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으로 촬영한 충북 진천군 충북혁신도시의 한국교육개발원·한국교육과정평가원·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전경.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드론으로 촬영한 충북 진천군 충북혁신도시의 한국교육개발원·한국교육과정평가원·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전경.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9월 19일 낮 12시30분 충북 진천군 덕산면 충북혁신도시(공공기관 이전도시) 입구. 대로 한편에 10여개 공공기관으로 가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곳곳에는 ‘경축, 진천군 인구 2만명 돌파’라고 쓰인 노란색 현수막도 걸려 있었다. 표지판에 새겨진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니 한국교육과정평가원(KICE), 한국교육개발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등의 공공기관이 모여 있는 서쪽 부지가 나왔다. 여러 공공기관이 모여 있는 오피스촌이라면 점심식사를 위해 오가는 직장인들이 한창 다닐 시간이지만 밖을 돌아다니는 직원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작업복을 입고 수건을 두른 현장 근로자들만이 이따금 보였다.

근처에는 황토색으로 드러난 공사장 부지가 있을 뿐 식당이나 카페가 들어설 만한 아무런 건물도 보이지 않았다. 주소지로는 음성군 맹동면이지만 대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치한 한국가스안전공사와 한국소비자원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충북혁신도시의 메인 도로인 원중로가 있는 이곳은 맞은편에 대규모 상가가 있었다. 하지만 상가 곳곳에는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새 건물이 늘어선 화려한 외경에도 불구하고 곳곳이 공실이었다. 처음 혁신도시가 개발되던 당시 투기 세력이 땅값이나 상가 임대료를 크게 높여놨기 때문에 거래가 끊겼다는 것이 이곳 부동산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충북 진천군 덕산면과 음성군 맹동면에 걸쳐 있는 충북혁신도시는 전국 10개 혁신도시 중에서도 정주 여건이 가장 열악한 곳으로 꼽힌다. 지난 9월 3일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인 홍철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아 발표한 ‘혁신도시 정주 여건 만족도 조사연구’ 조사에서, 충북혁신도시는 전국 10개 혁신도시 정주 여건 만족도 조사 중 40.9점으로 압도적 꼴찌를 기록했다. 이 조사에서 전체 평균 만족도는 52.4점이며 부산이 61.6점으로 가장 높았다. 이어 경북(56.8점), 강원(54.4점), 전북(54점), 경남(53.9점), 울산(52.6점) 순이었다. 충북혁신도시는 전국 10개 혁신도시 중 3번째로 규모가 크다. 하지만 11개 공공기관이 이전을 완료했음에도 아직까지 제대로 된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공공기관 직원들은 점심 때마다 수㎞ 떨어진 지역으로 나가 식사를 해야 한다. 열악한 정주 여건은 고스란히 직원들이 감내해야 하는 몫이다. 이것은 비단 충북혁신도시만의 일이 아니다.

서울 강남에 있다가 광주·전남 공동 빛가람혁신도시로 옮긴 한국전력 본사에 근무하던 30대 여성 B씨는 회사 때문에 퇴사까지 한 사례다.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서울에 있고, 성남시 분당구에서 자라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온 A씨 입장에서는 갑자기 아무런 연고 없는 나주로 내려간 상황을 버티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혼을 생각하는 A씨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미래를 약속한 남자친구가 서울에 있는데 나주에서 서울을 오가는 장거리 연애를 하다가는 도저히 결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 견디기 어려웠다. 그는 “지방 발전을 위해서 직원 개인에게 너무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느낌”이라며 “차라리 기혼자들은 온 가족이 이주하면 되는데 미혼 여성 입장에서는 결혼도 출산도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남자친구와 헤어진다면 나주에서 결혼 상대를 찾아야 하는 것도 막막했다. 운이 좋아 결혼은 하더라도 출산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아이를 키운다면 나주에서 교육을 시켜야 할지 고민이 산 넘어 산이었다. “나라에서 늘 출산과 결혼을 장려하죠. 그런데 정작 공공기관 직원들의 출산, 결혼 문제는 나몰라라 하는 느낌이었어요.” A씨는 결국 한국전력을 퇴사하고 서울의 다른 공공기관에 신입으로 입사한 뒤에야 만족감을 회복했다. “나주에 있을 때는 고민거리가 너무 많은 나머지 병원에서 우울증으로 진단도 받았어요. 지금은 매주 한두 번씩 남자친구도 만나고, 친구들과도 교류하니까 우울증이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다른 지방의 한 혁신도시에 있는 공공기관 30대 남성 직원 B씨는 회사 때문에 부모님으로부터 ‘강제 독립’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닐 때 B씨는 경기도에 있는 부모님 집에서 함께 살며 출퇴근을 했다. 하지만 회사가 갑자기 지방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20~30%만의 직원이 서울에 남았고, 나머지 70~80%의 직원은 지방으로 직장을 옮겨야 했다. 근무지를 옮긴 직원 중 관사가 제공되는 직원은 절반뿐이었고, 여기에 해당되지 못한 B씨는 알아서 숙소를 구해야 했다. 그렇다고 주거비용이나 이전비용을 회사에서 지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간혹 교통비는 나오지만, 전체적으로 계산해 보면 오히려 개인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 B씨의 설명이다. “여기서 회사를 다닐 것이라고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균형발전이라는 취지는 좋은데, 왜 갑자기 공공기관 직원들이 균형발전의 희생양 이 되어야 하는지는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제 희망사항이나 의지는 단 한 번도 개입되지 않은 채 회사 본사가 옮겨졌어요.”

혁신도시 시즌 1은 제대로 됐나

충북혁신도시로 들어가는 도로변에 세워진 표지판.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충북혁신도시로 들어가는 도로변에 세워진 표지판.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혁신도시 주민들이나 입주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만족도가 여전히 낮은데도 여당은 이른바 ‘혁신도시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9월 4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07년 이후 생긴 공공기관 60곳의 추가이전 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다. 결국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희생만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9월 26일 기준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 위치한 공공기관은 부설기관 8개를 포함해 총 162개다. 서울에 124개, 경기와 인천에 각각 30개, 8개가 있다. 수도권을 제외하면 대전이 42개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부산 23개, 세종 22개, 대구 16개, 울산 9개, 광주 5개 순이다. 비율로 따지만 전체 공공기관 361개의 약 45%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2004년 노무현 정부가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지난해까지 전국 혁신도시 10곳에 공공기관 153개 중 150개가 이전을 완료했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공공기관 3곳도 내년까지 이전을 완료할 계획이다. 여기에 60곳을 추가 이전한다는 것이 여당 지도부의 현재 계획이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라 발생하는 행정비효율도 심각한 문제다. 업무 특성상 수도권, 관계부처와의 회의가 많다 보니 국내 출장이 많아 시간과 예산이 낭비되는 것이 대표적인 행정비효율 사례다. 2016년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공공기관 지방이전 사업 평가보고서’를 보면,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기관 전체 출장횟수는 2013년 65만6306회에서 2015년 84만1997회로 28.3% 증가했고, 출장비는 2013년 526억4100만원에서 2015년 716억9200만원으로 36.2% 증가했다. 지역별로 보면, 출장횟수 증가폭이 가장 큰 지역은 세종(210.9%), 경남(63.0%), 충북(45.6%) 순으로 나타났다. 충북혁신도시에 있는 한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30대 직원 C씨는 “주무부처와 협의를 위해 세종시에 갈 일이 많은데 시외버스도, 기차도 없다”며 “자가용 승용차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충북혁신도시에 있는 다른 공공기관에 다니는 30대 여성 D씨도 비슷한 사례다. 진천의 원룸에 사는 D씨는 현재 주말부부로 생활하고 있다. 이제 35개월이 된 딸은 서울에 직장이 있는 남편이 시어머니와 함께 돌보고 본인은 진천에서 원룸을 얻어 근무하면서 금요일 퇴근하면 바로 서울로 올라가 아이를 돌보는 상황이다.

“주말부부를 하고 싶지 않았는데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저나 친정에서 아이를 봐주실 수 없는 상황에서 시어머니가 고맙게도 아이를 봐주고 계세요. 시어머니가 남편 출퇴근, 아이 출퇴근 다 도맡아 하고 계시고, 매달 돌봄 비용에 서울 집 관련 비용으로 제 월급은 그대로 다 빠져나가고 있어요. 제가 진천에서 따로 내는 월세 비용에, 서울에서 진천까지 왕복하는 비용은 어떻고요. 지금은 그냥 다 그만두고 싶어요. 우울증이 와서 너무 힘듭니다. 아이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원룸 침대 위에 누워 있으면 한숨만 나와요. 내가 왜 이렇게 살게 됐나. 어쩌다 내 삶이 이렇게 하찮아졌나. 작년 국정감사 기간에는 일이 너무 바빠 2주 정도 아이를 못 봤어요. 국감 끝나고 서울에 올라가니 아이가 엄마를 낯설어해서 밤에 우느라 잠을 못 잤어요. 균형발전, 좋죠. 하지만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직원들 생각도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요? 기반과 지원 없이 만들어진 인위적인 균형발전이 누구에게 도움이 됩니까?”

공공기관 직원들 나홀로 이주

혁신도시의 정주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 대표적 요인으로 공공기관 직원들의 ‘나홀로 이주’가 꼽힌다. 상당수 직원이 수도권에서 출퇴근하거나 주말이면 떠나는 상황이다. 홍철호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혁신도시 이주형태에서 ‘단신 이주’가 전체 55.4%, ‘가족 단위’는 39.9%로 각각 집계됐다. ‘홀로’ 또는 ‘가족 일부’만이 혁신도시로 이주한 응답자를 대상으로 해당 사유를 조사한 결과 ‘배우자 직장’(45.1%), ‘자녀 교육’(42.0%) 문제가 주된 이유로 나타났다. 홀로 떠난 직원들이 가족을 찾아 주말이면 서울로 올라오다 보니 지방 혁신도시는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까지 빈 도시가 되는 것이다.

충북혁신도시의 공공기관에서 부장급으로 근무하는 E씨가 이런 사례다. 경기도 남부권의 집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던 E씨는 요즘 왕복 200㎞에 가까운 거리를 매일 승용차로 출퇴근한다. 아이가 이미 중학생이 된 상황에서 직장이 갑자기 진천으로 옮겨지면서 집을 같이 옮길 수는 없었다. 초등학생도 아닌 자녀를 갑자기 진천군으로 데려와 교육시키기에는 진천군의 교육 여건이 너무나 열악했기 때문이다.

전국 혁신도시는 저출산·고령화의 추세하에서 특히 인구가 감소해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이 하락하는 지역의 경쟁력을 담보하기 위해 추진됐다. 급속한 고령화로 지역의 경쟁력이 급격히 하락하는 상황에서 균형발전이라는 대의명분을 이길 만한 것은 별로 없다. 다만 문제는 이전 계획이 얼마나 정교하게 추진되냐는 것이다.

이전한 공공기관별로 특성이 달라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도 충북혁신도시의 문제점으로 꼽힌다. 전남 나주 빛가람혁신도시의 경우 한국전력공사, 한국전력거래소, 농어촌공사 등 에너지, 농업 관련 공기업들이 몰려 있고, 부산 문현혁신도시의 경우 한국거래소,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금융공기업이 몰려 있다. 반면 충북혁신도시는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고용정보원 등 특성이 다른 여러 공공기관이 서로 뒤섞여 있다.

정부는 지역 정주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지역별로 문화·체육·보육 등 맞춤형 생활 기반시설인 복합혁신센터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9월 20일 국토교통부는 충북혁신도시에서 ‘충북 복합혁신센터’ 건립을 위한 주민간담회를 개최했다. 충북혁신도시 주민들의 정주 인프라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국토부는 전국 10개 혁신도시 전체에 복합혁신센터 건립을 확대 추진할 계획이다.

전국 10개 혁신도시는 부산, 광주, 경북, 전북 등 각 광역지자체마다 한 곳 혹은 두 곳씩이 있다. 유일하게 없는 도(道)가 충청남도다. 이미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가 있기 때문이다. 행정복합중심도시 조성 초기부터 세종에서 근무한 중앙부처 소속 30대 사무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저도 주말부부입니다. 저는 친정어머니와 세종에서 살고 남편은 시댁에서 출퇴근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세종시가 조성되던 때부터 있었던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솔직히 누구를 위한 균형발전인지 모르겠습니다. 집주인과 건물주들은 돈을 벌었을지 몰라도 원주민은 쫓겨나고 세종에 있는 직원들은 가족이든 돈이든 시간이든 희생해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결국 세종은 발전하기는 했고, 하나의 도시로 자라나기는 했는데 여전히 갈 길은 먼 상황이죠. 게다가 세종처럼 거대한 행정도시가 아닌 이상은, 글쎄요, 이렇게 해서 혁신도시가 성공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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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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