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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2520호] 201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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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에 부는 女風 히잡 벗길까

노석조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 전 조선일보 예루살렘·카이로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히잡을 쓰고 운전을 하는 여성.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6월부터 여성에게도 운전면허증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photo 뉴시스
중동 여성들이 기지개를 켜는 것일까? 여성 인권 후진 지역으로 꼽히는 중동에서 최근 희소식이 속속 들려온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다.
   
   먼저 튀니지의 첫 여성 시장 탄생 소식이다. 지난 7월 3일 선거에서 튀니지 이슬람주의 정당 엔나흐다의 후보 수아드 압델라힘(54)이 튀니스 시장에 당선됐다. 여성이 시장이 된 것도 처음인데, 작은 도시도 아닌 수도 튀니스의 시장에 당당히 선출됐다. 그는 당선연설에서 “이 승리를 튀니지 모든 여성에게 바친다”고 했다. 이날 승리는 그의 개인적인 성취나 한 도시만의 뉴스가 아니었다. 튀니지 그리고 더 나아가 아랍·중동·이슬람세계를 향해 ‘이제 변할 때가 됐다’는 메시지였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가 시장이 되는 과정은 중동 여권 발전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1964년 중부 작은 마을 마투이아에서 태어났다. 튀니지를 비롯해 아랍 전역에선 아랍민족주의 물결이 거세게 일던 때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 반정부 학생 운동을 했다. 아랍인이자 무슬림(이슬람 신자)으로서 그는 이슬람주의 세력을 탄압하는 세속 정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위를 하다 체포돼 보름간 감옥생활도 했다. 하지만 열렬 학생이던 그도 결국 운동을 접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튀는 여성’이 차지할 자리는 운동권 내에도 없었다. 그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약사가 됐다. 결혼도 하고 두 아이를 낳아 길렀다. 의약품 도매업을 하며 중산층 이상의 삶을 일궜다. 여성이 정치인이 되긴 어려웠지만, 전문지식이 있으면 학계나 비즈니스 분야에 진출할 기회가 있었다. 그렇게 20여년을 살았다.
   
   그가 정계에 발을 들인 건 ‘재스민(튀니지 국화 이름)혁명’이 일어나면서다. 2010년 말 튀니지에선 공권력의 괴롭힘에 시달린 한 청년 노점상의 분신 사건을 계기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시위는 나라 전역으로 퍼져갔고, 결국 이듬해 초 독재자 벤 알리 대통령이 물러났다. 20년의 장기집권이 막을 내렸다.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은 이웃 나라에도 영향을 줬다. “우리도 독재를 타도하자”는 움직임이 리비아·이집트·예멘 등으로 퍼져갔다. 아랍권 전역에서 연쇄적인 반독재 대규모 운동 ‘아랍의 봄’이 일어났다. 그해 무바라크(이집트), 카다피(리비아) 등 여러 아랍 독재자가 거짓말처럼 모두 축출됐다.
   
   
   여성 정계 진출 크게 늘어
   
   독재자를 끌어내리는 쾌거를 이룬 각국 아랍 국민들은 정치·사회 개혁 의지에 불탔다. 특히 튀니지는 ‘아랍의 봄’의 발원지로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 개혁 공감대가 컸다. 튀니지는 민주 선거를 치러 국회의원을 뽑고 대통령을 선출했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정계 진출이 크게 늘었다. 재스민혁명 시위에 참여해 철옹성 같던 독재자를 직접 끌어낸 경험을 한 여성들은 스스로 사회참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또 ‘바뀐 세상’을 직감한 기존 정당들도 여성 인사 영입을 서둘러 추진했다. 개혁 분위기에서 여성 인권 신장은 정치제도 개혁과 함께 주요 이슈였고, 각 정당은 이미지 쇄신을 위해 여권을 강조했다. 게다가 여성 유권자의 표를 얻는 데 여성 후보만큼 좋은 전략은 없었다. 그간 독재 정권의 튀니지에서 선거는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하지만 민주 선거를 실제로 치르면서 여성의 존재감이 커졌다. 여성 유권자의 1표도 남성의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엔나흐다당은 2011년 여성 의원 후보 대표주자로 압델라힘을 스카우트했다. 약사이자 사업가로서 살아온 그는 진취적 여성상을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압델라힘은 히잡(머리카락을 가리는 무슬림 여성용 스카프)을 쓰지 않고 세련되게 손질된 단발머리에 잘 다려진 고급 정장을 입고 시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세장에선 남성 정치인들과 나란히 서서 연설을 했다. 그의 당당한 모습에 여성들과 젊은층이 크게 환호했다. 그가 특히 주목받은 건 그가 속한 정당이 그동안 반여성적이란 비판을 받아온 이슬람주의 정당 엔나흐다였기 때문이다. 의원이 되고 여풍(女風)을 이끈 그는 정치 입문 7년 만인 이번에 튀니스 시장에 당선됐다. 앞으로 그가 시장으로서 그리고 그 이후 어떤 활동을 할지 주목된다.
   
   또 하나의 희소식은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이 ‘드디어’ 운전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사우디 정부는 지난 6월 여성에게도 운전면허증을 발급하도록 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여성이 운전할 수 없는 나라가 이제 사라진 것이다. 1932년 건국한 사우디는 지금까지 가부장적 문화의 영향으로 여성의 운전 금지를 비롯해 여성의 각종 사회활동을 제한해왔다. 이슬람 율법 때문이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사우디의 국교인 이슬람의 경전 코란에 여성의 운전을 금지해야 한다는 구절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코란이 쓰일 당시에 차는 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코란에는 당시 주요 이동수단인 낙타를 여성은 탈 수 없다는 구절도 없다. 오히려 이슬람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부인 아이샤는 낙타를 즐겨 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럼에도 사우디에서 여성의 운전이 금지된 이유는 이슬람 ‘와합주의(와하비즘)’와 왕권 유지를 위한 사회 통제 정책이 꼽힌다. 사우디는 건국 당시 아라비아반도의 부족을 통합하기 위한 사상과 이념이 필요했고 이에 일반적인 이슬람 교리와는 차이가 있는 ‘와합주의’를 채택했다. 엄밀히 말하면 와합주의 세력과 ‘동맹’을 맺었다. 와합주의는 문명의 이기(利器)를 배척하고, 7세기 선지자 무함마드의 시대와 이슬람이 가장 번영했던 중세시대의 생활양식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런 사상이 사우디 국정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각종 시대착오적 정책이 나왔던 것이다. 거기다 1979년 사우디에선 “왕가는 타락했다”며 왕가를 부정하는 무력시위가 이슬람 유력 성직자 가문 세력 주도로 벌어졌다. 이들은 성지(聖地) 메카의 대(大)사원을 점거하고 사우디 왕실은 “세속적”이라며 퇴진을 요구했다. 게다가 그해 이란에선 이슬람 성직자를 중심으로 혁명이 일어나 왕정이 무너지고 ‘이슬람 공화정’이 들어섰다. ‘이란 혁명’ ‘메카 무력시위’에 깜짝 놀란 사우디 왕실은 ‘신앙의 신실성’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 더욱 종교화하고 사회 통제 수준을 높였다. 국민의 자유는 제한됐고, 약자층인 여성의 자유 박탈 정도는 남성보다 더 커졌다.
   
   
   미스터 에브리싱, 30대 빈살만의 등장
   
▲ 튀니지의 첫 여성 시장으로 당선된 수아드 압델라힘. photo 뉴시스
이런 사우디에 변화의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건 2017년 무함마드 빈살만이 실세 왕세자로 떠오르면서다. 1985년생인 빈살만은 2017년 자기보다 서른 살 많은 사촌형의 왕위 계승권을 ‘궁중 쿠데타’를 일으켜 빼앗으며 권력을 움켜쥐었다. 노쇠한 살만 국왕은 그의 아들인 빈살만에게 사실상 국정 운영의 전권을 줬고, 이에 빈살만은 ‘미스터 에브리싱(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의미)’이라 불렸다.
   
   사우디에서 30대 초반이 정권을 장악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사우디 왕은 그간 최소 50세 이상이었다. 초대 국왕이 1953년 숨을 거두며 왕위를 자신의 아들 형제들끼리 나눠 가지라고 유언했기 때문이다. 형이 왕이 됐다 죽으면 그의 동생이 왕이 되는 식이다. 왕위가 지난 60여년간 초대 국왕의 아들 세대 안에서 돌고 손자 세대로 넘어가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국왕의 나이가 점점 많아졌다. 2대 국왕 사우드가 취임할 때 나이는 51세였는데, 3대 파이살은 58세, 4대는 62세, 5대는 61세, 6대는 81세에 왕좌에 올랐다. 왕이 되기를 기다리다 먼저 죽는 왕세제가 나왔다. 사우디 왕실에 ‘노인 정치(gerontocracy)’라는 별칭도 붙었다.
   
   빈살만의 등장은 사우디 왕위 계승권 전통을 깼다는 점에서도 파격적이었던 것이다. 혈기왕성한 그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혁파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무엇보다 그가 직면한 세계 흐름은 지금까지 사우디가 살아온 방식으로는 헤쳐나갈 수 없는 상태였다. 탈(脫)석유 시대가 갈수록 빨리 다가오는 상황에서 ‘오일머니’에만 기댈 수 없었다. 산업을 다각화해 ‘오일머니’ 없이도 국민들이 먹고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려면 사우디 인구 2000만(외국이민자 포함 총 3000만)의 50%인 여성을 일하게 만들어야 했다. 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노동력 확보 차원에서도 ‘우먼 파워’가 필요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구의 절반을 아무 수익활동 없이 방치해놓는 것도 이들에게 보조금을 줘야 하는 정부에 큰 부담이 된다.
   
   또 빈살만은 시대착오적 정책에 대한 불만이 여성과 젊은층 사이에 가득 차올랐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유행하는 영화·공연을 보기 위해 이런 것들을 금지하고 있는 자신들의 나라 사우디를 떠나 두바이 등으로 해외여행을 갔다. 사우디 왕정은 이웃한 이집트 등 이웃나라를 휩쓴 ‘아랍의 봄’을 지켜보며 국민들의 불만을 해소해주지 못하면 언젠가는 그 책임을 정부가 지게 된다는 점을 학습했다. 새로 권력을 잡은 빈살만은 정치적 지지를 받을 목적을 염두에 두고 여성 운전 허용, 영화·공연 관람 허용 같은 정책을 내놓았던 것이다.
   
   
   면허 신청 6개월 대기
   
   사우디 여성 운전 허용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다. 지난 6월 이 정책이 시행되자마자 수많은 여성이 운전면허 시험장을 찾아가 응시 신청을 했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 면허증을 취득한 여성은 이것을 국내 면허증으로 교환했다. 면허 신청자가 급증해 현재 신청 후 최소 6개월은 기다려야 시험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일부는 다른 나라에서 면허를 따려고 ‘원정’을 간다고도 한다. 그간 이들이 운전의 자유를 얼마나 누리고 싶었는지가 느껴진다. 세계 자동차 회사들도 사우디 여성 운전자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자 전담팀을 꾸리고 사우디 여성 맞춤 광고를 제작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여전히 사우디에선 ‘남녀칠세부동석’ 제도가 살아있다. 가족·친척이 아닌 성인 남녀는 식당 등 실내 공간에 같이 들어갈 수 없다. 사우디 내 맥도날드를 가보면 남녀 전용 출입구가 따로 있고 내부 공간도 남녀로 분리돼 있다. 은행이나 관공서도 마찬가지다. 성인 남녀의 부적절한 만남을 막겠다는 의도인데, 이 또한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구시대적이란 비판을 받는다. 선택이 아닌 의무로 히잡을 착용토록 하는 것도 사우디·이란 등에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은 이슬람 사회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2014~2017년 각종 극단적 행위로 세계를 경악게 한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사태가 하나의 계기가 됐다. IS로 반무슬림 정서가 확산하자, 이슬람 공동체 내에서 ‘이슬람은 테러·반여성 종교’라는 편견과 오해를 받지 않도록 비이슬람적 악습을 없애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튀니지는 ‘아랍의 봄’의 상징적인 나라이고, 사우디는 세계 18억 무슬림이 하루 5번 엎드려 절하는 방향인 메카가 있는 성지의 나라다. 두 나라 여성들이 이끄는 변화에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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