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쑥대밭이 된 미국 뉴올리언스. 당시 미국 기상청의 예보 역시 엉망이었다. ⓒphoto 뉴시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쑥대밭이 된 미국 뉴올리언스. 당시 미국 기상청의 예보 역시 엉망이었다. ⓒphoto 뉴시스

최근 제19호 태풍 솔릭(‘전설의 족장’이란 뜻)이 한반도를 관통했다. 태풍이 한반도를 관통한 것은 2012년의 카눈·덴빈·볼라벤·산바 이후 6년, 2016년 제주도 동쪽과 부산을 스치듯 지나간 차바 이후 2년 만이었다. 당초 기상청은 2010년 9월 서울 북쪽을 지나면서 18명의 사상자와 1761억원의 재산 피해를 냈던 곤파스에 버금가는 피해가 걱정된다고 예보했다. 실제로 제주도에서는 초속 62m의 강풍이 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솔릭은 뒤늦게 전남 해안으로 상륙해 12시간 만에 동해로 조용히 빠져나갔다. 2000년 이후 한반도를 관통한 12개의 태풍 중 가장 얌전한 태풍으로 기록되고 말았다.

그런데 솔릭이 지나간 후 거센 후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SNS에서 기상청의 예보 오보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기상청이 2010년 곤파스를 들먹이면서 ‘역대급 설레발’을 쳤다는 것이다. 특히 자녀들의 휴교나 단축수업으로 불편을 겪은 학부모와 영업을 단축했던 자영업자들의 불평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태풍이 비껴간 지역에서의 비난과 조롱도 심했다. ‘설레발이 심하다’는 뜻의 ‘솔릭스럽다’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아예 ‘기상청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언론도 오보 논란에 적극적으로 가세했다. 일본과 미국의 예보를 분석한 기사가 쏟아졌다.

후폭풍은 지난 8월 26일 일요일 오후 기상청장의 전격적 경질로 절정에 이르렀다. 경질의 정확한 사유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가마가 부러졌다는 이유로 곤장 80대를 맞고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장영실의 비참했던 최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은 사실이다. 기상청장의 경질이 오보 논란과 무관하다는 청와대의 해명은 옹색했고, 적극적인 태풍 대비를 치하한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도 어색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 우길 수는 있겠지만, 감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아야 한다는 옛말을 떠올려야 했다. 어쨌든 기상청장의 경질은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정부의 다짐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갈팡질팡했던 솔릭 예보

42년 만에 태풍이 수도권을 강타할 것이라는 기상청의 경고가 엄중했던 것은 사실이다. 전국적으로 8688개교가 문을 닫았고, 직원들을 조기 퇴근시킨 기업도 많았다. 프로축구 경기도 연기됐다. 청와대도 긴장했다. 대통령의 외부 일정이 취소되고, 급박하게 국가위기관리센터가 가동됐다. 12시간 동안 강풍과 폭우에 시달린 제주도의 피해가 크지 않았던 것은 기상청의 엄중한 경고에 따른 철저한 대비 덕분이었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기상청의 예보가 어지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제주도 앞바다에 태풍 경보를 발령했던 8월 22일 정오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솔릭은 중심부의 최대 풍속이 초속 43m에 이르고, 강풍 반경이 380㎞에 이르는 당당한 ‘중형급’ 태풍이었다. 솔릭이 한반도를 가로지르면서 큰 피해를 남길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는 당연한 것이었다. 일본 기상청과 미국의 합동태풍경보센터(JTWC)의 예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의 예보는 솔릭이 인천 강화로 상륙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태풍이 제주도에 근접하기 시작하던 8월 22일 저녁부터였다. 시속 30㎞ 이상으로 내달리던 솔릭이 갑자기 느림보 걸음을 시작했다. 덕분에 제주도는 12시간 동안 끔찍한 강풍과 폭우에 시달려야만 했다. 물론 솔릭도 무사하지 못했다. 23일 오후 6시 전남 앞바다에 도착한 후 갑자기 중심부의 눈이 사라져버렸다. 결국 솔릭은 해남에 상륙하기 직전이었던 오후 9시부터 소형으로 줄어들면서 더욱 빠르게 힘을 잃어버렸다.

솔릭이 제주도 서쪽에서 머뭇거린 탓에 예보는 엉망이 돼버렸다. 당초 충남 보령으로 지목됐던 상륙 지점은 전북 군산(오전 10시), 전남 영광(오후 3시), 전북 부안(오후 6시)으로 갈팡질팡했다. 우리 기상청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일본이 상륙 예상 지점을 목포로 바꾼 것이 23일 오전이었고, 미국도 23일 오후 6시에야 상륙 예상 지점을 목포로 변경했다. 결국 솔릭의 진로는 아무도 미리 예측할 수 없던 셈이었다.

솔릭이 제주도 서쪽에서 머물면서 급격하게 진로를 바꾸고, 힘을 잃어버린 구체적인 이유는 태풍 전문가들이 앞으로 밝혀내야 할 연구과제다. 솔릭과 거의 동시에 일본을 맹타했던 제20호 태풍 시마론과 서해바다의 차가운 수온이 영향을 주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솔릭과 시마론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받을 것인지를 미리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현대 기상학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는 일이었다.

더욱이 우리가 태풍 예보에서 놓치는 부분도 있다. 기상청의 태풍 진로 예보에는 언제나 ‘태풍위치 70% 확률반경’이 표시된다. 괜한 장식으로 그려놓은 것이 아니다. 태풍의 진로가 매우 유동적이라는 사실을 애써 표시한 것이다. 이번 솔릭의 예보에서도 전남 해남은 기상청의 ‘확률반경’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언론이 강조하는 것은 확률이 가장 높은 지점일 뿐이다. 기상청의 예보가 틀렸다는 지적은 확률반경의 의미를 무시한 것이다.

지난 8월 23일 태풍 솔릭의 진로를 살피고 있는 기상청 예보관들. ⓒphoto 뉴시스
지난 8월 23일 태풍 솔릭의 진로를 살피고 있는 기상청 예보관들. ⓒphoto 뉴시스

예보에 대한 과잉 기대

우리가 기상청의 예보에 만족하지 못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주말의 강수 예보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해졌다. 주말의 강수 예보가 빗나가면 어김없이 ‘구라청’이나 ‘오보청’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특히 서울의 경우가 그렇다. 국지성 호우나 폭설이 쏟아지면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태풍 예보에 대한 불만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이 일기예보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심리를 부추기면서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일기예보는 현대 과학과 기술의 산물이다. 여기에는 고도의 관측과 통신 기술이 필요하고, 대기의 순환을 예측해주는 복잡한 과학지식이 필요하다. 1960년대부터 활용하기 시작한 인공위성 관측도 필수다. 우리 영토 안에서의 관측만으로 되는 일도 아니다. 인접한 국가의 관측 자료까지 모두 포함해서 엄청나게 많은 양의 관측 자료를 분석해야만 한다. 대용량의 수퍼컴퓨터가 필요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기상청에 수퍼컴퓨터를 사준 것이 대단한 혜택일 수가 없다는 뜻이다.

첨단 과학과 기술을 총동원한다고 정확한 일기예보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폭풍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소위 ‘나비효과’가 바로 일기예보의 어려움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예다. 관측 자료의 작은 오차가 예보에서 엄청나게 증폭될 수 있다는 뜻이다. 대기의 순환을 지배하는 유체역학 방정식이 고도로 비선형이고, 날씨를 좌우하는 대기의 상태가 정확한 예측이 가능한 평형의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남태평양의 뜨거운 열에너지가 과도하게 축적되어 발생하는 태풍의 예보는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동안 발생했던 태풍의 경로를 살펴보면 그런 사실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태풍의 진로에서 특별한 경향을 찾아내겠다는 시도는 무망한 것이다. 특히 태풍이 대륙으로 접근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그런 사실은 올여름에 발생한 태풍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 한국·일본·중국이 모두 서해안을 따라 북상할 것으로 예상했던 제14호 태풍 야기는 일찌감치 방향을 바꿔서 상하이로 들어가버렸다. 북한으로 상륙할 것이라는 일본·미국과 달리 우리 기상청은 서해를 따라 북상하다가 중국 산둥반도로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물론 아무 의미가 없는 예보였다. 제12호 태풍 종다리의 경로도 속수무책이었다. 도쿄에서 오사카를 지나 서쪽으로 진행하던 종다리는 뜻밖에도 가고시마 남쪽 바다에서 갑작스러운 유턴을 해서 일본을 다시 위협하기도 했다.

너무 다른 선진국의 인식

우리만 자연재해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다. 미국도 정확한 예측을 허용하지 않는 토네이도와 허리케인에 시달리고 있다. 쏜살같이 움직이는 토네이도의 경우에는 아무도 예보를 기대하지 않는다. 비교적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허리케인의 경우에도 예보가 언제나 믿을 만한 것이 아니다.

2005년 뉴올리언스를 물바다로 만들어버린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예보 역시 엉망이었다. 2008년 쿠바를 강타했던 허리케인 구스타브(8월)와 아이크(9월) 예보도 황당했다. 당초 미국 기상청의 예보는 이 허리케인들이 육지에 상륙하면 5등급으로 발달해서 인구밀집 지역을 초토화시킨다는 것이었다. 시장·주지사·대통령이 모두 발 벗고 나섰다. 연방정부의 방위군과 공병대까지 동원해서 무려 400만명의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그러나 구스타브와 아이크는 상륙 직후 열대성 저기압으로 약화되어 버렸고, 인구밀집 지역을 위협하지도 않았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연속해서 그랬다.

일본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1995년 7월 30일 남미 칠레의 해안에서 리히터 규모 7.8의 강한 지진이 발생했다. 일본 기상청은 거대한 쓰나미가 덮쳐올 것이라는 경보를 발령했고, 정부는 태평양 연안의 모든 마을에 긴급대피령을 내렸다. NHK는 모든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밤새워 대피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그러나 기상청의 쓰나미 예보는 오보였다. 일본 동해안에서 관측된 해일은 고작 25㎝에 지나지 않았다.

기상청의 오보에 대한 미국과 일본 사회의 반응은 우리와 전혀 달랐다. 아무도 오보에 대한 불평을 하지 않았다. 정반대로 미국의 대통령·주지사·시장들은 앞으로도 기상청의 재난 예보를 믿고 철저하게 대응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일본도 재앙적인 쓰나미가 덮쳐오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을 뿐이었다.

태풍 예보가 엄청나게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태풍에 대한 대비를 낭비라고 여기는 인식부터 확실하게 바꿔야 한다. 기상청의 예보관들이 오보를 두려워하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다. 1987년 고흥반도에 상륙해서 343명의 사망자와 4000억원에 가까운 피해를 남겼던 태풍 셀마의 경우가 그랬고, 2016년 울산·경주를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7명의 사상자와 2000억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발생시켰던 차바의 경우도 그랬다. 언제까지나 그런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예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기상청이 오보를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어리석은 일이다. 재난 대비는 아무리 철저히 노력해도 언제나 모자라는 법이다. 열 번의 예보 중에서 한 번이라도 맞으면 본전을 챙길 수 있다는 확실한 인식이 필요하다. 오히려 기상청이 마음놓고 최악의 재난을 경고할 수 있도록 해줘야만 한다. 그것이 국민 안전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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