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독살됐다.”

2017년 2월 13일 전 세계 미디어 1면을 뒤덮은 특종이 터져나왔다. 특종 보도를 한 매체는 ‘JX프레스’란 이름의 일본의 미디어 스타트업. 2008년 설립된 이 스타트업에는 기자가 단 한 명도 없다. 모든 기사는 프로그래밍 개발자가 개발한 인공지능(AI)이 생산해낸다. 요네시게 가쓰히로 대표가 개발한 기사생산 AI는 소셜미디어(SNS)를 뒤지며 정보를 수집한다. 사용자가 올린 콘텐츠를 분석해 소위 ‘단독’ 정보를 찾아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렇게 작성된 보고서를 확인하고 이를 최종 기사로 내보내는 것만 요네시게 대표의 손에 의해 이뤄진다. ‘김정남 공항 독살’ 보도 역시 그렇게 이뤄졌다.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이 사실인지 묻지 않고, 심지어 그 뉴스가 사람에 의해 생성됐는지조차 묻지 않을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닉 뉴먼 수석연구원은 AI가 저널리즘에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내다봤다. “인공지능의 시대는 창의성과 효율성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문제는 더 큰 오보와 조작의 가능성도 커진다는 점이다.”

오보와 뉴스 조작의 가능성은 이미 2016년부터 미디어 업계 최대의 화두로 등극했다. 미국 제45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과정에서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가짜뉴스’들이 등장했고, 페이스북·트위터 등 SNS를 타고 선거판을 휩쓸었다. 왜곡되고 조작된 정보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 속에서 빠르게, 그리고 분명하게 현실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추세가 AI와 만난다면 그 파장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게 학계의 대체적 우려였다.

가짜뉴스가 고품질 매거진을 키우다

그런데 가짜뉴스의 등장은 미디어 업계에 뜻밖의 터닝포인트를 제공했다. 오랫동안 종이지면에 의존해온 전통적 뉴스시장은 모바일 시대의 독자 수요에 맞춘 콘텐츠와 새로운 수익 모델 창출에 대해 딱 떨어지는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독자들은 미국 대선을 전후로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가짜뉴스의 부정적 영향을 목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원하기 시작했다. 독자의 니즈는 숫자의 변화로 이어졌다. 일회성으로 소비되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SNS이나 가십용 잡지의 수익은 감소하는 반면 이코노미스트, 블룸버그 등 고품질의 ‘뉴스 매거진’ 독자는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들 중 점점 더 많은 수가 ‘질 좋은 뉴스’를 보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독자의 뉴스 신뢰도를 회복하는 게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미디어 환경의 가장 큰 과제지만, 차차 ‘질 좋은 콘텐츠에 합리적 가격 지불’이라는 모델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매년 6월 발간하는 ‘디지털 리포트’ 속엔 현 시점에서 미디어 시장 그리고 소비자가 우려하는 키워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올 초 37개국 미디어 환경을 조사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54%)이 인터넷상 가짜뉴스의 범람을 우려했다.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가짜뉴스 확산의 책임을 언론사(75%)와 플랫폼(71%)에 물었다.

한국 뉴스 소비자들의 미디어 인식은 더욱 비관적이었다. 한국의 뉴스 신뢰도는 조사 대상이 된 세계 37개국 중 최하위(37위)였다. ‘대부분의 뉴스를 신뢰하느냐’는 물음에 한국의 응답자는 25%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소셜미디어 속 뉴스에 대한 신뢰도는 19%로 더 낮았다. 한국은 ‘인터넷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우려스럽다’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61%가 ‘그렇다’고 답했다. 37개국 중 12위로, 5명 중 3명은 ‘가짜뉴스’를 우려하는 셈이다.

포털 의존도 높고 뉴스 신뢰도 낮은 한국

이 보고서 속 한국의 미디어 환경은 독특하다. 지면이나 웹사이트 등 언론사가 직접 운영하는 매체가 아닌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온라인 뉴스 소비가 압도적이었다. 응답자의 47%가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보거나, 온라인상 뉴스수집기(어그리게이터)를 통해 뉴스를 소비한다(30%). 단 5%만이 언론사 홈페이지나 앱에 직접 접속한다. 이런 경향성은 아시아 지역에서 두드러진 특징으로, 한국은 그 가운데서도 특히 유별나다.

한국처럼 포털사이트나 SNS에서 쉽게 공짜 뉴스를 볼 수 있는 구조에선 디지털 뉴스 구독 전략이 자리 잡기 어렵다는 게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분석이었다. 독자가 선호하는 뉴스 접속방식은 미디어의 입장에서 독자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 중요하다. 응답자의 3분의 2가 언론사 홈페이지나 언론사가 제공하는 앱에 직접 접속해 뉴스를 보는 북유럽에서 디지털 유료 독자 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북유럽의 미디어는 독자들과 ‘친밀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미디어가 생산하는 온라인 콘텐츠에 대해 소비자가 대가를 지불하도록 유도하기에 훨씬 용이한 환경이 조성돼 있는 셈이다. 바로 여기에서 ‘뉴스 신뢰도’가 쌓인다. 반면 한국과 일본의 경우는 포털과 같은 제3의 플랫폼 업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지난해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10명 중 1명만이 온라인 뉴스에 대가를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뉴스 신뢰도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회복된다면 젊은 구독자 감소라는 미디어 시장의 오랜 숙제도 풀릴 것이란 전망이다. 미디어 시장은 새로 유입돼야 할 10~30대 소비층이 무료로 뉴스를 소비하는 데 익숙하다는 점을 들어 미디어 수익구조에 치명적일 것이라 걱정해왔다. 그러나 이 세대는 동시에 영화·음악 등 디지털 콘텐츠 소비에 비용을 지불하는 데 익숙한 양면성을 갖고 있다. 닉 뉴먼 연구원은 “젊은 사람들이 뉴스 콘텐츠에 돈을 쓰지 않을 것이라는 보편적 오해와 달리 연령대별 뉴스 콘텐츠에 대한 지불 의사의 차이는 거의 없다”며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디지털 저널리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담론은 돌고 돌아 결국 ‘뉴스 신뢰도’의 회복으로 귀결된다. 무분별한 광고성 기사, 이념적 양극화, 가짜뉴스 생산 등으로 얼룩진 저널리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는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AI가 맞춤형 콘텐츠 추천

그 변화의 시도 가운데 AI가 있다. 올 초 전 세계 뉴스 생산자를 대상으로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수행한 다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8%가 팟캐스트 및 음성인식 오디오 서비스 도입에 집중할 것이며, 무려 72%가 AI 도입을 둘러싼 실험을 적극적으로 개진할 것이라고 답했다. AI 기술로 기사 제작 및 소비의 알고리즘을 분석해 제작 효율성을 제고하고 개별 독자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미국의 LA타임스가 2014년 3월 LA 지역에 발생한 지진 속보를 로봇 저널리즘을 이용해 작성한 바 있다. 지진과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해 프로그램화된 문장 구조에 데이터를 배치하는 식으로 구성된 이 기사의 작성 시간은 채 10분이 되지 않았다. AP통신은 2014년 6월 오토메이티드 인사이트와 제휴 계약을 맺고, 로봇 제작 방식으로 짧은 속보와 기업 실적 뉴스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닉 뉴먼 연구원은 “뉴스 미디어는 이제 기존의 규칙을 벗어나 위험을 감수하고, 정형화된 구조를 무너뜨리며, 관객들이 좋아하는 더 높은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현명한 기업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우수한 콘텐츠와 결합함으로써 신뢰와 비즈니스를 재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김경민 코인와이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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