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옛 프랑스 조계지 프렌치클럽 위에 들어선 오쿠라 화원반점.
상하이 옛 프랑스 조계지 프렌치클럽 위에 들어선 오쿠라 화원반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7년 만의 중국 공식방문이 마무리됐다. 지난 10월 25~27일까지 이어진 3일간의 중국 방문은 중·일화평우호조약(1978년) 체결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뤄졌다. 아베 총리는 일본 경제인 500명을 대동하고 베이징을 찾았고,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리커창 국무원 총리,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등 중국공산당 서열 1~3위를 돌아가며 만났다. 아베 총리의 방중 기간 중 중·일 양국은 2000억위안(약 32조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재개와 제3국 인프라 건설시장 공동진출이라는 굵직한 경제 성과도 만들어냈다.

중·일화평우호조약 40주년은 올해 중국의 개혁개방 40주년과 시기적으로 겹친다. 아베 총리의 방중 직전 시진핑 총서기는 10월 22일부터 25일까지 광둥성 주하이(珠海)를 시작으로 선전, 광저우 등 중국 남부 경제도시들을 차례로 돌아봤다. 1992년 노구를 이끌고 중국 남부 도시들을 돌면서 개혁개방의 지속을 역설한 덩샤오핑의 남순강화에 비견되는 일정과 코스였다. 광둥성 일대를 돌면서 “중국의 개혁개방은 영원히 멈추지 않는다”는 일성을 던진 시진핑 총서기는 베이징으로 상경한 뒤 곧장 아베 일본 총리를 만났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함께 중·일 양국은 철저히 실리를 챙겨왔다. 마오쩌둥은 1972년 중·일수교를 단행하면서 “전쟁배상 요구를 포기한다”는 승자의 아량을 베풀었다. 1978년 덩샤오핑의 집권과 함께 체결된 ‘중·일화평우호조약’에서도 이러한 문구는 재확인됐다. 대신 중국은 일본이 제공하는 공적개발원조(ODA)의 최대 수혜국이 됐다. 대국의 통 큰 면모를 보이면서도 챙길 것은 다 챙기는 수완을 발휘한 것이다. 이 돈은 베이징지하철 1호선, 서우두공항 2터미널을 비롯해 중국 각지의 인프라를 건설하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상하이만 해도 푸둥공항을 비롯해, 중국 최대 제철소인 바오산강철이 일본의 공적개발원조로 태어난 작품들이다.

일본 역시 마냥 공짜로 주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공적개발원조로 중국 개혁개방의 인프라를 깔아준 일본은 폭발적인 중국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구보다 부지런히 챙겨갔다. 상하이에서는 일본 기업들의 실력을 생생히 목도할 수 있다. 상하이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빌딩인 푸둥의 101층 세계금융센터(높이 492m)는 일본의 모리빌딩이 개발했고, 관리 중이다. 상하이 한복판 옛 프랑스 조계지의 유서 깊은 프렌치클럽 위에 들어선 화원반점은 일본 노무라증권이 투자해 1990년 개관했고, 오쿠라호텔이 오쿠라 간판을 내걸고 운영 중이다. 닛코호텔도 상하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상하이의 주요 백화점 역시 일본과 합작 개설한 것들이 대다수다. 한때 일본 유통업계의 해외 진출을 주도하던 야오한이 1995년 푸둥에서 중국 측과 합작으로 제일팔백반(야오한)백화점을 개설한 것을 시작으로 미쓰코시이세탄, 소고, 다이마루 등 일본의 유명 백화점들이 각각 중국 측 파트너와 함께 개설한 이세탄, 지우광, 신세계다이마루 백화점이 지금도 난징루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 교민들이 많이 모여사는 구베이 지역에는 다카시마야까지 들어왔다. 이들 백화점은 질 좋은 일본 제품들을 주로 유통시키며 ‘일제=고급품’이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상하이의 주요 도로에는 도요타, 혼다, 닛산, 마쓰다, 스바루, 스즈키, 미쓰비시까지 일본 브랜드 자동차들이 넘쳐난다. 렉서스, 인피니티, 어큐라 등 일본산 고급차들도 즐비하다. 중국 현지에서 합작 생산된 일본 브랜드 차들을 제외하고, 지난해 순수 수입차 판매량에서 렉서스와 도요타는 BMW와 벤츠에 이어 각각 3, 4위를 차지했다. 상하이에서 유독 많이 팔리는 맥주도 산토리맥주다. 사실 중국에서 팔리는 산토리맥주는 칭다오맥주 소유다. 칭다오맥주는 산토리맥주의 중국 사업권을 인수했음에도 상하이 사람들의 높은 선호도를 감안해 여전히 산토리 상표를 붙여 맥주를 생산 판매 중이다. 인수 당시 산토리의 전 중국 시장 점유율은 1.4%에 불과했으나 상하이 시장 점유율은 무려 40%에 달했다. 상하이에서 산토리맥주의 높은 점유율은 지금도 여전하다.

상하이 푸둥의 중·일 합작 제일팔백반(야오한)백화점.
상하이 푸둥의 중·일 합작 제일팔백반(야오한)백화점.

일본식 온천도 대유행

요즘은 일본식 온천도 상하이에서 유행이다. 일본식 초대형 온천리조트인 극락탕(極樂湯)은 상하이에만 3곳의 온천리조트를 두고 있는데 중국인들의 목욕문화까지 서서히 바꾸는 중이다. 다다미가 깔린 온천탕 입구에 들어가면 ‘이럇사이마세’라고 중국 직원이 외친다. 노천탕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기모노를 입은 종업원이 건네주는 일본 생맥주로 목을 축이면 이곳이 중국인지 일본인지 헷갈릴 정도다. ‘탕 내에서 담배를 피지 마시오’란 경고문만 없으면 영락없는 일본 온천이다. 극락탕 같은 일본식 온천이 대유행하자 일본식에 한국식, 중국식 목욕법까지 가미한 온천탕들도 상하이 곳곳에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이 밖에 일본산 식품과 영유아용품은 요즘 생겨나는 고급 슈퍼마켓의 가장 목 좋은 자리에 놓여 있다. 좀 산다는 집에서는 일본식 다다미를 설치하는 것도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11월 5일부터 상하이에서 개막하는 중국 최초의 국제수입품박람회에는 상하이 사람들의 일본 제품 선호를 겨냥해 전 세계 2800여개 참가 기업 가운데 일본 기업이 최대 규모로 들어온다. 상하이시는 시진핑 총서기가 참석할 예정인 행사 첫날과 둘째 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는데, 일본 기업에 멍석을 깔아주는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따지고 보면 중국과 일본의 은원(恩怨)은 한국만큼이나 깊고 오래됐다. 중국 입장에서 일본은 청일전쟁, 중일전쟁의 직접 교전 당사국이고, 30만명을 학살했다는 난징대학살의 주범이다. 중국 관영 CCTV에서는 일본군의 침략을 상기시키는 드라마가 지겹도록 나온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상하이의 국빈관인 서교빈관과 옛 조계지의 신금강대주점에는 1992년 일왕 최초로 중국을 방문한 아키히토 일왕의 기념사진이 걸려 있지만, 이를 보고 뭐라 하는 중국인은 없다. 당시 장쩌민 주석의 초청으로 방중한 아키히토 일왕은 베이징, 시안, 상하이를 6일간이나 돌았다. 국교정상화(1965년)를 단행한 지 반세기가 훌쩍 넘었음에도 아직 찾아올 엄두조차 못 내는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사실 한국인들의 일본 사랑도 상하이 사람들 못지않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중 한국인은 714만명으로 중국인(735만명)에 이어 2위였다. 중국과 한국의 인구 차이를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숫자다.

하지만 지난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함께 한·일 양국관계는 또다시 수렁에 빠져들었다. 지난 정부 때 중단된 한·일 통화스와프 재개는 고사하고 위안부, 욱일기에 이은 또 다른 난제(難題)다. 그 와중에 중·일 관계는 아베 총리의 방중을 계기로 회복국면에 돌입했다. 이 같은 기조는 대형 돌발변수가 없는 한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까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처세는 위태롭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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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미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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