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순수 우리 기술로 건조한 해양과학조사선을 투입해 인도양 심해(深海)에서 ‘열수분출공’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이 심해에서 열수분출공을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햇빛조차 닿지 않는 차갑고 어두운 심해에서는 눈이 퇴화한 이름 모를 심해어도, 새우와 말미잘도 생생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해양과학조사선 ‘이사부호’ 활약

지난 7월 26일,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원장 김웅서)은 인도양 북쪽 2000m 심해에서 새로운 열수분출공(열수공)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한국형 해양과학조사선 ‘이사부호’를 이용해 2017년부터 인도양의 중앙해령대를 탐사하다가 올해 5월경 수심 2020m에서 열수공 지역을 발견했고, 6월에 열수공 주변의 다양한 생물 채집과 환경 자료를 확보한 후 여러 추가 조사를 거쳐 이날 공식 발표하게 되었다는 게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손승규·김동성 연구팀의 설명이다.

새로운 열수공의 이름은 ‘해양과학기술원 열수공’이라는 의미의 ‘키오스트 벤트 필드(KIOST Vent Field·KVF)’. 열수공은 말 그대로 뜨거운 물이 솟아나오는 구멍을 말한다. 해저 화산활동으로 인해 300도가 넘는 뜨거운 물이 검은색 연기처럼 솟구쳐 오른다.

바다는 깊숙이 들어갈수록 수온이 점점 낮아진다. 수온을 올려줄 햇빛이 닿지 않기 때문이다. 수심 1000m로 깊이 들어가면 수온이 1~2도에 머물 정도로 차갑다. 그런 심해에서 열수공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해저 지각의 틈새로 바닷물이 스며들어 마그마와 닿으면서 가열된다. 이때 주변의 구리, 철, 아연, 금, 은, 유황, 망간 같은 금속성분이 녹아든다. 이러한 성분의 뜨거운 바닷물은 다시 지각의 틈새로 솟아오르는데, 이 과정에서 뜨거운 물이 주변의 찬물과 만나게 돼 물속에 녹아 있던 금속이온이 침전하면서 열수공이 만들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침전물은 점점 쌓여 열수공의 높이가 굴뚝처럼 수십m에 이르는 것도 있다.

대기압에서 물은 100도가 되면 끓어 수증기로 변한다. 하지만 수압이 높은 심해에서는 끓는점이 더 올라가기 때문에 300도라는 높은 온도에서도 끓지 않아 기체가 아닌 액체 상태로 뿜어져 나온다. 수압은 수심이 10m 깊어질 때마다 1기압씩 높아지므로 2000m 깊이에서는 200기압까지 올라간다. 이는 지상에서 느끼는 기압의 200배나 되는 무게로, 손바닥에 무게 3t인 코끼리 약 7마리를 올려놓은 것과 맞먹는다.

한국의 인도양 열수공 발견은 일본,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다. 인도양은 열수공이 드물어 그동안 발견된 것은 3개뿐이다. 주로 태평양에서 많이 발견됐고, 대서양에서도 10여개 발견된 상태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팀이 발견한 열수공은 이미 발견된 3개의 열수공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기존의 장소가 아닌 독자적 위치에서 열수공을 발견한 것이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이번 발견으로 심해 연구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인도양에서 열수공 발견에 절대적 역할을 한 것은 해양과학조사선 이사부호다. 이사부호가 없었다면 이번 발견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연구팀은 말한다. 이사부호는 해양수산부가 2010년 4월부터 6년7개월 동안 총 1067억원을 투입해 만든 조사선으로 길이 100m, 폭 18m에 이르는 5000t급 대형 선박이다. 한 번에 최대 1만해리(1만8520㎞)를 55일간 항해할 수 있고, 해저 8000m까지 탐사가 가능하다. 한국은 세계에서 8번째로 5000t이 넘는 대형 해양과학조사선을 보유한 나라다.

이사부호는 바다 위의 대형 연구실이나 다름없다. 깊은 바닷속을 고화질로 촬영할 수 있는 ‘심해 영상카메라’를 비롯해 바다 밑바닥의 퇴적물, 생물 시료 등을 긁어내 채취·관측하는 ‘TV그랩 센서 관측기’ 등 40여종의 최첨단 연구 장비들이 갖춰져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팀이 열수공을 발견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심해 영상카메라를 통해서다. 또 굴착장비인 ‘TV그랩 센서 관측기’를 해저로 내려보낸 덕분에 열수공 지역의 흙과 돌, 각종 생명체를 대량으로 퍼 올리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해양과학조사선 이사부호 ⓒphoto KIOST
해양과학조사선 이사부호 ⓒphoto KIOST

미지의 생물들 득실거려

언뜻 생각하기에 고온고압의 열수공 주변에는 생명체가 도저히 생존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곳은 뜻밖에 생물자원이 풍부하다. 눈과 소화관이 없는 새우, 길이가 2m나 되는 관벌레, 25㎝ 크기의 조개, 흰색 게 등이 득실거리고, 미지의 생물들도 엄청 많다. 수많은 생물이 독자적으로 진화하며 살고 있는 열수공 주변은 심해의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그렇다면 햇빛이 닿지 않는 어둠의 세계에서 생물들은 어떻게 에너지를 얻으며 살아갈까. 이들 생물은 햇빛을 이용하는 광합성 생태계와 달리 화학에너지를 연료로 하여 생존하는 놀랄 만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그 비밀은 황화박테리아와의 끈끈한 공생에 있다.

예를 들어 소화기관이 없는 관벌레의 경우, 자신의 몸속에 자리 잡고 사는 황화박테리아에게 황화수소를 공급한다. 대신 황화박테리아는 황화수소를 산화시킬 때 나오는 에너지로 탄수화물(영양물질)을 만들어 관벌레에게 제공한다. 소화기관이 없어도 관벌레가 살 수 있는 이유다. 마치 식물이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광합성을 하여 만든 영양물질로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화학합성으로 열수공의 생태계를 부양하는 셈이다.

황화수소 같은 독성물질로 가득 찬 심해의 열수공에 태양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 생태계가 있다는 사실은 생물학의 역사를 다시 쓰고도 남음 직한 놀라운 발견이다. 과학자들은 열수공의 환경이 지구에 생명이 태어났을 때의 원시바다 환경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열수공의 생태계를 연구해 지구에서 생명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비밀을 풀려고 한다. 과학자들이 지금도 심해를 뒤지며 열수공을 탐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열수공 생물 중에는 우리가 산업적으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새롭게 발견된 열수공 생물체를 통해 신약 개발을 위한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미국은 열수공에서 발견한 신종 생물에서 10여종의 새로운 항암 및 면역 관련 물질을 찾아내 신약 개발에 사용했다. 일본은 열수공 생물의 효소로 당뇨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팀이 확보한 생물 중 새로운 생명체는 적어도 2〜3종, 많을 경우 10종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연구팀은 이들 생물을 이용해 다양한 연구를 지속할 예정이다. 바다 깊은 곳에서 또 다른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인도양 열수공의 신종 생물들을 통해 신약 개발은 물론 지구 생명체 탄생의 비밀이 벗겨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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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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