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시청역 게시판에 붙어 있는 제로페이 홍보 포스터.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지하철 시청역 게시판에 붙어 있는 제로페이 홍보 포스터.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정부와 서울시가 소상공인의 카드수수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고안한 이른바 ‘제로페이’가 시행도 하기 전부터 잡음을 내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계좌이체에서 나오는 수수료 수익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결제플랫폼을 구축·운영하는 비용까지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 몰리면서 ‘관치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충분한 검토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시범사업 시행을 강행하는 모습을 두고 ‘빈 수레가 요란한 격’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와 서울시는 오는 12월 17일부터 제로페이 시범사업을 시행하기로 하고 공동가맹점을 모집하고 있다. 제로페이는 소비자가 가맹점에서 물건을 살 때 간편결제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가맹점 QR코드를 찍으면 소비자 계좌에서 판매자 계좌로 바로 돈이 이체되는 결제방식이다. 기존 신용카드 결제 과정에서 부과되는 카드사 수수료, 부가통신업자(VAN사) 수수료 등 중간단계를 줄였다.

이러한 계좌 간 거래에서 은행은 통상 50~500원의 수수료를 가져간다. 그러나 제로페이에 참여한 은행은 이 수수료를 아예 받지 않거나 깎아주기로 했다. 가맹점 연 매출액을 기준으로 8억원 이하는 수수료를 아예 받지 않고, 매출액 8억~12억원은 0.3%, 12억원 초과는 0.5%만 받게 된다. 정부와 서울시는 신용카드나 체크카드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제로페이로 갈아타도록 제로페이 소득공제 혜택도 40%로 높이기로 했다. 신용카드의 소득공제율 15%보다 25%포인트, 체크카드의 소득공제율 30%와 비교해도 10%포인트 높다.

제로페이의 취지는 소상공인이 무리한 카드수수료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지만 금융권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제로페이에 참여하는 은행들은 수익성이 없는 사업에 운영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복수의 은행 관계자들은 “아무리 정부주도 사업이라고 해도 수익성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용부담까지 떠넘기는 것은 지나친 관치”라고 입을 모은다.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서울시 소상공인 66만명이 모든 결제를 제로페이로 할 경우 11개 시중은행이 포기해야 하는 수수료는 연간 약 760억원에 달한다. 제로페이가 주요한 결제수단으로 대체됐을 경우를 상정한 수치이나 해당 은행들에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제로페이 운영에 드는 비용도 은행이 부담해야 한다. 현재 제로페이에 참여하기로 한 국민·우리·신한·하나은행 등 18개 금융회사와 네이버·NHN페이고 등 10개의 간편결제 사업자는 제로페이를 위한 통합 플랫폼을 사용해야 한다. 이 통합 플랫폼은 금융결제원이 주축이 돼 만들고 있다. 초기 설치비용으로 39억원이 들고 이후 운영비용으로 매년 35억원씩 들 것으로 추산된다. 금융결제원은 은행분담금으로 운영되고 있기에 사실상 은행들이 돈을 내 통합 플랫폼을 운영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수익 없는 사업에 계속 운영비를 들여야 한다면 이를 달갑게 여기는 회사가 얼마나 될까. 제로페이가 과연 ‘지속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최근 대형 결제업체인 비씨카드와 카카오페이가 제로페이 사업 불참을 결정하면서 우려는 더욱 증폭되고 있다. 카카오페이의 경우 기존의 QR코드를 보급받은 가맹점들이 혼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비씨카드는 계좌 기반 방식에서 카드사의 역할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을 이유로 불참을 선언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지난 10월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서울시에서 하는 것은 소상공인 수수료 경감 완화를 위한 것으로 이해하나 영속성 있게 하려면 인위적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가맹점 관리 비용을 지자체가 (개입)하는 비효율성 등도 같이 연구해야 한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결국 참여사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유인책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서울시 측에서는 “제로페이는 각각의 가맹점을 다양한 제로페이 참여 사업자가 함께 공유하는 공동 가맹점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때문에 제로페이 참여 사업자는 개별 가맹점 마케팅 비용은 절감하면서도 자체 결제 플랫폼을 사용할 수 있는 오프라인 가맹점은 늘어나는 효과를 본다”고 밝히고 있다.

마이너스통장과 연계 시 소득공제 논란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이어진다. 한국은 신용카드 기반이 워낙 탄탄하기 때문에 소비자를 제로페이로 유인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한국의 신용카드 보유 비율은 현재 80%를 상회한 데다 민간 소비지출 대비 신용카드 이용률 또한 6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소비자가 부가서비스 등 혜택이 많은 체크·신용카드를 두고 굳이 현금성 결제방식, 즉 앱으로 QR코드를 찍어야 하는 제로페이를 택할 이유가 부족하다.

제로페이의 유인책으로 제공되는 ‘소득공제율 40%’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오히려 제로페이를 마이너스통장에 연계할 경우에는 ‘부당한 소득공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소비자가 마이너스통장에 제로페이를 연결해놓으면 계좌잔액이 ‘마이너스’여도 40%에 달하는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계좌에 잔액이 없어도 제로페이로 결제만 하면, 즉 빚을 내어 소비를 해도 소득공제율 40%에 달하는 세금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미 마이너스통장과 연계된 체크카드의 소득공제 혜택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마이너스통장 계좌는 체크카드와 연계하지 못하도록 제도 개선에 나서기도 했지만 결국 유야무야됐다. 이 와중에 체크카드보다 더 많은 소득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제로페이가 등장하게 되면 체크카드와 마이너스통장 연계 문제를 되풀이하는 격이라 할 수 있다.

정부와 서울시가 공정경제 실현방안의 하나로 제로페이를 추진하는 만큼 사업 정착을 위해서는 좀 더 세밀한 설계가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제로페이가 소비자의 마음을 끌지 못한다면 제로페이 가맹점과 참여사에도 남는 게 없다. 이에 대해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제로페이의 기능이 더 업그레이드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서 교수는 “제로페이는 소비자 잔고에서 결제가 이뤄지는 방식인데 아무래도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신용카드와 같은 ‘신용공여 기능’이 추가로 제공되어야 소비자 유인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로페이가 신용카드와 같이 신용공여 기능을 가지게 되더라도 문제는 상존한다. 서 교수는 “하지만 제로페이의 신용 기능이 휴대폰 소액결제 방식과 비슷한 소액결제에 국한될 경우에는 오히려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하거나 도태될 수도 있다”며 “거래금액이 클 경우에도 신용카드처럼 신용공여 기능을 부여받을 수 있을지 여부가 앞으로 제로페이 성공의 관건이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조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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