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0일 서울 서초구 한국교총 사무실에서 만난 하윤수 한국교총 회장.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0월 10일 서울 서초구 한국교총 사무실에서 만난 하윤수 한국교총 회장.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금 한국 사회에서 교육 현장은 ‘갈등’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교육부 수장의 임명 문제를 두고 교육 현장이 아닌 정치권에서 연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입시 정책은 해마다 변한다. 학교 내에서도 고용 형태를 두고 교사들 간 차별과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교사와 학생이 대립하는 모습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교육의 문제는 오래된 것이고 복합적이라 풀어내기 어려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러 교육의 문제를 정책적 변화나 구조적인 문제에서 찾기도 하지만 실제 해결의 실마리는 현장에 있다는 주장도 많다. 교육 현장에서 교육 환경의 변화를 직접 겪고, 실제 문제를 접하게 되는 교사라면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한국 최대의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하윤수 회장의 의견도 그렇다. 2016년 7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교총의 36대 회장으로 취임한 하 회장은 임기 3년 차를 맞아 교육의 미래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0월 10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국교총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내내 ‘교육공동체 회복’이라는 과제를 강조했다.

하윤수 회장은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교권이 추락된 교육 현장을 꼽았다.

“교사의 지위가 예전에 비해 낮아졌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학생들에게 교사가 ‘선생님’이 아니라 단순한 ‘지식전달자’에 그치는 상황은 우리 교육의 모든 문제를 포괄하는 것입니다.”

교육부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학생이나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 건수는 1만8211건이나 됐다. 보통 ‘교권침해’ 사건으로 분류하는 유형은 크게 네 가지다. 물리적인 폭행이나 폭언·욕설, 성희롱, 수업방해 등이다. 이 중 폭언·욕설 같은 교권침해를 겪은 사건이 5년간 전체의 63%에 달했다. 한국교총이 지난 5월 전국의 교사에게서 직접 접수를 받아 집계한 교권침해 건수만 봐도 2017년 한 해에만 508건으로, 10년 전 204건에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교권의 추락은 과정이 아닌 결과물입니다. 공교육이 붕괴해 교권이 추락한 것인데, 공교육의 붕괴는 교육공동체의 붕괴와 관련이 있습니다. 교육공동체가 붕괴했다는 것은 가정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교육공동체의 주요 구성원은 교사, 학생 그리고 학부모다. 하윤수 회장은 학부모와 학생이 이루는 가정을 일차적 교육공동체, 학교를 이차적 교육공동체로 설명했다.

“2015년 7월부터 시행된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정된 이유는 기본적인 가치를 정립하는 일이 교육공동체 회복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밥상머리 교육’이란 낡고 오래된, 흘러가버린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겨지죠. 하지만 알고 보면 가장 기본적이고 인간적인 것이 밥상머리 교육입니다. 가족이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기본적인 가정생활을 하자는 얘기니까요. 가족 간의 소통이 이뤄지고 자연스럽게 애정과 관심, 설득과 이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공동체에서는 그런 가치가 없어지다시피 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학교에서 교사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학생뿐만이 아닙니다. 학부모 또한 교사와 학교를 존중하지 않아요. 심지어 교육 당국 역시 학교와 교사를 존중하지 않습니다. 교사와 학교는 더 이상 배움의 장소가 아닙니다. 종종 교육정책과 학교만이 공교육 붕괴의 원인으로 꼽히는데 사실은 교육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 있습니다.”

학교와 동떨어진 교육정책만

하윤수 회장은 단위학교의 자율적인 경영을 존중하지 못하는 교육 현장도 교육공동체 붕괴의 원인으로 꼽았다. 교육감의 권한이 큰 교육 현장에서 각 학교 교장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9시 등교, 자율학습, 석식 급식 같은 부분은 각 학교의 환경과 구성원의 요구에 따라 다르게 결정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사교육 기회가 적은 학생이 많다면 자율학습을 시행할 수 있을 거고요. 그렇지만 지금 학교 현장에서 이런 방침들을 학교장이 결정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교칙은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정할 수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요.”

한국에는 학교라는 틀 안에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소통이 이뤄지고 각 학교의 목표와 상황에 맞게 운영할 수 있는 자율적인 교육공동체가 없다. 정권이 바뀌거나 여론이 변할 때마다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교육정책과, 학교 현장과는 무관하게 움직이는 정부 차원의 교육목표만이 강조되는 실정이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이 직접 느끼는 위기감은 상당하다.

“그래서 이제는 교총이 직접 나서기로 했습니다. 가장 먼저 교권침해가 문제라는 인식을 사회 전반에 제고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전·현직 교원으로 구성된 ‘교권보호 SOS 지원단’을 출범시켜 교권침해 사례에 직접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또 ‘아동복지법’ 개정안이 국회상임위를 통과돼 시행될 예정입니다.”

그간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데 소외되었던 교원단체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데도 힘을 쓰고 있다.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공론화 작업이 진행될 때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 당사자의 참여가 매우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윤수 회장은 “교사 개인의 생각은 대표성이 부족할지 몰라도 교육 현장에서 실제로 보고 겪고 느끼는 바를 하나로 모으는 교원단체는 보편적인 대안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정책의 결정 과정에 교원단체가 참여하겠다는 것이 어떤 의지의 표현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는 교육 현장에서의 갈등을 처음부터 줄이려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교총에서 반대해 결국 무산된 교장공모제 전면확대 같은 제도는 교원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무작정 진행하다가 결국 갈등까지 불러온 사례이기도 합니다.”

교장공모제 전면확대는 지난해부터 정부가 15년 이상 근무한 평교사가 교장자격증이 없어도 교장 공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교장공모제를 전 학교에 확대 적용시키겠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됐었다. 학부모와 교사가 참여하는 심사위원회와 교육청의 심사위원회 면접을 거쳐서 교장을 선발하는 제도를 시행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교총과 교사들은 이 제도가 학교 현장의 정치적 갈등을 조장할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 시행했을 때 그런 결과를 낳고 있다는 점에서 반대해왔다. 하윤수 회장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서는 등 격렬한 반대 끝에 올해 3월 전면확대 방침은 철회됐다.

“교육 당국은 종종 교육정책이 학교 현장과는 동떨어진 거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교육정책이 적용되는 곳이 학교 현장이고, 시행하는 사람이 교사이며, 교사가 정책의 목표와 시행 방향에 동의해야 최선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교육

하윤수 회장은 한국 교육이 이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저출산으로 인해 매년 줄어드는 학령 인구는 교육 현장의 문제이자 변화의 계기이기도 하다.

“지금 대입제도를 고민하는 것을 보면 그때그때 요구에 맞는 단기적인 처방만 내놓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 더 장기적으로 학령인구 감소와 그에 따른 교육수요 변화에 맞는 대입제도 개편안이 고민돼야 합니다. 무조건 대학에 진학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각자의 적성에 맞게 다양한 학교 선택이 가능해야 할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진로 교육이 강화되겠지요. 수능은 장기적으로 절대평가제로 전환되고 대학의 필요와 학생의 진로에 맞는 선발평가 방안이 고안되어야 합니다.”

다양성, 자율성을 강조하는 교육현장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 하윤수 회장의 생각이다. 획일화된 교육은 점점 다양해지는 사회와 그런 사회에서 자라난 학생들의 요구를 미처 다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교육이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선택을 보장해야 한다.

“특목고나 자사고를 폐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교육정책이 널뛰듯이 바뀐다는 점입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서 특목고, 자사고 폐지와 관련해서 ‘안정적인 교육제도의 운영’을 강조한 점을 우리는 눈여겨봐야 합니다. 자사고는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운영상의 문제를 보완하고 제도의 미비점을 따져볼 시점에 아예 제도를 폐지해버리는 방안은 혼란을 불러일으킬 따름입니다.”

하 회장의 말을 요약하자면 교육 현장 내부에서는 자율적이고 안정적인 교육정책이 시행되고 외부의 변화에 발맞춰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하윤수 회장은 최근 한국 교육 환경 외부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평화 기조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남북 관계에서 교사 역시 한반도 평화를 지키고 발전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아직 북한의 교육 문제에 대해 잘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육은 이념의 진영과는 상관없이 미래 성장 동력을 키우는 분야로서 남북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점입니다.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고 상호 도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도록 교원단체가 우선 교류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육 분야 교류의 주역은 교원단체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서로 다른 교육제도와 목표, 교육과정을 이해하려면 교육 현장의 전문가들이 만나 소통하는 일이 필요하다. 국제적으로도 요즘은 교육 분야에서 교원단체의 교류가 잦아지고 있기도 하다. 매년 개최되는 한·아세안교육자대회에서 한국은 교육 선진국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2016년에는 서울에서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적이 있는데 아세안 국가들의 한국 교육에 대한 호기심과 열의가 대단하다는 것을 몸소 느꼈습니다. 한국은 사실 세계적으로도 교육 선진국에 속합니다. 특히 교육자, 교사들의 수준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편이지요. 이제는 우리가 쌓아온 전문성과 우수성을 다른 사회에 전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하윤수 회장이 관심을 갖는 것은 중앙아시아 지역 고려인의 한글 교육 및 정체성 교육 문제다. 하 회장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독립유공자의 자손이다. 조부인 하준호는 경남 진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옥사(獄死)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기도 했다.

“독립운동가의 자손으로서 가난하게 자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밥 한 끼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든 상황에서 교수가 되어 대학 총장을 지내고 15만 교원의 권리를 위해 힘쓸 수 있게 된 데는 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저는 기회가 되면 꼭 제가 받은 은혜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한국 사회가 잊고 있었던, 그러나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고려인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키워드

#교육
김효정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