이뤄졌다.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지만, 태국인 대부분은 아직도 일본군 보물을 믿고 있다.
   
   
   발굴 과정 TV 중계도
   
   일본 내 보물 전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도쿠가와 보물(德川埋蔵金)이다. 1990년대 TV를 통해 발굴 과정이 직접 방송돼 화제가 됐다. 당시 둘레 400m, 깊이 50m에 이르는 초대형 굴을 팠지만 결국 보물 찾기에는 실패했다. 당시 방송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역사적 배경이나 갖가지 증거들을 종합해 볼 때 존재 가능성이 가장 높은 보물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도쿠가와 보물은 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明治) 천황이 실권을 잡는 과정에서 탄생됐다. 1867년 천황에게 통치실권을 양도한 막부가 훗날 재기를 위해 막대한 군자금을 모아뒀다는 것이 도쿠가와 보물의 줄거리다. 당시 통치자금으로 활용되던 금괴를 모아 모처에 숨겼다는 얘긴데 250년간 지속된 도쿠가와 막부의 정부 운용 자금 규모를 고려할 경우, 약 200조엔 정도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 엄청난 보물이 정확히 어디에 숨겨져 있느냐는 아직 수수께끼다. 가장 유력하게 지목된 곳은 군마현(群馬県)의 아카기산(赤城山) 주변이다. 도쿄에서 북쪽으로 150㎞로 떨어진 산악지대다. 국립공원을 끼고 있는 원시림의 고지대로 가로 세로 30㎞에 달하는 광범위한 지대다. 이곳이 맞다고 하더라도 발굴 가능성은 해변가에서 바늘 찾는 식이다.
   
   도요토미 보물(豊臣埋蔵金)도 유명하다. 도쿠가와 보물과 더불어 일본 보물 전설의 양대산맥이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남긴 보물 이야기인데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인 1598년이 배경이다. 당시 병사한 도요토미가 죽기 전 두 자식에게 남겨줄 재산을 미리 정리하면서 전국 광산에서 끌어모은 황금 4억5000만량을 어딘가에 보관했다는 줄거리다. 현재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2조엔 정도의 규모다. 전설에 따르면, 당시 도요토미는 전국 21곳에 황금을 분산해 보관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이후 도요토미 가문이 도쿠가와에게 패하면서 보물의 행방도 묘연해졌다.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도요토미 보물이 재등장한 것은 1945년 2차 대전 이후였다. 21곳에 분산된 황금에 관한 지도가 ‘우연히’ 발견되면서 일본 전역이 흥분에 휩싸였다. 일본 내 신문·방송 모두가 보물 찾기 뉴스 경쟁에 나섰다. 전쟁 패배 의식에 젖어 있던 일본인에게 던져진 희망찬 뉴스로 여겨지면서 모두를 들뜨게 만들었다. 결국 사실과 다른 가짜 지도로 판명됐지만, 이후에도 도요토미 보물은 일본 도시 전설의 중요 소재로 줄기차게 활용된다.
   
   한국에도 일본과 비슷한 도시 전설이 있다. 부산 문현동 금괴 200t 스토리다. 이미 수십 년간 되풀이되고 있는 이 보물 전설 역시 일본군이 주인공이다. 태평양전쟁 패전 직전, 중국에서 금괴를 옮기던 중 부산 문현동 어딘가에 묻었다는 내용인데 이를 쫓는 보물 매니아들이 한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일확천금 노다지에 대한 기대와 확신은 인간이 가진 본능 중 하나일지 모르겠다. 본능은 사라지지 않는다. 발굴 여부와 상관없이 보물 전설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발굴 보물들
   
   전설의 야마시타, 도쿠가와, 도요토미 보물 외에 일본에는 실제 발견된 보물도 많다. 대표적인 것들을 추려봤다.
   
   1. 도쿄 긴자(銀座)의 고마쓰 보물(小松埋蔵金)
   현재 도쿄 긴자 유니클로 매장이 들어선 빌딩 아래서 발견된 보물. 1956년 건물 증축 과정에서 우연히 발굴됐다. 금괴와 에도 당시 돈이 대거 발굴됐지만, 무형문화재로 간주돼 국가에 반납했다. 현재 도쿄국립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2. 야마가타 시라타카초(山形 白鷹町) 보물
   1961년 발굴된 금은 주화.
   
   3. 도쿄 신가와(新川) 보물
   1963년 건물 개축 과정에서 각종 주화 7만8000개가 발견됐다. 현 시가로 약 10억엔 정도.
   
   4. 야마가타 가쓰누마초(山梨 勝沼町) 포도원 보물
   1971년 발굴된 2차대전 군사용 지폐 5000매. 발굴 보물 중 일부는 현지 미술관에 1억엔에 팔려 현재 전시 중이다.
   
   5. 후지 오야베시(富山 小矢部市) 보물
   2002년 발굴된 것으로 메이지 당시 통화를 비롯해 현재 시가로 4500만엔어치의 보물이다.
   
   6. 사이타마 나가도로초(埼玉 長瀞町) 보물
   2002년 배수로 공사 도중 발굴된 황금 주화 3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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