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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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연습게임이었어요. 이제 본게임을 시작해야죠.”

‘외식업계의 마녀’ 노희영(55) YG푸즈 대표가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코리안 바비큐집 ‘삼거리푸줏간’, 브런치 카페 ‘쓰리버즈(3Birds)’, ‘K-Pub’ 등 외식 브랜드를 잇달아 만들며 또 한 번의 성공신화에 도전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본게임의 무대는 한국이 아니다. 그는 세계시장을 노리고 있다. ‘삼거리푸줏간’은 지난해 태국 방콕,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각각 1호점을 연 데 이어 올해 쿠알라룸푸르 2호점과 도쿄 시부야점이 생겼다. 현재 베트남에 준비 중이고 중국도 ‘사드 제재’만 풀리면 바로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YG푸즈는 노 대표가 CJ를 나와 2015년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회장과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이다. YG푸즈는 고기(삼거리푸줏간), 펍(K-Pub), 커피(3Birds)를 결합한 ‘YG리퍼블릭’을 세계 곳곳에 세울 계획이다. 국내에는 제주 신화월드를 비롯해 명동, 여의도 등에 4곳이 있다.

마켓오, 호면당, 비비고, 계절밥상, 빕스, 투썸플레이스, 올리브영, CGV, 올리브채널…. 노 대표가 오리온, CJ에서 론칭하거나 리뉴얼한 브랜드이다. 이 외에도 ‘마녀’의 손이 닿은 곳은 셀 수 없이 많다. ‘마녀’는 독설로 얻은 별명이지만 ‘요술 부리는 마녀’임에는 틀림없다. 손대는 것마다 성공을 하며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던 만큼 노 대표의 움직임을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돌진형이다. 판단이 빠르다. 결정하면 무조건 ‘고!’다. 독설은 이미 그의 브랜드가 됐다. 몇 년 전 올리브 TV의 오디션 프로그램 ‘마스터셰프코리아’ 심사위원으로 출연, 독설을 날리며 출연자들을 떨게 만들었다. 앞뒤 안 재고, 눈치 안 보고 직진이니 적도 많고 욕도 많이 듣는다. 최근에도 해프닝이 있었다. SBS 예능프로 ‘집사부일체’에 사부로 출연해 겁도 없이 아이돌에게 쓴소리를 했다가 아이돌 팬들의 욕을 뒤집어썼다. 덕분에 ‘마녀사부’라는 새 별명을 얻었다. 논란이 되면서 ‘노희영’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욕이라면 이력이 났을 ‘마녀사부’를 그가 최근 서울 서초동 센트럴시티에 만든 ‘쓰리버즈’에서 만났다.

“욕먹는 건 안 무서워요. 아마 욕을 안 먹었다면 지금까지 그 일들을 못 해냈을 겁니다. 사실 대기업에 용병이 굴러들어가서 앞만 보고 가던 사람들한테 ‘지금부터 좌향좌해 볼까요’ 하는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바꾸려면 강하게 나갈 수밖에 없어요. 지금 우리 사회를 보세요. 리더들이 숨는 시대가 됐어요. 다들 욕 안 먹고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 하잖아요. 공(功)은 공, 과(過)는 과로 인정해야 하는데 뭐 하나 걸리면 난도질을 당하니 누가 나서려고 하겠어요. 우리 사회는 지금 공은 전부 사라지고 과만 남았어요.”

파격의 마녀

듣던 대로 그는 직설화법이었다.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싶은 말도 바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같이 일하기 힘든 상사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그의 ‘마녀’ 수련을 견뎌내고 성공을 맛본 사람은 그의 추종자가 된다고 한다. 오리온에서 CJ로 현재까지 그와 운명을 함께하는 노희영 사단이 있다. “가르칠 게 있으니 야단도 치는 거죠. 우리 집 도우미에게는 제가 가르칠 게 없어요. 집에 가면 아무 말도 안 합니다. 20년을 함께했어요. 저를 천사로 알 걸요. 성장을 하려면 성장통은 따르게 마련입니다. 후배들이 나와 함께 컸으면 좋겠어요.” 그의 말이다.

그는 등장도 퇴장도 늘 파격이었다. 지나간 자리엔 소문과 억측이 무성했다. 그에 대한 평가도 극과 극을 달린다. ‘마켓오’를 들고 오리온에 들어가 노희영이라는 이름을 알렸을 때도, 2010년 CJ그룹 브랜드전략 고문으로 느닷없이 나타나 ‘외식업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을 때도, CJ그룹사를 종횡무진 누비던 그가 2014년 ‘탈세’ 문제가 불거지고 결국 CJ 부사장직을 그만두고 나올 때도, 호사가들의 입은 바빴다.

지난 11월 5일 그가 CJ를 나온 것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에게 사퇴를 종용한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원심대로 ‘강요미수’를 적용,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판결이다. 청와대가 CJ를 압박했던 사건은 노 대표의 운명도 바꿨다. 이미경 부회장의 사람으로 통했던 노 대표는 당시 사건의 한가운데 있었다. 조원동 전 수석의 사퇴 압력과 함께 서울지방국세청은 CJE&M에 대해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이때 이미경 부회장의 비자금 창구로 의심을 받은 노 대표의 통장도 탈탈 털렸다. 국세청의 중수부라고 하는 ‘조사4국’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때 노 대표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던 레스토랑 컨설팅업체 ‘히노 컨설팅 펌’은 3년 동안 세금 5억여원을 포탈한 혐의로 벌금 30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할 말이 많지만 어쨌든 잘못한 일이다”고 그가 말했다. 그에게는 가장 아픈 부분이다.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어요. 나를 스카우트한 건 이미경 부회장이 아니라 이재현 회장이었습니다. 이재현 회장과 일한 것이 훨씬 많았습니다. 나는 보스는 철저하게 모십니다.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나를 성장하게 해준 사람들입니다.”

CJ에서 그는 CJE&M, CJ푸드, 오쇼핑 등 전체 그룹의 브랜드 전략을 맡아 영역 없이 뛰었다. 그는 일을 할 때 월급쟁이가 아니라 오너처럼 일한다. 그러니 ‘오너 믿고 권력을 휘두른다’는 오해도 받았을 법하다. CJ가 만든 영화 ‘명량’ ‘베를린’ 등에도 그의 손길이 깊숙이 들어가 있다. ‘명량’이 하마터면 그해 개봉을 못할 뻔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명량’ 개봉을 앞두고 세월호 사건이 터졌어요. 물만 봐도 사람들이 경기를 일으키던 때였습니다. 더구나 영화 장소가 진도 울돌목이잖아요. CJE&M에서는 빨리 개봉하게 해달라 발을 동동 구르고, 지주사는 안 된다고 하고. 밤새 필름을 보면서 고민했죠. 결국 첫 장면만 자르는 조건으로 개봉관에 걸었습니다. 그리고 사관학교를 돌며 장군들 모셔다놓고 시사회를 열었습니다. 장군들에게 ‘명량’은 바로 자기 영화였어요.”

잘린 첫 장면은 이순신이 바다를 보면서 “이 바다는 피를 부른다”는 장면이었다고 한다. ‘명량’의 누적 관객수는 1700만이 넘었다. 이 기록은 아직까지 안 깨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강점이 마케팅 포인트를 잘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은 돈으로 가장 큰 효과를 내는 법을 늘 고민한다. 마켓오의 대표 상품인 초코브라우니를 직접 만들어 론칭할 때였다.

“이화경 부회장이 저를 불러 계열사 대표를 하라는 겁니다. 사장은 싫고 초코파이 같은 대표상품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죠. 공장에서 쉬는 라인을 이용해 브라우니를 만들었어요. 당시 ‘빅뱅’이 뜰 때였는데 브라우니를 들고 YG를 찾아가 빅뱅 콘서트에서 나눠주겠다고 했죠. 좋아하는 아이돌을 보면서 달콤한 과자를 먹는다고 생각해봐요. 얼마나 맛있겠어요.”

미션 임파서블!

당시 회사에서 준 미션이 ‘연 매출 100억원’이었는데 한 달 만에 65억원어치를 팔았다고 한다. 초코브라우니의 성공으로 그는 오리온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CJ에서 비빔밥 사업을 하면서 조언을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들어보니 딱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이화경 부회장에게 부탁을 해 양쪽 회사를 오가며 일을 했다. 오리온 임원들의 반대는 불 보듯 뻔했지만 이화경 부회장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CJ로 아예 적을 옮길 때도 “꿈이 그곳에 있다”는 한마디에 그를 보내줬다. 백지수표를 받고 CJ로 옮겼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그는 “한 푼도 안 받았다”고 말했다.

4년 전 그가 CJ를 나올 때 사람들은 “이제 노희영은 끝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하루도 안 쉬었다. 사표를 낸 다음 날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과, 그 다음날은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회장과 전화통화를 했다. 그 결과가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50층에 만든 복합외식공간 ‘스카이팜’과 ‘YG푸즈’이다. ‘스카이팜’이 있는 곳은 당시 3년 동안 비어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전경련 건물과 따로 연결되는 탓에 입지 여건이 좋지 않았다. 2000㎡(600여평)에 달하는 공간을 본 순간 노 대표는 또 “고!”를 외쳤다. “CJ에 있을 때 추진하던 일이었습니다. 당연히 회사에서는 난리가 났죠. ‘또 미친 짓 하는구나’ 하면서 전부 반대했죠.” 결국 CJ를 나와 일이 진행이 됐다. 문제는 돈이었다. 그를 따라 나온 5명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나 따내 3개월 밤낮없이 일하고 9억원을 벌었다. 그 돈을 시드머니로 투자를 받아 ‘곳간’ ‘세상의 모든 아침’ ‘사대부집 곳간’으로 이뤄진 ‘스카이팜’을 만들었다. ‘스카이팜’은 현재 매일 대기줄이 늘어선다. 한 달 매출이 10억원에 달한다.

“제가 공실 전문가예요. 쓰리버즈가 있는 이곳도 5년 동안 비어 있었습니다. 동대문 DDP에 만든 레스토랑 ‘히노스 레시피’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는 공실이 좋아요. 임대료가 싸잖아요. 다 망할 거라고 수군거렸지만 음식사업은 교육사업이지 기술사업이 아니에요. 어떻게 교육을 시키느냐에 달렸어요.”

사람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그를 살린 것도 사람이다. 힘든 시기에 그의 옆에 있어준 사람들은 친한 연예인들이었다. 그의 인맥은 화려하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싸이, 하정우, 이정재, 고소영, 정지훈 등 우리나라 톱스타들이 모두 모여 있다. 오죽하면 언론에 기사화됐을 정도다.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미국에서 소아과의사 인턴십을 하다 파슨스디자인스쿨로 방향을 확 틀었다. 한국에 돌아올 때는 단추디자이너가 돼있었다. 디자인스쿨의 배움이 외식사업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YG푸즈 외에도 그동안 자신의 컨설팅회사 ‘히노 컨설팅 펌’을 통해 손댄 일이 많다. 강릉 세인트존스 호텔 외식브랜드 리뉴얼도 그의 작품이고 경기도 이천 납골당에서 레스토랑도 운영한다. 건축가 최시영과 함께 삶과 죽음이 함께하는 ‘즐거운 납골당’을 만들어보자고 만든 곳이다. 그는 “사장·대표 같은 자리는 관심이 없다.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종횡무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그를 두고 하정우는 “브랜드의 마술사이자 신의 혀와 매의 눈을 소유한 마녀”라고 평했다. 그는 브랜드를 만드는 일은 아이를 낳는 것과 같다고 했다. 낳기만 하고 남의 손에 맡기고 나오는 컨설팅보다 이제는 직접 키우고 싶다고도 했다. ‘신의 혀’ ‘매의 눈’보다 그를 만든 건 지치지 않은 ‘열정’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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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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