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강의·수면 코칭으로 바쁜 황병일 까르마수면연구소 대표.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수면 강의·수면 코칭으로 바쁜 황병일 까르마수면연구소 대표.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커피 카페인 이상으로 숙면을 방해하는 신종 ‘카페인’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카페인’은 ‘카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앞글자를 딴 약자이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이 수면장애의 원인 중 하나라는 뜻이다. 스마트폰의 청색광은 뇌를 각성시키고 수면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를 방해한다. 입면시간도 길어지고 수면의 질도 낮아진다.

우리나라 수면장애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수면장애 중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불면증으로 2016년 진료를 받은 사람은 54만명이 넘는다. 국민 100명당 1명이 병원을 찾을 만큼 불면증을 겪고 있는 사람이 많다. 불면증을 비롯해 수면장애 질환으로는 코골이,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주간 졸림증, 수면 중 이상행동 등이 있다. 이들까지 포함하면 잠을 못 자 괴로운 사람은 의외로 많다. 한국갤럽의 2017년 조사에서 성인 34%가 “잠을 잘 못 잔다”고 응답했다. 경기연구원은 수면장애로 인한 우리나라 생산성 손실액이 연 11조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특히 수면장애 환자들에게 겨울은 고통의 계절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분석한 2016년 자료에 따르면 겨울철 불면증 환자가 여름철보다 12.6%가 더 많았다. 수면건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수면 환경이 중요하다. ‘가화만사성’보다 ‘수면만사성’을 외치는 황병일(54) 까르마수면연구소 대표를 만나 겨울철 수면건강에 대해 들었다. 황 대표는 국내 최초 메모리폼 베개 개발자로 수면 사업을 하면서 20년 가까이 수면 연구를 했다. 최근에는 수면 강의와 수면 코칭도 하고 있다. 그는 올해 ‘잠 좀 잤으면 좋겠다’는 책을 펴내고 ‘일하다 못 자고 놀다가 안 자는’ 이들에게 잠 잘 자는 법을 전파하기도 했다. 황 대표를 만나 수면 건강에 대해 들어보았다.

숙면을 위한 조건

잠은 3단계로 나뉜다. 졸음이 오는 입면 단계, 뇌는 깨어 있고 몸은 자는 렘(REM)수면 단계, 뇌와 몸이 자는 논렘(Non REM)수면 단계이다. 일반적으로 수면 주기는 첫 번째 주기인 입면-논렘-렘, 두 번째 주기인 렘-논렘-렘수면 상태가 90분 주기로 4~5회 반복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첫 번째 주기 논렘 수면의 질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잠들고 90~120분간 성장호르몬이 집중적으로 분비되기 때문이다. 밤새 나오는 양의 80%가량이 이 시간에 나온다. 성장호르몬은 세포성장, 신진대사촉진, 피부재생, 노화지연의 역할을 한다. 수면시간이 짧아도 이 시간만 제대로 자면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이때 논렘 상태로 들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황 대표는 온도를 꼽았다. “체온이 떨어져야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잠이 드는 데는 멜라토닌이라는 수면호르몬이 필요합니다. 이 호르몬이 나오면 뇌파가 잠의 시작을 알리고 체온이 떨어집니다. 잠이 가장 잘 오는 상태는 체온이 0.3도 떨어질 때입니다. 반대로 체온이 높으면 잠이 안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잠을 자다 깨거나 깊은 잠을 못 자는 경우 온도가 원인일 수 있습니다.”

과격한 운동, 열량이 높은 음식 섭취, 자기 전 뜨거운 샤워 등은 체온을 올려 숙면을 방해한다. 스마트폰을 보거나 생각을 많이 하는 것도 뇌를 활성화시켜 체온을 올린다. 갱년기 여성들이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도 몸에서 열이 나기 때문이다. “뜨끈한 데서 몸을 지져야 개운하다”고 믿고 온열 제품을 사용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고 황 대표는 말한다. 수면 검사를 해보면 뇌에 각인된 기분이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 실제 수면의 질은 동떨어진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외부 가열을 하는 경우 몸이 자율적으로 체온을 조절하는 기능에 이상이 올 수 있다고 한다. 황 대표는 숙면에 좋은 실내온도는 개인 차가 있겠지만 겨울에는 17~18도, 여름에는 25도가 적당하다고 말했다. 이불 속 온도는 계절에 상관없이 약 33도, 습도는 50%가 안락함을 느끼는 수면 환경이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거위털이나 오리털 이불도 체온을 올리는 요인 중 하나다. 황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자. “보온성은 좋지만 털이 빠지니까 커버로 코팅 원단을 사용합니다. 코팅 원단이 체온을 가두는 역할을 하는 거죠. 초고밀도 원단인 초극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람이 안 통하니 덥겠죠. 땀이 차면서 숙면을 방해합니다. 첨단소재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천연소재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열은 빼주고 공기는 넣어주는 숨 쉬는 이불이 좋은 이불입니다.”

황 대표는 진드기에 대해 과민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진드기를 이슈화한 것은 마케팅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집먼지 진드기의 배설물과 사체가 알레르기 증상을 일으킬 수 있지만 인류가 진드기와 함께 살아온 것은 아주 오래됐습니다. 진드기는 침구 속보다는 공기 중에 날아다니고 벽, 바닥에 붙어 있습니다. 진드기는 습도 55% 이상, 온도 25~30도에서 왕성하게 번식합니다. 집안 온도를 25도 이하로 유지하고 55도 이상의 뜨거운 온도에서 옷, 침구를 세탁하는 것이 오히려 진드기 관리에 효과적입니다. 굳이 침구를 선택할 때 진드기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진드기 때문에 잠 못 잤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습니다.”

불면증 환자에서 수면 전문가로

수면 전문가인 황 대표도 한때 불면증 환자였다. 잠 못 자는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그는 산동네 흙수저 출신이다. 놀면서 공고를 다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바짝 공부한 덕에 제일모직 수출부에 들어갔다. 이때 보고 배운 것이 후에 사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인터넷 쇼핑몰 시대가 막 시작된 1990년대 초반 통신판매 사업을 시작했다가 5년 만에 IMF 외환위기가 왔다. 연쇄부도로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가 됐다. 전 재산 45만원을 들고 무작정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기내 잡지에서 우연히 해외 브랜드의 메모리폼 베개 광고를 보고 무릎을 쳤다. 국내 최초 메모리폼 베개를 만들고 기능성 수면용품 전문업체인 트윈세이버를 창업했다. 수출길도 닦고 성공했다 생각한 순간 투자 실패로 180억원의 빚을 지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8년 만에 재기에 성공해 법정관리를 졸업하고 6개월, 경영권 분쟁 끝에 회사에서 쫓겨났다.

경영위기를 겪으면서 심각한 불면증이 왔다. 6개월간 잠을 못 자고 시달리다 보니 죽겠다 싶었다. 수면의 중요성을 진짜 깨달은 계기이기도 했다. 그가 살기 위해 찾은 방법은 자신감을 되찾는 일이었다. 저녁이면 “수고했다”는 말로 자신을 위로하고 “나는 잠을 잘 수 있다”고 자기암시를 했다. 일어나면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보면서 기지개를 켜고 “잘 잤다”는 말을 내뱉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잠을 못 잤더라도 말을 하는 것만으로 긍정의 리셋 버튼을 누른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생각을 바꾸니 잠이 바뀌고 일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가 자신의 가장 큰 무기로 생각하는 ‘긍정 마인드’도 불면증 탈출에 도움이 됐다.

경영권을 빼앗긴 후 배신감에 함몰되는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베개혁명’이라는 책을 내고 수면에 대한 글을 쓰면서 ‘수면 강사’로 새로운 도전을 했다. ‘벼랑 끝에서 떨어져 날아보자’ ‘꺼져가는 불에는 불씨가 남아 있다’ ‘낯선 길은, 나에게 신작로다’ ‘고난대학은 최고의 명문대학’ 등 그의 책에는 그가 몸으로 체득한 역발상의 도전이 담겨 있다. 그리고 올 2월 다시 회사를 재인수할 기회가 왔다.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났다 다시 찾은 흔치 않은 경우이다. 황 대표는 복귀 후 사업 확장에 의욕적이다. 그동안 수면 강사로 쌓은 지식을 제품 개발에도 녹일 것이다. 수면연구소를 통해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한 소재 개발이나 연구도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베개 전문가가 말하는 좋은 베개는 어떤 것일까. “나한테 맞는 베개가 가장 좋은 베개”라는 것이 황 대표의 대답이다. 일단 경추 모양인 C자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베개를 사용해야 한다. 이때 사람마다 체중이나 잠버릇, 체형도 다르고 낮에 잘못된 습관을 바로잡아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직접 누워보고 선택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베개라고 나한테도 좋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매트리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독일이 수십 년 전에 최적의 매트리스를 만들어보겠다고 연구했는데 ‘최적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만큼 환경, 날씨, 건강, 체형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냐 아니냐, 머리를 많이 쓰는 직업이냐 몸을 많이 쓰는 직업이냐, 한쪽으로 자냐 반듯이 자냐 등에 따라 나한테 맞는 매트리스가 다른 거죠.” 황 대표는 “잘못된 건강 상식을 이용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라돈 사태도 후발주자들이 자꾸 기능을 추가하면서 잘못된 길을 가게 된 것이다”고 지적했다. 황 대표는 매일 11시에 자서 6~7시에 일어나는 습관이 11년째라면서 자신의 숙면 비결은 자기 전 명상이라고 말했다. 명상은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체온을 낮추고 숙면으로 유도한다. 그는 “나를 극대화시키는 시간은 잠자는 시간이다. 인생을 바꾸려면 잠부터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수면 상식

1. 하루 4시간만 자면 충분하다?

개인에 따라 적정 수면시간은 다르다. 수면시간보다 수면의 질이 중요하다.

2. 밀린 잠은 주말에 몰아서 자면 된다?

지나치면 역효과. 평일과 주말의 수면시간이 1시간 이상 차이 나면 좋지 않다.

3. 머리만 대면 잠드는 게 부러운 일인가?

수면의 질이 좋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오히려 수면부족이나 질병이 원인일 수 있다.

4. 한밤중에 깨는 건 나쁜 일이다?

옛날에는 분할수면이 자연스러웠다. 정상적인 일로 건강이상 신호는 아니다.

5. 왼쪽으로 자면 건강에 좋다?

역류성 식도염 환자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반듯이 자는 것이 가장 좋다.

6. 뜨끈한 바닥이 숙면에 좋다?

외부가열을 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몸의 리듬이 지켜지게 해야 한다.

7. 알몸으로 자면 좋다?

체온조절에 도움을 주지만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은 저체온증 주의. 하지불안증후군도 따뜻한 잠옷이 도움이 된다.

8. 스프링? 라텍스? 메모리폼?

누구에게나 좋은 매트리스는 없다. 내 체온관리에 가장 좋은 것을 골라라.

9. 미인은 잠꾸러기?

취침 후 3시간 동안의 성장호르몬이 피부세포 재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10. 나이 들면 아침잠이 없어진다?

체온리듬이 바뀌기 때문이다. 짧은 낮잠과 초저녁의 가벼운 운동이 숙면과 건강관리에 도움이 된다.

자료: 황병일 ‘잠 좀 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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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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