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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셜 리포트] 기후변화는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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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21호]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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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기후변화는 음모?

기후변화회의론자, 그들은 어떻게 탄생했나

김효정  기자 

▲ 2013년 ‘지구촌 전등 끄기’ 행사에 참여한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전경. photo AFP
“지구온난화는 미국 제조업계의 경쟁력을 앗아가기 위해 중국인들이 만들어낸 개념이다.”(2012년 11월 7일)
   
   “텍사스부터 테네시까지 눈폭풍이 몰아닥친다. 나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데 얼어죽겠다. 지구온난화는 완전히, 그리고 매우 비싼 거짓말이다.”(2013년 12월 7일)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와 가졌던 토론회에서 “기후변화를 부정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적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위터에는 그가 오랫동안 ‘기후변화회의론자’였다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위의 두 진술이 그런 흔적들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기후변화회의론자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국제협약인 파리협정을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는데 그 배경에 그의 반(反)기후변화 의식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최근에 와서는 국내외 여론을 의식한 듯 기후변화 자체를 부인하는 일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가 기후변화회의론을 버리지 않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미국만 해도 트럼프 같은 기후변화회의론자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AP통신과 NORC공공연구소가 함께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의 12%는 ‘기후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며 17%는 ‘잘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이것도 몇 년 전에 비해서는 줄어든 수치다. 사실 기후변화회의론자들은 미국을 넘어 어디에나 있다. 영국 카디프대학이 실시한 ‘기후변화에 대한 유럽의 인식 조사(EPCC)’에서도 독일인의 16%, 영국인의 12%가 ‘기후변화는 없다’고 믿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후변화가 없거나, 있더라도 인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연적으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영국을 통틀어 각 인구의 10% 안팎을 차지했다.
   
   넓은 의미에서 기후변화회의론자는 크게 세 유형을 일컫는다. 기후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일어나더라도 간빙기같이 지구의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현재 떠들썩한 기후변화 주장이 단지 정치인들이 특정한 목적을 갖고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하며, 과학자들 역시 정치인의 목적에 영합하는 ‘곡학아세(曲學阿世)’의 무리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물론 기후변화회의론자 중에는 이렇게 극단적인 주장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가 인위적인 이유로 일어났다 하더라도 지금의 우려는 과장된 것이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 믿는 사람도 회의론자로 볼 수 있다.
   
   기후변화회의론자와 기후과학자들 사이의 논쟁은 외국에서는 아주 오래되고 첨예한 논쟁 중 하나다.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실시한 AP-NORC의 여론조사를 보면 유권자의 절반은 기후변화 이슈가 대통령을 뽑을 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그동안 기후변화 논쟁과 별 관계 없는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난 겨울 기록적인 한파와 올해 여름 기상 관측 사상 최악의 폭염이 이어지면서 기후변화 문제를 언급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끝나지 않는 폭염에 대해 “지구온난화가 사실이었던 것 같다”고 반응하는 시민도 많다. 이런 반응은 다소 이채로운 것이다. 한국에서는 언론이든 학계든 기후변화가 ‘의심의 여지가 있는 논쟁거리’라고 간주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라는 인식하에 기후변화에 따른 대응책을 논의하는 데 더 초점을 맞춰왔다. 기후변화회의론자는 마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알고 보면 한국에도 기후변화회의론자가 의외로 많다. 2015년 미국의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기후변화가 심각한 문제다”라고 대답한 한국인은 전체 응답자의 48%로 5년 전 68%에 비해 오히려 20%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믿지 않는 한국인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2012년의 조사이기는 하지만 한국인의 25%만이 기후변화를 옹호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한국의 회의론자들은 기후변화를 지구온난화로 치환해 얘기할 때가 많다. “지구가 더워진다고 하는데 지난 겨울은 무척 추웠다”면서 지구온난화를 부정한 언론인도 있었다. 기후변화가 있더라도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 같다거나 과장돼 있다고 믿는 사람은 더 많다. “기후변화를 얘기하지 않으면 이슈가 되지 못하니까 미국의 정치인 앨 고어나 국내외 환경단체는 기후변화를 의도적으로 과장해 알리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의사도 있다.
   
   그러니까 한국의 회의론자들은 “기후변화는 모두 거짓말”이라고 믿기보다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부정하거나 혹은 기후변화 담론에는 다른 음모가 있을 것이라 믿는 경우가 더 많다는 얘기다.
   
   
▲ 2009년 영국에서 일어난 ‘기후게이트’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독립조사위원회에 전 유럽의 시선이 쏠렸다. photo AP

   한국 회의론자들의 특성
   
   사실 한국인들은 기후변화에 대해 잘 모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채수미 보건의료연구실 부연구위원이 조사한 바를 보면 ‘기후변화’라는 말을 듣고 무엇이 떠오르는지를 물었을 때 사람들은 평균 1.2개, 최대 3개의 단어로만 기후변화를 표현했다. 카디프대학의 EPCC 조사에서 유럽인들이 평균 6.6개, 최대 174개의 연상되는 단어를 써낸 것과 사뭇 다르다.
   
   EPCC의 조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였다. 폭풍·홍수·폭염·가뭄 같은 기후변화 현상 자체를 떠올린 사람도 많았고 인구문제,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 같은 문제가 뒤를 이었다. 한국에서도 기후변화 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단어가 역시 ‘지구온난화’였다. 다음은 의외로 대기오염 문제였다. 미세먼지, 황사 등 대기오염 문제가 가장 큰 환경 이슈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가뭄·더위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단어가 대다수를 이뤘다. EPCC의 조사와는 달리 기후변화가 일으키는 영향에 대해 떠올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런 조사결과를 종합해보면 한국의 기후변화회의론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기후변화는 없으며 단지 정치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믿는 적극적 회의론자와, 기후변화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잘 알지 못하며 알고 싶지 않아 하는 소극적 회의론자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기후변화는, 왜 회의론자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회의론자들은 기후변화의 어떤 점을 의심하고 있는 것일가.
   
   애초에 기후변화는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분야가 아니다. 일상생활에 가장 밀접한 날씨와 관계 있기 때문에 종종 착각하기 쉽지만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를 대표적인 ‘탈(脫)정상과학(Post-Normal Science)’으로 분류하곤 한다.
   
   
   탈정상과학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현상
   
   기후변화 문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오래 연구해온 박희제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탈정상과학은 과학철학자인 제롬 라베츠의 이론에서 시작한 개념이다. 정상과학은 확고한 이론체계를 갖추고 그 안에서 문제풀기에 열중하는 과학을 말한다. 반면 탈정상과학은 불확실하고 가치갈등이 심하며, 관련된 이해관계가 많은 데다 빠른 결정을 요구하는 영역이다. 라베츠는 “많은 현대과학이 탈정상과학에 속하고 불확실성이 높아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후변화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탈정상과학 중 하나라는 것이다.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탈정상과학에서 말하는 ‘불확실하다’는 것은 ‘확신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상과학처럼 분명한 법칙이 없는 것을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기후변화는 불확실하다’는 말은 모든 이상기상 현상이 기후변화로 인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기상(weather)은 기후(climate)와 다르다. 올해의 기록적인 폭염은, 물론 기후변화에 따른 결과물일 수 있지만 기상은 언제나 매우 복합적이고 불확실한 요소로 인해 결정된다. 태풍이 예년에 비해 갑자기 많이 발생하더라도, 땅이 드러나는 가뭄이 발생하더라도, 곧바로 ‘기후변화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말이다.
   
   기상현상이 아닌 엄밀한 의미의 기후변화는 비전문가에게는 어렵고 와닿지 않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린들, 해수면이 몇㎝ 상승한들 삶에 끼치는 영향은 크게 없다. 더군다나 기후변화는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변화가 아니라 수십, 수백 년에 걸쳐 일어나는 것이다. 백년 뒤 지구가 기후변화로 인해 변한다고 해서 당장의 삶을 걱정할 사람은 별로 없다. 기후학자들조차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다고 말하는 기후변화 그래프와 자료를 해석할 수 있는 비전문가는 많지 않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정보는 어디서든 구할 수 있지만 필요한 정보를 정확히 구하기란 쉽지 않다. 식량, 기상, 환경과 관련한 문제는 국가 안보와 관련한 문제이기도 하다. 어느 한 지역의 기상정보만으로는 기후변화를 올바르게 해석할 수 없고 매우 넓은 지역의 매우 다양한 정보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기후변화와 관련한 이론(理論)에는 항상 이론(異論)이 제기된다. 1992년 체결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서는 전문에 “기후변화에 대한 예측에는 불확실성이 많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적어두기까지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기후변화를 누구나 인정해야 하는 진리처럼 단정지어버리는 것은 비전문가로서 기후변화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오히려 적극적인 회의론자로 끌어들이는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기후와 기상의 차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비전문가에게까지 기후변화의 불확실성을 이해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문가가 그렇다고 하니 기후변화는 일어나는 것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잘 모르겠어” 같은 말이나 “지구가 따뜻해진다고 하지만 지난 여름에는 별로 덥지 않았잖아” 같은 회의적 반응이 충분히 가능하다.
   
   

   기후변화론은 왜 반발과 불편함을 낳나
   
   기후변화 전문가로 기후변화회의론자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조지 마셜 역시 책 ‘기후변화의 심리학’을 통해 기후변화는 태생적으로 회의론자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특히 그가 중점적으로 보는 기후변화의 약점 중 하나는 기후변화가 윤리·가치와 연관될 가능성이 높다는 부분이다. 기후과학자들은 기후변화가 오로지 인간의 무책임에 의해서만 생긴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책임이 두드러지게 강조되는 이상 기후변화는 늘 ‘희생’ ‘규제’ 같은 단어와 짝지어 다니게 된다.
   
   전 지구적으로 실시되는 행사 ‘지구촌 전등 끄기(Earth Hour)’는 기후변화가 보통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제공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07년 호주 시드니에서 시작한 이 행사는 매년 3월 마지막주 토요일 밤에 한 시간가량 불을 끄고 지냄으로써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인식하게 하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조지 마셜은 이 행사가 회의론자에게 기후변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시킨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행사는 하락, 쇠퇴, 죽음의 보편적인 프레임을 기후변화의 상징으로 전 세계에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조지 마셜은 기후변화가 과학이 아니라 환경운동의 하나로 간주되는 현실을 불편하게 여긴다. 그는 국제환경보호 단체인 그린피스의 임원으로 열성적인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과학자들에 의해 과학적인 논쟁으로 정립되기 전에 환경운동가들에 의해 주도되는 현실이 불편하다. 즉 “‘환경’ 회의에서 ‘환경’ 연설을 통해 논의한 ‘환경’ 정책을 중심으로 제정한 ‘환경’ 입법의 제재를 받는” 환경문제로 정착돼버린 것이 안타깝다는 얘기다. “이렇게 해서 기후변화가 환경운동가들에게는 근접한 사안이 되었을는지는 몰라도, 일반 대중의 직접적인 관심 대상에서는 오히려 멀어져버렸다. 즉 기후변화는 경제, 일자리, 범죄, 전쟁이 들어차 있는 걱정의 웅덩이 가장자리에 놓아둘 수 있는 사치스러운 걱정거리가 됐다.… 환경운동을 불신해왔던 사람들은 기후변화를 불신하게 됐고, 기후변화를 불신했던 사람들은 환경운동을 한층 더 불신하게 됐다.”(‘기후변화의 심리학’ 258쪽)
   
   기후변화가 환경문제로 인식되면서 생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기후변화의 적(敵)이 생겼다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이 이뤄낸 발전은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가장 큰 적 중 하나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환경운동가들은 전등 끄기 운동, 에너지 쓰지 않기 같은 ‘금지’와 ‘희생’ 활동을 통해 기후변화를 극복할 것을 강조한다. 환경문제로서 기후변화는 인류의 발전과 진보를 부정할 때가 많다. 인류의 진보가 기후변화 같은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면서 지구를 위해서는 인류가 “멈춰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면서 기후변화는 과학 문제가 아니라 환경을 둘러싼 정치 문제로 발전된다.
   
   박희제 교수는 2009년 미국과 유럽을 강타한 이른바 ‘기후게이트(Climate Gate)’ 사건을 통해 기후변화 문제가 정치적으로 오용되고 있는 사례를 설명한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기후게이트란 전 세계의 기후변화 연구에 핵심적 역할을 하던 영국의 기후연구소(CRU) 연구자들이 미국 지구시스템과학센터(ESSC) 연구자들과 주고받은 이메일 1000여통이 해킹당해 공개되면서 벌어진 논란을 말한다. 이 이메일에는 기후과학자들이 연구와 관련된 자료를 조작하거나 은폐하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을 만한 내용, 기후변화에 비판적인 학자의 논문이 학술지에 게재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개입했다는 의혹 등이 제기될 만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영국 의회, 왕립학회, 독립적으로 구성된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조사결과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여전히 남았다. 의혹의 대상이 됐던 영국 기후과학자의 이메일을 살펴보자.
   
   “당신도 알다시피 MM이 쓴 논문은 쓰레기예요.… 이 논문들 중 하나라도 다음번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에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최선의 방법은 그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겁니다. 그들은 여기 미국에서는 더 이상 힘 있는 지지자가 없습니다.”
   
   박희제 교수는 “공개된 이메일을 보면 기후과학자들이 회의론자의 주장을 가치 없는 것으로 평가절하하고 과학적 검증 과정에서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면서 지나치게 자신들의 주장을 보호하는 인상을 준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는 서로가 서로의 주장에 정치적 목적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회의론자들은 기후과학자들이 환경운동가, 정확히는 환경운동가와 손을 잡은 정치인들에게 유리한 근거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부통령을 지낸 앨 고어는 퇴임 후 환경운동가로 변신해 기후변화의 위험성에 대해 소리 높여 주장해왔다. 그는 적극적인 환경운동가로 변신해 부통령일 때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을 정도다. 앨 고어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미국 공화당 측에서는 환경운동가로서 앨 고어의 활동을 비판해왔다. 그의 활동이 다분히 정치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그가 천착해온 기후변화 문제 자체도 정치적인 것으로 변질됐다고 비판해왔다.
   
   한국에서도 많은 회의론자가 이런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 당장 유튜브만 봐도 한국어로 된 기후변화회의론자의 주장 상당수에 앨 고어가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후변화는 이제 정치적 문제이며 기후변화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 정치적 태도도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후변화가 과학이 아닌 환경문제로 간주되면서 생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회의론자를 ‘계몽’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박희제 교수는 기후과학자들이 ‘확대된 동료공동체’를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험실과 논문 속에 머무는 과학과 달리 기후변화 과학은 일상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환경규제를 이끌어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합니다. 비전문가는 기후과학자 같은 전문가에게 딴지를 거는 존재가 아니라 작업을 돕는 존재입니다. 환경운동단체, 회의론자까지 포함하는 동료공동체를 만들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후변화 연구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입니다.”
   
   
▲ 미국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기후변화회의론자들. photo Hickr

   호주에선 정치적 투쟁으로 비화
   
   이 모든 문제에서 가장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언론이다. 한국에 한해서는 언론이 한국적 회의론자, ‘잘 모르지만 별로 알고 싶지 않은’ 회의론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는 기후변화에 대한 한국 언론 보도의 유형을 분류해 연구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대한 절대적인 보도량은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크게 적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내용에서는 큰 차이가 난다.
   
   이 교수에 따르면, 한국 언론은 기후변화의 원인을 다루면서 주로 인간에 의한 인위적 원인만을 강조했다. 자연적 원인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것은 회의론자의 주장에 거의 힘을 싣지 않는다는 얘기다. 자연히 한국 언론이 기후변화에 대한 논쟁을 다룰 이유도 없어졌다. 당장 2009년 서구 과학계를 흔든 ‘기후게이트’와 관련된 기사는 거의 쓰지 않다시피 했다. 이덕환 교수는 “한국 언론은 기후변화의 다양한 측면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언론의 기후변화에 대한 보도를 보면 기후변화 협의체인 IPCC에서 분석한 원인과 즉각적인 대응책을 거의 그대로 받아쓰다시피 했습니다. 기후변화는 당연히 인간에 의해 발생한 것이고 당연히 즉각대응해야 하는 것으로요. 이러다 보니 기후변화가 무엇인지, 왜 심각한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한국의 환경, 문화적 배경도 고려하지 않고 외우다시피 이야기를 옮기기만 했습니다.”
   
   정부도 한몫을 한다. 환경 당국에서 제공하는 기후변화에 대한 정보는 모두 공포스럽고 심각하게 느껴진다. 특히 올여름 폭염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기후변화는 ‘공공의 적’이 됐다. 모두가 기후변화가 문제가 있다고 얘기하지만 공공의 책임을 지는 경우는 적다. 한국은 국제적으로도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미흡한 국가에 속한다. 스스로를 개발도상국으로 낮춰 선진국과 같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정부는 개인에게는 윤리적 책임, 공동체의식, 생태계에 대한 의무를 강조한다. 카페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자원재활용법 시행이 한 사례다.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 없이 해결책부터 말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회의론자가 숨죽여 자라난다. 자연히 생겨날 수밖에 없는 기후변화회의론자를 그저 소수의 목소리로 치부한 채 방치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2007년과 2010년에 걸친 호주의 정치 변동에서 답을 찾아볼 수 있다.
   
   호주는 세계 최초로 온실가스 감축을 전담하는 정부기구가 생긴 나라다. 2007년 호주 총선의 핵심 이슈는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었다. 이 선거에서 호주노동당(ALP)은 기후변화에 적극적 대응을 주장하면서 대승을 거뒀다. 그러나 호주노동당의 기후변화 정책이 지지부진해지면서 2010년 총선에서 패배했고 연정을 통해 가까스로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호주는 분열됐다. 기후변화 옹호론자와 회의론자로 갈라선 언론과 국민, 정치권이 서로의 주장을 매도하고 비난했다. 호주 국민의 45.9%만이 기후변화가 인위적인 이유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고 나머지 절반은 회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의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반영한다.
   
   기후변화회의론자들은 단순한 음모론자가 아니다. 탈정상과학으로서 이제 막 시작한 기후변화 과학의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공동체 일원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려면 기후변화에 대한 토론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이덕환 서강대 교수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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