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9일 슈피겔 공동편집장 두 명이 한꺼번에 사임했다. 슈피겔 내에서도 베테랑 기자로 이름을 날리다 2008년 2월 편집장에 올랐던 게오르그 마스콜로와 마티아스 뮐러 폰 블루멘크론이 그 주인공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편집장 직함을 달았으나 역할은 달랐다. 잡지를 포함한 인쇄 에디션은 마스콜로가, 웹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 등 디지털 에디션은 블루멘크론이 맡으며 투톱 체제를 유지했다.

두 사람이 한날한시에 사임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동시 사임의 단초가 된 사건은 2012년 4월, 슈피겔의 경영진과 편집진 8명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벌어졌다. 이들은 조직을 이리저리 찢으며 생채기를 내던 내부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모였다. 갈등은 외부에서 온 충격 탓이었다. 온라인으로 기사를 읽는 사람은 늘고, 책으로 기사를 읽는 사람은 감소하는 시대 흐름에서 슈피겔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2011년 슈피겔 잡지는 전년보다 10% 정도 판매량이 감소했다. 반면 슈피겔 온라인은 독자 수가 전년보다 10% 증가했고, 광고 수익으로 수천만유로를 올리고 있었다. 한쪽은 이런 현실을 위기로 받아들였고 다른 쪽은 기회로 봤다. 당연히 온라인 파트와 오프라인 파트가 생각하는 슈피겔의 방향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잡지를 제작하는 슈피겔 조직원들은 “무료로 기사를 제공하는 슈피겔 온라인이 우리 기사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믿었다. 반면 슈피겔 온라인 구성원들은 “왜 온라인 독자와 잡지 독자를 가르려고 하냐”며 반발했다. “인쇄매체를 위한 희생을 우리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온라인 편집국은 항의했다.

8명의 회의는 잡지를 대표하는 마스콜로 편집장이 제안했다. 온라인 기사를 유료로 제공하면 슈피겔의 가치가 유지될 수 있을 거라 그는 믿었다. “지불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그의 주장은 투표에 부쳐졌다. 찬성 3, 반대 5. 부결이었다. 결과가 나온 뒤 온라인을 대표하는 블루멘크론 편집장은 마스콜로 편집장의 교체를 요구했다. 슈피겔 온라인이 잡지의 종속적인 매체가 아니라는, 일종의 선언인 셈이었다.

두 진영의 갈등은 1년 뒤인 2013년 4월, 두 명의 편집장이 물러나면서 일단락됐다. 경영진은 협력과 변화를 이끌기에 두 사람 모두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따져보면 두 사람은 다른 의견을 얘기했지만, 고민의 출발점은 같았다. ‘저널리즘의 미래를 위한 고민’이었다. 슈피겔의 전환점이 됐던 이 사건은 6년이 지난 지금도 매체만 다를 뿐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 법한 이야기다. 국내 시사주간지를 포함한 잡지에서도 말이다.

2018년 두 번 팔린 타임의 새 주인

지난 9월 타임을 인수한 세일즈포스닷컴 창업자 마크 베니오프. ⓒphoto 뉴시스
지난 9월 타임을 인수한 세일즈포스닷컴 창업자 마크 베니오프. ⓒphoto 뉴시스

시사주간지를 대표하는 매체들은 어느 순간부터 ‘디지털 환경’에서의 생존법을 고민했고, 대안을 찾기 위해 내부에서 옥신각신하기 시작했다. 1주일이라는 시간 단위로 가던 편집국의 관성이 디지털 시대에는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지난 몇 년 해외 사례를 보면 이 도전에 잘못 대응할 경우 그 주간지는 부침을 겪게 된다는 사실을 목도할 수 있었다. 타임이 대표적 사례다.

2018년 1월 미국 출판기업 메레디스(Meredith Corporation)는 18억달러(2조530억원)에 타임을 샀지만 불과 9개월 만에 세일즈포스닷컴(Salesforce.com)의 창업자인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와 그의 부인에게 다시 팔았다. ‘2018년에 두 번 팔린 매체’는 2004년 400만부에서 지금은 200만부까지 발행부수가 감소했다.

타임 역시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다. 잡지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자 타임 역시 디지털을 대안으로 삼았다. 2006년부터 7년간 타임의 편집장을 책임졌던 릭 스텐젤은 “편집장 시절 7년 동안 매년 디지털과 뉴미디어에 대한 투자를 요청했지만 경영진은 매번 거절했다”고 기억했다. 2012년 7월 타임의 로라 랭 CEO는 “타임을 주간지가 아닌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성장시키겠다”고 선언했다. 2013년 타임에 컴백한 조지프 리프 CEO는 “미디어 환경의 바람을 견디려면 관료적인 태도를 버려라”라고 기자들에게 요구했다.

타임이 택한 전략은 ‘커질수록 좋다(bigger-is-better)’였다. 자매지들까지 포함해 페이지뷰 늘리기에 몰두했다. 타임사의 월 방문자 수는 2500만명에 육박했다. 이런 페이지뷰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디지털 페이월(지불장벽)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타임의 콘텐츠에 돈을 쓰지 않았다. 페이월은 진입장벽으로 작동했다. 갈수록 파편화되고 개인화되는 온라인 속성은 덩치만 불리려는 타임의 전략과 맞지 않았다. 또한 경영진이 디지털 전환을 외친 시점은 늦어도 한참 늦었다. 2006년 릭 스텐젤 편집장의 목소리에 경영진이 귀를 기울였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2017년 타임사의 COO(최고운영책임자)에서 은퇴한 팀 펄스타인의 말에는 타임 경영진이 왜 릭 스텐젤 편집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담겨 있다.

“타임사와 같은 출판사들은 단기 목표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다음 분기에 실패할지 모를 일이라면 꺼린다. 아직 디지털에서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 지출할지 불분명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 적응에 실패한 타임은 디지털 시대의 거부(巨富)를 새 주인으로 맞았다. 타임에서 10년을 근무한 엔투리알 저널리즘 센터의 제프 자비스 대표는 타임의 새 오너인 마크 베니오프가 타임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베니오프가 운영하는 세일즈포스는 마케팅·고객 관계 관리 솔루션에서 세계

1위 업체다. 그가 강조한 건 테크놀러지다. 자비스 대표는 베니오프에 대해 “이 사람은 주간지 업계가 필요한 전문지식을 갖고 있다. 새로운 기술과 접근법 말이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 독자는 45분20초를 머문다

자비스가 강조한 새로운 기술과 접근법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곳이 이코노미스트다. 이코노미스트는 외부와 협업으로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하는데 대부분 독자층 연구와 관련이 있다. 2017년 6월 기호학 및 언어분석 연구기업인 ‘입소스 커넥트’와 함께 시작한 프로젝트도 그런 사례다. 이코노미스트에서는 마케팅·광고·편집부 직원인 16명의 여성이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이들이 수행해야 할 주제는 ‘여성 독자’였다.

이코노미스트의 잡지 혹은 디지털 독자는 141만명이나 되지만 여성은 30% 미만이다. 연구팀의 일원인 마리나 하이든 이코노미스트 마케팅 담당자는 “우리 매체는 너무 계몽적이고 권위 있는 접근법을 취한다. 그러지 말고 좀 더 개방적이고 환영받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16명에게 주어진 과제는 여성 잠재 고객에 침투하기 위해 이코노미스트 기사의 톤과 주제, 그에 따른 적용 범위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독자의 성별 분포를 고르게 가져가야 광고주에게 호소력을 갖기 때문이었다. 이코노미스트가 디지털 시대에 계속해서 성장하는 배경에는 이같이 독자층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있다.

이코노미스트 맞춤형 전략의 또 다른 사례를 보자. 2015년 이코노미스트는 ‘수익 2배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2015년 그룹의 총수익은 3억3000만파운드였다. 이걸 두 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디지털 에디션의 구독자를 늘려야 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게 가능할까 싶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 2018년 1~6월 영국 ABC협회 결과를 보면 이코노미스트 잡지 정기구독자는 95만명, 디지털 정기구독자는 46만명이다. 특히 작년 동기 대비 디지털 구독자 수는 24.7%나 증가했다.

이코노미스트의 기사 수준은 모두가 인정한다. 근데 이걸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래서 이코노미스트가 택한 전략은 ‘지역별 맞춤형 침투’였다. 마이클 브런트 이코노미스트 CMO는 “영국 내 잠재고객은 1억3200만명이지만 이코노미스트 영국 침투율은 3%에 불과하다. 최대 시장이 될 수 있는 미국에서도 1.5%에 불과해 낮다. 아시아는 더 낮아 0.2%다. 해외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높다”고 분석했다.

지역별 침투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솔루션을 적용했다. 일본에서는 가장 널리 쓰이는 메신저인 ‘라인’과 제휴해 기사를 유통 중이다. 중국에서는 아예 중국어 번역판 앱인 ‘이코노미스트 글로벌 비즈니스 리뷰’를 운영하고 있다.

미디어 전략에 ‘기술’을 거는 건 이코노미스트의 장점이다. 이미 2013년부터 디지털 광고 에이전시인 ‘Atmosphere Proximity’와 독자 타기팅 프로그램 개발에 돌입했다. 프로그램을 통해 2억명 규모에 도달할 수 있는 온라인 광고를 뿌리고 여기에 반응한 사람에겐 자동으로 구독 안내 메일을 보낸다. 그렇게 매달 수천 명의 디지털 구독자가 이 루트를 통해 가입하고 있다. 덕분에 구독자 한 명을 얻는 비용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었다.

2018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할 때 이코노미스트 웹사이트 순방문자는 1일 41만7404명, 1개월 966만명인데 명성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다. 하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디지털 구독자로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웹사이트에 한 번 들어와 오래 머무른다. 일단 접속하면 평균적으로 7분29초를 웹사이트에서 머무른다. 주말에 이코노미스트 앱으로 들어온 디지털 구독자는 무려 45분20초 동안 이코노미스트를 즐긴다. 긴 체류시간은 이코노미스트가 여전히 프리미엄 광고료를 유지하는 이유다. 한때는 온라인의 볼륨을 키우는 게 해법으로 칭송받던 시절이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볼륨보다는 구독에 중점을 둔 매체가 더욱 건실하게 살아남은 사례다.

“잡지와 온라인을 하나의 조직으로 만들겠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편집장이 동반 사퇴했던 슈피겔은 5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됐을까. 25년 전 두 명의 기자로 시작한 슈피겔 온라인은 지금 약 150명이 일하는 조직이 됐다. 24시간 체제를 갖추고 있는데, 독일과 호주에 편집부를 두고 있다. 시차를 활용해 온종일 커버하기 위해서다.

2018년 4월 23일, 토마스 하스 슈피겔 CEO는 직원들에게 시사주간지 역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알렸다. “앞으로 콘텐츠 및 제품에 대한 중앙집중식 통제는 새로 만들 공동 편집팀에서만 가능하다.” 2019년 1월 1일부터 서로 다투던 ‘슈피겔’과 ‘슈피겔 온라인’의 편집은 이제 하나로 합병돼 인쇄 에디션과 디지털 에디션의 변환과 융합이 이뤄지는 중이다.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운영 방식을 갖고 있고 호흡의 길이가 서로 다른 집합체 간 결합이다.

최근 도입한 과금제도인 ‘슈피겔 플러스’가 호조인 것도 조직 재편에 힘을 싣는다. 최근 2년간 슈피겔 온라인은 기사 하나마다 39유로센트(약 500원)를 받으며 독자의 지불 의향을 테스트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호응을 얻지 못했고 방향을 바꿔 ‘슈피겔 플러스’라는 정액 요금제를 실시했다.

디지털 구독만 선택하면 월 19.99유로(약 2만5800원), 잡지와 디지털을 함께 구독하면 24.99유로(약 3만2300원)를 받는다. 특히 젊은 독자의 지불 습관을 유도하기 위해 만 30세 이하는 요금제에서 8유로씩 할인을 적용한 게 이채롭다. 출시 3개월 만에 9만4500명의 독자를 확보했는데 당초 기대를 뛰어넘었다. 슈피겔 플러스를 도입한 클라우스 브링크바우머 슈피겔 전 편집장은 “슈피겔 플러스는 지면팀의 재고와 유연성이 필요하다. 잡지를 만드는 동료들은 더 많은 기사를 쓸 것이며 그렇게 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사주간지 종사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전제가 있다. 편집국에서는 인쇄물과 온라인을 구분할지 몰라도, 대중들 사이에서는 인쇄물과 온라인 기사 간극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디지털 미래’에 바삐 대비하고 있는 시사주간지의 전장에는 혼란과 가능성이 상존한다. “어떤 대처법이 옳을까”라는 우문에 현답을 내놓기란 어렵다. 다만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관성적으로 머무는 진부한 매체는 살아남기 어렵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Digital News Report) 2018’에 따르면 디지털 저널리즘 성패에 있어서 가장 큰 요인으로 ‘변화에 대한 거부감과 혁신에 대한 무능함’을 지목한 사람이 36%나 됐다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김회권 객원기자·전 시사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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