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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2525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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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독일에는 있고 우리에겐 없는 ‘겐셔’가 필요하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 독일 통일의 주역 겐셔 전 독일 외무장관. photo Alchetron.com
한스 디트리히 겐셔 전 독일 외무장관은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와 함께 동·서독 통일의 주역으로 불린다. 겐셔 전 장관은 외무부 장관직을 무려 18년(1974~1992)간 역임했다. 겐셔 전 장관의 재임 기록은 안드레이 그로미코 옛 소련 외무장관(29년)에 이어 각국 외무장관들 중 두 번째이다.
   
   겐셔 전 장관은 1927년 옛 동독 지역인 작센안할트주 라이데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3년 나치 독일 군대에 징집됐다가 미군의 포로가 됐다. 전쟁이 끝난 후 소련 점령 지구의 할레와 라이프치히의 두 대학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25세 때인 1952년 친구 두 명과 함께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해 자유민주당(FDP)에 입당하면서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1965년 연방 하원의원이 된 뒤 소수당인 자유민주당을 이끌게 된 그는 1969년 빌리 브란트 총리의 사민당(SPD)과 연정을 성사시키며 내무장관에 발탁됐다. 5년 뒤인 1974년 사민당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 시절 외무장관에 기용됐고 1982년 콜이 이끄는 기독민주당(CDU)이 다수당이 되자 자유민주당과 연정을 성사시켜 외무장관에 유임됐다. 그는 통일 이후 초대 독일 외무장관을 맡았고, 1992년 스스로 물러났다.
   
   그는 자신의 외교 인생의 정점을 1989년 9월 30일 저녁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의 서독대사관에서 망명을 요구하던 동독 주민 4000여명에게 협상 결과를 발표한 장면이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 이유는 그 자신이 동독을 탈출했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동독 주민들의 대규모 탈출 사태가 통일로 연결될 것임을 확신했다. 그는 체코와 동독 정부와 직접 협상을 벌여 이들을 모두 서독으로 데려가는 데 합의했다. 그는 대사관 발코니에서 “우리는 여러분의 출국이 허가됐음을 알려드리러 왔다”면서 동독 주민들에게 협상 결과를 밝혔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11월 9일 이 사건의 여파로 마침내 베를린장벽이 붕괴됐다. 그는 “당시 환호하는 동독 주민들을 봤을 때 가장 보람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때만 해도 이 사건이 초래할 결과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지만 그는 확신을 갖고 협상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는 1995년 ‘회고’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출간했다. 독일 현대외교사의 압권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료적 가치가 있는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재임 중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독이 통일을 달성하려는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당시 동·서독과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의 이른바 ‘2+4’ 회담에서 미국과 소련의 이해관계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소련은 통일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돼서는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미국은 당연히 나토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제임스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과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을 오가며 통일독일이 나토에 가입하되 옛 동독 지역에는 나토군을 주둔시키지 않는다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그는 1990년 셰바르드나제 장관을 2차 대전 때 독일과 소련의 격전지였던 브레스트(현재 벨라루스 지역)에서 만났다. 셰바르드나제의 친형이 1941년 전사한 곳이다. 그는 모든 일을 제쳐 놓고 셰바르드나제의 형이 잠들어 있는 무덤부터 찾아가 묵념했다. 동행한 셰바르드나제가 통일독일의 나토 가입을 용인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가 셰바르드나제의 마음을 움직인 덕분에 통일독일의 최대 난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협상 막판에 더글러스 허드 영국 외무장관이 “나토 작전 지역에 동독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소련으로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는 새벽 1시에 택시를 타고 베이커 장관의 숙소로 달려갔다. 잠옷 차림으로 그를 만난 베이커 장관은 “동독에 나토 군대를 배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오밤중에 베이커 장관을 만나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친분을 다져놓은 덕분이었다.
   
   
▲ 2016년 4월 17일 독일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옛 연방 의사당에서 겐셔 장관의 추모식이 열렸다. photo 뉴시스

   능수능란한 외교 ‘겐셔리즘’
   
   겐셔 전 장관의 ‘통일 외교’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미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소련을 적대시하지 않고 포용했기 때문이다. 겐셔 전 장관은 미국 등 서방과 굳건한 관계를 구축하면서도 옛 소련 등 동구권과도 화해를 모색한 능수능란한 외교 노선을 폈다. 균형을 통해 실리를 추구한 그의 외교 노선을 일컫는 ‘겐셔리즘’이라는 용어까지 탄생했을 정도다. 실제로 서독은 미국과 꾸준히 신뢰를 쌓은 결과, 2+4 회담에서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베이커 장관으로부터 효과적인 지원을 받았다. 잇따른 협상에서 미국 정부의 서독에 대한 이런 태도는 소련 정부의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가 오랫동안 외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쌓은 신뢰와 인간관계도 독일 통일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외교의 달인’이라는 말을 들었던 겐셔 전 장관이 ‘회고’에서 지적했듯이 다자외교는 웬만한 외교력을 갖고 있는 국가라도 좋은 결과를 도출하기는 매우 어렵다. 특정 현안에 대해 국익을 극대화하려는 3개국 또는 4개국은 협상에서 서로 치열하게 맞부딪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밀월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도 국익을 위해 갈등을 빚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냉전체제를 변화하게 만든 동·서독 통일이란 문제를 놓고 당시 강대국들이 자국의 국익을 위해 첨예하게 대립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겐셔 전 장관이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해 동·서독 통일을 이끌어낸 것은 엄청난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와 종전선언도 마찬가지다. 남·북·미·중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만 한다. 북한이 비핵화를 이행하고 종전선언을 거쳐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은 더욱 어렵고 험난하다. 게다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다자평화안보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은 영화 제목처럼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통독 당시보다 더 어려운 동북아 환경
   
   그 이유는 무엇보다 동북아 4강의 복잡한 함수 관계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은 과거 전쟁을 벌였던 국가들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만큼 찰떡궁합을 과시하고 있다. ‘아시아의 영국’이라는 말을 들어도 될 정도로 일본은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이라는 도전자를 견제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 미국은 중국을 ‘주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일본을 대리인으로 내세우면서 동북아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그대로 유지하려 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러시아와 사실상 동맹 관계를 맺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9월 11일부터 15일까지 닷새간 ‘보스토크-2018’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을 실시했고, 중국도 이 훈련에 가세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병합을 기점으로 미국에 완전히 등을 돌렸다. 중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제국의 길을 밟고 있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남중국해를 비롯해 대만 문제 등에서 미국과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다. 동북아 4강의 이런 줄다리기는 앞으로 더욱 팽팽해질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동북아 4강은 북한을 지렛대로 이용해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간파한 북한의 김정은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4강의 이해관계를 무시한 채 동북아 다자평화안보협력체제 구축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한 간의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중장기적으로는 동북아 전체의 다자평화안보협력체제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면서 북한의 비핵화보다 남북 관계 개선을 지상과제로 설정했다. 문 대통령의 ‘나팔수’ 역할을 맡고 있는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과의 인터뷰(5월 17일자)에서 “현재의 한·미 동맹이 장기적으로 다자안보협력체제로 전환해 나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문 특보는 “새로운 동북아의 안보공동체가 건설될 경우 우리는 중국도, 미국도 편들 필요가 없다”면서 “동맹 체제에 변화가 일어난다면 한반도는 지정학적 덫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 특보는 “우리는 두 대국 모두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평화와 안정, 번영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중국과 러시아군 병사들이 연합훈련 후 서로 껴안고 있다. photo 중국 국방부

   박근혜 친중 노선의 전철 밟지 말아야
   
   문 특보의 이런 발언은 북한의 비핵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제재문제 등에서 한·미 동맹의 균열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문 특보의 이런 주장은 자칫하면 국가 존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이유는 미·중 간의 줄타기 외교는 위험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중국의 전승절 기념식 때 자유민주주의국가 지도자로서는 유일하게 천안문광장 망루에 올라가 중국 인민해방군의 열병식을 참관함으로써 미국 정부가 분노한 적이 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균형 외교’를 강조했지만 미국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친중 노선을 마뜩지 않게 생각했다. 문재인 정부도 박근혜 정부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10월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유커의 단체 관광을 금지한 중국과 타협했다. 그 내용을 보면 문재인 정부는 △한국에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편입하지 않으며 △한·미·일 3국이 군사 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등 이른바 ‘3NO’를 중국에 약속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문재인 정부도 친중 노선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인식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대북정책에서도 중국의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한·미군사훈련 중단)과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을 상당히 수용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는 적극 참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반면 트럼프 미국 정부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대해 소극적 참여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이런 ‘균형 외교’는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무시한 것이다. 한·미 동맹에 금이 갈 수 있는 성급한 남북협력이나 친중 정책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동·서독이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겐셔 전 장관과 콜 전 총리가 미국과의 관계를 가장 중시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시 미국은 소련을 압도하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유했었고, 지금은 중국의 도전을 충분히 물리칠 국력을 갖고 있다.
   
   다자평화안보체제 구축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한국이 이를 주도할 국력과 외교력이 없기 때문이다. 흔히들 외교는 내치의 연장이라는 말을 한다. 동·서독 통일의 밑거름이 된 것은 서독의 경제력이었다. 겐셔 전 장관이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서독이 경제 강국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또 서독은 한국처럼 국론분열의 갈등도 겪지 않았다. 겐셔 전 장관은 제3당이자 소수당인 자유민주당 출신인데도 여당인 기민당과 야당인 사민당의 지지를 받았다. 서독 정치권을 합리적인 토론과 대안을 거쳐 합의하는 과정을 통해 한목소리를 냈으며, 이는 국력으로 연결됐고, 유럽 통합의 주도적 역할을 맡기도 했다. 외교를 잘하려면 국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국력은 내부의 단합과 결속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반면 한국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데다 정치권마저 이전투구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라는 편 가름에 사회는 두 동강났고 세대 갈등마저 불거지고 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와 청와대에는 확증편향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잘 보이지 않는 ‘한국의 겐셔’
   
   또 제대로 된 외교를 추진할 인물도 없다. 외교·안보를 총괄하는 청와대 정의용 안보실장은 주로 통상 분야에서 일해왔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 이스라엘 대사, 제네바 대사, 국제노동기구 이사회 의장 등을 역임했다. 주미 대사관에 근무할 때도 경제통상담당 공사였기 때문에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을 다루는 관리들과는 친분이 별로 없다. 또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에도 근무한 적이 없다. 서훈 국정원장은 정보기관의 장이다. 국정원장이 남북 협상 등에는 참여할 수 있지만 외교무대에서 활동할 수는 없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서 무슨 역할을 맡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부고등판무관과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사무차장보를 역임했지만 각국의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지는 유엔 안보리 등을 담당하는 분야에서 근무한 적은 없다. 또 미국은 물론 중국·일본·러시아에서도 전혀 일한 적이 없다. 대북 특사단에는 외교부 고위 관리가 한 번도 참여하지도 않았다. 더욱이 4강 대사들도 존재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조윤제 주미 대사도 한·미관계와 북·미관계 등에 경험이 거의 없는 국제경제통이다. 노영민 주중 대사는 정치인 출신으로 중국어도 못할 뿐만 아니라 외교·안보 분야에서 일해본 적도 없다. 문재인 정부가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를 구축하기를 진정으로 희망한다면 정치 성향 등에 관계없이 외교안보 전문가를 대거 기용해야 할 것이다.
   
   동북아는 새로운 판을 본격적으로 짜기 시작했다. 그 방향이 어느 쪽으로 갈 것인지는 미지수이지만 한국이 종속 변수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 민족끼리’를 주장하면서 남북관계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미 동맹 관계를 기본 축으로 삼고 동북아 전체를 조망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겐셔 전 장관과 같은 혜안과 외교력을 갖춘 인물이 한국에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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